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에펠탑만큼 커다란 구름을 삼킨 소녀

에펠탑만큼 커다란 구름을 삼킨 소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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품목정보

품목정보
발행일 2016년 06월 17일
쪽수, 무게, 크기 288쪽 | 480g | 147*210*20mm
ISBN13 9788984372924
ISBN10 898437292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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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좌우간 그 여자는 꽃무늬 비키니를 입고 있었습니다. 정말 예쁜 여자였어요. 여자는 다시 ‘나는 항공 흐름을 방해하고 싶은 마음은 전혀 없어요. 관제사님, 전 그저 당신이 나를 비행기로 여겨주기만을 바라요. 화산재 구름의 영향을 받을 정도로 높이 날진 않을 거예요. 공항 이용세를 내야 한다면 그건 걱정 마세요. 자 이거 받으세요.’라고 말했습니다. 여자는 어디서 꺼냈는지도 모를 50유로짜리 지폐 한 장을 내밀더군요. 그 돈이 집배원용 가죽 가방에서 나온 게 아닌 건 분명합니다. 여자는 가방을 메고 있지 않았거든요. 여자가 무슨 말을 하는지 도무지 알아들을 수 없었지만 여자의 결심이 참으로 대단해 보였습니다. 여자가 정말 자신이 날 수 있다고 말하는 건가? 슈퍼맨이나 메리 포핀스처럼 하늘을 날 수 있다고 믿는 건가? 하는 생각이 들었죠. 잠깐 동안 저는 여자가 정신이 나갔다고 생각했습니다.” --- p.12

프로비당스는 집배원이었습니다. 아카데미 프랑세즈가 벌써 여러 해 전부터 집배녀(factrice)라는 단어의 사용을 허용했지만, 신의 섭리라는 이름답게 자신의 직업에 대해서도 선견지명을 가진 프로비당스는 종전처럼 집배원(facteur)이라는 말을 선호했습니다. 그녀는 사람들이 단어를 가지고 지적하는 것에 이골이 났습니다. 그녀가 보기에 직업이 여성화된다는 것은 좋은 현상이었고, 따라서 일부 여자들이 집배녀라는 세 글자 속에 여성 해방을 위해 바쳐 온 한평생이 담겨 있다고 믿는 것도 기꺼이 수긍하는 편이었습니다. 이런 문제는 그녀 자신과는 무관한 문제였죠. 그뿐입니다. 왜냐, 집배원이라는 단어는 5백 년부터 존재해 온 반면 집배녀의 역사는 고작 30년이었으니까요. 더구나 오늘날까지도 그 단어는 솔직히 사람들의 귀에 낯설게 들리는 것이 사실이니까요. 가끔 집도녀 또는 심지어 교배녀라고 이해하는 사람들도 있었어요. 프로비당스는 집배원이라고 함으로써 쓸데없이 긴 설명을 하는 데 필요한 말과 시간을 절약할 수 있었습니다. 태어나서 7개월에 이미 첫 걸음을 뗄 정도로 성질이 급했던 그녀에게는 무시할 수 없는 이점이었죠. --- p.19


콧수염 여자 경찰의 말이 맞았습니다. 전날 아이슬란드의 화산이 분화하면서 토해낸 화산재 구름 때문에 예정된 항공편의 절반이 이미 취소된 상태였거든요. 담배 연기와의 전쟁을 선포한 시점에서 화산재까지 겹치다니! 상황은 전혀 나아질 기미를 보이지 않았습니다. 오히려 몇 시간 후 공항 전체가 폐쇄될 수도 있는 상태였습니다. 공항과 더불어 프로비당스의 실낱같은 희망마저도 연기가 되어버릴 지경이었고요.
그깟 구름이 뭐라고 그토록 무서운 위력을 발휘할 수 있는 거지? 어째서 커다란 솜 덩어리, 거대한 먼지 덩어리 하나가 그토록 복잡한 기계들을 온통 주저앉힐 수 있단 말이지? 듣자하니 화산재 구름은 몇 년 전 체르노빌에서 출발해 유럽 하늘을 관통하면서 몇몇 피아노 천재(손이 세 개 달린 아이들), 캐스터네츠 대가(네 개의 고환을 가지고 태어난 아이들)를 탄생시킨 방사능 구름만큼이나 위험하다는 것 같았습니다. 당시 체르노빌 구름은 기적처럼 프랑스 국경 근처에서 멈췄는데 그건 혹시 비자가 없었던 건 아닐까요? --- p.24

