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간은 불평등하게 태어난다. 누군가가 부모의 사회적 영향력이 큰 가정에서 태어나거나, 경제적으로 부유한 가정에서 태어나거나, 우수한 두뇌를 가지고 태어나거나, 건강한 신체를 가지고 태어난다면, 그 사람의 인생은 작은 노력으로도 큰 결실을 얻을 수 있다.아무리 경제 운영의 법칙을 공정하게 설정하여도, 100미터 경주를 출발점에서 시작하는 사람과 부모에게서 물려받은 유산에 힘입어 90미터 전방에서 출발하는 사람의 경쟁은 사전에 승부가 이미 결정되어 있는 것이다. 불평등 해소에 관련된 많은 논쟁들은 선천적 불평등의 영향을 완화하고, 결과적으로 비교적 평등한 분배를 유도하는데 초점이 맞추어져 있다. 계몽주의의 영향으로 일어난 프랑스혁명은 왕을 중심으로 한 귀족 계급의 타파를 통하여 귀족과 서민의 태생적 차이를 없애려고 한 것이었다. 반면에 칼 마르크스의 공산당 혁명은 부의 세습을 막고, 상속재산의 태생적 차이가 유발하는 경제적 영향력을 차단하는데 목적이 있었다. 가난한 아버지를 두었던, 즉, 이는 부자 아버지를 두었던 그 자손들이 똑같이 경쟁하는 평등한 사회 경제 체제를 이루려는 노력이었다. 현대 사회의 많은 나라에서는 시장 경제 체제를 채택하고 이를 적극적으로 옹호한다. 그렇다면 선천적인 신분, 태생적 경제력의 차이를 없앴다고 하더라도, 건강하고 두뇌가 좋은 사람이 사회에서 성공하는 것은 정당한 것인가? 건강한 청년과 허약한 청년이 권투 시합을 한다고 가정하면 아무리 경기 규칙이 잘 만들어졌고, 또 경기 운영이 공정하게 이루어졌다고 하여도, 허약한 체력의 청년이 무참히 쓰러지는 것은 당연한 결과인데, 이런 경기는 정당한 것인가? 기본 체력(또는 지적인 능력)을 무시하고 절차상의 공정성만을 강조하는 것이 올바른 사회인가? 이 책은 이러한 고민들이 바탕이 되어서 구성되어 있다. 이 책의 제 1부는 불평등에 대한 일반적인 이론들과 함께 한국, 중국 등을 비롯한 국가에서 불평등이 지니는 함의를 검토하고 있다. 나아가 불평등한 국자사회에서의 인간안보의 문제 등 폭넓은 시각의 접근도 포함한다.
유항근의 “한국의 불평등 추세와 한국형 경제정의”는 한국의 불평등 트렌드를 검토하고 한국형 경제정의에 대해 고민하는 글이다. 유항근은 만일 한국에서 공리주의에 입각한 경제정의를 생각한다면, 현재의 조세와 복지가 매우 낮은 수준임을 지적하고 있다. 또한 한국 정부가 극빈층의 복지 향상을 위하여 노력하는데, 이것으로 충분히 공평한 사회가 이룩되지 못한다면, 중산층의 소득증가를 위하여 추가적 노력을 해야한다고 주장한다. 한국에서 경제성장 정책과 복지 및 재분배 정책이 서로 충돌된다면, 우리는 어떤 입장을 취해야 하는가? 만일에 공정한 경제정의가 존재한다면, 그 내용이 무엇이어야 하는가?
이양호의 “불평등과 빈곤”은 불평등의 기원 및 이에 대한 대응에 대한 역사적이고 거시적인 연구들을 소개한다. 불평등은 왜 발생하는가? 이에 대해 이양호의 글은 세 가지 설명들을 소개하고 있다. 첫째, 제도적인 설명이다. 정치체제의 민주주의, 선거제도의 비례성과 같은 정치제도적 요인뿐만 아니라 부모세대의 재산이 자식세대로 어떻게 이전되는지와 같은 제도적 요인도 불평등과 연관성을 지닌다. 둘째, 지리문화적인 요인이다. 지리적 위치 및 기후와 같은 요소가 불평등과 연관성이 있다. 셋째, 기술적 요인이다. 세계화, 기술발전 등과 같은 요소가 불평등에 영향을 미친다. 이어서 이양호는 불평등을 해소하려는 노력의 하나로 재분배 정책에 대한 논의와 조세정책, 그리고 빈곤퇴치 프로그램 등에 대한 논의들을 소개하고 있다.
