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꿀과 바닐라

꿀과 바닐라

리뷰 총점8.2 리뷰 14건 | 판매지수 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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품목정보

품목정보
발행일 2016년 06월 28일
쪽수, 무게, 크기 480쪽 | 440g | 130*190*24mm
ISBN13 9791104908415
ISBN10 1104908417

책소개 책소개 보이기/감추기

목차 목차 보이기/감추기

책 속으로 책속으로 보이기/감추기

흔해빠진 스토리가 있다.
재벌집 아들이 잡초처럼 씩씩한 여자애와 사랑에 빠져 현실 속 난관을 헤쳐 가는 이야기.
또 다른 흔해빠진 스토리가 있다.
너무 잘나서 매사에 시큰둥한 남자가 ‘나를 이렇게 무시한 건 네가 처음이야’ 운운하며 평범한 여자한테 목을 매는 이야기.

결국 같은 얘기 아니냐고?
글쎄.
지금부터 펼쳐질 스토리는 잘난 놈이 망가지는 전개이긴 할 테지만 왕자님과 들장미 소녀가 등장하는 설정은 아니다. 왜냐하면, 재벌을 아버지로 둔 게 여자 쪽이기 때문에.

그러므로 우리는 이 이야기를 한없이 왕자에 가까운 공주와 콧대 높은 기사 사이의 힘겨루기라 부를 수 있을 것이다.
또는 아옹다옹 달크무레한 사랑 이야기라고 할 수도 있겠다.
어쩌면 조금씩 비어 있는 사람들이 서로에게 따스한 숨을 호호 불어주는 이야기일지도 모른다.
어쨌든 해피엔딩이었으면 좋겠다.
그렇지 않은가?

(중략)

사람을 먹을 것에 비유하는 건 이상한 일이겠지만 가끔 무척 어울릴 때가 있다. 굳이 호빵맨이나 냉장고나라 코코몽 같은 어린이 캐릭터가 아니더라도.
예를 들어 한동안 회자됐던 ‘밀크남’이 그런 경우로, 그 수식어를 달고 있던 남자는 드라마 속에서 부드러운 캐릭터로 여심을 사로잡은 바 있었다. 상냥하고 배려할 줄 알고 심지어 헌신적이기까지 한 역할이어서 그가 결국 조연에 머물고 만 걸 안타까워한 여성 시청자들이 상당히 많았다고 영진은 들었다.
이한성에 대한 김영진의 첫인상 역시 ‘우유 같은 남자’였다. 그러나 그건 그녀 나름의 변형이 가미된 것으로 그저 부드럽기만 한 게 아니라 속에 단단한 심을 품고 있다는 의미였는데, 그런 연상은 우유가 의외로 소화하기 쉽지 않다는 상식에서 비롯된 것이었다. 그는 존재감이 상당히 묵직한 남자였으므로.
“오늘은 첫날이고 초보자가 많으신 것 같으니 간단하게 초코칩 쿠키로 시작하겠습니다.”
새하얀 셔츠에 검정 에이프런을 두르고 수강생들에게 인사하는 이한성은 목소리가 따뜻한 사람이었다.
“모든 베이킹의 기본은 버터입니다. 쿠키를 만들 땐 대부분 실온에 둔 버터를 사용하지요. 완전히 녹은 버터를 쓰면 나중에 쿠키가 딱딱해지거든요.”
그리고 빵 굽는 사람답게 손이 커다랬다.

그녀는 이한성에게서 기대 이상의 좋은 느낌을 받았다. 그는 꼭 필요한 말을 편안하게 하였고, 허튼 농담을 삼갔으나 불친절하게 느껴지지 않았다. 온통 여자뿐인 베이킹 클래스에서 긴장하거나 허세를 부리지 않는 점도 적잖이 마음에 들었다. 순결한 남자로 그녀의 리스트 1번에 오를 만한 사람이라고 생각했다.
김윤제는 한편, 조금 다른 평가를 내리고 있었다.
‘김영진은 저 남자가 순결한지 도대체 어떻게 안다는 거지?’
윤제가 보기에 남자는 여자가 줄줄 따를 타입이었다. 온화하면서도 강해 보이고 다정한 것 같지만 금욕적인 느낌을 주는, 마치 젊고 잘생긴 신부(神父)에게서 풍겨나는 카리스마 같은 게 그에겐 있었다. 그러니 카운터에 있던 알바생 조경아 씨도 그렇고 클래스의 여자들이 죄다 눈을 하트로 만든 채 그를 바라보고 있는 것 아니겠는가.
‘저런 남자가 여자들을 뿌리치면서 살았다고? 사실이라면 그건 저 남자가 아주 지독한 놈이라는 얘기지. 철인 3종 경기에 나가는 사람들과 비견할 만하달까.’
윤제는 고개를 절레절레 저었다. 김영진과 이한성을 붙여놓으면 숨이 턱 막힐 만큼 답답한 커플이 되고 말 거라는 확신이 들었기에.

