확장메뉴
주요메뉴


닫기
사이즈 비교
소득공제
귀족의 딸 1

귀족의 딸 1

리뷰 총점7.7 리뷰 7건
정가
12,000
판매가
11,400 (5% 할인)
배송안내
서울특별시 영등포구 은행로 11(여의도동, 일신빌딩)
지역변경
  • 배송비 : 유료 (도서 15,000원 이상 무료) ?
신상품이 출시되면 알려드립니다. 시리즈 알림신청
eBook이 출간되면 알려드립니다. eBook 출간 알림 신청
  •  해외배송 가능
  •  최저가 보상
  •  문화비소득공제 신청가능

품목정보

품목정보
발행일 2016년 07월 28일
쪽수, 무게, 크기 448쪽 | 506g | 140*210*22mm
ISBN13 9791104908972
ISBN10 1104908972

책소개 책소개 보이기/감추기

목차 목차 보이기/감추기

책 속으로 책속으로 보이기/감추기

“타앗!”
강렬한 외침과 함께 라이라의 칼끝이 미끄러져 넘어진 테리의 목을 정확히 겨눴다.
“자, 이제 항복하시지?”
눈부신 태양 빛에 날카로운 칼날이 번뜩였다. 끄덕, 테리의 고갯짓에 라이라가 가쁜 숨을 몰아쉬며 칼을 거둬들였다. 그녀의 황금빛 머리칼이 눈이 부신 듯 테리는 좀처럼 일어나지 않았다. 그녀가 오른손을 그에게 내밀었다.
“자, 일어나.”
라이라가 힘주어 테리를 일으켜 세웠다.
“이젠 제가 못 당하겠습니다.”
씨익, 치아를 드러낸 테리가 라이라를 내려다보며 기특하다는 듯 그녀의 머리를 쓰다듬었다. 그녀에게서 짙은 장미향이 물씬 뿜어져 나왔다. 이마를 타고 흐르는 땀방울에서도 꽃향기가 나는 듯했다.
이제 열일곱 살이 되는 라이라가 눈부신 금빛 머리칼과 녹아 흐를 듯 밝은 파란색의 눈을 빛내며 환하게 웃었다.
“이젠 내가 훨씬 낫지? 나한테 스승이라고 불러, 테리.”
몇 년 전만 해도 칼 부리는 법을 알려달라며 조르던 꼬마가 잘난 척하자 테리는 웃음부터 나왔다. 칼자루도 제대로 쥐지 못했던 라이라가 훌쩍 자라 이렇게 저와 대련도 할 수 있을 실력을 갖춘 모습에 뿌듯함도 느껴졌다.
웸블던 가(家)의 유모인 어머니와 기사인 아버지 사이에서 태어난 테리는 어렸을 적부터 아버지에게서 훈련받아 이 근방에서는 꽤나 훌륭한 검술가였다. 그의 실력이면 충분히 기사가 될 수도 있지만 아직 명예에 대한 욕심이 없어 테리는 라이라를 가르치고 마을의 소년들을 지도하는 것으로 만족하고 있는 중이었다.
“아가씨, 이제 슬슬 돌아가야 할 시간입니다.”
붉게 변하는 하늘을 올려다보며 테리가 집에 가기를 권했다. 라이라는 아쉬운 듯 지금껏 수련했던 들판을 둘러보고는 테리와 함께 나란히 걸음을 옮기기 시작했다.
루슬란 왕국의 초여름은 기분 좋게 선선했다. 햇빛이 내리쬐는 한낮이라면 모를까, 이렇게 어스름이 깔릴 때면 시원한 바람이 얼굴에 맺힌 땀방울을 말려주곤 했다.
저 멀리 양떼가 매에, 소리 지르며 지나가는 것이 눈에 들어왔다. 하얗고 몽실몽실한 털을 좌우로 흔들며 걷는 모양이 귀여웠다. 푸르른 들판과 그보다 더 짙은 빛을 뿜어내는 숲, 부드럽게 일렁이는 바람, 붉은 노을로 은은하게 물들어가는 하늘. 라이라가 사랑하는 풍경이었다.
“여긴 언제 봐도 아름다워.”
가장 좋아하는 곳, 파르란 언덕 위에서 마을을 내려다보며 라이라가 감탄 섞인 목소리로 말했다. 보라색과 붉은색으로 물든 하늘이 살포시 마을을 감싸고 있는 모습이 무척 아름다웠다.
여기저기서 들려오는 사람들의 말소리는 정다웠고 마을 곳곳에서 풍겨 나오는 구수한 빵 굽는 냄새, 짙은 스튜 냄새에 라이라는 행복했다. 여느 때와 같이 평화롭고 아름다운 마을, 그린그린을 내려다보며 라이라는 환하게 미소 지었다.
“아가씨, 라이라 아가씨!”
마을 입구에서부터 허둥지둥 뛰어오며 라이라를 애타게 찾는 목소리에 라이라와 테리는 걸음을 늦추었다.
“유모!”
“어머니!”
라이라의 유모이자 테리의 어머니인 젬마가 커다란 엉덩이를 흔들며 열심히 라이라의 눈앞까지 달려왔다.
“아이고, 힘들다. 일찍 일찍 다니셔야지, 이게 뭡니까, 아가씨? 그리고 그 옷차림은 또 뭐고요? 테리 이 녀석, 또 네놈이 아가씨를 꾄 게냐?”
모름지기 귀족 아가씨란 치렁치렁한 드레스를 입고 앙증맞은 부채로 얼굴을 가리며, 뭇 남성들의 보살핌을 받아야 하는 존재라 굳게 믿고 있는 젬마에게 고귀한 라이라 아가씨를 못된 길로 인도하는 아들이야말로 악당 중의 악당이었다.
“꾀긴 누가 꾀요? 저야말로 아가씨의 우악스러운 손길에 이끌려…….”
“이놈의 자슥, 어디서 감히!”
덩치는 커도 어머니 앞에서는 애일 수밖에 없는지 충분히 피할 수 있음에도 테리는 젬마의 주먹을 고스란히 다 맞았다.
“아유, 젬마, 테리 죽겠어. 도대체 무슨 일이야?”
라이라가 젬마의 두툼한 손길에서 테리를 구해내자 테리는 그녀에게 고마움의 눈빛을 한없이 보냈다. 그러나 라이라는 그에게서 시선을 거둔 지 오래였다.
“아, 그렇지!”
그제야 생각났다는 듯 젬마의 얼굴에 다급함이 떠올랐다.
“아가씨! 큰일 났어요! 어서 저택으로!”