이신화의 “글로벌 불평등 시대의 복합위기와 인간안보”는 세계적으로 관찰되는 인간안보 문제의 심각성에 대해 문제제기를 하고 이것이 글로벌차원의 불평등 이슈라는 새로운 시각을 제시하고 있다. 인간안보는 기아, 질병, 정치탄압 등 만성적 위협으로부터의 안전 혹은 일상생활 중 급작스럽게 발생하여 생명이나 삶의 터전을 위협하는 유해한 사고로부터의 보호를 일컫는다. 인간안보 문제는 개인이나 사회 내에서뿐만 아니라 국가적, 국제적 차원에서 전통적 국가안보이슈나 경제, 환경, 전염병 등과 관계된 비전통안보 문제와도 복잡하게 얽혀있다. 이신화는 이 글에서 세계적으로 불평등이 심화되는 상황에서 시장민주주의가 어떻게 해야 인간의 자유를 지향하면서 평등과 분배와 균형점을 찾고 조화를 이룰 수 있을지 성찰이 필요하다는 점, 그리고 인도적 안보위협과 인간안보문제의 상황에서 중견국으로서 한국이 외교적 공간을 어떻게 만들어갈지 고민해야 하며 다자주의 협력을 그 방안으로 활용해야 한다는 점을 제시하고 있다.
지은주는 “중국의 소득불평등과 공산당 리더십”에서 소득불평등이 증가하고 있는 중국의 사례를 소개하고, 문제를 해결하기 위한 중국 공산당의 대응에 대해 검토하고 있다. 중국의 소득불평등의 증가는 1978년 경제개방 이후 경제성장과 함께 진행되었다. 급속한 경제성장과 함께 진행된 소득 불평등의 심화는 상당부분 중국 공산당의 선택적인 경제지원전략에 따른 것이다. 한 지역의 경제 성장이 다른 지역의 발전을 이끌 것이라는 낙수효과를 강조하였으나, 도시와 농촌 그리고 지역간의 소득불평등이 지속적으로 심화되었다. 이러한 불평등의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중국 공산당은 선부론을 균형발전론으로 전환하여, 낙후된 지역과 농촌에 대한 지원을 강화하였다. 지은주가 여기에서 소개하는 중국 사례를 통해 정치적 결정이 소득불평등에 미치는 영향이 얼마나 큰지를 엿볼 수 있다.
문우진의 “정치, 정치제도, 정치 불평등”은 정치제도에 대한 이론적 논의들을 소개하는 글이다. 정치학 교과서의 언술대로, 정치는 사회의 희소한 가치들을 배분하는 게임이며, 정치제도는 게임 규칙이다. 게임의 규칙은 게임의 결과에 영향을 미친다. 따라서 정치제도를 어떻게 설계하는가가 중요하다. 권력구조와 선거제도는 거부권 행사자(veto player) 수에 영향을 미친다. 대통령제는 삼권분립을 통해 제도적인 거부권 행사자 수를 증가시키고, 비례대표제는 다당제를 생산하여 정파적 거부권행사자의 수를 증가시킨다. 다수제 모델에서는 정치적 소수에게 불리한 자원분배가 이루어지는 반면, 합의제 모델에서는 이들 약자들을 보호하는 자원분배가 이루어진다. 이러한 이론적 논의들에 대한 소개를 거쳐 문우진은 결국 정치제도가 정책결정에 있어서 거부권행사자의 수에 영향을 미쳐 국가자원 분배를 결정하고, 이에 따라 소득불평등을 심화시키기도 하고 악화시키기도 한다는 함의를 도출하고 있다.