“흑설탕을 쓰는 건 색깔을 예쁘게 내기 위해섭니다. 바싹 굽지 않아도 먹음직스러운 황갈색을 띠어주니까요. 수분을 많이 함유하고 있어서 상대적으로 칼로리도 낮은 편이죠.”
조곤조곤하면서도 수다스럽지 않은 남자의 설명이 듣기 좋게 이어졌다. 저녁 시간이다 보니 수강생들은 대부분 직장여성이었고 초짜인 탓에 손이 굼뜨고 실수가 많았다. 그러나 보글거리는 설탕 단내에 하루의 피로를 잊은 듯 그들은 모두 웃는 얼굴이었다. 베이킹을 통해 행복을 전하고 싶다고 한 사장의 말을 영진은 백분 이해했다.
“그래, 남자는 맘에 들어?”
반죽을 오븐에 넣느라 어수선한 틈을 타서 윤제가 영진에게 물었다. 그녀는 무표정하게 그를 올려다보았다.
“보아하니 경쟁 치열하겠는데. 배경 빼면 누나한테 그다지 강점 없는 거 알지?”
자칫 당혹감이 겉으로 드러날까 영진은 시선을 돌렸다.
저 자식이 눈치챌 만큼 내가 티를 냈나, 혹시 뭔가를 알고 하는 소린가, 아님 그냥 찔러보는 건가.
그런 물음이 머릿속을 오갔지만 그보다 신경 쓰이는 건 ‘경쟁력 없는’ 자신에 대한 무자비한 지적이었다. 그녀 역시 어쩔 수 없는 여자였기 때문에. 모르고 있었던 게 아니라 해도 남에게 직접, 그것도 이성으로부터 듣는 건 따끔따끔 아플 수밖에 없었으므로.
“그래. 넌 강점 많아 좋겠다.”
당연히 말이 뾰족하게 나왔다. 그러나 빙글거리며 던진 김윤제의 추가 일격엔 입술을 깨물 수밖에 없었다.
“설마 이젠 은갈치 운운은 안 하겠지만. 그지, 누나?”
그건 재계에서 꽤 유명한 가십으로, 재벌의 어린 딸이 저명한 정치가를 향해 ‘은갈치처럼 럭셔리하시네요’ 발언으로 좌중을 싸하게 만든-그리고 이후 영진을 더 과묵한 아이로 만든- 사건이었다. 영진은 그 사람이 광택 있는 슈트를 입었기에 진심 칭찬하느라 한 말이었다. 뉴스에 갈치 값이 비싸다고도 했었고, 인터넷 어디선가 은갈치와 양복을 엮어서 말한 걸 본 것 같기도 했었고.
‘그게 언제 적 일인데. 나쁜 자식.’

영진은 자기 자신을 누구보다도 잘 알고 있었다. 작은 키에 어린애 같은 얼굴, 애교는커녕 표정도 없는 뻣뻣한 태도, 상대를 불편하게 하는 냉정한 분위기. 그룹의 오너로서는 외형적인 위압감이 떨어졌고 개인으로서는 유연성이 부족했다. 그나마 상대의 계산속을 읽고 대처하는 기술은 후계자 교육을 통해 익혔다고 하지만 ‘말랑말랑함’이나 ‘사랑스러움’ 같은 건 그런 식으로 배울 수 있는 게 아니었다. 그녀는 투박하고 둔한 사람이었고, 여자로서는 한층 문제가 심했다.
“내가 도와줘?”
윤제가 몸을 숙여 그녀의 귓가에 대고 은근하게 속삭였다.
“누나 혼자 무리 아냐? 망쳐 버릴까 겁나지?”
말하면서 내심 윤제는 이게 내가 뭐 하는 짓인가 싶었다. 모르는 척 훼방 놓을 생각이었는데, 막상 상황을 보고는 그만 오지랖 넓게 끼어들고 만 것이다.
하지만 내버려 뒀다간 결과가 뻔했다. 심지어 과정도 재미 하나 없을 것 같았다. 그리고 훼방이야 꿀 한 방울만 떨어뜨리면 언제든 놓을 수 있는 것 아닌가.
“입 다물어. 나중에 얘기해.”
영진이 사람들의 눈치를 보며 대화를 닫았다.

