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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의 닥터 하랄

나의 닥터 하랄

정수영 | 동행 | 2016년 06월 29일   저자/출판사 더보기/감추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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품목정보

품목정보
발행일 2016년 06월 29일
쪽수, 무게, 크기 384쪽 | 128*188*30mm
ISBN13 9788928071388
ISBN10 8928071380

책소개 책소개 보이기/감추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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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선생님. 전 얼마나 살 수 있어요?”
“응?”
“정말 죽어요?”
“아윤아…….”
상상할 수도 없는 아윤의 질문에 말문이 막혔다.
죽는다.
그래, 사람은 누구나 죽는다. 그러나 9살 아이의 입에서 담담하게 터져 나온 ‘죽음’이란 단어는 너무나 가혹했다.
아윤이 고개를 들었다. 보이지도 않는 눈으로 억지로 그녀와 눈을 맞추어 보려 안간힘을 썼다. 사선의 기로에 선 아윤에게 연하는 무슨 말을 해야 할지 잘 생각이 나지 않았다.
“아니에요. 제가 선생님을 곤란하게 했어요. 대답하지 않으셔도 돼요. 다 알고 있는 거니까.”
“아윤아. 선생님은…….”
“저 괜찮아요. 그래도 많이 버틴 거잖아요. 처음엔 몰랐는데 미국에서 다 알게 됐어요. 얼마나 살지 장담하지 못한다고. 그때는 그게 무슨 말인지도 몰랐어요. 그런데 이젠 알아요.”
그녀를 당황케 한 아윤은 도리어 너무나 태연했다.
저 어린 아이가 이미 오래 전부터 자신의 죽음을 받아들였다는 이야기에 목이 메었다. 많은 소아 환자를 만나지만 이렇게 담담하게 자신의 이야기를 하는 아이는 또 처음이었다.
아프다고 떼쓰고, 울기도 하련만…….
그런 것 하나 없이 아예 신체의 모든 감각이 마비되어 버린 것처럼 아윤은 인상 한 번 찡그리지 않았다.
“아윤아. 아프면 아프다고, 힘들면 힘들다고 이야기해도 돼.”
“저 수술해 주세요.”
“하지만…….”
“그것도 안 돼요?”
“무섭지 않니?”
“아빠를 위한 거니까, 무섭지 않아요. 제가 제일 무서운 건, 우리 아빠를 혼자 남겨 두고 죽는 거예요. 아빠가 너무 불쌍해요.”
담담하기만 하던 아윤의 목소리에 물기가 배어났다. 자신의 죽음보다 혼자 남을 아빠가 걱정되어 수술을 해 달라는 아윤의 말에 연하는 저도 모르게 감정이 울컥거렸다.
갑작스런 상황에 당황한 그녀가 입술이 아프도록 깨물었다. 혹시라도 아윤이 듣기라도 할까 봐 울컥하는 감정을 진정시키려 무던히 애썼다.
“제가 오늘 한 말은 비밀이에요.”
“그래.”
아윤은 입술에 작은 검지를 갖다 대며 비밀이라는 말을 거듭 강조했다. 연하는 아윤의 가녀린 어깨와 등을 부드럽게 쓸어내렸다. 죽음을 목전에 둔 아이의 부탁이 너무 가슴 아팠다.
5년 전부터 시작된 수차례의 수술 병력이 있는 아윤에게 이번 수술이 어떤 의미가 있을까?
더욱 힘들기만 할지도 몰랐다. 수술을 시작하기도 전에 마취를 이기지 못해, 심장마비로 곧장 세상과 이별할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었다. 하루아침에 시력을 잃어버린 것처럼 허무하게 생명마저 놓아 버릴 수는 없었다.
지금 연하가 아윤에게 해 줄 수 있는 것은 그저 손을 잡아 주는 것뿐이었다. 그녀의 마음을 모두 아는 것처럼 아윤은 더 이상 그녀를 곤란하게 하는 질문을 하지 않았다.
연하는 애써 감정을 추스르며 아윤과 눈높이를 맞추어 무릎을 굽혔다. 보이지 않는 눈이었지만, 그럼에도 그녀는 아윤의 눈동자와 시선을 맞췄다.
“아윤아. 선생님 말 잘 들어. 네가 원하면 할 수는 있지만 많이 아플 거야.”
“알고 있어요. 그런데, 그런데 말이에요. 혹시라도 제가 죽더라도…… 아빠가 가슴 아파하지 않았으면 좋겠어요. 제가 수술이라도 해야 우리 아빠가 최선은 다 해 봤다는 생각을 할 거 아니에요. 선생님이 수술해 주세요. 저도 다 알아요. 저를 수술해 주신 선생님이 한국에 돌아올 수 없다는 것도요. 선생님밖에 없다고 이야기하는 거, 들었어요.”
“아빠랑 상의해 볼게. 넌 아무것도 걱정하지 마. 선생님이 아윤이 아프지 않도록 최선을 다해 볼게.”
“제가 수술해 달라고 했다는 이야기는 비밀이에요. 아빠는 몰랐으면 좋겠어요. 우리 아빠는 괜찮다고 하면서 혼자서만 아파하니까요.”
“알겠어. 약속 꼭 지킬게.”
아윤이 고개를 끄덕였다.
참 예쁜 아이였다. 얼굴도 그랬지만, 마음은 더욱 예뻤다. 저런 아이가 사선의 경계에 서 있다는 사실이 가슴 저렸다.
환자는 딱 두 부류였다.
나아서 일상으로 복귀할 수 있는 환자와 죽음을 목전에 앞둔 환자.
아윤은 후자에 속했다.
기적이 일어나지 않는 이상 절대 좋은 예후를 기대할 수 없었다. 이미 한 번 기적을 경험한 아윤에게 하늘이 또 한 번의 기적을 허락할는지. 연하는 머릿속이 복잡했다. 당장 높아진 뇌압과 뇌부종을 해결하기 위해서는 외과적 시술이 필요했다. 하지만 아윤이 원하는 것은 연하가 생각하는 치료 방향과 다른 것이었다.
그녀의 스승인 원호의 조언이 필요했다. 특실 바로 옆에 마련된 그녀의 방으로 돌아온 그녀는 연신 책상 위 모니터만 살폈다. 아무리 보아도 수술로는 해결될 것이 아니었다. 뇌간 깊숙이까지 파고든 종양의 범위도 넓었고, 부종 역시 심각해 손을 댈 수 있는 상황이 아니었다. 잘못하다가는 뇌를 덮지도 못하고 아이가 사망할 수도 있었다.
살리지 못할 아이였다. 괜한 욕심을 부리고 싶지 않았다. 하지만 아윤의 부탁이 계속 머릿속을 맴돌았다.
--- 본문 중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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