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장 뇌, 범죄행위를 명령하다
폭력 범죄의 근본 원인이 뇌에 있는가? 선과 악을 인식하고 그에 따라 행동하는 인간의 능력이 신경세포 회로에 암호화되어 있는가? 신경회로망의 가벼운 오작동이 잘 유지되던 사회적 행동의 균형을 파괴하고 인간을 가볍게는 외톨이로, 최악의 경우에는 동정심을 모르는 짐승 같은 존재로 만들 수 있는가? 답은 ‘그렇다!’이다. 신경과학자들은 뇌의 특정 영역이 손상되거나 대사기능에 이상이 있거나 신경전달물질의 균형이 깨지면, 이것이 정신적 증후로 이어질 수 있으며 성격 변화는 물론 심하면 연쇄살인범이 될 수도 있다는 생각 아래, 뇌손상과 이상행동 간의 명백한 연결고리를 찾아내려는 연구를 진행해왔다.--- p.13
2장 뇌를 측정하다
뇌 연구자들은 초기부터 남자의 뇌는 지능을 관장하는 전두엽이 강하게 발달한 반면, 여자의 뇌는 ‘감정’을 주관하는 두정엽이 발달했다는 이론을 받아들였다. 한 학자는 여자의 전두엽이 태아의 뇌와 비슷할 정도로 발달이 미미하다고 주장하기도 했다. 게오르크 지멜Georg Simmel은 앞서 언급한 악명 높은 뫼비우스의 논문이 나오기 42년 전인 1858년 이미 여성에게는 독자적 추상화 능력이 없다고 주장했다.--- p.33
지능과 관련해 성별뿐만 아니라 인종도 연구 비중을 많이 차지했다. 식민지 정책으로 유럽인이 외부 인종과 가까워지자 학자들은 외부 인종의 뇌를 백인인 자국민의 뇌와 비교하면서 자신들이 “주인 인종”임을 입증하려 했다. 한 학자는 부시우먼의 뇌가 “지금까지 발견된 뇌 가운데 가장 천한 두 사람의 뇌”와 비슷하다고 주장할 정도였다. (중략) 스피츠카는 다음과 같은 인종차별적 결론을 거침없이 끌어냈다. “프리드리히 가우스 같은 ‘일등급’ 천재의 뇌와 부시맨의 뇌는 거리가 아주 멀다. 부시맨의 뇌는 인류와 가장 유사한 유인원의 뇌와도 차이가 크다.”--- p.34
3장 거짓말하는 뇌와 거짓말탐지기
거짓말을 하는 사람은 (베를린 자유대학의 심리학자 레나테 폴베르트와 막스 슈텔러가 보고한 바에 따르면) 말을 만들어내기 위해 정신적으로 까다로운 과제를 수행해야 한다. 다시 말해 자신이 경험하지 않은 사건을 능동적으로 구성하고 논리정연하게 묘사해야 한다. 필요한 경우에는 거짓말을 모순 없이 덧붙여야 한다. 그 밖에도 범행을 암시하는 진술을 하지 않도록 조심해야 할 뿐만 아니라, 자신이 사건과 개인적으로 관련이 없다는 것도 보여줄 수 있어야 한다. 거짓말을 하는 사람은 거짓말을 내용적인 차원에서 미화해야 할 뿐만 아니라, 행동적인 차원에서도 유지해야 한다. 이것은 지극히 복잡한 일이다.--- p.70
펜실베이니아대학 신경학자 랑레벤의 많은 실험은 이러한 이론적 고찰을 일반적으로 입증해주었다. 거짓말을 하는 피험자는 이마 바로 뒤의 전전두엽 부위가 활성화되었다. 이 부위는 오류를 통제하거나 논리를 펼칠 때 활성화되는 곳이다. 반면 공상적인 이야기를 할 때는 쐐기전소엽precuneus이라는 영역이 활성화되었다. 거짓말하는 피험자를 대상으로 실시한 실험에서 쐐기전소엽에 있는 신경세포들이 강하게 활성화되었다--- p.86
