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칭, 신도림 스피노자. 철학을 좋아하는 글쟁이이자 프로복서. 서른일곱의 나이에 프로복싱 데뷔. 프로복싱 신인왕전 슈퍼미들급 4강에 만족해야 했지만, 그 과정에서 삶에 맞설 수 있는 파이터가 될 수 있었다는 것이 저자의 전언이다. “직장을 그만두고 반 백수 글쟁이로 살아가면서 한동안 힘든 시기를 겪었습니다. 격투기를 누구보다 좋아했기에 파이터들의 삶을 엿보고, 저 또한 프로복서를 준비하면서 그 힘든 시기를 잘 견딜 수 있었습니다. 이제 제가 격투기를 통해 느꼈던 것들을 함께 나누고 싶습니다.”
실전이란 절대적이지 않습니다. 누군가에게는 체육관 문을 열고 들어가는 것이 실전이고, 또 누군가에게는 링 위로 올라가는 것 자체가 실전일 수도 있습니다. 이처럼 실전이란 지금 자신의 한계에서 한 걸음 더 나가려는 자세입니다. 불안과 두려움을 극복하고 자신의 한계에서 한 걸음을 더 내디디는 것이 바로 실전인 겁니다. 여러분이 이 책을 통해 그런 실전 감각을 익히셨으면 좋겠습니다. 진짜 삶을 살아낸다는 것은 어쩌면 매일 실전을 경험한다는 말과 동의어인지도 모릅니다. 자신의 한계에서 늘 쭈뼛거리고만 있기에는 인생이 너무 짧습니다. 실전은 분명 두렵고 또 어렵습니다. 하지만 한 단계씩 자신의 한계를 넘어서는 실전을 경험하다 보면 삶은 더욱 풍성해지고 내면은 더욱 강건해집니다. 우리는 모두 행복하고 싶습니다. 하지만 그 행복은 실전이라는 것을 한켠으로 밀어 넣어두고서는 결코 얻을 수 없지요. 행복은 두렵고 불안하지만, 자신을 규정하고 있던 한계를 뚫고 나갈 때에만 느낄 수 있는 것이니까요. ---「Cool Down」중에서
‘안 되면 거기까지’ 할 수 있는 용기 “왜 안 되면 거기까지만 해야 하냐?”라고 묻는다면, “우리 모두는 주어진 육체를 가지고 살 수밖에 없기 때문이다”라고 답하겠다. 마음은 무엇이든 다 할 수 있을 것 같지만 육체는 그렇지 못하다. 우리는 좋든 싫든 평생을 우리의 의지와 상관없이 부모로부터 주어진 육체와 함께하며 살 수밖에 없다.
추성훈 역시 마찬가지다. 동양인 부모를 둔 추성훈은, 미들급에서 뛰기에는 서양인들에 비해 상대적으로 작은 체격을 갖고 태어난 것이다. 물론 상당량의 노력으로 선천적인 문제들을 어느 정도 극복할 수 있지만 여전히 한계가 있을 수밖에 없고, 게다가 ‘행운’이라는 상당 분량의 우연적인 요소도 뒤따라야 한다. 이렇듯 복잡하고 어려운 것이 세상살이다. 그래서 있는 그대로의 삶의 진실을 보기 힘들 것일 테다. 있는 그대로의 삶의 진실을 보기 위해 필요한 것은 균형이다. 어느 하나의 가치에 편협하게 기울면 균형을 잃고 거친 세상살이에 휘청거릴 수밖에 없다. 원하는 것을 얻기 위해 ‘안 되면 될 때까지’라는 생각도 중요하지만 이런 생각에 경도되면 길지 않은 우리의 삶을 유쾌하고 경쾌하게 살 수 없게 된다. ‘안 되면 될 때까지’와 ‘안 되면 거기까지’ 사이에서 균형을 잘 잡아야 한다. 추성훈의 웰터급 전향은 아주 용기 있고 균형 잡힌 선택이었다. 그것은 말하기 좋아하는 사람들의 뒷담화처럼 비겁하게 도망을 친 것이 아니다. 어쩔 수 없이 주어진 육체적 조건을 겸허하게 받아들인 것이다. 만약 추성훈의 체급 전향이 주최사의 압박에 의해서가 아니라 오롯이 본인의 선택이었다면 그는 존경받을 만한 파이터다. 자존심으로는 둘째가라면 서러워할 추성훈이 스스로 ‘안 되면 거기까지’라는 용기를 낸 것이니까 말이다.
