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극은 ‘사람의 예술’, 내 연극은 질문하고 있는가?
그대가 연출이라면, 예술가라면,
세상이 보여주는 것, 들려주는 것, 모두를 의심할 것.
살아 있는 모든 것을 조롱하지 말 것.
--본문에서
40여년 세월을 무대에서 보내온 저자 늘근나무 이상우는 또한 긴 시간을 강의실에서 학생들과 더불어 연극에 대해 생각하고 공부해왔다.(이 책은 저자가 2012년 연구년을 맞아 초고를 쓰기 시작하여 그후 여러 학기 동안 강의실에서 학생들과 함께 읽으면서 수정, 보완 과정을 거쳤다.) “학생들과 얘기하다 보면 내가 잘못 알고 있던 것, 내가 모르고 있던 것을 발견”한다는 열린 마음으로 ‘대답’이라기보다 ‘질문’으로 “이것이 옳다”가 아니라 “저건 어떨까” 식으로 연극과 연극세상을 함께 들여다보는 활달한 소통의 장을 마련한다. 《야생연극--젊은 작가를 위한 창작노트 3막 1,109장》이라는 표제대로 크고 작은 주제로 정교히 짜인 이 책의 일차적인 질문은 ‘우리 연극은 사람 보는 관점이 너무 낡은 것이 아닌가’이다.
그동안 우리 연극이 사람을 보는 시각은,
사람관계를 보는 시각은 아직 100년 전에 멈추어 있는 듯.
계몽주의적이고 목적론적이고 숙명론적인 듯.
사람의 마음과 행동은 복잡하고 비합리적이고 어처구니없고…
사람이 그런 존재라는 걸 무시하는 듯, 또는 인정하기를 거부하는 듯.
--본문에서
현대 연극의 새로운 흐름은 ‘사람을 다시 발견’하는 데서부터 출발하며 “소포클레스도 아리스토파네스도 셰익스피어도 브레히트도 그 시대의 사람, 사람관계를 새롭게 발견했으며 우리 시대의 연극은 우리 시대의 사람관계를 새롭게 발견해야 한다”. 우리 연극은 사람에 대한 과학이, 생물학, 인류학, 심리학, 신경학 들이 20세기와 21세기 초에 이루어놓은 성과를 무시하고 있지 않은가. ‘사람의 예술’인 연극을 만들기 위해서는 무엇보다 사람에 대한 ‘발전된’ 관점과 태도가 필요하지 않은가. 이와 관련하여 저자 자신의 끊임없는 통찰과 혜안이 빛을 발하지만, 그와 더불어 20여 년에 걸친 창작 및 독서 메모 중 특히 근래 자연과학 저작들에서 가져온 풍부한 예증은 인간 이해에 구체성을 더해준다.
또 하나의 우주 --연극, 그리고 연극작가
거의 평생토록 “연극이라는 우주에 살면서 말하는 법을 배운” 저자가 여전히 꿈꾸는 연극, 연극세상은 어떤 것인가? 연극은 생물(生物), 생명체와 같은 복잡계(Complexity System), 극작, 배우, 음악, 미술, 연출, 관객이 함께 만드는 초유기체이다. 연극의 생명이란 끊임없는 움직임, 끊임없는 관계, 끊임없는 변화이다. 변화야말로 생명의 첫 번째 증거이다.
살아 있는 연극은 스스로 변화합니다.
불변이 아니라 변화 가능. 구조가 아니라 효과,
고체가 아니라 액체, 덩어리가 아니라 ‘흐름’으로서의 연극.
‘생명체 연극’ㅡ‘산 연극’을 상상해보길.
연극작가의 태도는 ‘평범한 일상을 평범하지 않게 바라보는 것’.
또는 ‘보여주는 것’
모든 살아 있는 연극은 본질적으로 불온한 것입니다.