권혁용은 “불평등, 복지국가, 그리고 행복”에서 행복의 정치경제학에 대해 소개한다. 결과의 불평등과 기회의 불평등, 그리고 복지국가에 대한 논의로 이어진다. 복지국가는 노동시장과 생애주기로부터의 다양한 위험으로부터 우리를 사회적으로 보호해주는 동시에 시장이 창출하는 불평등을 보완하고 시정하는 일을 한다. 권혁용이 이 글에서 제시하는 행복의 정치경제학은 불평등과 위험으로부터 우리를 보호하는 복지국가의 발전과 민주주의 정치체제의 발전에 따라 시민의 행복 정도가 달라진다는 함의를 도출한다. 이는 한국 사회에서 우리 국민들이 행복해지기 위해 필요한 정치경제적 조건이 무엇인가에 대한 실천적 함의를 제시한다고 할 수 있다.
이 책의 제 2부는 해외연구진의 논문들로 구성되어 있다. 데미안 래스(Damian Raess)와 요나스 폰투손(Jonas Pontusson)의 “경제침체시기 재정정책의 정치: 1981-2010”은 역사적 관점에서 대침체기(Great Recession)에 대응하는 정부의 재정정책을 분석하고 있다. 분석에 따르면, OECD 국가 정부들은 1980년대와 1990년대의 위기에 비해 2000년대에 발생한 경제위기 동안 국내 수요를 촉진시키기 위한 방안으로 조세삭감에 더 의존하는 모습을 보였다. 지난 네 번의 경제위기동안 재정확대정책의 조합이나 규모 모두에서 직접적이고 중요한 정부당파성 효과는 나타나지 않았다. 하지만 복지국가의 규모는 2000년 이후 발생한 두 번의 위기에서 중요한 변수로 나타났는데, 큰 복지국가의 좌파정부는 명백하게 재량적 재정지출확대 정책(경기부양책)을 더 추구하는 동시에 정책의 조합 면에서 조세삭감보다 지출확대에 의존하는 경향이 있었다. 래스와 폰투손의 글은 최근 들어 비교정치경제 분야의 연구들이 재분배정책에 대한 관심을 거시경제정책과 성장모델에 대한 연구와 결합하려하는 시도의 하나이다.
요하네스 린드발(Johannes Lindvall)과 다비드 루에다(David Rueda)는 “선거딜레마의 과거와 현재”에서 좌우파 정당이 핵심지지층의 이익을 반영하는 전략과 부동층 유권자에 호소하는 전략 사이에 놓인 상충관계(trade-off)를 지칭하는 선거딜레마가 복지정치에 미치는 영향에 대한 새로운 분석을 제시하고 있다. 좌파정당과 우파정당이 동일하게 상충관계에 직면했을 때 선거딜레마는 대칭적인 반면에, 선거딜레마가 비대칭적인 경우는 좌파정당(혹은 우파정당)이 우파정당(혹은 좌파정당)에 비하여 보다 강한 상충관계에 직면했을 때이다. 린드발과 루에다의 분석은 복지국가의 정치적 역사에 대한 참신한 해석을 제시한다. 2차대전 이후 자본주의 황금기 시기에 확대된 복지국가의 관대성(welfare state generosity)은 우파정당의 선거딜레마 결과 중도로 이동한 것의 효과라는 것이다. 반면에 1970년대 중반이후 현재까지 복지국가의 정치는 좌파정당이 중도로 이동할 때 낮은 수준의 복지국가 관대성이 발견된다는 분석이다. 린드발과 루에다의 글은 정당정치와 복지국가 연구의 접점을 강조하는 새로운 연구동향의 최전선에 있는 것이라 할 수 있다.
에릭 창(Eric C. C. Chang)과 시하오 황(Shih-hao Huang)은 “동아시아 민주주의 국가의 부패경험, 부패에 대한 관용, 그리고 제도신뢰”에서 부패와 정치제도에 대한 신뢰의 관계에 대한 새로운 해석을 제시하고 있다. 동아시아 민주주의 국가의 시민들을 대상으로 한 서베이자료에 대한 분석을 통해 부패경험이 정치제도에 대한 신뢰를 감소시키는 것은 분명하지만 부패에 대한 관용이 있는 경우 그러한 효과가 줄어든다는 점을 보여준다. 왜 어떤 동아시아 국가들의 경우 부패가 만연함에도 불구하고 시민들이 정치제도에 대한 신뢰수준이 높은지에 대한 하나의 설명을 제시하고 있는 글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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