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는 사회와 환경을 바라보는 다양한 방법들이 제시하는 설득력 있고 강력한 주장을 제시하고자 한다. 자연에 대한 많은 사고방식을 편견 없이 완벽히 제시하는 것은 불가능하지만, 다양한 관점들의 특징을 과장하지 않고 공정하게 제시하는 것은 가능하다. 다만 이러한 작업이 성공적이었는지에 대한 판가름은 오로지 독자의 몫이다. (24쪽, 서론)
가령, 모든 사람이 미국인처럼 생활한다는 가정하에 수용력을 계산할 경우, 지구는 20억 명 혹은 현재 세계 인구의 3분의 1 정도만을 유지할 수 있다는 결론이 나온다(Chambers et al., 2002). 만일 이를 진지하게 받아들인다면, 우리는 다음과 같은 질문을 던져야 할 것이다. 적합한 생활수준은 어떻게 정할 수 있는가? 이 수준에 따라 살아야 하는 사람은 누구인가? 우리에게 이런 것들을 정할 자격이 있는가? 미국과 유럽의 높은 소비 수준을 그대로 유지하기 위해 중국의 개발을 막아야 한다는 주장은 타당할까? 북아메리카 주민은 과연 자신들의 생활수준을 유지하기 위해 인도의 성장 제한을 요구할 수 있을까? (37쪽, 제1장 인구와 결핍)
인구가 결핍을 유발한다고 보는 맬서스 등의 관점과는 반대로, 경제적 사고는 결핍이 사회와 환경 관계의 한계를 정하는 것이 아니라 오히려 이들의 상호작용에 동력을 제공한다고 본다. 즉, 부족한 자원은 수요와 공급의 과정 속에서 경제적 보상을 통해 인간의 창조적 잠재력을 고무시키기 때문에, 결과적으로 자원은 계속해서 이용 가능한 수준으로 유지되거나 심지어는 더욱 풍족해지기까지 한다는 것이다. (53쪽, 제2장 시장과 상품)
죄수의 딜레마와 공유지의 비극 논리가 광범위하게 수용되는 것과 동시에, 이것과 어긋나는 증거들이 나타나기 시작했다. 인류학자, 사회학자, 역사학자, 지리학자들이 세계의 자원 관리를 관찰하면서……압제적 형태의 강제 기구나 배타적 사유 재산권 중 어디에도 해당하지 않는, 봉쇄하기 어려운 자원(어류?삼림?목초지에서부터 컴퓨터 처리 시간에 이르는)의 복잡한 관리 체계의 예시를 수도 없이 발견했다. (83쪽, 제3장 제도와 ‘공공재’)
싱어의 주장은 아주 직설적이며, 옳은 행위를 요구하는 그의 목소리는 많은 사람들 사이에서 큰 반향을 일으켰다. 싱어는 다음과 같이 질문한다. 역사적으로 인간의 도덕적 지평은 지속적으로 확대되어 여성, 소수민족, 환자, 장애인 등과 같이 자신의 권리를 박탈당하거나 제한당한 사람들까지도 포괄할 수 있게 되었다. 그렇다면 같은 방식으로 도덕적 지평을 인간의 범주를 넘어 동물들에게까지도 확대할 수 있지 않을까? (111쪽, 제4장 환경윤리)
이동 거리를 기준으로 볼 때 사람들에게 가해지는 물리적 위험의 수준은 자동차가 항공기보다 훨씬 높지만, 대부분의 사람들은 자동차보다 항공기 이용을 훨씬 더 두려워한다. 또 예방접종이나 상수도의 불소처리에 대해 사람들이 우려하는 모습을 흔히 볼 수 있지만, 통계적으로 볼 때 이것들이 건강에 위해를 끼칠 확률은 잔디 깎기 기계의 그것보다 훨씬 낮다. 그럼에도 사람들은 잔디 깎기 기계에 대해 우려하거나 위해를 느끼지는 않는다. 왜 그런 것일까? (128쪽, 제5장 위험과 위해)
환경 정의 활동가들은 이러한 문제를 직접적으로 제기하면서 환경 위험, 폐기물, 유해한 시설이 소수민족집단이나 빈곤층 거주지 인근에 집중되는 경향을 지적한다. 빈곤층, 흑인, 이주민 집단이 납, 규진(이산화규소분진), 살충제와 같은 물질에 무방비로 노출되어 있다는 사실은 오래전부터 지적되어온 것이다. (166쪽, 제6장 정치경제학)
신세계가 자연 그대로의 상태라는 유럽 사람들의 믿음은 자신들의 영토적 야심에 정확하게 부응했다. 스페인, 프랑스, 영국 출신의 식민지 정착민들이 노동과 자연권에 대해 가지고 있었던 핵심적인 관념은, 토지와 자원은 그것을 사용하는 사람이 있을 때에만 소유된다는 것이었다(존 로크에 관한 논의는 제5장 참고). 땅이 사용되지 않는 것은 그곳의 소유자가 없기 때문이다. 그리고 소유자가 없는 땅은 유럽 사람들이 식민 통치를 통해 이용하는 것이 허락된 땅이다. (181쪽, 제7장 자연의 사회적 구성)
애초에 초기 미국 이주민들에게는 경작지 너머에 있는 숲과 ‘비어 있는’ 땅에 사는 야생동물을, 또 그들의 야생성을 무서워하는 문화가 자리 잡고 있었기 때문이다(제7장 참고). 게다가 늑대는 농사를 짓는 정착자들에게 정말로 골칫거리였다.……늑대는 가축을 죽였고 지금도 여전히 죽이고 있다. 하지만 이 두 가지 요인(야생에 대한 두려움과 농업 생산의 교란)만으로 늑대를 사살하는 광신적 행동을 설명할 수 있을까? 이들 요인이 늑대를 죽이는 데 사용된 잔인한 기술과 무자비함을 설명할 수 있을까?
---본문 중에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