구름을 삼켰다는 표현은 아이가 앓고 있는 점액과다증(mucoviscidose)이라는 병을 설명하기 위해 프로비당스가 찾아낸 표현이었죠. 아이의 허파 깊숙한 곳에서 일어나는 일, 그 때문에 아이가 갖게 되는 느낌을 실감나게 잘 표현하는 말이었습니다. 어렴풋하게 수증기가 차오르는 듯한 답답함 때문에 아이는 조금씩 그러나 아주 확실하게 숨이 막혀왔으니까요. 마치 어느 날 문득 부주의하게 덥석 삼킨 적란운이 몸 한구석에 그대로 남아 있기라도 한 것처럼. 아침마다 자헤라는 딸기를 얹은 구름으로 아침식사를 대신했습니다. 아이는 다른 아이들이 시리얼을 담듯 그걸 볼에 담았습니다. 목구멍을 따끔따끔하게 자극할 수도 있는 그걸 얼굴 한번 찡그리지 않고 꿀꺽 삼켜야 했다고나 할까요. 세상엔 땅콩이나 굴에 알레르기를 일으키는 사람들이 있는 반면, 자헤라는 가슴 깊은 구석에서 자라나 파리의 에펠탑만큼 거대하게 커지는 그 구름에 알레르기 반응을 보였습니다. 그래서인지 이따금씩 아이는 아예 파리라는 도시 전체를 먹고 있는 중이라는 기분이 들기도 했습니다. 석재 교각과 오스망 남작풍의 근엄한 지붕을 이고 있는 건물들, 유리로 된 박물관들과 에펠탑이 있는 그 파리를 말입니다. --- p.33

‘몹쓸 화산재 구름 같으니, 좌우지간 연기를 만들어내는 것들은 흡연자를 포함하여 모두 우리를 괴롭힌다니까! 대기권에 연기를 뿜어내는 그것들이야말로 이 검은 괴물을 빚어낸 장본인들이잖아. 그러고 보면 화산은 담배 제조자들이 고안해 낸 그럴 듯한 구실에 지나지 않을지도 몰라. 아, 아이슬란드는 얼마나 좋은 구실이란 말인가! 누가 그 나라를 원망하겠어? 아이슬란드 사람들이야 물론 아닐 테지, 하긴 사람들은 그런 사람들이 존재하는지조차 잘 모르는데 뭐. 당신들은 알고 있었어? 아이슬란드 사람이 도대체 어떻게 생겼는지 알고 있었느냐고? 학자들은 우리가 평생 히말라야 눈사람 예티를 만날 확률이 아이슬란드 사람을 만날 확률보다 높다는 걸 증명해 보였다고.’ --- pp.39~40

“하늘 나는 법을 배우고 싶어요?”
남자가 마치 껌 씹으실래요, 하는 투로 물었습니다.
“뭐라고요?”
프로비당스는 아주 낡은 라디오를 통해서 이 세상이 아닌 세계, 지구가 아닌 다른 별, 외계 언어만을 쓰는 어떤 별에서 보내는 전파를 잡기라도 한 아찔한 기분이 들었습니다. 그녀는 정말이지 아무것도 알 수가 없어서 돌 지경이었다니까요.
“무슨 일이 있어도 오늘 반드시 출발해야 한다면 그게 유일한 방법일 테죠. 당신이 직접 나는 것만이 해결책이란 말입니다.”
남자가 심경의 변화를 일으킨 것이 분명해 보였습니다.
“당신은 지금 나더러 반나절 만에 비행기 조종법을 배우라는 거예요?”
기가 막힌 프로비당스가 되물었죠.
“누가 비행기를 조종하랍니까? 나는 당신에게 난다고 말했어요, 이런 빌어먹을!” --- p.75