수업의 마무리는 무난하고 평화로웠다. 살찐다고 투덜거리면서도 즐겁게 쿠키를 먹던 여자들은 이한성이 조리실을 나가고 나자 둘러앉아 뒷얘기를 시작했다. 사장님 완전 훈남이지. 그러게, 여친 없대? 내가 카운터 언니한테 살짝 물어봤는데 없다더라고. 전번 딸 수 있을까? 그건 안 쉬울걸, 선 딱 긋는다더라…….
한참 열 올리던 그녀들은 구석에 있는 윤제를 돌아보더니 이번엔 한층 소리를 낮춰 수군대기 시작했다.
“이제 니 얘기 하나보다.”
영진이 가방을 챙기며 떫게 말하자 윤제는 흐뭇한 표정으로 대답했다.
“그러니까 내가 도와줄 수 있다는 거지. 저 떨거지들 다 나한테로 돌리면 되잖아? 누나한테 유혹의 ABC를 가르쳐 주는 거랑은 별개로 말이야.”
그녀는 불신 가득한 눈으로 그를 올려다보았다.
테크닉을 전수받을 수 있다면 나쁘지 않을 거다, 그런 게 연습으로 되는 거라면. 경쟁자들을 거둬내 준다니 고마운 일이다, 도의적으로는 찜찜하지만.
그러나.
“왜?”
근본적인 물음을 그녀는 던지지 않을 수 없었다.
윤제가 어깨를 으쓱했다.
“누나가 바라는 게 그거 아냐? 아님 말고.”
천연덕스럽게 속눈썹을 깜빡이는 순진한 얼굴이 가증스러웠으나 영진은 더 묻지 못했다. 그는 이야기해 줄 생각이 없는 것이다. 어디까지 알고 있는지, 주변을 맴돌며 의외의 행동을 하는 이유가 무엇인지, 그녀에게 바라는 건 과연 무언지.
“그래서 난 이제 어떻게 하면 되는 건데?”
결국 그녀가 내키지 않는 목소리로 묻자 윤제는 상큼하게 웃으며 눈을 찡긋했다.
“접근은 내가 할게. 그동안 여자들한테 꽤 데었을 거야. 누난 나대지 말고 얌전히 있어.”

과자를 다 먹은 여자들이 하나둘 빵집을 나서고 있었다. 조리실 밖 매장 쪽에서 사장이 누군가와 얘기 중인 게 보였다. 윤제는 영진의 손목을 끌고 다른 사람들 틈에 섞여 그쪽으로 다가갔다.
“사장님, 오늘 수업 정말 재미있었습니다. 오랜만에 미국식 디저트를 먹으니까 좋더라구요.”
누구에게나 먹히는 시원한 미소로 살갑게 인사하니 사장이 웃었다. 예상대로 남자는 동성의 접근에 경계심을 드러내지 않았다.
“미국 사셨나 보군요. 마음에 드셨다니 기쁘네요. 남부식 레시피라 달고 진해서 싫어하시는 분들도 있는데요.”
웃음 띤 이한성의 얼굴은 수업 때보다 더 호감 가는 느낌이었다. 이목구비가 순한데도 짙은 눈빛으로 남자다운, 동성 친구들도 많이 따를 타입이었다. 원하지 않아도 리더가 될 유형이군 싶었다.
“혹시 록키 로드(rocky road) 쿠키는 안 만드시나요? 마시멜로 들어 있는 과자 아주 좋아하는데요.”
입맛을 짐작하여 운을 띄우자 남자는 반색했다. 윤제는 한성과 퍼지(fudge)며 스모어(s’more)며 혀가 썩도록 단 과자에 대해 한참 이야기를 나눴다. 영진을 곁에 꼭 붙여 한성의 시선이 한 번씩 그녀에게 향하게 하는 것도 잊지 않으면서.

