온몸에 멘소래담 로션을 처덕처덕 바르고 발바닥과 발가락 곳곳에 반창고를 잘라 붙이며 나는 처음으로 ‘회의’를 느꼈다. 분명 배낭여행자로서 자부심을 품고 남들에게 자랑해도 좋을 하루를 보냈지만, 정작 나 스스로는 그리 만족스럽지가 않았던 것이다. 그 뒤 며칠에 걸쳐 나는 내가 막대한 통증을 대가로 지불해도 좋다고 여길 만큼 정신적 자유와 육체적 성취를 갈망하고 있지 않다는 사실을 깨달았다. 그리고 남은 여행 동안 스스로에게 거듭 이런 질문을 던졌다. “내가 힘들게 자전거를 타는 대신 뚝뚝을 빌려 탔더라면 앙코르와트가 더 인상적이었을까 덜 인상적이었을까?” ---「프롤로그」중에서
여행은 격렬한 서핑과 편안한 독서, 왁자지껄한 클럽과 고요한 숙소, 문명과 자연, 피자와 커리와 말라리아, 도마뱀과 새, 정글과 오로라로 이루어진 놀랍도록 풍성한 활동이다. 덕분에 우리는 자신과 잘 맞는 여행의 요소를 골라서 즐기거나, 싫어하는 요소를 요리조리 잘 피하거나, 또는 다양한 여행 요소를 자기만의 방식으로 즐길 수 있다. ---「프롤로그」중에서
여행은 도피이자 탐색이며 탈출이자 추구이다. 일상의 지루함에서 벗어나려는 사람은 여행을 통해 짜릿함과 재미를 찾아 나선다. 삶의 스트레스를 벗어나려 하는 사람은 여행을 통해 일과 가사에서 해방되어 편안함과 휴식을 얻기를 바란다. (……) 여행은 우리가 회피하려 하는 일상의 어떤 것들과 정반대에 위치해 있는 경험에 접근하는 행위이다. ---「1장」중에서
중요한 점은 우리가 여행을 떠나는 이유와 우리가 만족을 느끼는 여행의 양상은 우리가 어떤 사람인가에 따라 달라진다는 것이다. ---「1장」중에서
사람들이 어떤 여행지를 두 번 이상 방문하는 이유는 무엇일까? (……) 사람들은 다른 사람들을 그곳으로 데려가기 위해 같은 여행지를 반복해서 방문한다. 사람들은 자기가 정말 좋다고 느꼈던 경치를 누군가에게 보여주기 위해 그 사람 손을 잡아끌고 그곳으로 돌아간다. 사람들은 자기가 마음에 들어했던 음식을 누군가에게 맛보여주기 위해 그곳으로 돌아간다. 미처 함께 해보지 못했던 재미있는 액티비티를 함께 즐기기 위해, 혼자서 봤던 멋진 축제를 함께 감상하기 위해, 다른 사람들에게 행복을 안겨주고 이를 함께 느끼기 위해 돌아간다. 아름답지 않은가? ---「1장」중에서
여행자들은 대부분 친밀한 사람과의 관계를 더욱 돈독히 하기 위해 해변을 찾는다. 해변이 신혼여행지로 인기가 있는 데에는 다 이유가 있다. 가깝고 소중한 사람과 함께한다면 태양, 모래, 바다, 물놀이, 해산물, 바, 숙소, 리조트, 독서 등 해변 여행지의 모든 요소가 전부 아늑하고 오붓하게 느껴지며 행복을 더해준다. 이처럼 해변은 전적으로 사람과 관련된 여행지이다. ---「2장」중에서
신기한 사실은, 기념품을 보고 있노라면 그 기념품을 샀던 나라에 대한 기억뿐 아니라 특히 그것을 샀던 가게와 당시의 주변 환경이 놀라울 정도로 생생하게 기억난다는 점이다. 나 또한 잠시만 눈을 감으면 내가 기념품을 샀던 수많은 가게와 그때 어떻게 흥정했는지 등을 정확하게 떠올릴 수 있다. 나는 멋진 가죽 목걸이를 샀던 중국 랑무쓰 기념품가게의 아담한 실내와 보얀 먼지가 내려앉은 기념품들, 차가운 느낌을 주던 자연광 조명 등을 기억한다. ---「2장」중에서
여행과 핵심 혐오는 위생이라는 키워드를 중심으로 긴밀하게 결탁해 있다. 특히나 세계에서 가장 SF적인 화장실 설비와 높은 공공위생 규준을 갖추고 있는 한국 사람은 외국의 위생 수준에 불만을 느낄 가능성이 높고, 따라서 다른 나라 사람들보다 더 강한 핵심 혐오를 더 자주 경험할 수 있다. (……) 손 세정제나 상비약 등 마음의 안정에 도움을 주는 물품을 꼼꼼히 챙겨서 다닐 필요가 있고, 여행 중 비위생적인 환경을 피하는 행동 요령을 잘 익힐 필요가 있다. 그러나 혐오감이 아무런 저항 없이 우리의 여행을 지배하도록 내버려두지는 말아야 한다. ---「3장」중에서
여행자들의 성격, 목표, 자원, 각종 여행 요소를 대하는 태도 등이 모두 종합되어 귀결되는 것이 바로 여행자의 숙소이다. 반대로도 말할 수 있다. 여행자는 자신의 성격, 목표, 자원, 각종 여행 요소를 대하는 태도 등을 종합하여 자신에게 딱 맞는 완벽한 숙소를 찾을 수 있어야 한다. ---「4장」중에서
과연 우리는 성격과 취향이 자기와 비슷한 사람하고만 여행해야 하는 것일까? 나하고 성격과 취향이 일치하지 않는 내 연인, 가족, 친구와는 여행을 함께 할 수 없는 것일까? 여행 동반자들 사이의 관계에서 동반자들의 성격과 취향의 유사성은 사실 그렇게 본질적인 문제가 아니다. 이보다 훨씬 중요한 것은 동반자들이 서로를 존중하고, 자주 소통하고, 서로의 욕구와 취향과 가치를 절충하거나 공유함으로써 좋은 여행을 만들어나가려는 의지가 있느냐이다. ---「4장」중에서
우리는 우리 여행을 여러 편의 재미난 이야기로 만들어야 한다. 어떤 사람의 여행은 아름답고 의미가 있어서 여행기로 쓸 만하고, 다른 사람의 여행은 그럴 가치가 없어서 여행기로 나오지 않는다고 생각하는가? 천만의 말씀이다. 모든 여행은 여행기로 쓰인 뒤에야 아름다워지고 모두와 공유할 만한 의미를 얻는다.
---「5장」중에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