프로비당스는 꽃무늬가 프린트된 비키니를 골랐습니다. 그녀 자신이 할머니 방 양탄자 조각을 가지고 디자인했음직한 복고풍의 수영복이었지만, 좌우지간 가볍다는 장점만큼은 확실했죠. 프로비당스는 탈의실로 가서 문을 걸어 잠근 채 옷을 벗고 그 수영복을 입었습니다.
거울에 비친 모습은 제법 예뻤습니다. 균형 잡히지 않은 다이어트와 운동 부족에도 불구하고 그녀의 몸은 거리에서 적지 않은 남자들이 뒤돌아볼 만큼 근사했거든요. 프로비당스는 정반대되는 요소들이 결합된 뛰어난 유전자적 형질을 타고났습니다. 예를 들어 날씬한데, 딱 달라붙는 스웨터를 입으면 동그랗고 단단한 가슴이 도드라진다거나, 말벌까지 시샘할 정도로 가느다란 개미허리임에도 엉덩이는 빵빵한 탓에 숱한 별명도 얻었을 뿐 아니라 그녀가 나타나는 곳이면 어디든 어김없이 형성되는 남성 팬클럽 회원들의 상상력을 자극하는 식이었죠. --- pp.165~166

“모두 폐쇄되었습니다.”
“프랑스의 어느 공항도 대통령에게 문을 닫을 순 없네.”
“거대한 화산재 구름 때문에 비행기들이 날 수 없습니다. 그게 바로 오늘 아침 요약 서류 내용입니다.”
“거보게, 자네는 방금 단 한 문장으로 훌륭하게 요약하지 않았는가 말일세! 거대한 화산재 구름 때문에 비행기들이 날 수 없습니다. 복잡할 거 하나도 없지 않은가. 그건 그렇고, 자네가 알아두었으면 하는데, 그 어떤 화산재 구름도 프랑스 대통령 전용기의 이륙을 막을 수 없다는 사실을 명심하게!”
서둘러 지상으로 올라온 일행은 오토바이 기동대를 동원하여 요란하게 사이렌을 울리며 올랑드 대통령을 오를리 공항으로 안내했습니다. 공항에서는 콧수염을 기른 국경 경찰대 소속 경찰 한 명이 대통령에게 상황을 브리핑하기 위해 대기 중이었죠. --- p.191

버락 오바마는 조금 전과 마찬가지로 역시 마법처럼 나타난 또 다른 순백 치아의 금발 여인이 내민 별 모양 상자에서 작은 파란색과 흰색 천 조각을 꺼내 프로비당스가 입은 비키니 상의에 달아주었습니다. 그런 다음 그는 감격한 태도로 여자 집배원의 두 뺨에 키스했죠.
“생큐.”
영광스럽기도 하면서 한편으로는 늘어난 무게가 비행에 방해가 되지는 않을지 염려가 된 프로비당스가 머뭇거리며 인사했습니다.
검정색 옷을 입은 정보부 직원 두 명이 단호한 태도로 다시금 그녀를 꽉 잡아 비행기 출입문으로 안내했습니다. 거기서 프로비당스에게 여행 잘하라는 인사를 건넨 두 남자는 그녀가 미처 제로니모오오오를 외칠 사이도 없이 그녀를 허공으로 떠밀었죠.
프로비당스가 비행 리듬을 되찾는 데에는 적어도 몇 초가량이 필요했습니다. 그녀가 원래 페이스를 되찾았다 싶었을 때 또다시 귓가에 둔중한 소리가 들려왔죠. 이번에도 역시 비행기였습니다. 백색 동체 위에 프랑스 공화국이라고 적혀 있는 비행기는 불과 몇 분 전에 미국 비행기가 했듯이 그녀에게 접근했습니다. 공항이 모든 사람에게 폐쇄된 건 아닌 모양이야, 라고 프로비당스는 생각했습니다.
--- pp.203~20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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