그때 옆에 서 있던 사람이 이한성을 타박하며 자신에게로 주의를 돌렸다.
“근데 너 오늘 수업 되게 지루하더라? 초코칩 쿠키 구울 거면 초콜릿이 최음제였다는 말 정도는 해줬어야지. 여자들은 빵 만드는 거 못지않게 그런 얘기 좋아한단 말이다.”
이한성의 친구로 추정되는 그는 한성과 정반대의 인상을 지닌 사람이었다. 턱 선이 날렵하고 새카만 눈초리가 치켜 올라간 것이 성깔 있어 보였다. 고전적인 관상으로는 하관이 빨다고 좋게 치지 않겠지만 요즘 기준으로는 이성에게 어필할 삐딱한 느낌. 그런데 윤제는 그 얼굴도 어디서 본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새 인물이 영진에게 눈길을 고정하고 웃었다.
“그리스의 암브로시아처럼 마야에서 카카오는 영생을 의미했답니다. 잉카 황제는 초콜릿을 마시지 않고는 침실에 들어가지 않았다는군요. 카카오 수확 때는 일반인도 꽤 난잡하게 즐겼던 모양이구요. 이 사장은 몰라도 저는 그래서 초코 계통의 과자를 좋아하죠.”
하지만 김영진은 아마도 그가 기대했을 ‘어머, 그래요?’ 유형의 반응을 보여주지 않았다.
“유럽에 전해진 카카오는 때론 신성한 음료로 또 때론 저주로 여겨졌죠. 프랑스에선 임신 중에 초콜릿을 많이 먹는 바람에 악마처럼 새카만 아기를 낳은 후작부인이 있었다네요. 아침저녁으로 부인의 방에 초콜릿을 서빙한 게 젊은 아프리카 노예였다고 하니, 진짜 이유는 물론 뻔한 거지만요.”
의미심장하게 눈동자를 반들거리며 덧붙인 말에도 김영진은 무표정을 고수할 뿐이었다. ‘그게 뭘?’ 거의 이런 느낌으로.
“이봐요, 똘망똘망한 얼굴을 한 아가씨. 재미없어도 맞장구쳐 주는 미덕 같은 거 몰라요? 아님 대꾸하기도 싫을 만큼 시시한 수준이었어?”
결국 눈살을 찌푸리고 불평하는 남자를 보며 윤제는 속으로 웃었다.
‘그게 아니라 이 여자가 이런 상황에 대처능력이 전혀 없어 그러지……. 이제껏 세한그룹 김영진을 붙잡고 저런 수작을 건 사람이 누가 있었겠냐고.’
사장이 친구를 나무라며 끼어든 것은 그때였다.
“재미도 교훈도 전혀 없었어, 차현도. 그리고 너 왜 우리 수강생한테 무례하게 굴어? 농담 따먹기는 너네 술집 손님들하고나 하라고.”

아하.
윤제의 머릿속에 딩동 벨이 울렸다.
새로 나타난 남자는 그 역시 영진의 리스트에 올라 있는 사람이었다. 차현도, 남자 2번. Y대 철학과를 졸업하고 현재 와인 바를 경영하고 있음. 이한성과 마찬가지로 30세. 사진이 비스듬하게 잡혀서 얼굴이 분명히 기억나지 않았던 것뿐이다.
‘두 사람이 친구인 거였어? 그런데 둘 다한테 접근할 생각인 거고? 김영진, 당신의 비루한 사교술로 감히?’
황당한 기분으로 윤제는 영진을 내려다보았다.
그리고 다시 남자를 아래위로 훑었다. 허탈해서 웃음도 나오지 않았다. 어딜 봐서 저 남자가 순결하다는 건가. 한눈에 봐도 밤의 제왕이구만. 외모며 분위기며 작업 거는 꼬라지 하며.
하지만 어쨌든 남자가 영진에게 관심을 보였으니 그를 활용해서 친구인 이한성을 엮어내는 게 가능할 듯싶긴 했다. 윤제는 서글서글한 표정으로 윤활성 멘트를 날렸다.
“우리 누나가 수줍음을 많이 타서 그렇죠. 아마 속으론 재밌다고 생각했을 겁니다. 그런 뒷이야기는 누구나 좋아하니까요.”
그러나 영진은 그런 생각을 하고 있지 않았다. 그녀는 무표정하게 혼란해하는 중이었다. 순결 리스트에 올라 있는 남자에게서 풍기는 야한 느낌을, 그녀라고 읽지 못한 것은 아니었기 때문에.
“술집을……, 그러니까 와인 바 같은 걸 하시는 건가요?”
뜬금없는 그녀의 질문에 차현도는 휘파람을 불었다.
“저런. 뒷조사라도 하신 것처럼 맞추시네요. 네, 이 건물 3층에서 술집을 하고 있죠. 시간 되면 한번 놀러와요.”
“그럴게요. 저는 미디엄 바디의 화이트와인을 좋아해요.”
오홍, 제법인데. 윤제는 눈을 치켜떴다. 처음 만난 남자와 공통의 관심사로 대화를 이끌어내다니! 말투는 여전히 딱딱하기 짝이 없지만…….