젬마가 호들갑을 떨어대는 탓에 이유도 제대로 알지 못한 채 라이라는 옷을 갈아입는다, 머리를 빗는다, 수선을 펴야 했다. 대충 묶었던 황금색 머리칼을 곱게 빗어 얌전하게 늘어뜨리고 새파란 눈과 잘 어울리는 짙은 코발트색의 긴 드레스를 입은 그녀를 흐뭇하게 바라보며 젬마는 양손을 맞잡았다.
“아유, 아가씨, 정말 아름다우세요! 역시 아가씨는 칼보다 이렇게 깃털 달린 부채를 쥐고 있을 때가 가장 보기 좋으세요!”
사내아이들처럼 천방지축으로 산과 들로 돌아다니는 라이라의 행동이 내심 못마땅했던 유모는 자신의 손끝에서 벌어진 마법에 입이 찢어져라 웃어댔다.
“자자, 어서 가십시다. 성주님께서 기다리고 계세요.”
분명 뭔가 한소리 할 것처럼 입술을 뾰족이 내민 라이라를 살포시 무시하며 젬마는 그녀의 등을 떠다밀었다. 젬마의 성화로 인해 불평 한마디 내지르지 못한 라이라는 어쩔 수 없이 자신의 아버지이자 그린그린 마을의 성주인 그레이엄 앞에 나서야 했다.
“오, 라이라!”
작은 그린그린 마을의 유일한 귀족이자 성주인 그레이엄 하워드 웸블던이 사랑하는 딸의 등장을 반겼다. 유모에게 풀어내지 못한 화를 아버지에게 풀려 했던 라이라는 자신을 반기는 아버지 옆에 낯선 남자가 서 있는 것을 보고 서둘러 예의를 차렸다.
“부르셨어요?”
황금빛 머리가 부드러운 포물선을 그리고 코발트빛 바다가 촤르륵 펼쳐졌다. 어렸을 적부터 배웠던 귀족들의 인사를 한 라이라는 스스로도 만족스러운 듯 살풋, 입술에 미소를 그려냈다.
“그래, 어서 오너라. 여기 이분은 수도에서 오신 발름 진 데렉 후작님이시다.”
‘수도?’
라이라의 푸른 눈이 커다래졌다.
‘이 산골 마을에 수도에서 오신 귀족이라.’
라이라는 멋진 콧수염을 가진 이 중년의 남자에게 호기심이 생겼다. 호기심 어린 그녀의 눈길을 받아내며 발름이 모자를 벗었다. 그러자 날카로운 눈매가 드러났고 그것은 라이라의 온몸을 순식간에 훑어 내렸다. 그 시선에 라이라는 약간 진저리를 치며 그에게 머리를 숙였다.
“라이라 제랄딘 웸블던입니다.”
“듣던 대로 아름다운 분이시군요, 뵙게 되어 영광입니다, 웸블던 영애. 전 발름 진 데렉 후작이라고 합니다.”
라이라의 손등 위를 발름의 콧수염이 간질였다. 그 낯선 감촉에 라이라는 저도 모르게 손을 빼려 했지만 그의 단단한 손길에서 벗어날 수 없었다. 당황한 라이라가 그를 올려다보자 발름은 싱긋 웃으며 그녀의 손을 놓아줬다.
“아주 멋진 아가씨군요. 왕자님의 신부 후보감으로 손색이 없으십니다.”
라이라는 자신이 들은 말이 무슨 뜻인지 몰라 눈만 깜빡였다.
“과찬의 말씀이십니다.”
말은 그렇게 했지만 그레이엄은 흐뭇한 심정을 감추지 않았다. 사랑하는 부인을 잃고 애지중지 키워온 딸이 훌쩍 자라 한 남자의 아내가 되는 상상을 가끔 해보긴 했지만 왕자의 신붓감 후보라니, 마치 꿈만 같았다.
