흑인 예수와 네 번째 동방박사
--- 송은주(ducia@yes24.com)
"예수는 백인이었을까, 흑인이었을까. 네번째 동방박사는 존재했을까? 그렇다면 왜 그는 끝내 예수를 만나지 못했나."
이렇게 다소 이단적인 의문에서 시작하고 있는『동방박사와 헤로데 대왕』은, 현존하는 프랑스 최고의 지성 '미셀 투르니에'가 동방박사 이야기와 자신의 구약성경적 지식을 바탕으로 2000년 전 나일강, 홍해, 티그리스 유프라테스강 일대의 이국적인 풍물을 마음껏 펼쳐보이고 있는 소설이다. 워낙 방대한 사료와 정보를 바탕으로 사유를 드리우는 그인지라, 당신은 페이지를 넘길 때마다 쉴틈없이 쏟아지는 동식물군, 인종 분류, 예술과 문화, 종교와 장례 풍습 등을 만나며 즐거운 비명을 지를지도 모르겠다.
동방박사는 성경의 신약 초반 예수 탄생 부분에 잠깐 등장하는 인물로, 이 외에는 알려진 사적이 거의 없다. 성경에서는 이들을 '멀리 동방에서 별을 보고 왕께 경배하러 온 동방박사'라고 묘사하고 있을 뿐이다. 미셸 투르니에는 베일에 싸인 이들의 행적을 통해 이들은 누구이며 어떤 동기로 베들레헴까지 오게 됐는가를 이 책에서 추적한다. '구세주', 아니 어쩌면 진리를 찾기 위해 제각각의 동기를 가지고 베들레헴으로 출발한 이들의 여정을 통해 인간 존재와 구원의 문제를 탐구하고 있는 것이다.
첫번째 동방박사 '가스파르'는 왕이요, 동시에 흑인이다. 기이한 것이라면 무엇에든지 왕성한 호기심을 보이는 그는 바벨론의 공중정원을 연상시키는 왕국에 살고 있다. 그의 왕국에는 세계 각국의 대상으로부터 구입한 온갖 진귀한 물건이 가득하다. 그러던 어느날, 그는 노예시장에서 머리칼에서 음모까지 모두 황금색으로 빛나는 페니키아 처녀를 충동적으로 구입하게 되는데, 그날로 그는 이 '흑단 상자 속의 조그마한 금상'같은 처녀에게 겉잡을 수 없이 빠져들면서 자신의 검은 피부에 대한 알 수 없는 증오와 의문을 품게 된다. 왕의 위엄과 권력으로도 어찌할 수 없는 존재론적 자괴감과 영혼의 공허함. 그는 그 길로 '황금빛 머리채가 달린 혜성'을 따라 여행을 떠난다.
작가는 이어 학문과 예술을 사랑하지만 모습과 형상이 일치를 이루는 기독교 예술을 찾기 위해 베들레헴으로 향하는 니푸르 왕 발타자르, 왕좌를 차지하기 위한 권력다툼에 환멸을 느끼고 아기 예수를 통해 '연약함의 힘, 비폭력의 가치'를 깨닫게 되는 팔미렌의 왕자 멜쉬오르를 통해 진리를 찾아 떠나는 다양한 인간 군상들을 보여준다. 특히 정경에는 등장하지 않는 네번째 동방박사 '타오르'는 지극히 인간적인 모습을 하고 있는데, 그의 여행 동기는 다른 동방박사와 달리 아주 경박하다. 서양에서 보내온 진상품 '라아트루쿰('향료를 넣은 터키 과자'라는 뜻으로, 하얀 가루로 뒤덮인 청록색의 말랑말랑한 입방체 과자)의 맛에 심취한 그는 그 제조법을 알아내기 위해 무모한 여행을 감행한다. 온갖 식량과 화려한 행렬, 여기에 그가 아끼는 푸른 눈의 야스미나(연약하여 다루기 까다로운 하얀 새끼 코끼리)를 태우고 시작한 여행. 하지만 도중에 태풍을 만나고 헤로데의 유아학살을 경험하는 우여곡절 끝에 그는 '죽은 바다' 사해에까지 흘러들어온다. 그곳에서 그는 다른 죄수를 대신해서 소금 광산 즉, 매장된 소돔의 주택과 공공 건물 밑에 있기 때문에 이중적으로 매장된 진짜 지하도시에서 30년을 복역한다. 그가 마침내 지하광산에서 풀려났을 때에는 이미 예수와 그의 제자들이 최후의 만찬을 끝낸 직 후. 그는 예수와 제자들이 남긴 빵과 포도주를 마심으로써 예수의 부활과 맞먹는 인간적 의미의 구원을 성취한다.
이렇게 대략의 줄거리를 요약했다고 해서, 이 책을 읽을 필요가 흐려질까? 전혀 그렇지 않다! 피부색의 인종학적인 의미, 문신과 초상화 조각 등이 가지는 예술사적 의미, 그 지역 특산물과 독특한 요리의 역사, 동물의 혈통과 계보, 베두인의 생활풍습과 바오밥나무 장례풍습, 그리고 나부나사르의 황금수염 설화까지. 그야말로 쉴틈 없이 쏟아지는 박물학적 지식의 세례야말로 이 책의 묘미다. 한상 그득 차려진 중동지방의 이국적인 풍물을 마음껏 탐닉해 보기 바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