예로부터 우리 사회에서 민심은 천심이요 정의로 여겨져 왔다. 그러나 언제부터인지 민심은 무시하거나 제압해야 될 대상으로 여겨지기 시작했다. 때로는 포퓰리즘이니 대중주의니 해서 부정적인 딱지가 붙기도 했다. 그 대신 여론이라는 개념이 많이 쓰였다. 여론은 정부, 시장, 지식인, 미디어 등이 특정한 목적에서 의도적으로 만든 말이다. 순수한 개념이 아니라 조작과 왜곡의 가능성이 많은 말이다. 여론은 민심을 반영하기도 하지만 때로는 민심과 배치될 수도 있다. 여론은 민심이 아니다. 그럼에도 여론을 민심으로 여기는 사람도 많다. 사회를 지배하는 사람들은 여론조작과 지배를 통해 민심을 통제하려 든다. 현대 사회에서 미디어만큼 여론조작과 통제에 기여하는 것은 없다. 여기서 갈등이 시작된다. --- p.6
더 큰 태풍은 2009년 방송법으로 몰아닥칠 전망이다. 이 법이 시행되면 외국자본은 종합편성채널과 보도전문채널의 지분을 가질 수 있다. 한미FTA에서도 보도기능을 하는 방송은 국가정체성을 이유로 투자를 금지시켰는데, 느닷없이 종합편성채널 등을 허가한 것이다. 이것은 신문재벌이 뉴스채널, 종합채널을 경영하기 위해 외국 자본의 진입마저 허용하면서 방송의 자주성이라는 국익을 무시해버린 처사라 할 수 있다. --- p.50
조선일보, 중앙일보, 동아일보는 일간지, 인터넷신문, 주간지, 월간지만으로도 충분히 여론시장을 좌우할 수 있었다. 거대 신문기업은 연간 수천 억 원의 수입을 올리며, 계열 미디어를 비롯한 계열사, 투자사도 셀 수 없이 많다. 중앙일보는 수십 개 계열회사를 거느린 재벌급 회사며, 보광그룹과 같은 계열이다. 중앙일보는 히스토리채널과 J골프 채널을 비롯해 4개 채널을 운영한다. 조선일보의 재산도 만만치 않다. 이 회사는 일간지, 호텔, 인쇄소, 경제 전문 채널 등 다각적으로 사업을 한다. 또 수많은 기업에 투자도 했다. 동아일보는 고려중앙학원과 같은 계열이며, 삼양사와 경방과도 관계가 있다. 이렇게 많은 돈, 많은 기업, 큰 영향력을 가진 신문재벌이 뉴스 기능을 하는 방송사를 갖게 되는 것이다. --- p.76
방통위는 MBC 뉴스데스크 앵커가 미디어법에 반대하는 멘트를 한 행위도 문제삼아 징계했다. 심지어 MBC의 인기 시트콤인 〈지붕 뚫고 하이킥〉에서 어린이 출연자가 “빵꾸똥꾸”라는 말을 쓴다고 권고조치를 내리기도 했다. 국가기관이 프로그램의 내용을 직접 심의하고 징계하는 것은 언론통제이자 검열이기 때문에 위헌이다. --- p.110
공영방송이 강자와 약자, 권력자와 국민의 이익이 충돌하는데도 중립성과 공정성을 핑계로 약자의 편에 서지 않는 것은 명백히 강자, 권력자의 편을 드는 것이다. 강자의 잘못된 행태와 약자의 정당한 행태에 대해 공정의 잣대로 재단하여 똑같은 발언권을 주는 것은 결국 강자의 잘못을 편드는 것이다. 이런 것이야말로 공정성 이데올로기의 늪에 빠지는 것이며, 공영방송은 이 점을 경계해야 한다. --- p.120
제시된 대안 가운데 가장 적절한 것은 KBS 2TV를 지역연립채널로 전환하자는 것이다. 수신료도 이런 목적에 충실하도록 배치할 필요가 있다. 한편 MBC는 KBS와는 다른 형태의 공영방송으로 사회적으로 의미 있는 가치를 생산하고 있다. 그러나 정수장학회가 갖고 있는 30%의 지분, 지방 계열사에 대한 개인이나 기업의 지분 등은 MBC의 공공성을 감소시킨다. 특히 정수장학회가 보유한 주식은 사회에 환원하는 것이 순리다. 또한 MBC의 공익성을 강화하기 위해 EBS와 통합하여 운영하는 안도 제기된 바 있다. --- p.135