평상시처럼 느긋한 오후 티타임 중, 나무 그늘 아래에서 한 권의 책을 읽고 있던 그에게 전해진 것은 느닷없는 왕명이었다. 바로 딸인 라이라가 왕자의 신붓감 후보가 되었으니 라이라를 수도로 올려 보내라는 내용.
처음엔 귀를 의심했다. 그러나 성에서 나온 데렉 후작의 손에서 전해진 전서를 보고 나서 이 놀라운 행운을 믿지 않을 수 없었다. 당당히 박힌 옥새 자국. 분명 그것은 왕의 명령이 사실임을 밝혀주는 것이었다.
젬마에게 딸아이를 데려오라 하면서 웸블던 자작은 묘한 감정에 사로잡혔다. 우리 웸블던 가(家)의 영광이 이제 시작되는지도 모른다, 그레이엄은 중얼거렸다.
그렇지 않아도 슬금슬금 라이라의 혼담 얘기가 오가는 중이었다. 유서 깊은 가문은 아니지만 그래도 자작 가문이기에, 함부로 딸의 혼처를 정할 수 없어 신중에 신중을 기하고 있었다. 비스커스 마을의 웨인 자작의 자제를 사윗감으로 염두에 두고 있었는데 왕자의 신부라니. 설마 하는 마음이 들긴 했지만, 만에 하나 라이라가 왕자의 눈에 들어 신부가 되기라도 한다면!
저녁 식사를 하는 내내 완벽하게 식사 예우를 하는 라이라를 보며 그레이엄은 다시 한 번 희망을 품었다. 그 희망은 라이라를 바라보고 있는 발름의 눈빛에 더욱 불씨를 키워나갔다.
아무리 사신 입장으로 왔다 하더라도 수도의 쟁쟁한 귀족 여식들을 다 봤을 터, 그런 발름이 라이라를 마음에 들어 한다는 건, 그녀에게도 승산이 있다는 의미로 받아들여지기에 충분했다.
“라이라.”
후작에게 손님방을 내어준 후 그레이엄은 사랑하는 딸을 자신의 방으로 불러 소소한 담소를 나누었다.
“네, 아버지.”
“이 아비의 꿈이 뭔지 잘 알고 있지?”
“네.”
자라면서 귀에 못이 박히도록 들었던, 좋은 남편에게 시집가서 행복하게 살라는 아버지의 말을 떠올리며 라이라는 다소곳이 머리를 끄덕였다. 가만히 딸을 바라보던 그레이엄이 라이라의 손목을 끌어당겨 따뜻하게 감싸 쥐었다.
“이 아비는 결심했다. 널 수도로 보낼 거다.”
“아버지…….”
“만에 하나 왕자님의 눈에 들어 네가 왕자비가 된다면 우리 가문은 한 단계 더 도약할 것이고 우리 마을 사람들도 좀 더 나은 생활을 할 수 있게 될 게다. 라이라, 수도로 가거라.”
라이라는 아버지가 그럴 것이라고 생각은 했지만 막상 실제로 들으니 눈물부터 났다.
‘이렇게 아버지랑 떨어지면 안 되는데.’
자신이 떠나고 난 뒤 홀로 남을 아버지를 생각하면 그냥 곁에 있어야 할 것 같았다. 그러나 평상시 아버지가 입버릇처럼 말했던 것을 떠올리면 그의 말을 들음이 옳았다.
“이건 내 뜻이기도 하지만 왕명이다. 너도 알다시피 왕명을 거스를 순 없단다.”
라이라는 고개를 끄덕였다. 이제 그녀는 십칠 년간 살아온, 그녀가 무척이나 사랑해 마지않는 작고 아름다운 마을, 그린그린을 두고 사랑을 찾아 여행을 떠나야 했다.
웸블던 자작은 사랑하는 딸을 바라봤다. 라이라 혼자 수도로 보내야 하는 것이 못내 마음에 걸렸다.

