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늘에 뜬 모든 별이 반짝거리지만 그중에도 유난히 밝은 것들이 있다. 별처럼 많은 시인 중에서도 유독 눈에 들어오는 이름들이 있다. 이를테면 소월은 가장 애틋하고, 백석은 가장 그리운 시인이다. 독특하기로는 이상을 뺄 수 없고, 단단한 면에서는 육사가 빠질 수 없다. 그렇게 시인들에게는 각자의 몫이 있다. 이 책에서 정지용과 김기림을 선택한 것은 오로지 그 몫 때문이었다. 정지용은 가장 고마운 시인이었고 김기림은 가장 궁금한 시인이었다.
연구자의 입장에서 시인과 시는 질문이 되어 다가온다. 왜 고마운 것이며 왜 궁금한 것일까. 문학사에 이 두 사람이 몫이 있다는 말은, 이 두 사람이 각각 제 나름의 문학으로 하여금 어떤 강을 건너게 했다는 말과도 같다. 그 강을 건넜기에 우리의 문학은 여정을 계속해 오늘에 이를 수 있었다. 그러니 정지용이 건넜던 강, 김기림이 건넜던 다리가 고맙지 않을 리 없다.
두 사람의 실체에 좀 더 가까이 갈 필요가 있었다. 이 책은 그 실체에 대해 나름 몰두한 결과물이다. 결론적으로 말하자면 정지용 자신이 하나의 강이 되는 방식으로, 또한 김기림 자신이 하나의 다리가 되는 방식으로 말미암아 그들은 1930년대를 훌륭하게 건너왔다. 지금만큼 빠르게 변하긴 했을까마는, 1930년대 조선 사회는 격변기에 놓여 있었다. 그 변화의 속도를 상대적으로 셈할 수 있다면 아마도 우리가 지금 느끼는 우리 사회의 변화 속도보다 더 빠른 속도로 당대인들을 덮쳤을 것이라 짐작된다. 날마다 새로운 것이 생겨나고, 새로운 것이 들리던 시기였다. 새로운 풍물과 광경과 지식과 방식이 몸과 마음, 머리와 상상의 영역까지 들어와서, ‘생각하던 방식’ 그 자체를 바꾸어놓던 시기이기도 했다. 현실이 상상을 변화시키고, 상상이 다시 현실을 변화시키는 뫼비우스의 띠는 시인들의 인식론과 상상의 장에도 큰 영향을 미쳤다. 당시의 시인들은 이러한 변화를 딛고 또 다른 세계로 나아가고자 했다.
이 책은 박사학위 논문을 바탕으로 한 것인데, 논문을 쓰는 내내 머리를 떠나지 않았던 상징적인 상상은 시인이 어디론가 떠나는 장면이었다. 정지용은 예의 그 점잖은 도포를 입고 계속해서 길을 걸어갔다. 김기림은 더할 나위 없이 깔끔한 안경과 양복을 갖추고 길을 걸어갔다. 시인의 주변에서는 도시가, 이론이, 소문이, 지식이, 신문이, 사건과 사람들이 휙휙 지나가고 있었다. 뿐만 아니라 그것들은 시인의 도포 자락과 양복을 물들였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들은 정지용이었고, 김기림이었으며, 시인이었다. 그들은 각자 맡은 바 소임으로서 아주 먼 곳으로의 행보를 지속하였다. 그 행보 끝의 최종 종착지는 아니더라도 그들이 향했던 어떤 지점이 ‘조선적 이미지즘’이라고 본 것이 이 논문의 논지이다. 조선적 이미지즘은 애초 만석꾼 부자로 출발하지 못했던 우리 시단을 밝고 아름답게 밝혀주는 등불과도 같다.
‘조선적 이미지즘’은 가시적인 스펙터클에 매혹된 시인의 모습을 반영할 뿐만 아니라 근대 현실에 대한 반작용으로서 상상의 세계를 드러내고 있다. 조선 문단에서 이미지즘의 특수성을 밝히는 연구는, 비단 근대적 문명에 대한 수용(受容)과 반사(反射)의 작업을 넘어 새로운 판(板)을 꿈꾸고 상상 세계를 지향하면서 시적 세계를 구축하는 일이 1930년대 근대문학의 가치관이었음을 논증하는 의미가 있다.
