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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머니와 나비

어머니와 나비

: 손종일 장편소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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품목정보

품목정보
발행일 2008년 03월 07일
쪽수, 무게, 크기 319쪽 | 478g | 153*224*30mm
ISBN13 9788992751384
ISBN10 899275138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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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자 소개 관련자료 보이기/감추기

저자 : 손종일
경북 청도 출생. 경주대학교 문예창작학과를 거쳐 중앙대학교 대학원 문학예술학과를 졸업했다. 1996년 한국문학예술 시 부분 신인상을 수상했으며, 1998년 장편소설 《어린 숲》으로 제7회 작가세계문학상을 수상하며 등단했다. 작품으로는 시집 《죽어서도 내가 섬길 당신은》《사랑몰이》《끝없는 사랑》이 있고, 장편소설로는 《애별 1, 2》《죽어서도 내가 섬길 당신은 상, 하》《죽음보다 깊은 사랑 상, 하》《어린 숲 1, 2》《남자의 눈물 1, 2, 3》 《봉숭아 꽃물 1, 2》《뿔 1, 2》《바다를 찾아 떠난 버들치》(우화소설) 《수레국화 필 무렵》등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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는 그때, 빵모자를 벗자마자 드러난 사내의 머리카락 색깔이 검정색이거나 그도 아니면 희끗한 흰색이 섞여 있지 않은 것이 무척이나 신기해, 더 또렷이 눈을 떼지 않고 사내를 쳐다봤습니다. 미상불 사내의 머리카락은 내가 예전에 한 번도 본 적이 없는 붉은 빛이 은은하게 감돌고 있었습니다. 나는 사내의 붉은 머리카락에서 원초적인 야생의 본질 같은 것이 느껴졌습니다. 그리고 막 눈 덮인 산야를 활기차게 뛰어다니다 온 붉은 털을 가진 맹수의 기질을 엿보았습니다. --- p.30

얼떨결에 아버지의 목말을 타고 집으로 내려오던 길, 그 길은 마치 천국과도 같은 기분 좋은 일렁거림이기에 충분했습니다. 하지만 나는 행여 아버지가 내 몸무게에 잘못하여 허방 짚지나 않으실까 숨을 자주 멈추어 몸의 무게를 줄이려 무던히도 애썼습니다. 그런데 아버지는 내 염려와는 달리 자세 한 번 삐끗하지 않은 채 곧게곧게 걸어서 집까지 내려왔습니다. 여전히 군용 잠바 윗주머니에 내 발을 꼬옥 숨기고선. --- p.69

어머니는 청산가리 탄 물을 드신 후 사흘 만에야 몸을 추슬러 겨우 안정을 찾은 듯 했는데, 대대로 물려오던 전답에 느닷없이 새로운 주인이 나타나자 상황을 다 인식한 듯 체념하고 자리에 드러눕고 말았습니다. 그제야 나는 아버지가 왜 그때 안방 반닫이를 뒤지고, 경대를 뒤졌는지 깨달았습니다. 그때 아버지는 이미 논밭문서를 찾고 계셨던 것입니다. --- p.125

1972년 가을, 일 년이 지나서야 다시 찾아온 누나는 그런 모습이었습니다. 내가 그토록 그리워하던, 생머리가 치렁하던 스무 살 누나는 흡사 흐트러진 짚더미를 검게 물들여 머리에 올려놓은 것 같은 스물한 살이 되어 그런 모습으로 집으로 돌아왔습니다. 그날은 내 머리를 어질하게 만들던 누나의 분 냄새를 날려버릴 만한 바람 한 점 불지 않던, 지독히도 잔잔한 날이었습니다. --- p.194

“니도 알다시피 너거 아부지가 잠시 잠깐 생각을 잘못 자셔가 조상 대대로 물려받은 전답을 다른 사람들 손에 넘기게 안 됐더나. 하지만서도 인제사 너거 아부지가 바른 맘을 자셨는지, 아이마 이대로 저승에 가서 조상님들 얼굴 뵙기가 민망했던지, 다시 전답을 되찾아야겠다고 맘을 자신 듯하다. 그렇다고 뾰족한 수가 있는 것도 아이라서 너거 아부지하고 구룡포로 가기로 했다. 거게서 한 몇 년간 고생하면 돈 좀 모아질 끼라카이, 그때 다시 돌아와서 옛날 우리 전답을 도로 찾자고 카시네.” --- p.225

“이기 뭡니꺼?”
“돈이다.”
“각중에 돈은 와예?”
“차비다, 내일 날 밝으마 떠나거라.”
어머니가 아버지의 말씀에 무어라 대답하기도 전에 아버지는 자리에서 일어나셨습니다. …… 나는 갑자기 내 몸이 부르르 끓어오르는 것 같은 분노를 느꼈습니다. 어머니와 나를 그렇게 ‘청해관’에 데려다놓고, 훌쩍 떠났다가 일 년이 넘어서야 돌아온 아버지에게서 어머니가 들었어야 할 말은 아니라고 생각했습니다. --- pp.276-277

어디선가 본 듯도 하다고 생각했던 목도리…… 누나의 가방 안에서 나온 고동색 목도리…… 어머니가 비장한 모습으로 아궁이 안에 둘둘 말아 던진 고동색 목도리……. 하지만 도무지 어디서 본 것인지 기억나질 않던 고동색 목도리……. 아버지가 처음으로 상수월을 올라오실 때 친친 두르고 계시던 겨울 목도리……. 그때 ‘청해관’에서 일 년 만에야 돌아오신 아버지에게서 휑함과 허전함을 느끼게 만든 고동색 목도리. …… 내 판단이 잘못된 것이 아니라면 나는 누나의 가방 안에서 딸랑이와 함께 나온 그 목도리가 그리고 어머니가 황급히 아궁이 속으로 던져 넣은 목도리가 아버지의 것이 분명하다고 생각했습니다.
--- p.3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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