지금이야말로 우리 연극판에 ‘이단(異端)’이 필요할 때
--본문에서
여기서 연극작가는 대본작가만을 말하는 게 아니라, 연극을 창작하는 단위들, 대본작가, 배우, 연출, 미술, 음악 모두를 가리킨다. 연극은 ‘연극작가’의 가슴과 머릿속에서 발전한다. “연극은 스스로 정의가 아니며 도구”. 누가 어떻게 사용하느냐에 따라 달라진다. 중요한 것은 “어떤 연극을 하느냐” “어떤 태도를 가지고 있느냐”이다. 이는 전체 3막(1막 야생 연극/2막 야생 배우/3막 야생 연출) 중 연극(세상)에 대한 태도 등을 다룬 1막에 이어 2막, 3막의 저자 자신의 경험이 녹아든 배우, 연출의 세부 장에서 좀더 생생하게 엿볼 수 있다.
배우와 배우 사이를, 관객과 배우 사이를
‘빈 공간’으로 보지 않고 ‘자기장’으로 보면
연기에 대한 생각이 달라질 수 있습니다.
연기는 나 혼자만 하는 게 아닙니다.
연기는 나 혼자만 잘할 수 있는 게 아닙니다.
연기는 배우와 배우 ‘사이’에 있는 것. 배우와 관객 ‘사이’에 있는 것.
무대 위에서 모든 것을 하나하나 설명하려는 순간,
연극은 설명회가 됩니다. ‘여백’이 있어야 합니다.
관객이 연극세상으로 들어설 수 있는 ‘여백’.
그런 ‘여백’이 있는 연극은 피가 돌고, 체온이 생깁니다.
‘여백’은 ‘빈 공간Vacuum’이 아닙니다.
‘여백’이 있는 연극은 그 여백에서 관객과의 ‘컨텍스팅Contexting’을 만듭니다.
‘여백’이 없는 연극은 오히려 지루합니다.
--본문에서
늘근나무와 유쾌하게 인간, 그리고 연극을 읽다
나는 모든 작품이 코미디라고 생각합니다.
아니 양보해서, 모든 작품 속에 코미디가 있다고 생각합니다.
코미디는 파격이고 저항이고 반역이고 비판.(...)
웃음이야말로 비폭력이면서 가장 적극적인 전투력입니다.
--본문에서
“연극이라는 우주선을 타고 일상에서 차원이동하여 우리 세상을 새롭게 내려다보게 하는 연극을 만들자”라는 기치를 내걸고 출범한 ‘극단 차이무'(차원이동무대선(船)의 약칭)는 20년 전 번역극이 대다수이던 창단 당시 우리말로 우리의 정서를 표현해 주목받은 이래 오늘 대학로에서 여전히 활발히 관객과 교감하고 있다.
‘극단 차이무’의 모토는 ‘생각은 깊게, 표현은 경쾌하게’이다. ‘차이무’의 선장으로 불리는 이상우의 연극은 무거운 주제를 유쾌하게 푸는 것으로 정평이 나 있다. 그 원천은 짐작컨대 스스로 밝히듯 어려서부터 엄숙, 권위, 계급, 권력, 제도, 차별, 편견, 단체가 싫고, 다른 생각, 새로운 것, 삐딱한 시각, 뒤집어보기를 좋아한 저자의 성향이 작용했음은 물론이다. 이 책 역시 그 기조와 무관하지 않은 내용과 형식을 갖췄다 할 수 있다.
방대한 저작들에서 빌어온 풍부한 예증을 자신의 생각과 유기적으로 교직한 글쓰기 또한 그 형식 자체가 창의적이며, 주제를 한층 효과적으로 전달하는 수단이 되고 있다. 특히 돋보이는 간결한 문장과 글줄은 저자가 “간결함과 강렬함은 통한다”는 소신으로 오래 깎고 다듬은 결과이다.(실제로 이 책의 짧은 글줄과 행갈이는 거의 원고 그대로를 살린 것이다.) 이는 시구나 경구처럼 무한생동하며, 깊은 내공으로 빚어진 글쓰기의 한 전범으로 꼽기에 부족함이 없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