이 책의 제2장은 서구 이미지즘 이론에 대한 고찰, 조선 문단으로의 이입 상황 검토, 정지용과 김기림의 은유론 및 이미지관을 서술하고 있다. 이어 문단 상황 및 논쟁 등을 통해, 1930년대 정지용과 김기림이 이미지즘에 주목한 이유가 당대 문단 내 ‘조선시’의 요청과 연결되어 있음을 논구한다. 그리고 ‘조선시’의 지향이 은유를 선택하는 필연적 이유로서, 당대 일제 식민지학(植民地學)의 심상지리로 보급되던 ‘조선에 대한 은유’에 주목한다. 일제 식민지학에서 조선 반도의 심상지리 및 민족에 대한 지배 욕망을 은유를 통해 유포시키는 상황에 대응하여 조선적 이미지즘은 주체적이고 문학적인 은유로 새로운 탈출구를 모색하였다.
제3장에서는 정지용의 경우를 구체적으로 고찰한다. 그의 작품에는 다양한 감각의 문제 사이에서 지속적인 ‘혼(魂)’의 문제가 탐색됨을 확인할 수 있다. 지용의 초기 시편에서는 ‘개인의 혼’이 감각적 세계 내에서 어떻게 위치하는가를 모색했고, 후기 시편에서는 ‘공동체의 혼’이 심상지리 내에서 어떻게 발견될 수 있는가를 탐색했다. 이 혼의 문제가 개인의 것에서 전체의 것으로 점차 확장되는 과정이 정지용의 초기 시에서 후기 시로의 변모를 담당하고 있다. 정지용에게 있어 민족 공동체의 영혼이 자라날 수 있는 상상 공간의 확보가 이미지즘의 도달 지점이었다.
제4장 역시 김기림의 은유 지향적 공간성에 주목한다. 정지용이 현실 공간에 상상 공간을 은유하는 인식론을 보여준 데 반해, 김기림은 현실 공간을 역전적으로 활용하여 전복적인 은유의 방식을 드러낸 바 있다. 신문, 지도, 박람회, 근대 사진, 조감도 등 현실의 수평적 판이 그의 인식의 기초를 차지한다면, 김기림의 시 창작은 이 수평적 판을 뒤집으면서 시작된다. 이것이 김기림 문학 세계의 수평적인 좌표에 해당한다면 이 좌표를 입체적으로 만드는 수직적인 좌표 역시 확인된다. 김기림은 이미지를 통해 근대적 인식의 하나인 조감도적 인식을 전복하는 수직적 상상력, 즉 천상적 상상력과 지하층의 상상력을 개발했다. 이미지를 통한 시적 인식의 수평적 전개와 수직적 전개는 김기림 문학의 전체 구조를 형성하고 있다. 현실 공간에 대한 전복적 공간은 근대 문학인의 내면에 게릴라적 도피처를 마련했다는 의미를 지니고 있다. 앞서 정지용의 경우처럼 문학적 상상 공간의 구성 요소가 김기림 작품의 제반 이미지들이고 이 이미지들에 의미를 부여하는 역할은 은유가 맡고 있다.
‘조선시’의 명제에 기여한 조선적 이미지즘의 주체적인 발전 양상은 현실의 변화와 시학적 필요성을 기반으로 하고 있다. 정지용과 김기림에게서 확인한 주체적이며 문학적인 심상 공간의 확보는 이미지즘의 조선적인 특질을 드러낸다. 공동체의 정신적 숨터를 확보하고 형성하는 지향성이 조선적 이미지즘의 역할임을 확인하는 일은 조선 근대문학의 내적인 모색을 지지하는 일과 맥락을 같이한다.
왜 하필 이미지즘을 문제 삼느냐고 묻는다면 우리의 이미지즘은 찾아야 할 권리를 충분히 누리지 못했기 때문이라고 대답할 수 있다. ‘조선적 문학’의 꿈은 이미지즘을 통해 한 뼘 더 자랄 수 있었다. 사실 이미지즘을 얼마나 구현해냈느냐의 문제보다 이미지즘을 통해 우리에게 어떤 다리가 만들어졌는가, 어떤 뿌리가 내려졌는가가 중요하다.
우리 문학을 공부하면서 힘들 때마다 시인과 문학이 지닌 자긍심에 대해서 생각했다. 그 중의 하나가 외국 문학의 영향을 받았다 하더라도 우리는 그림자가 아니라는 생각이다. 조선의 근대문학은 유입된 근대문학의 에피고넨에서 끝난 것이 아니라 이 땅의 몫으로서 자기만의 뿌리와 줄기를 형성하고 있었다. 이 자생적 힘에 대한 신뢰를 저버린다면 지금 생산되고 있는 후예로서의 문학들도 상당 부분 지반을 잃을 수밖에 없다.
---「책머리에」중에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