“따님은 혼자 수도로 가셔야 합니다. 극비리에 신붓감 후보를 모시는 것입니다. 따님 말고도 다른 영애들도 있는데 왕자비 자리를 노리는 가문의 공격을 받을 수도 있으니까요.”

솔직히 라이라와 동행할 마땅한 인물도 없었다. 유모인 젬마가 같이 가기엔 수도로 향할 여정이 그리 만만치 않을 것이고, 테리를 보내자니 그 또한 마뜩치 않았다. 기사도 아니고 그렇다고 시동도 아닌 평민이 귀족 아가씨를 따른다면 보나 마나 흠이 될 터였다. 또 외부 기사를 부르는 것도 힘들었다. 그저 발름과 그가 데려온 병사들에게 라이라를 맡길 수밖에 없었다.
“라이라.”
그레이엄이 목구멍에 무언가 콱 걸린 것을 애써 내리누르며 딸아이를 불렀다.
“네, 아버지.”
“넌 강한 아이다.”
그레이엄은 진심을 다해 말했다.
“난 널 강한 아이로 키웠다.”
딸이 태어나자마자 죽은 아내 몫까지 그레이엄은 라이라를 열심히 키웠다. 예절 교육은 물론, 여자 스스로 몸을 지킬 줄 알아야 한다며 라이라가 검술을 배우고 싶다 할 때 흔쾌히 허락을 하기도 했다. 라이라는 다른 귀족 영애들과는 다르다고, 그레이엄은 자부했다. 라이라의 강인한 체력과 영특한 머리, 상황 판단 능력은 그레이엄의 자랑거리였다.
“난 널 믿는다, 라이라.”
“……네, 아버지.”
아버지와 딸이 서로를 뜨거운 눈으로 바라봤다.

