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는 “쉬바”, “샥티”라는 말을 들으면, 당장 그것은 〈저 먼 인도(印度)의 어떤 신(神)〉이라고만 생각한다.
[머리에 〈그렇게〉 입력(入力)되어 있다. 그러니, 이제 〈입력자(入力者)〉가 다시 고쳐 입력하지 않는 한, 그 누구도 고칠 수 없다.
〈나의 이 머리에 그렇게 입력한 자〉는 누구인가? 〈다른 사람〉인가? 〈나〉인가?
내 머리에, 왜 〈내〉가 입력하지 못하는가?]
제발, 〈내가 그 단어로 알고 있는 그 뜻〉이 전부라고 생각하지 말라. [그러면 이른바 영성(靈性)은 거리가 가마득할 뿐이다.]
〈지금 이 책을 읽고 있고, 또 어떤 생각을 하고 있고, 무언가를 말하려고 하는 이것〉, 이것이 바로 쉬바이고 의식(意識)이다. 참나 곧 얼나다.
그것을 불교에서는 〈불성(佛性)[공(空)]〉, 기독교에서는 〈신성(神性)[그리스도]〉이라고 한다. 그것이 〈본래의 마음〉이고, 바로 “나[I]”이다.
“나는 할 수 있다!”
우리는 〈볼 수 있고〉, 〈숨 쉴 수 있고〉, 〈이해할 수 있고〉, 〈느낄 수 있고〉, 〈즐길 수 있다〉.
〈…할 수 있는 것〉, 그것이 샥티다.
샥티는 “샥타[Can]”의 여성형일 뿐이다.
어려움에 처한 우리는 [속으로라도] 외친다.
“[나는] 할 수 있다!”
그것은 샥티 여신(女神)의 도움을 청하는 소리다. [〈신화적으로 표현한다면〉 말이다.]
또 “쉬바-샥티”라는 말은 “나는 할 수 있다.”는 말이다. “I[쉬바] can[샥티]!”
“나는 할 수 있다.”
비갸나 바이라바와 쉬바 수트라는 말한다.
세상의 모든 것은 〈쉬바[의식]〉, 〈샥티[에너지]〉, 〈프라크리티[물질 즉 대상(對象)]〉의 순서라고.
-중략-
“소”는 십우도 주석이 말하듯이, 〈임의로 선택한 소재(素材)〉일 뿐이다. 선승들의 참구(參究)거리 중 〈뜰 앞의 잣나무〉나 〈똥 막대기〉처럼 말이다.
아니면 저 카프카처럼 〈바퀴벌레〉로 시작할 수도 있다.
[“아무리 그래도 그렇지, (거룩한) 〈영성(靈性)〉에 〈바퀴벌레〉가 뭐꼬!” 주방에서 아내가 중얼거리는 소리가 들리는 것도 같다. 환청(幻聽)인가?]
〈바퀴벌레〉라……
〈바퀴〉는 에스겔의 〈멜카바 환상(幻像)〉에서의 그 바퀴일 수도 있고,
불교의 전륜성왕(轉輪聖王)이 돌렸다는 〈진리의 수레바퀴〉일 수도 있고,
아니면 〈우주의 힘〉이라는 샥티 차크라일 수도 있다. 아갸 차크라, 물라다라 차크라…….
벌레[Worm]는 저 이사야의 지렁이일 수도 있고, 필자의 〈인간 벌레〉일 수도 있고……
C. S. 루이스의 〈벌레나무〉, “Worm-wood”도 생각난다.
[그의 책 『스크루테이프의 편지』에 나오는 〈신참 악마〉 웜우드는 “쑥”을 말한다. “쑥”은 성경에서는 “쓴맛” “고난” “고뇌”를 상징한다.
C. S. 루이스는 유명한 『나니아 연대기』의 저자다.]
그리고
〈바퀴벌레〉를 이루는 세포에도 미토콘드리아는 있고……
“소”라는 〈우리말〉은 ? 한자(漢字)에서 온 것이 아니면 ? 소(牛)를 가리킬 때가 대부분일 것이다.
“소”라는 〈소리〉는 다른 언어에서는 당연히 다른 의미로 쓰일 것이다. 영어로는 “so”로……
그 “소”가 두 개로 되면[“so so”], 〈그저 그런〉, 〈평범(平凡)한〉의 뜻이다. [아주 중요하다!!!]
스페인어에서 “soso”는 〈소금기가 없는, 싱거운 사람〉을 가리킨다고 하고,
일본어의 “소소[そそ]”는 〈‘솔솔’ 부는 바람소리, 물건이 가볍게 움직이는 소리〉라고 한다.
언어 특히 〈“소리”의 깊은 면〉을 다루는 〈인도의 영성 과학〉에서는 〈그런 것〉을 만트라라고 한다. 우리는 아직(도) 만트라를 잘 모른다!!
“아멘”과 또 “아제 아제 바라아제……”
이미 많이 사용했고, 잘 알고 있다고?
만트라는 〈우리를 구원(救援)하는, 우리 영혼을 해방(解放)시키는〉 그런 물건이라고……
하여튼 “소”라는 소리는, 파라 트리쉬카에서는, 그런 것이라고 강조한다. [영자(英字)로 “Sau?”.]
끝없이 이어지는 이 〈연상(聯想)의 수레바퀴〉, 즉 탓트와 바르가[“소소(素所)”](?) 이야기에
아내 소(蘇)는 - 이런 이야기를 듣는 것에 지쳐 있을지도 모른다. [사실, 잘 듣지 않는다.] - 이제 “눈을 TV[세상] 쪽으로 향한다[운메샤].”
[이런! 아내는 벌써 저 TV 속 깊숙이, 50m 안쪽으로까지 들어가 버렸다. 몸만 여기 있다.]
더 이상 이야기할 사람이 없으니, 필자도 조용히 “눈을 감고[니메샤]” 내면으로 “소(消).”
한편 독자들은 필자의 이 횡설수설(橫說竪說)이 끝나는 것에 대해 안도의 한숨과 함께 〈마음에는 평화〉, 그리고 〈얼굴에는 미소〉.
[그래서 소소(小笑)다. 이제, 이 책의 부제(副題) 설명도 끝났다.]
-후략-
--- 본문 중에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