영진은 사실 차현도가 마음에 든 건 아니었다. 오히려 불편한 느낌이 강했다. 그럼에도 그에겐 ‘순결하지 않은 거 같은데!’ 하고 대뜸 내칠 수 없게 만드는 무언가가 있었다. 화주(火酒)의 독한 향이랄까, 치명적이면서도 매혹적인 무엇인가가. 실없는 농이나 던지고 있는 그녀의 이상형이 절대 아닌 남자에게.
옛날에 그녀의 ‘민간인’ 친구가 영화를 보다가 그런 말을 했었다. 자긴 본래 선이 가늘고 도회적인 남자를 좋아하지만 가끔은 영화 속 무지막지한 캐릭터-미스터 인크레더블이나 헐크같이 무식한 근육질 인물-에 가슴이 뛸 때가 있다고. 지금 이 순간 영진은 어쩐지 친구의 말을 이해할 것 같은 기분이 들었다. 저건 아니지 싶음에도 불구하고 바로 X를 매길 수는 없는, 묘한 기분이.
“뒷조사 얘기가 나와서 말인데, 너 따라다니던 사람 흥신소 직원이었다며?”
이한성이 심드렁하게 차현도에게 물었다. 그는 이마를 찌푸리며 대답했다.
“어. 근데 의뢰인이 누군지 영 불질 않아. 자기도 그 바닥에서 신용으로 먹고 사는 거라고 배 째라 하네.”
순간 윤제는 영진의 얼굴이 미세하게 경직되는 걸 느꼈다. 그새 익숙해졌구나, 저 정도의 변화를 감지하다니. 웃음이 나오기도 했지만 그게 문제가 아니었다. 맥락으로 보건대 정보를 캐던 영진의 꼬리가 밟힌 모양이었다. 일단 잘라내긴 한 것 같지만 안심할 수는 없을 것이다.
“네 녀석한테 원한 품은 여자가 한둘이 아니니까 그중에 누가 시킨 거 아닐까.”
“나를 짝사랑해서 스토킹하는 게 아니고?”
시답잖은 대화가 오가는 걸 보니 다행히 심각하게 대응할 생각은 아닌 듯싶었다. 불편해할 영진도 구해줄 겸 적절한 선에서 여운을 남길 겸 윤제는 눈인사와 함께 영진의 어깨를 안고 돌아서려 했다. 더 이상 남아 있으면 다른 여자들처럼 값싸지게 마련, 16년 또는 그 이상 인간관계의 달인으로 지내온 김윤제는 절대 초장부터 질척이지 않았다.
“아예 말 나온 김에 저희 가게에 같이 안 가실래요? 오늘은 제가 한잔 쏩니다.”
다만, 저쪽에서 붙잡고 늘어졌을 때는 얘기가 다르다.
“글쎄요……?”
윤제는 조금 망설이는 듯 어정쩡한 미소를 지으며 차현도를 향해 시선을 돌렸다. 그런데 뜻밖에 남자는 영진이 아닌 그를 쳐다보고 있었다. 영진에게 지었던 것과 똑같은, 노골적인 유혹이 담뿍 담긴 웃음을 만면에 띤 채.
그러고는 은근한 목소리로 덧붙였다.
“남자분도 너무 제 취향이라 말이죠.”
헉.
자기도 모르게 몸을 뒤로 움찔하며 윤제는 영진을 꽉 붙잡았다. 등줄기를 타고 소름이 쫙 흘러내렸다.
당신, 그쪽이었어? 그래서 순결하다는 오해를 받고 있는 거야?
“하하하…….”
그의 반응에 차현도는 허리를 뒤로 젖히며 웃어댔다.
“그렇게 안 보이는데, 의외로 순진한 사람이네?”
남자는 진심으로 즐거워 보였다.
그러자 이한성이 지겹다는 표정을 지었다. 여전히 뚱한 얼굴을 하고 있는 김영진 뒤에서, 아마도 이제껏 여러 번 겪은 일인 듯.
“너 그따위 장난질 하는 거 진짜 게이들한테도 실례야. 이분한테는 말할 것도 없고. 제가 대신 사과드리겠습니다. 행여라도 신경 쓰지 마세요. 저 살면서 이 자식만큼 여자 좋아하는 놈 못 봤습니다.”
그의 해명을 들으며 윤제는 식은땀을 훔쳤다.
그리고 떨떠름하게 웃었다.