라이라가 왕자의 신붓감 후보가 되었다는 소문은 삽시간에 퍼져 나갔다. 작은 마을에서 일어나는 크고 작은 사건들은 반나절도 안 되서 돌곤 했는데 이번 소문은 퍼진 시간이 지극히 짧았다. 그것은 밤사이, 젬마가 자랑스레 떠벌여 이루어낸 업적이었다.
확인 절차고 뭐고, 이미 마을을 떠난다는 소문까지 돌아서 그린그린 사람들은 잔뜩 기대를 하고 있는 중이었다. 귀족이긴 해도 다른 귀족들처럼 거드름을 피우지도, 억지를 부리지도 않는 그레이엄과 라이라의 평판은 아주 좋아서, 모두 그녀가 왕자비가 되기를 빌었다.
“아이고, 우리 아가씨가 왕자비가 되면 난 당장 수도로 올라갈 거라고.”
젬마는 당장에라도 라이라를 따라 수도로 갈 태세였지만 그레이엄을 돌볼 사람이 없다는 사실에 눌러앉은 터였다. 라이라의 탄생과 지금까지 자란 모습을 하나도 빠짐없이 봐온 젬마는 자신이 곱게 키운 아가씨가 당연히 왕자비가 될 것이라고 굳게 믿었다. 옆에서 엄마를 돕는다며 감자를 깎던 테리가 불퉁거렸다.
“어머니, 그러지 좀 말아요. 그러다 아가씨가 왕자비 안 되면 어떡하시려고요? 제발 소문 좀 내고 다니지 마시라고요.”
퍽!
테리의 말이 끝나기가 무섭게 젬마의 손에 들린 식칼이 춤을 추었다.
“이노무 자슥, 네가 감히 아가씨의 앞길을 논해? 아가씨는 반드시 이 나라 왕자비가 되실 게다! 아암, 그렇고말고!”
칼등으로 등을 호되게 맞은 테리의 얼굴은 여전히 뿌루퉁했다.
“에이, 어머니도 차암!”
괜히 화를 내며 벌떡 일어나 밖으로 나가는 아들의 뒷모습을 바라보며 젬마는 걱정스런 표정을 얼굴에 띠웠다.
“저 녀석, 그러게 귀족 아가씨를 마음에 두지 말라고 그렇게 말했건만…….”
혀를 차며 젬마가 도리질했다. 아들이 언제부턴가 라이라를 마음에 두고 있다는 사실을 알고 있었다. 하지만 오르지 못할 나무는 처음부터 쳐다보면 안 되는 법. 젬마는 라이라가 떠나면 바로 아들의 연분을 찾아주리라 마음먹었다.
어머니 말에 발끈하여 밖으로 나오긴 했지만 테리는 여전히 우울하기만 했다. 물론 라이라와 자신이 엮일 수 없다는 건, 본능적으로 알고 있었다. 그래도 죽는 순간까지 라이라의 곁을 지킬 수 있을 것이라 생각해 왔는데 느닷없이 수도행이라니, 그것도 왕자의 신붓감 후보로.
두 살 어린 라이라가 동생처럼 귀여웠다. 검을 가르쳐 달라고 찾아왔을 때는 그저 철없는 귀족 아가씨의 호기심이라 생각했다. 하지만 검을 대하는 진지함과 가르쳐 주면 금세 배우는 영특함에 마음이 넘어가 버리고 만 것이었다.
“제길!”
그의 걸음은 어느새 라이라가 좋아하는 파르란 언덕으로 향했다. 언덕 위의 커다란 느티나무 아래의 그늘을 가장 좋아하는 라이라. 테리는 황금빛 머리칼과 새파란 눈을 떠올리며 느티나무의 밑동을 발로 걷어찼다.
‘이제 그 분홍빛으로 물든 뺨을 볼 수 없다니, 이제 그 부드럽게 일렁이는 금빛 머리카락도, 빛나는 파란 눈동자도 볼 수 없다니, 은은하게 풍기는 장미꽃 향조차 느낄 수 없다니!’
테리는 괜스레 화가 나 나무 밑동이고 나뭇가지고 할 것 없이 쳐대며 심통을 부렸다.
“뭐 해?”
“헉!”
갑자기 들려오는 부드러운 목소리에 주먹으로 나무를 쳐대던 테리가 깜짝 놀라 뒤를 돌아봤다. 여느 때와 다름없이 남자 옷을 입고 검을 든 채, 라이라가 서 있었다.
“아, 아가씨, 여긴 무슨 일로…….”
“무슨 일이긴, 검술 시간이잖아.”
당연하다는 듯 말하는 라이라를 테리가 얼빠진 표정으로 바라봤다.
턱.
라이라가 들고 온 두 자루의 검 중 하나를 테리의 발밑으로 던졌다.
“뭐해? 어서 시작하자고.”
어느새 라이라는 땅을 고르고 있었다.
“아가씨, 내일 떠나시지 않습니까?”
“그게 뭐?”
검을 집어 든 테리가 어이없는 표정으로 자세를 취하는 라이라를 바라봤다.
“그래, 테리 말대로 나 내일 떠나. 그러니까 지금 마지막 수업을 하는 거라고. 학생을 실망시키진 않겠지, 테리 선생님?”
챠캉.
검집에서 검을 빼내는 소리가 맑게 울렸다. 날씬한 몸매가 완벽한 자세를 취하고 있었다. 테리는 검을 다룰 마음이 전혀 없었다. 그럼에도 자신이 모시는 아가씨의 명령이라 그는 어쩔 수 없이 그녀 앞에 섰다.
“타핫!”
서로 인사를 나눈 뒤 대련에 들어간 두 사람은 금세 땀으로 흠뻑 젖었다. 한낮의 뜨거운 태양 아래, 라이라와 테리의 마지막 수업이 진행되었다. 지금까지 배운 기술들을 구사하며 라이라가 점점 테리를 몰아붙이기 시작했다.
“야잇!”
이번에도 라이라의 승리였다.
“계속 봐주네?”
“아닙니다, 아가씨.”
숨을 헐떡이며 테리가 부인했다. 물론 라이라와의 마지막 수업인 만큼 화려하게 장식하고 싶었다. 하지만 마음이 무거웠던 게 사실이었다.
“정말 솜씨가 많이 느셨습니다.”
테리의 입가에 잔잔한 미소가 걸렸다.
‘이제 이 멋진 머리칼도, 미소도 두 번 다시 못 보게 되는 걸까.’
심장 부근이 아팠지만 어쩔 수 없는 일. 테리는 라이라의 모습을 마음 깊이 새기기로 했다.
“그동안 고마웠어, 테리.”
라이라가 테리에게 손을 내밀었다. 기다란 손가락에 깔끔히 정리된 손톱. 테리가 보드라운 손을 맞잡았다.
‘이젠 이 손을 잡을 일도 없겠군.’
테리는 활짝 웃었다.

