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길은 모두에게 다른 말을 건다

길은 모두에게 다른 말을 건다

: 위태로운 정신과의사의 행복한 산티아고 피신기

김진세 | 이봄 | 2016년 07월 20일   저자/출판사 더보기/감추기
리뷰 총점9.0 리뷰 22건 | 판매지수 4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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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행 에세이 top100 14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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품목정보

품목정보
발행일 2016년 07월 20일
쪽수, 무게, 크기 368쪽 | 438g | 135*200*30mm
ISBN13 9791186195604
ISBN10 118619560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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갑자기 눈이 환해지면서 ‘산티아고 길 순례’란 글자에서 눈을 뗄 수가 없었다. 프랑스 국경의 작은 마을에서 스페인의 가톨릭 성지인 산티아고 데 콤포스텔라까지 도보여행을 하는 ‘산티아고 길 순례’는 열심히 살아온 내게 주는 휴식과 선물의 의미로 버킷리스트에 올려놓은 것이다. 지금이 바로 그때이다. 내게 휴식과 선물을 주어야 하는! 아니, 어쩌면 도피일지도 모른다. 그래도 상관없다. 떠나자! 떠나서 일단 피하고 보자. 순례의 고난과 의미는 생각도 나지 않았다. ‘그냥 몇 주만 쉬었으면’ 하는 바람만 있었을 뿐. --- p.13

누구나 걷는 속도가 다르다. 아무리 마음에 맞는 친구를 만나도, 걷는 속도가 다르면 몹시 지치고 힘들다. 한 사람이 속도를 줄이거나, 아니면 다른 사람이 속도를 더 내야 한다. 빨리 걸어야 하는 사람은 힘에 부쳐서, 늦게 걸어야 하는 사람은 리듬을 놓쳐서 모두 힘들다. --- p.49

살다보면 남이 잘 안 가는 길을 걸어야 할 때가 있다. 매너리즘에 빠져 삶이 고달프거나, 삶의 의미를 잃고 그럭저럭 살아갈 때, 가끔은 나만의 길로 걸어봐야 한다. 색다른 길에서 발견한 것의 가치 때문이 아니다. 다른 길을 걷는 과정이 스스로를 돌아보게 하기 때문이다. 에우나테의 작은 성당이 다른 어떤 화려한 성당보다도 내 머리 속에 깊이 남게 되었다면, 그 이유는 남들이 가지 않는 길을 걸었던 덕분이다. --- p.62

몇 시쯤 되었을까? 아직 깊은 새벽인데, 누군가 조심스럽게 나를 흔들어 깨웠다. 깜짝 놀라 눈을 떠서 보니, 세상에! 금발의 미녀가 나를 보고 웃고 있는 것이 아닌가! ‘도대체 이게 꿈이야 생시야?’ 하고 일어나 뭔가 대꾸를 하려고 하는데, 그녀의 속삭임에 잠이 달아나고 얼굴이 화끈거렸다. “코 좀 그만 골아요!” --- p.109

도시에서는 몸의 소리에 귀를 기울이지 않는다. 몸을 쓸 일이 많지 않아서이기도 하고, 여유가 없어서이기도 하다. 그러니 ‘정신력’ 하나면 다 해결되는 줄 안다. 하지만 카미노는 다르다. 매일매일 무릎이 삐걱거리고 발바닥이 화끈거리는 몸을 마주해야 한다. 더구나 여유가 많으니 몸이 하는 소리를 들으면 자세히 살펴보게 된다. ‘이렇게 아파서는 내일 못 걷겠군. 하지만 오래 쉬면 전체 일정에 무리가 갈 텐데…….’ 전에 없던 일이다. 몸이 시켜서 마음이 바뀌는 것이다. --- p.151

그녀는 걸음이 느린 만큼, 아침 일찍부터 저녁 늦게까지 걷는다. 시계처럼 철저하게 원리원칙을 중시하는 스위스인답게 버스나 택시를 이용하지 않는다. 그녀는 그저 “느린 만큼 더 오래 걸어요”라고 했다. 코가 햇볕에 타서 화상을 입은 듯한 루스가 어서 가라고 재촉을 한다. 내게 폐를 끼치기 싫어서이기도 하지만, 자신의 페이스가 깨지는 것을 경계하는 것이다. 인사를 하고 걸음을 재촉했다. 돌아보니 역시 열심히 자신의 속도로 걷고 있다. --- p.201

생각부터 바꾸어야 한다. 인생의 오르막길만큼 내리막길은 중요하다. 내리막길에서 아프면 더 아프다. 그리고 잘못하면 완주를 못 할 수도 있다. 누구나 겪을 수 있는 일이다. 그러므로 어떻게 하면 잘 실패하고, 잘 견디고, 또 잘 질 수 있는지 고민하고 준비해야 한다. --- p.303

감동은 함께 나누는 것이다. 빨간 ‘Santiago de Compostela’라는 안내판에 겸연쩍었던 것도, 대성당의 종탑이 그냥 멀게만 느껴졌던 것도, 대성당을 앞에 놓고도 덤덤했던 것도, 모두 기쁨을 표현하고 나눌 친구가 없어서였다. 그런데 광장에 앉아 순례자들을 보았다. 모두 나처럼 한 달 동안을 고생한 사람들이다. 나와 같은 길을 걷고, 나와 같은 생각을 하고, 나와 같은 감정과 기분으로 어렵사리 완주를 한 사람들이다. 그들이 서로 나누는 감정이 내게 다가왔다. 공감이 살아나자, 나의 감정이 밖으로 나와 느껴지기 시작했다.
--- p.33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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