MRI의 법정 사용 가능성에 대한 또다른 결정적 쟁점은 감정인이 MRI로 제공할 수 있는 확실성이 얼마나 높은가 하는 문제다. 일단 유전적 감정의 신뢰도에는 거의 미치지 못할 것이다. 그렇다면 범죄 사건에서 판단하기 어려운 미해결 문제가 남는다면 신경과학자들의 해석은 각각 어떻게 평가할 수 있을까? 이 모든 문제는 아직까지 해결되지 않았다. 하지만 분명한 사실은 인간의 사고 과정을 기술적 · 신경과학적으로 분석함으로써 기존의 검사방식과 다른 새로운 가능성을 언젠가 일상적으로 상용할 수 있을 것이라는 점이다. 다만 걱정스러운 점은 이러한 기술이 아직 완벽하게는 정확하지 않은 상태에서 사용될 수 있다는 것이다.--- p.102
4장 착각하는 뇌
유감스럽게도 이러한 명백한 판결 오류는 전형적인 일이다. 판사도 인간이기 때문에 아무리 훈련과 교육을 받아도 여러 생각의 맥락을 독립적으로 판단하지 못한다. 오히려 객관적 분석을 어렵게 만드는 판단의 위계질서를 신속히 구축한다. 일단 한 가지 견해를 형성하면 그에 해당하는 정보를 더 선호해 받아들이고 그와 모순되는 사실은 무시하게 된다. 이러한 사실은 수많은 학문적 연구에서 입증되었다. 일상에서 크고 작게 벌어지는 무수한 경솔한 행동은 인간이 비논리적으로 사고하며 아주 제한적으로만 여러 사안을 동시에 판단할 수 있다는 사실을 입증해주는 또다른 증거다.--- p.113
여기서 우리가 분명하게 말해야 할 것이 있다. 법률가들은 인지심리학이나 인지생리학 분야의 전문가가 아니기 때문에 범행 장소가 얼마나 떨어져 있는지, 햇빛이 가장 강한 시간대가 언제인지 같은 문제가 목격자의 인지 행위에 어떤 영향을 미치는지 충분히 고려하지 못한다. 법률가들이 범하는 또 다른 오류는 본인의 판단 기준을 성급하게 일반화한다는 점이다.--- p.129
5장 폭력의 장소, 뇌
처음에 스테바닌은 자신이 죽은 여성들과 아무 관계가 없다며 관련 사실을 부인했다. 하지만 결국 자백했고 사진 촬영, 마약, 감금, 섹스, 폭력 사이에서 벌어진 충격적인 내용을 진술했다. (중략) 그의 기억에는 공백이 지속적으로 존재했다. 그는 감정인 앞에서 때때로 횡설수설하며 반쯤 정신이 나간 듯 몽롱한 모습을 보였다. (중략) 스테바닌의 이마 뒤쪽에는 어떠한 미세구조도 없었다. 그 대신 오렌지 크기만 한 얼룩이 자리 잡고 있었다. 일부 전문가는 이 얼룩이 종양으로 생긴 뇌손상이라고 했지만, 강연을 한 신경학자는 뇌 위축증이라고 판단했다. 학회에 참가한 전문가들은 얼룩의 크기가 그토록 크고, 기능성 신경세포가 광범위하게 손상된 사실을 확인하고는 ‘스테바닌이 사회적 행동의 급격한 변화에 시달리지 않고 살 수 있었을까?’라며 놀라움을 금치 못했다. 스테바닌의 비정상적?변태적 범행이 뇌조직의 심각한 손상과 관련이 있다는 쪽으로 의견이 일치되었다.--- p.137
끔찍한 살인을 저지른 범죄자에게 특수 치료를 받을 기회를 주는 것이 정의에 위배되는 행위라고 생각하는 사람들이 있다. 그런 짐승 같은 인간이 범행을 속죄하지 않는다면, 더욱이 그러할 것이다. 하지만 보복이 아니라 인간의 존엄성을 이상으로 삼는 사회라면 아픈 사람, 아픈 범죄자도 인도적으로 치료해야 마땅하다. 안타까운 사실은 다리 골절, 맹장염, 충치 같은 질환은 확실한 치료 방법이 있지만 뇌질환의 경우, 오늘날까지도 치료 방법이 명확하지 않다는 것이다.--- p.143
6장 나쁜 사회, 나쁜 뇌
