초등학교 저학년 시절, 비가 막 갠 교정에서 한 선생님이 물웅덩이를 가리키면서, ‘이게 지중해야’라고 했다. 그 이래, 나에게 지중해란 늘 그런 것으로 생각되었다. 지중해는 그것을 보고 있는 동안은 큰 바다였지만, 눈길을 조금만 돌려도 언제나 작은 물웅덩이가 되었다. 나는 물웅덩이 옆의 레스토랑에서 식사를 하고, 물웅덩이 곁의 호텔에서 잤다. 호텔에서는 늘 새벽에 지루하고 평온하면서 어딘가 한 점 격렬하게 서글픈 구석이 있는 꿈을 꾸었다.
---「지중해」중에서
나는 북유럽의 하얀 밤을 경험했을 때, 장춘진인의 이 시 구절을 떠올리고, “희미하며 색이 없다”라는 것은 백야 이야기가 아닐까 싶었다. 그때까지 이 시의 의미가 아무래도 이해가 안 되었는데, 백야 이야기라고 생각하자 그 의미가 분명해지는 것처럼 느껴졌다.
---「백야」중에서
골목을 걷다 보면 어떤 골목이든 어떤 집에든 들어가보고 싶어진다. 오래된 건물이 하나같이 그대로 사용되고 있었다. 세월을 여기에서는 전혀 개의치 않는 것 같다. 세월뿐 아니라 오래된 것이 지니는 불편함도, 오래되어서 더러워진 부분도 똑같이 개의치 않는다. 베로나에서만은 새로운 것이 들어설 틈이 없다.
---「베네치아, 베로나, 밀라노」중에서
고딕 성당의 설계자들은 뾰족한 형태가 지니는 아름다움을 포착한 위대한 발견자들이다. 건물 전체를 레이스 같은 부조로 잔뜩 꾸미고, 그것도 부족해서 하늘을 찌르듯이 날카로운 송곳을 배치했다. 로망은 둔중하고 농민 기질이 그대로 드러나 있지만, 고딕은 신경질적이고 도시적이고 공예적이다.
---「로망과 고딕」중에서
모든 방에서 한결같이 느낀 것은 거기에 살았던 사람은 어떤 인간이었을까 하는 것이었다. 사원의 어두움과 왕궁의 화려함이 공존하는 건물에 살아 있는 인간을 놓아보는 일은 쉽게 할 수 있는 상상이 아니었다. 자기를 신이라고 믿었던 권력자만이 간신히 여기에서 살 수 있을지도 모른다.
---「그라나다, 코르도바, 세비야」중에서
이번 여행에서 많은 미국인 가정에 가봤다. 백만장자 집에도 초대받았고, 정말 어렵게 살고 있는 듯한 젊은 화가의 집에도 초대받았다. 학자의 집에도, 엔지니어의 집에도, 과부댁의 집에도 초대받았다. 총체적으로 말할 수 있는 것은 모두가 친절하고 활동적이고 합리적인 생각을 하는 명랑한 사람들이라는 사실이다.
---「시애틀」중에서
커다란 창고 같은 건물이 몇 채 서 있고, 역무원의 모습도 안 보이고 하늘에는 차가운 광선의 별이 뿌려져 있었다. 나는 메이지 시대의 일본 지방 도시의 역이라는 것이 이렇지 않았을까 하는 생각에 사로잡힌 채 어두움 가운데를 걸어다녔다. 러시아 여행에서 여정이라는 것을 느낀 적이 있다면 그날 밤이었다.
---「시베리아 철도에서」중에서
어디로도 운반할 수 없어서 오랜 세월 그 자리에 옛날 그대로 방치한 유적인 기둥이나, 토대나 벽들은 하얀 입자가 내리쬐는 태양광 아래에서 보는 것이 제일 아름답고, 또 햇살 속에서 보는 것 말고는 달리 어쩔 수 없는 존재들이다. 현재 콜로세움을 비롯한 몇 개인가의 유적에는 밤이 되면 조명을 비추는데, 조명이 비춰진 경우 예외 없이 그들은 시시해진다. 조명 대신 달빛이 쏟아져도 마찬가지이다. 대낮의 강렬한 광선 속에서 봤을 때만 그들은 반항하는 얼굴로 무언가에 덤벼드는 것처럼 보인다.
---「태양과 분수와 유적」중에서
귀국하고 구미의 여러 도시에서 본 수많은 작고 네모난 돌이 늘어서 있는 잔디가 이상하리만치 생생하게 떠오른다. 아무리 밝고 아름답게 꾸몄다 하더라도 그곳은 공원이 아닌 묘지였다. 천수를 다하지 못하고 안타깝게 목숨을 잃은 사람들이 어깨를 맞대고 옹기종기 잠들어 있는 곳이었다. 지구 상에 그러한 관광 명소를 더 늘려서는 안 된다는 것만은 분명하다.
---「작고 네모반듯한 돌」중에서
러시아 여행에서 가장 강하게 느낀 것이 무엇입니까? 라는 질문에 나는 러시아라는 나라는 넓다, 라고 대답하기로 했다. 나는 40일 정도의 러시아 여행을 되돌아보며 잡다한 민족이 벅적대는 중앙아시아의 여러 도시와, 일본해의 조수가 철썩철썩 밀려오는 지금 내가 서 있는 나홋카 부두가 같은 나라라고 나 자신에게 납득시키는 것이 무척 어려웠다.
---「모스크바, 레닌그라드」중에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