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 그건 아주 간단해. 나의 친애하는 부사령관이여! 신자유주의는 아무 계획도 없고, 아무 전망도 없다니까. 언 발에 오줌 누기일 뿐이야. 정부는 일관성이 없어. 하루는 부유했다가, 또 하루는 가난하고, 어떤 날은 평화를 원하다가, 다른 날은 전쟁을 하려 들지. 어떤 경우엔 금욕을 하다가, 또 다른 때에는 결국 우걱우걱 먹어대지. 무슨 말인지 알겠나?”
--- p.28
그는 내 마음이 상할까 봐 조심스럽게 물었다. “이제 어떻게 할 거야?”
나는 나뭇가지에 휘영청 감긴 달빛을 바라보며 계속 담배를 피웠다. 담배를 한 모금 빨고 그에게, 그리고 나 자신에게 대답했다.
“이길 거야.”
--- p.34
나는 여전히 자리에 앉은 채 가만히 있었다. 나의 주인인 용감한 기사 ‘라칸돈의 돈 두리토’의 꿈을 지켜줄 준비를 하면서. 나는 어떤 역경이 닥쳐와도 그의 신성한 꿈을 지켜주겠다고 다짐했다. 그 어떤 괴물도, 그 어떤 거인도 이토록 고귀한 휴식을 방해하진 못하리라. 나는 나뭇가지 하나를 집어 들었다. 약간의 상상을 덧붙였더니 나뭇가지가 무시무시한 창으로 보였다. 비가 오기 시작했다. 몸 사리는 종자들이 그렇듯이, 나는 주인을 호위하는 것을 포기하고 지붕 밑으로 달려가 몸을 피했다. 새벽이 차가운 바람을 안고 왔다. 비는 여전히 그칠 줄 모르고 있었다.
--- pp.60~61
두리토는 거북이의 왼쪽 옆구리를 보여주려고 거북이의 몸을 돌렸다. 나는 내가 보고 있는 것을 정부의 경제회복 계획과 비교하고 싶은 충동을 떨칠 수가 없었다. 거북이가 몸을 돌리는 데는 꽤 오랜 시간이 걸렸다. 두리토는 페가소스가 ‘너무 빨리 몸을 돌려 현기증이 날 지경’이라고 했지만, 사실은 제자리에서 아주 천천히 도는 것이었다. 거북이가 어찌나 조심스럽게 도는지, 혹시 현기증이 날까 봐 겁을 먹었나 하는 생각이 들 정도였다. 그렇게 몇 분이 지나자 나는 페가소스의 왼쪽 옆구리에 뭐가 씌어 있는지 읽을 수 있었다.
“흡연석”, “노조 깡패 출입금지”, “광고 대환영. 문의는 두리토 출판사로.” 이렇게 써놓긴 했지만, 이 광고들이 이미 페가소스의 왼쪽 옆구리와 엉덩이를 뒤덮고 있어서 다른 광고를 낼 만한 공간이 거의 없어 보였다.
신자유주의와 북미자유무역협정 시대가 도래한 후 살아남을 수 있었던 유일한 길은 초미니 영세 자영업자의 길을 걷는 것이었는데, 두리토가 그 길을 택했다니 역시 비전이 대단했다.
--- pp.67~68
하늘이 저 위쪽에서 기지개를 켠다. 나는 잔뜩 충혈된 눈으로 아래를 내려다본다. ‘내가 어제 두고 온 멕시코가 아직도 저기에 있구나’ 하고. 나는 파이프에 불을 붙인다. 밤이 나무들을 붙잡고 있던 손을 가만히 놓고 마지막으로 뒤를 돌아다본다. 나는 나지막이 말한다. 나 자신에게. 아주 오랫동안 투쟁해야 할 것 같지만, 그만한 가치가 있을 거라고.
--- p.74
이 도시는 병들었어. 이 병은 절정에 달해야만 치료될 수 있을 거야. 이 거대한 고독의 집합체는, 고독이 더해져 몸뚱이가 더욱 더 커진 이 고독은, 결국 자신의 모습과 마주하고 나서야 자신이 왜 그리도 무기력한지 깨닫게 될 거야. 그래야만, 오직 그렇게 해야만 이 도시는 자네가 본 음울한 잿빛을 떨치고, 작은 마을에선 흔히 볼 수 있는 오색찬란한 리본으로 단장되겠지. 이 도시는 거울의 냉정한 게임 속에서 살고 있어. 그 게임의 목표는 유리를 발견하는 거야. 그러니 유리가 없다면 게임을 해봤자 아무 소용없겠지. 이 점을 이해하고, 누군가의 말처럼 투쟁하여 더 행복해지기 시작한다면 난 그걸로 충분하다고 봐. 나는 다시 파이프에 불을 붙이고, 밤잠을 이루지 못하고 있네. 산초, 자네에게 하고 싶은 이야기가 많아.