광고는 소통의 기능을 하지만 사람의 생각과 판단력을 마비시키고 사회의식을 조작해서 위험한 상태로 만들 수 있다. 1997년 경제위기 이후 한국사회를 압도한 담론과 이념은 ‘알아서 살고, 알아서 부자되기’다. 이후 우리나라에서는 부자가 선이 되고, 부가 모든 것의 판단기준이 되는 것처럼 가치관이 뒤죽박죽이 되었다. 오로지 돈을 많이 벌어서 가족끼리 잘살면 그만이라는 극단적인 개인주의가 우리 사회를 짓누르고 있는 것이다. 광고는 사람들이 이렇게 생각하도록 하는 데 촉매제 역할을 했다. --- p.217
사영 미디어렙은 가뜩이나 방송의 사유화, 시청률 경쟁, 스타 시스템의 횡포로 비판을 받고 있는 방송을 더욱 극단적으로 몰고 갈 것이 뻔하다. 광고주의 뜻에 어긋나는 뉴스나 프로그램은 알아서 만들지 않을 것으로 예상된다. 방송사와 미디어렙은 엄청난 광고비를 블랙홀처럼 빨아들여 중소 규모의 미디어를 재정난에 빠뜨릴 위험도 있다. 사영 미디어렙은 거의가 방송사에게 막대한 이익을 안겨줌으로써 가뜩이나 심각한 미디어시장의 양극화를 더욱 심화시킬 것이다. --- p.246
서민계급 수용자들이 부자와 권력층을 대변하는 미디어의 열렬한 소비자라는 사실을 어떻게 이해해야 하는가! 부자나 권력자는 대개 자신들의 이익을 보존해주는 미디어를 선택한다. 그러면 왜 서민계급, 특히 노동자는 반노동자 미디어를 선택할까? 김대중이나 노무현을 반대하고 공격하는 미디어가 어떻게 해서 김대중, 노무현 지지자를 단골손님으로 만드는가? --- p.321
미국 연방대법원은 불매운동이라는 목표를 달성하려고 사용한 언사가 남에게 창피를 주거나 그들을 압박해 특정 행동에 나서게 하더라도 보호해야 한다고 결정한 바 있다. 이것은 미국 대법원이 불매운동을 합헌으로 보았다는 것을 말한다. 검찰은 광고주 불매운동을 처벌할 목적으로 1947년 미국의 「태프트-하틀리법(Taft-Hartley Act)」을 인용했다. 그러나 이 법에서 말하는 2차 보이콧 금지조항은 파업 중인 노동자들이 우월적 지위를 이용해 3자 업체에게 참여를 강요해서는 안 된다는 것이지 광고주 불매운동이 불법이라는 뜻은 아니다. 미국에서는 광고주 불매운동을 표현의 자유로 인정하기 때문에 경찰, 교사, 의원 등 누구나 이 운동에 자유롭게 참여한다. 미국 공화당 의원인 론 폴(Ron Paul)은 자신의 홈페이지를 아예 언론사 광고주 불매운동 사이트로 운영한다. --- p.357
방통위가 정부 기구가 된 이래 조직 운영이나 정책 결정에서 많은 문제점이 노출되었다. 시민사회와 학계는 방통위를 감시하고 대안적 모형을 강구해야 한다. 정부 여당의 미디어정책과 방통위를 감시하는 ‘미디어공공성 위원회’와 같은 전국적 모임을 만들어 조직적으로 대응하고, 중장기적인 대안으로는 방통위가 독립된 합의제 행정위원회로 위상을 재정립하고 훗날 ‘미디어평의회’로 진화하는 안도 있을 것이다.
좀 더 살펴야겠지만, 국민소환제도를 도입해서 방통위원, 공영방송 사장이 제 역할을 하지 못할 경우 응분의 책임을 물을 수도 있다.
--- p.369