영국 저널리스트 데이비드 로즈는 이 기사에서 다음과 같이 썼다. “위기 집단의 구성원으로 분류된 아동과 청소년에게 조기에 개입해야 한다. 이를 위해서는 광범위한 투자가 필요하다. 이러한 투자는 진정한 성과를 약속하고 막대한 개인적?사회적 손상을 방지하는 비용 절감 효과를 가져다 줄 것이다. 반사회적 성향을 보이는 아동이 폭력적 범죄자로 성장하는 모습을 보고만 있을 수는 없다.” 하지만 이러한 예방 프로그램은 분명히 비판에 부딪히게 된다. 윤리학자들은 다음과 같은 문제를 제기하며 비판의 소리를 높인다. 아직까지 죄를 저지르지 않은 ‘죄 없는’ 아이들을 속단해서 차별해야 하는가? 부모의 잘못으로 몰아세우지 않고 훈련 프로그램을 개설해 진행할 수 있는가? 사회가 어느 정도 개입하는가? 범죄 예방책의 효용성을 파악하고 적용을 허용하도록 사회를 계몽해야 하는가? 형법이 신경과학적 인식에 초점을 맞추어야 하는가 아니면 사회와 정치의 협력 여부를 기다려야 하는가?--- p.222
감정인들의 작업은 자주 뜨거운 논란의 대상이 된다. 그렇기 때문에 그들이 어떤 도구에 의지해 작업하는지 대략 언급해보려고 한다. 모든 실험심리학적 연구의 목적은 미래의 행동을 되도록 정확하게, 반복적으로 재현될 수 있게 예측하는 것이다. 심리학적 측정 방식은 100년 이상의 역사를 거치면서 과소평가할 수 없는 다양한 연구 수단을 창출했다. 지능과 집중력 검사, 언어 이해력과 언어능력 검사, 계획과 행동조절 검사 같은 평범한 도구에서 인성, 감정적 행동, 기분, 감정 상태, 속임수를 쓰고 거짓말을 하는 경향 측정에 이르기까지 다양하다. (중략) 전문가들은 이러한 평가 도구를 바탕으로 예를 들어, 범죄 위험인물이 계략이 뛰어나고 언어에 능통한 겉보기에만 그럴싸해 보이는 사람인지, 눈에 띌 정도로 도가 넘치는 자기 가치의식을 지닌 사람인지, 병적으로 거짓말하는 사람인지, (중략) 자기 행동에 책임지기를 회피하는 사람인지 등을 아주 정확하게 판단할 수 있다.--- p.228
7장 신경과학이 법에게 묻다
뇌손상이나 도박 중독이 있는 사람, 우울증을 앓는 사람, 알코올 중독자는 모두 무분별하며 자신에게 오히려 불리한 결정을 하는 경향이 아주 높다. 이러한 위험한 성향은 비교적 간단하고 가벼운 테스트와 설문조사로 검사할 수 있기 때문에 범죄행위 성향이 있는 아동과 청소년을 확실하게 식별할 수 있다. 오늘날 아이들이 학교에서 받는 치아 검사에 아무도 거부감을 보이지 않듯이, 이와 같은 예방 조치를 감행할 수 있는 용기를 북돋아야 한다. 또 어린 시절 교도소에 수감된 청소년이 어떤 사회집단 출신인지 잘 알려져 있기 때문에 사회적으로 탄탄하지 못한 이러한 사람들을 위해 예방 프로그램을 시행해야 한다. 이것은 국민을 가장 잘, 그리고 가장 철저하게 보호할 수 있는 방법이다.--- p.259
사회의 변화가 임박했다. 신경과학 분야의 연구들은 책임과 당벌성當罰性이, 그것을 바라보는 관찰자의 세계관에 좌우되는 상대적 개념이라는 것을 보여준다. 범죄 조서들은 범죄 의도를 요구하고, 목적과 의도를 결합하며, 죄의식에 기반을 두고, 속단과 경솔함을 드러낸다. 이러한 범죄에 대한 전통적 접근 방식은 해당 범죄자의 배경을 전혀 또는 거의 고려하지 않는다. 우리의 법체계는 보복?처벌적 사고에서 벗어나, 어쩔 수 없이 범행을 저지를 수밖에 없었던 사람들을 단호하면서도 자비롭게 다루는 체계로 나아가야 한다.
--- p.269