--- pp.113~114
모임의 첫 번째 순서는 우리의 정치연구 및 문화활동 모임에 이름을 붙이는 것이다. 우리는 이탈리아 영화감독 에토레 스콜라의 작품을 따 “추하고 더럽고 미천한 녀석들의 모임”이라고 부르기로 했다. 그랬더니 카밀로가 추하고 더러운 건 맞지만 미천하지는 않으며, 그것은 너무 단순하고 극단적인 견해라고 했다. 그래서 ‘미천한’을 ‘상스러운’으로 바꾸자고 했고, 결국 우리는 모임의 이름을 “추하고 더럽고 미천하고 상스러운 녀석들의 모임”으로 정했다. 이런, 모임 이름을 지으려 했는데, 어쩌다 보니 자아비판을 하게 되었다. 그래서 우리 셋은 오늘 모임은 없었던 것으로 하기로 했다.
--- p.120
비참한 현실을 끝장내고, 이 희망을 꽃피우려면 투쟁하면 됩니다. 더 살 만한 세상을 만들면 됩니다. 명성이니 영광이니 하는 것들은 부수적인 것입니다. 그것들은 도서관이나 박물관 벽에 걸리게 되겠지요.
세상을 정복할 필요는 없습니다. 다시 한 번 투쟁하면 됩니다.
그럼 안녕히. 잘들 지내시고, 침대를 보면 사랑을 나누면 되고, 노래가 나오면 춤추면 되고, 국적이 다른 건 순전히 우연일 뿐이니 함께 투쟁하면 된다는 걸 잊지 마시기 바랍니다.
--- p.141
“편력기사의 의무는 불의를 모두 평정할 때까지 세상 곳곳을 돌아다니는 거야. 기사의 의무는 어디에나 있지만, 한편으론 그 어디에도 없다네. 항상 가까이에 있지만, 또 결코 닿을 수 없는 곳에 있어. 그러나 그 중 극소수의 편력기사는 다시 달려야 하네. 왜냐하면 내일은 여전히 앞에 있고, 그 간격이 엄청나기 때문이지.”
“그러면 우린 뭘 가져갈까?”
“희망.” 그는 내 가슴에 달린 주머니를 가리키며 말한다. 그러고는 페가소스에 올라타며 덧붙였다.
“다른 건 필요 없어. 그거면 충분하다네.”
--- p.257
옛날 옛적에 산 자와 죽은 자가 있었습니다. 어느 날 죽은 자가 산 자에게 이렇게 말했습니다.
“난 말이지, 네가 조바심 내는 게 부러워.”
그러자 산 자가 죽은 자에게 말했습니다.
“나는 말이야, 너의 그 평온함이 부러워.”
둘이 이렇게 서로를 부러워하고 있을 때, 갑자기 갈색 말이 전속력으로 질주하며 지나갔습니다.
자, 이것이 이 이야기의 끝이자 교훈입니다. 눈에 빤히 보이는 것은 함정이게 마련이라는 것을 거듭해서 말씀드립니다. 꼭 갈색 말을 찾아야 한다는 걸 잊지 마십시오.
--- pp.283~284
옛날 옛적, 온종일 밤인 사내가 있었다. 그는 그림자들의 그림자, 고독한 발걸음이었다. 사내는 그녀를 찾아 수많은 밤을 걸었다.
옛날 옛적, 온종일 낮인 여인이 있었다. 그녀는 밀의 반짝임, 빛의 춤이었다. 여인은 그를 찾아 수없이 많은 낮을 헤매었다.
사내와 여인은 항상 서로를 찾았다. 밤은 낮을 찾아 다녔고, 낮은 밤을 찾아 다녔다. 그들은 그것이 불가능한 만남이라는 것을 잘 알고 있었다. 절대로, 결코 이루어질 수 없는 만남이라는 것을 알고 있었다. 그러자 새벽이 찾아왔다. 그를 위해, 그녀를 위해. 언제나, 영원히.
이야기가 끝나면서 두리토의 편지도 끝이 난다. 나는 그에게 우리를 잊지 말아달라고 간곡하게 부탁했다.
--- pp.286~287