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화를 쓸 때 난 참 행복했어요. 내가 아닌 다른 사람이 될 수 있어서. 그러나 언제나 써 놓고 보면 그 속에 내가 있었지요. 내가 미처 몰랐던 나. 나인 채로 살 수 없었던 그 시간을 동화를 쓰면서 마주했답니다. 내 속엔 참 많은 내가 살고 있어요. 침묵하고 있는 줄 알았는데 알고 보니 늘 시끄럽게 떠들고 있었어요. 이젠 외면하지 않고 귀 기울여 주려고 해요. 그리고 말해 주려고요. “더 이상 미워하지 않아.” 근영아, 예희야. 그리고 할머니, 엄마, 아빠 사랑해. 지금까지 펴낸 책으로는 5·18 문학상을 받은 《외할머니의 분홍원피스》와《닉부이치치의 점프》가 있어요.
“치과 의사 선생님이 근영이 입에 미러를 넣고 살피더니 인상을 잔뜩 찌푸렸다. 근영이 입이 꼭 전복 같다. 의사 선생님은 입에 마스크를 하고 있어서 강도처럼 보였다. 뱅글뱅글 도수 높은 안경도 쓰고 있었다. “이러기도 힘든데. 도대체 손주 이를 어떻게 관리하셨어요?” 할머니는 손주라는 말에 화들짝 놀라 손사래를 친다. “제 손주 아니래요.” “그럼요?” “우리 집에서 일하는 조선족 할머니예요.” 근영이가 아무렇지도 않게 뱉은 말에 할머니는 마음이 한 움큼 할퀴어진다. 할머니 코가 쑥 빠진다. ‘맞아, 내래 근영이네 집에 일해 주는 사람이디……. 그래도 그렇지 말본새 하고는.’ 할머니는 예인이 손을 꼭 잡는다. “할머니, 예인이는 썩은 이 없지?” 예인이가 할머니를 보고 방긋 웃는다. “우리 예인이는 언니처럼 썩은 이 없다우.” 할머니는 버릇없는 근영이에 비해 예인이가 귀엽고, 예쁘고 사랑스럽다. “의사 선생님, 근영이 초콜릿, 사탕 먹지 못하게 아프게 치료해 주시라요.” 할머니는 예인이 손을 잡고서는 휑하니 진료실을 나왔다. 근영이 편이 사라졌다. 진료실 안에서 근영이의 울음소리와 고함이 울려 퍼졌다. ‘에미나이, 샘통이다.’ --- p.64-65
“아아, 열이 떨어지지 않슴둥.” 할머니는 응급실 안에 있는 남자 간호사에게 다급하게 말했다. 남자 간호사는 근영이를 간이침대로 옮겨 눕히고는 의사를 호출했다. 남자 간호사가 접수증을 내밀었다. 할머니는 밤이라 더 어둑해서 글씨가 잘 보이지 않았다. 환자와 보호자의 관계를 쓰는 칸이 보였다. 할머니는 한참을 고민하다가 삐뚤빼뚤한 글씨로 썼다. ‘친손주’ 할머니는 근영이가 누워 있는 침대에 예인이를 업은 채 쪽잠이 들었다. 날이 희뿌옇게 밝아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