조용히 떠나려던 라이라의 계획은 젬마의 입방정으로 틀어지고 말았다. 아침나절부터 마을 사람들을 동원해 마을 입구까지 꽃길을 만들고 조셉과 마틴네 집 아이들을 모아 꽃단장 시켜 라이라가 타고 갈 마차 앞으로 걸으며 꽃가루를 날리게 만들었다. 덕분에 라이라는 부녀의 서글픈 이별 장면을 연출할 시간도 없이 서둘러 마차에 올라야 했다.
“아가씨! 반드시 왕자비가 되셔야 합니다!”
눈까지 빛내며 주먹을 불끈 쥐고 흔드는 젬마에게 라이라는 그저 웃어 보일 수밖에 없었다. 마차가 천천히 움직이기 시작했다. 머릿속 깊이 새기려는 듯 라이라는 눈 하나 깜빡하지 않고 서서히 멀어지는 아버지의 얼굴을 바라보고 또 바라봤다.
어느새 십칠 년간 자라온 저택이 조그만 점으로 작아지고 마을 입구까지 나와 있던 사람들의 얼굴이 점점 보이지 않게 되자 툭, 보석 한 방울이 그녀의 손등 위로 떨어졌다.
‘아버지, 반드시 왕자비가 되어서 다시 돌아올게요. 우리 가문을 드높이고 우리 마을이 좀 더 살기 좋은 마을이 될 수 있도록.’
--- 본문 중에서

출판사 리뷰 출판사 리뷰 보이기/감추기

회원리뷰 (4건) 회원리뷰 이동

한줄평 (3건) 한줄평 이동

총 평점 7.3점 7.3 / 10.0

배송/반품/교환 안내

배송 안내
반품/교환 안내에 대한 내용입니다.
배송 구분 예스24 배송
  •  배송비 : 2,500원
포장 안내

안전하고 정확한 포장을 위해 CCTV를 설치하여 운영하고 있습니다.

