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00만 페세타가 약간 못 되는 돈으로, 어제까지만 해도 이름조차 몰랐던 농장을 사들이게 되었다. 떠돌이 양털 깎기 일꾼이자 서식스sussex, 영국 잉글랜드 남동부에 있던 주의 공항 활주로 아래 오두막 세입자 신세에서, 몇 분 만에 안달루시아 산속의 농장 주인으로 탈바꿈한 것이다. 이 지위에 익숙해지려면 시간이 좀 걸릴 듯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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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지방에서 남자의 음식이란 닭 대가리, 햄의 기름, 돼지피로 만든 푸딩, 생고추와 생마늘, 춤보chumbo, 딱딱한 빵과 진한 와인을 뜻했다. 남자의 음식을 먹어야 남자다운 덕목들을 키울 수 있고, 그런 음식은 하루 중 이른 시간에 먹을수록 더욱 효과가 있다고 했다. 그러므로 바싹 구운 닭 대가리와 맵디매운 고추와 딱딱한 시골식 빵 덩어리를 한입에 삼키고 코스타 한 잔에 넘겨버릴 수 있는?그리고 아침부터 이런 식사를 맛있게 할 수 있는?남자야말로 진정한 남자인 셈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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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뭔가 나왔어요!” 내가 외치자마자 갈색 물줄기가 멈췄다. 공기가 좀더 쉭쉭대며 뿜어져 나오고, 파이프가 몇 차례 뱀처럼 꿈틀대다가 한 번 더 기침 소리를 내더니 마침내?하느님 감사합니다!?샤워기에서 맑은 물이 쏟아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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솔직히 말하자면, 알푸하라스의 집들을 설명하는 데 우아함이나 오묘함만큼 어울리지 않는 단어도 없을 것이다. 알푸하라스식 건축의 매력은 그 단순함에 있다. 매번 조금씩 변형되는 단순한 설계와 거기에 거주민들이 덧붙이는 소박한 장식물은 종종 놀라운 아름다움을 빚어낸다. 맨 처음 알푸하라스의 집들을 보았을 때는 아무런 감흥도 느끼지 못했지만, 점점 그 매력에 빠져드는 것을 느낄 수 있었다. 지금은…… 글쎄, 남들처럼 박공지붕과 납땜한 창문이 달린 집에서 지내게 되면 불편해서 못 견딜 정도가 되었달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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알푸하라스의 겨울은 마탄사, 즉 돼지를 잡는 기간이었다. 다른 계절엔 파리와 말벌이 냄새를 맡고 잔뜩 몰려들어 마을의 중요 행사인 도살을 방해하기 십상이었다. 그러한 이유에서 이 무시무시한 행사는 한겨울 날, 그것도 새벽 일찍부터 시작되기 마련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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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바지를 추켜올리고 기계를 점검한 다음, 첫 번째 양을 덥석 끌어와서 익숙한 손놀림으로 엉덩이를 한 번 탁 쳤다. 털 깎을 준비는 끝났다. “어디 보자고. 저 멍청이의 불알이 날아갈 테니. 그래도 싸지!” 운 좋게도 양은 금세 고분고분해져서 내 무릎 사이에 가만히 앉았다. 나는 전기 코드를 꽂았다. 기계가 윙 소리를 내자 나는 곧바로 기계를 양털에 갖다 댔다. 버터처럼 매끄럽게 양털이 벗겨져나가는 동안 양은 그야말로 참을성 있게 협조하는 자세를 취해주었다. 45초 후?그 양은 털이 적은 편이었다?나는 양의 오른쪽 무릎을 살짝 눌러 한 번에 일으켰고, 그다음엔 털 깎는 기계의 전압 조절기를 능란한 솜씨로 한 번 휙 돌려 껐다. “왜 다들 가만히 계시나요? 다음 양을 데려오시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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엘핀은 계속 건강하게 자랐다. 꾸벅꾸벅 졸고 있지 않을 때면 쥐를 잡았는데, 정말로 솜씨가 훌륭했다. 적어도 우리에겐 그렇게 보였다. 쥐의 존재는 이미 그놈들의 똥 그리고 집과 테라스 사방에 찍혀 있는 조그맣고 까만 발자국들로 충분히 드러나 있었다. 하지만 얼마 후 쥐들의 자취는 싹 사라졌고, 따라서 우리는 두 가지 결론 중 하나를 선택할 수밖에 없었다. 엘핀이 정말로 쥐를 잘 잡거나, 아니면 녀석이 쥐똥을 먹고 다니거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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집을 완성하는 데는 다섯 달이 걸렸다. 돌바닥을 깔고, 새 밤나무 들보를 제 위치에 올리고, 들보에 아마인유油를 열두 겹 칠하는 필수 과정을 거치고, 배관 설비를 완전히 끝내고, 거친 목재들을 말끔하게 엇붙임으로 이었다. 거실 중앙에는 주철 굴뚝과 곡선형의 올리브 나무 선반이 달린 우아한 벽난로가 세워졌다. 이 벽난로의 최초 설계자인 럼포드 백작은 20세기 미국 사람으로, 야외의 모닥불을 좋아하는 남다른 취향을 벽난로 디자인에 반영하려는 시도 끝에, 연기는 완벽하게 굴뚝으로 빠지면서 열기는 방안에 보존할 수 있는 설계를 완성했다고 한다. 