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세기는 인류활동이 팽창하는 시대였다. 인류활동이 팽창하면서 많은 과제가 발생했고, 다양한 과제들이 해결되지 않은 상태로 21세기는 시작했다. 그 과제는 환경, 에너지 자원, 식량, 빈곤, 도시문제와 테러 등 다양한 분야에 걸쳐있다. 인류에게 생명과학, 바이오테크놀로지, 나노테크놀로지, 정보기술, 환경기술, 에너지 기술, 재료기술, 생산기술, 인문과학과 사회과학 등의 학술 지식은 과제를 해결하기 위한 수단으로 쓰인다. 지식이 이 모든 과제를 해결하는 열쇠를 쥐고 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언급할 필요도 없겠지만 지식은 생산 프로세스나 기업에서만 이용하는 것이 아니다. ---p.4~5
젊은 시절에는 아리스토텔레스가 만능한 천재란 소리를 들어도 별다른 느낌이 없었다. 하지만 단순히 나이 탓인지, 연구생활을 40년 가까이 한 탓인지, 선인에 대해 관심이 생긴다. 나도 내 연구를 사회나 역사와 관련짓고 싶다. 이것은 아마도 지금 시대가 연구를 하든, 경영을 하든, 전체상을 알아야 하는 시대이기 때문일 것이다. ---p.20
지식 증가는 문명발전을 위해 좋은 일이다. 그러나 지식이 폭발적으로 증가해서 지나치게 세분화되면 지식 전체상도 보이지 않고 지식간 관련도 알 수 없다. 누구나 방대한 양의 지식을 갖기 원한다. 남들보다 아는 것이 적으면 불안하다는 이유로 많은 지식을 흡수해야한다는 강박관념에 시달린다. 그러나 이렇게 되면 스스로 경쟁력의 원천인 전문성을 잃고, 결국 지식의 홍수에 압도당하고 만다. 이것이 지식사회의 딜레마다. ---p.31
전체를 이해하려면 문제 구조를 동정同定해야 한다. 예를 들어 북유럽에 있는 죽음의 호수는 산업혁명 이후, 영국에서 선탄연소 증가로 배출된 배기가스가 편서풍을 타고 북유럽에 도달해서 유황산화물이 섞인 산성비가 내려 아름다운 호수가 죽음의 호수로 변했다. 이런 식으로 구조를 이해한 뒤 대책을 생각해야 한다. 복잡한 문제라도 이런 방식으로 하면 그 원리가 틀리지 않는다. ---p.35
실험에서는 12종류의 권위 있는 학술지에 과거 3년 이내에 게재되었던 논문을 제목과 저자명만 위조해서 재투고했다. 이름 있는 학술지는 논문 하나를 놓고 여러 명의 전문가가 읽고 게재 여부를 판정한다. 이것을 전문가끼리 조사하고 검토한다고 해서 피어리뷰(상호검사)라고 한다. 그러나 논문을 읽은 37명의 전문가들 중 재투고를 안 사람은 겨우 3명뿐이었다. 37명 중 3명, 이는 전문가의 말을 같은 영역 안에 있는 다른 전문가가 이해하는 확률지표다. 이 결과로 유추해보면 서로 다른 영역의 전문가가 서로를 이해할 확률은 공중에 던진 바늘 두 개의 끝이 충돌할 확률이라고 보면 된다. ---p.46
다양한 영역의 사람이 모여 토론하는 편이 비약적인 발전을 하기에 더 나은 방법이다. 따라서 발전을 위해 복수학회가 공동주최하는 심포지엄이나 포럼이 필요하다. 또한 지식의 수요 면에서 볼 때 사회에도 학제는 필요하다. 나노테크놀로지를 예로 들면 학회나 업계 하나만으로는 전모를 파악할 수 없다. 또 세계적으로 진행하고 있기 때문에 전 세계의 연구자가 모여 토론하는 것이 합리적이다. 즉 학제, 업제業際, 국제國際는 지식의 세분화시대에 불가피한 요구다. 높은 비용을 지불하면서도 국제 심포지엄에 참가하는 이유도 이 때문이다. ---p.47
2000년 전에는 철학밖에 없었던 학문에서 의학이 분화했다. 그 뒤에는 공학을 포함한 다양한 영역으로 세분화됐다. 그러나 의료 역시 세분화와 함께 융합이 필요하다. 좋은 의료행위를 위해서는 의학, 이학, 공학, 법학, 경제학, 심리학 등 다양한 영역에서 지식통합이 이뤄져야 한다. 대상이 사람이므로 당연한 일이다. ---p.64
이용하지 않으면 지식이라 부를 수 없다. ‘독립계 엔트로피는 증대한다’와 같은 열역학 제2법칙은 대부분의 사람들에게는 지식이 아니다. 미국이 실시한 어느 조사 결과를 보면 문서작성용 소프트웨어 워드를 사용하는 일반 이용자는 워드가 가진 기능의 20퍼센트밖에 쓰지 않는다고 한다. 하지만 단 20퍼센트만 이용한다 해도 대단한 일이다. 일반 이용자가 남은 80퍼센트에 대해 전혀 모른다고 해도 워드에 대한 지식을 갖고 있다고 본다. 어떤 사람이 특정 부분에 대한 지식을 얼마나 갖고 있는지를 판단하는 기준은 바로 그 지식의 이용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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