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병일 시인은 자연을 가지고 시를 쓰면서도 뒤돌아보거나 망설임이 없다. 그래서 힘이 세고 선이 굵다. 그러면서도 시들이 매우 세련되고 구체적이다. 그만큼 자연에 체질적으로 적응하고 대응할 줄 아는 이야기꾼의 비범함을 지녔다고 볼 수 있겠다. 이 시집엔 대개의 자연 서정시에서 보이는 “다랑이길 흙 기운”(「집으로 가는 나의 그림자」)으로 대변되는 화목한 자연체험이 스며 있다. 그리고 그 자연물이 “내 목을 치는 파도의 검(劍)”(「별자리」)으로 번쩍대는, 아슬아슬한 현재진행형으로 표현될 때 더욱 빛난다. 특히 여러 시편에서 등장하는 수직성이 힘차고 참신하다. 시인은 지상에서 치르는 노역의 고단함 속에서 과거를 발굴하는 신화적 상상력으로 단단하고 유연한 뿔의 수직성을 꿈꾼다. 이 시집에 등장하는 저 수많은 동물들의 꿈을 보라! 호랑이, 기린, 당나귀, 사슴, 수달, 백상아리, 불개, 멧돼지 들은 우리가 잊어버렸거나 훗날 망각해버릴 과거와 미래에서 동시에 우리에게로 왔다. 그리고 마침내 과거와 미래가 창끝처럼 현재에 응집되어 고압의 상상력으로 분출된다. 신화적인 저 명상의 세계에서 어슬렁거리다가, 봄산 기슭의 “꽃나무를 찢고 나”(「호랑이」)오는 호랑이야말로 설화나 전통성이 현대적 정서와 결합된 시인만의 독특한 자연관에서 태어난 숨겨진 역동성의 실체이다. 박형준 (시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