적지 않은 노력과 시도에도 불구하고 어찌할 수 없는 현실적 벽에 부딪힐 때, 너무 경직되거나 우울해하지 말고 ‘안 되면 거기까지’라고 외쳐보자. 그렇게 삶을 경쾌하고 유쾌하게 살아내다 보면 그토록 원했던 성취와 성공이 전혀 예상치 못했던 방향에서 다가올지도 모른다. ‘삶이라는 링’에서 행복하게 살고 싶다면, 잊지 말자. ‘안 되면 거기까지!’
새로운 챔피언, 크리스 와이드먼의 힘 와이드먼은 앤더슨 실바와의 2차전에서도 승리했다. 게다가 라이트헤비급에서 내려온 강자 료토 마치다마저 제압하면서 챔피언으로서의 실력을 증명했다. 크리스 와이드먼이 전설을 끌어내리면서 챔피언의 자리에 올라서인지 일부 팬들에게 미운털이 박힌 것은 사실이다. 하지만 미운털과 별개로 그는 강한 파이터다. MMA에서 가장 중요하다는 레슬링에서 그를 제압할 수 있는 파이터는 거의 없으며, 미들급에 최적화된 체격에서 뿜어져 나오는 강력한 공격, 견고한 맷집, 압도적 근력은 동급 최강이다. 그리고 와이드먼의 저력에 하나를 더 추가하고 싶다. 자신을 믿는 힘이다. 실바와의 대결에서 와이드먼이 이길 것이라고 믿었던 사람은 거의 없었다. 모르긴 몰라도 와이드먼 캠프에서도 ‘이겨야 한다’라고 생각을 했겠지만 ‘이길 수 있을까?’라는 의구심에서 완전히 자유롭지는 못했을 게다. 격투기의 절반이 체력과 기술의 싸움이라면 나머지 절반은 분명 정신적인 싸움이다. 무한체력과 절정의 기량을 보유한 파이터라도 자신을 온전히 믿지 못하면 ‘이길 만한’ 시합에서만 이길 수 있을 뿐 ‘이기기 힘든’ 시합에서는 이길 수 없다 앤더슨 실바 앞에서 쓰러져간 수많은 선수 중 와이드먼만큼 혹은 그보다 더 뛰어난 체력과 기술을 가진 선수들이 없었다고는 단언할 수 없다. UFC가 동시대 최고의 파이터들이 총집결하는 무대라는 점을 감안하면 더욱 그렇다. 그럼에도 오직 크리스 와이드먼만이 최고의 반전을 이루어낼 수 있었던 것은 세상 모든 사람들이 자신의 승리를 의심하더라도 오직 자신만은 스스로를 온전히 믿었기 때문이었을 게다. 와이드먼이 실바를 실신시킨 펀치를 다시 돌려보면 이러한 사실을 분명히 느낄 수 있다. 실바를 실신시킨 펀치는 와이드먼이 앞으로 전진하면서 네 번의 펀치를 포기하지 않고 낸 끝에 실바의 턱에 걸린 것이다. 특히 세 번째 스트레이트는 자세가 흐트러지면서 손등으로 치는 어설픈 동작이었다. 그럼에도 포기하지 않고 끈질기게 네 번째 펀치를 낸 덕분에 전설을 이길 수 있었던 것이다. 이것은 다른 도전자들이 실바의 압도적인 강함이나 아우라에 압도당한 채 내밀었던 견제식 펀치와는 전혀 다른 것이었다. 그 네 발의 펀치 한 발 한 발에 ‘난 이길 수 있어!’라는 자신에 대한 믿음이 실려있는 것처럼 보였다. 어떤 상황에서 어떤 상대를 만나도 ‘나는 분명히 이길 수 있어!’라는 스스로에 대한 믿음이야말로 와이드먼의 탁월한 레슬링 실력보다 더 중요한 저력이 아닐까? 그와 함께 운동했던 동료 파이터나 캠프 관계자들이 와이드먼의 최고 강점으로 꼽는 것이 레슬링이 아니라 그의 멘탈이라고 하니 내 생각이 크게 틀리지는 않은 것 같다. 크리스 와이드먼은 스스로를 믿는 힘으로 챔피언의 자리에 올랐다고 해도 과언은 아닐 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