잠깐 놀라기는 했지만, 그는 곧 유쾌한 기분을 되찾았다. 그래, 신부님만 있어서야 지루해서 되겠어? 발랄한 늑대 한 마리도 나쁘지 않지. 심지어 만족스런 기분마저 들었다.
“괜찮습니다. 제가 바이가 아닌 게 유감스러울 정도로 매력적인 분인데요. 제게 관심 가져주셔서 감사할 뿐입니다.”
여유를 찾은 그의 말에 차현도는 눈썹을 올리면서 장난스런 웃음으로 응대했다.
상황은 윤제가 예상했던 것보다 더 흥미진진하게 돌아가고 있었다. 단정하기 그지없는 이한성, 퇴폐의 냄새를 물씬 풍기는 차현도, 어울리지 않게도 둘은 친구.
‘분명히 이 동네 사는 남자가 하나 더 리스트에 있었는데, 김영진은 혹시 그 사람도 한꺼번에 엮을 생각인 걸까.’
영진의 취향이 나쁘지는 않다고 윤제는 생각했다. 짧은 만남이었지만 남자들은 인상이 꽤 강렬했다. 하고 있는 일이나 경력이 세한그룹 김영진의 짝으로 적합한가는 매우 의심스럽지만, 어쨌든 흔한 월급쟁이들과 다른 아우라를 풍기고 있는 건 확실했다. 개인적인 호불호와 무관하게.
‘흥신소 직원이 붙잡히는 바람에 아슬아슬한 맛도 있고, 김영진이 서툴게나마 분전하는 모습도 신선하고. 괜찮은데?’
취업을 미루고 김용식 회장의 제안을 받아들이길 잘했다고 윤제는 흐뭇하게 웃었다.
김영진도 비슷한 생각을 하고 있었다. 이만하면 순조로운 시작이었다. 순결한지 아닌지는 확인 불가능하지만 어쨌든 후보 둘이 기대보다 멋졌으니 아직까지는 성공적이지 않은가. 심지어 그녀에게 들러붙어 있는 껌마저도, 좀 귀찮긴 하지만, 얼굴은 일단 근사하고.
딸랑.
그때 누군가 제과점 문을 열고 들어섰다. 곱상하게 생긴 얼굴에 선이 가느다란 젊은 남자였다.
맙소사.
윤제는 경악했다.
‘설마 저 남자도 이 사람들하고 친구라는 건 아니겠지?’
오오.
영진은 무표정 속으로 혼자만의 미소를 지었다.
‘역시 나는 운이 좋아……. 일이 이렇게 풀려주네.’
그는 남자 3번, 박해민이었다. 영진의 계획서에 정면 사진이 선명하게 찍혀 있는, 이 동네에 살고 있는 또 다른 후보. 꽃미남이란 단어의 ‘꽃’ 부분에 누구보다도 어울리는 사람.
김윤제는 알지 못했지만 남자 셋은 오래된 친구였고, 영진도 예상치 못했던 것은 세 사람을 이렇게 첫날 한꺼번에 보는 행운이었다.
‘꿀과 바닐라를 탄 핫 초콜릿’에서의 Day 1이었다.
--- 본문 중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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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시간의 경과에 의해 재판매가 곤란한 정도로 가치가 현저히 감소한 경우
  •  전자상거래 등에서의 소비자보호에 관한 법률이 정하는 소비자 청약철회 제한 내용에 해당되는 경우
소비자 피해보상
  •  상품의 불량에 의한 반품, 교환, A/S, 환불, 품질보증 및 피해보상 등에 관한 사항은 소비자분쟁해결기준(공정거래위원회 고시)에 준하여 처리됨
환불 지연에
따른 배상
  •  대금 환불 및 환불 지연에 따른 배상금 지급 조건, 절차 등은 전자상거래 등에서의 소비자 보호에 관한 법률에 따라 처리
  •  쿠폰은 결제 시 적용해 주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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