고객님께 배송되는 모든 상품을 CCTV로 녹화하고 있으며, 철저한 모니터링을 통해 작업 과정에 문제가 없도록 최선을 다 하겠습니다.

목적 : 안전한 포장 관리
촬영범위 : 박스 포장 작업

  • 포장안내1
  • 포장안내2
  • 포장안내3
  • 포장안내4
반품/교환 안내

상품 설명에 반품/교환과 관련한 안내가 있는경우 아래 내용보다 우선합니다. (업체 사정에 따라 달라질 수 있습니다)

반품/교환 안내에 대한 내용입니다.
반품/교환 방법
  •  고객만족센터(1544-3800), 중고샵(1566-4295)
  •  판매자 배송 상품은 판매자와 반품/교환이 협의된 상품에 한해 가능합니다.
반품/교환 가능기간
  •  출고 완료 후 10일 이내의 주문 상품
  •  디지털 콘텐츠인 eBook의 경우 구매 후 7일 이내의 상품
  •  중고상품의 경우 출고 완료일로부터 6일 이내의 상품 (구매확정 전 상태)
반품/교환 비용
  •  고객의 단순변심 및 착오구매일 경우 상품 반송비용은 고객 부담임
  •  직수입양서/직수입일서중 일부는 변심 또는 착오로 취소시 해외주문취소수수료 20%를 부과할수 있음

    단, 아래의 주문/취소 조건인 경우, 취소 수수료 면제

    •  오늘 00시 ~ 06시 30분 주문을 오늘 오전 06시 30분 이전에 취소
    •  오늘 06시 30분 이후 주문을 익일 오전 06시 30분 이전에 취소
  •  직수입 음반/영상물/기프트 중 일부는 변심 또는 착오로 취소 시 해외주문취소수수료 30%를 부과할 수 있음

    단, 당일 00시~13시 사이의 주문은 취소 수수료 면제

  •  박스 포장은 택배 배송이 가능한 규격과 무게를 준수하며, 고객의 단순변심 및 착오구매일 경우 상품의 반송비용은 박스 당 부과됩니다.
반품/교환 불가사유
  •  소비자의 책임 있는 사유로 상품 등이 손실 또는 훼손된 경우
  •  소비자의 사용, 포장 개봉에 의해 상품 등의 가치가 현저히 감소한 경우 : 예) 화장품, 식품, 가전제품, 전자책 단말기 등
  •  복제가 가능한 상품 등의 포장을 훼손한 경우 : 예) CD/LP, DVD/Blu-ray, 소프트웨어, 만화책, 잡지, 영상 화보집
  •  소비자의 요청에 따라 개별적으로 주문 제작되는 상품의 경우
  •  디지털 컨텐츠인 eBook, 오디오북 등을 1회 이상 다운로드를 받았을 경우
  •  eBook 대여 상품은 대여 기간이 종료 되거나, 2회 이상 대여 했을 경우 취소 불가
  •  중고상품이 구매확정(자동 구매확정은 출고완료일로부터 7일)된 경우
  •  LP상품의 재생 불량 원인이 기기의 사양 및 문제인 경우 (All-in-One 일체형 일부 보급형 오디오 모델 사용 등)
  •  시간의 경과에 의해 재판매가 곤란한 정도로 가치가 현저히 감소한 경우
  •  전자상거래 등에서의 소비자보호에 관한 법률이 정하는 소비자 청약철회 제한 내용에 해당되는 경우
소비자 피해보상
  •  상품의 불량에 의한 반품, 교환, A/S, 환불, 품질보증 및 피해보상 등에 관한 사항은 소비자분쟁해결기준(공정거래위원회 고시)에 준하여 처리됨
환불 지연에
따른 배상
  •  대금 환불 및 환불 지연에 따른 배상금 지급 조건, 절차 등은 전자상거래 등에서의 소비자 보호에 관한 법률에 따라 처리
  •  쿠폰은 결제 시 적용해 주세요.
1   11,400
뒤로 앞으로 맨위로 공유하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