그의 설계에 따라 우리가 직접 만든 벽난로는 무척 근사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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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페드로, 이 썩은 우유 같은 놈! 네 거시기를 식초에 절여버릴 테다. 어디 숨었냐, 앙?” 창문이 활짝 열리더니 누군가가 밖을 내다보았다. 그는 우리를 무뚝뚝하게 내려다보았다. 나는 미소를 띠고 가볍게 절한 다음, 내 소개를 하려고 했다. 그러나 토니토가 큰 소리를 지르며 내 말을 막았다. “네놈을 만나고 싶단 사람을 데려왔어, 페드로. 양 좀 사고 싶댄다. 그놈의 양, 엿이나 먹어라!” 그렇게 말하고 나서 토니토는 훌쩍 그 자리를 떠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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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선 도밍고와 내가 여러 달 전에 쌓아둔 유칼립투스 목재들을 가져와야 했다. 건장한 남자 열두 명이 사방에서 나무를 둘러싸고 밀며 끌며 옮겨왔다. 그러고 나서는 커다란 바위를 굴려와 강가에 떨어뜨려 첫 번째 교각을 만들었다. 다들 가장 큰 바위를 가져오려고 난리였고, 나는 누가 지나치게 무거운 것을 들다 탈장이라도 될까 봐 걱정스러웠다. 바위를 쌓은 후 협죽도, 금작화, 유칼립투스의 잔가지를 두툼히 쌓아 올렸다. 그러고선 다시 바위, 그 위에 다시 잔가지 순서로 쌓아 올려 마침내 수면에서부터 1.5미터 높이의 새 교각이 완성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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새로 태어난 양들은 이리저리 돌아다니며 풀 냄새를 맡아보기도 하고 달팽이, 메뚜기, 나비를 보고 소스라쳐 놀라기도 했다. 새하얗고 조그만 양들은 아세키아 주변에 모여들어 서로 몸을 비벼대다가 갑자기 멈추어 엄마에게로 달려가더니, 얼른 젖 한 번 빨고는 햇볕 아래 잠이 들곤 했다. 아무리 냉혹한 양 중개인도 이런 모습을 보면 감동할 수밖에 없을 것이다. 우리 역시 결국엔 새끼들을 바깥에 내놓고 키우기로 결정했다. 어차피 양들의 인생은 짧았고, 나는 그들이 즐겁게 지내는 걸 막기 싫었다. 아무리 내가 유능한 가장 노릇을 해야 한대도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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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이는 끝까지 고집을 부리며 내 팔을 잡아끌고 동굴로 들어갔다. 클로에는 염소에 매혹되었다. 어른들처럼 그런 모습을 보고 역겨워하지 않았다. 아이는 매일매일 신나게 동굴로 가서, 죽은 염소가 서서히 썩어들고, 여우와 새와 개들에게 뜯어 먹혀 사라지는 모습을 지켜보았다. 어느새 나 역시 이 모험을 즐기게 되었다. 생명이 사라져가는, 염소의 구체적 존재가 서서히 무無로 돌아가는 과정을. 만약 우리가 도시에 살았더라면 공원에나 놀러다니는 데 만족했을 것이다. 시골 생활의 장점은 이렇게 살다 보면 서서히 드러나게 마련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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욕을 퍼붓고 몇 번이나 돌을 던진 끝에 간신히 양 떼를 반대 방향으로 돌려놓을 수 있었다. 우리는 내가 올라왔던 길을 따라 천천히 산을 내려갔다. 양들을 데리고 하산하기란 끔찍하게 어려웠다. “훠이!” 내가 소리치며 막대기를 흔들면 여남은 마리의 양만 앞으로 나아갔고, 나머지는 움직이는 동료들을 멀거니 바라보다가 내키지 않는다는 듯 설렁설렁 풀을 뜯으며 걸어 내려갔다. 때문에 나는 일부러 무리 앞쪽의 양들을 가시덤불과 바위 사이로 몰아붙였다. 그러면 양들은 내키지 않는다는 듯 느릿느릿 올바른 방향으로 내려갔다. 그러다 보면 어느새 뒤쪽의 양들은 가던 길을 멈추고는 웬 엉뚱한 바위를 향해 올라가고 있게 마련이었고, 나는 도로 뛰어올라가 양들을 다시 제대로 내려가게 했다. 그동안에 또 무리 위쪽에서는……. 제대로 된 양치기 개 한 마리 갖추지 못한 나의 멍청함을 탓할 수밖에 없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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봉카가 사납게 짖기 시작했고, 그때 내 귀에 방울 소리가 들려왔다. 도밍고의 양 떼가 달빛 어린 강가를 따라 걸어오고 있었던 것이다. 금세 나는 기다란 귀를 쫑긋 세운 채 희뿌연 양 떼를 이끌고 가는 보톰의 커다란 몸집을 알아볼 수 있었다. 양 떼가 더 가까워지자 보톰의 등에 도밍고가 앉아 있는 것이 보였다. 그리고 그 뒤에는, 도밍고의 허리에 팔을 두르고 그의 어깨에 기대 졸고 있는 안토니아의 모습이 보였다. 우리는 악어처럼 조용히 강물 속으로 되돌아갔고, 그들이 사라져갈 때까지 서로를 바라보며 히죽 웃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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