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달빛연인

달빛연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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품목정보

품목정보
발행일 2016년 08월 11일
쪽수, 무게, 크기 400쪽 | 380g | 130*190*20mm
ISBN13 9791104909023
ISBN10 1104909022

책소개 책소개 보이기/감추기

목차 목차 보이기/감추기

책 속으로 책속으로 보이기/감추기

군데군데 서걱하게 얼어 있는 눈덩이가 봄이 오기에 이르다 말하듯 바람이 싸늘하기만 하던 어느 날, 한적한 마을을 지나는 두 사내가 있었다. 귀와 볼이 온통 빨갛게 변한 게 꽤나 추운 모양이었다.
둘 중 총명해 보이는 눈을 가진 자가 하얀 입김을 연신 뿜으며 곁의 사내를 부지런히 따랐다.
“오라버니도 들으셨습니까?”
“무엇을 말이냐?”
키 큰 사내가 실눈을 내리뜨며 시큰둥하게 대답했다. 무에 그리 재미난 일이 많은지 이 아이가 말을 시작할 때는 늘 이렇다. ‘그거 보셨습니까? 들으셨습니까?’ 말릴 수가 없는 아이다.
“아까 후원에서 말입니다. 백부님께서 서책을 보시다 뒷산을 보시다 하며 사색을 하시기에 조용히 다가갔는데…….”
“그런데?”
“아, 글쎄, 방귀를 ‘뿌우웅’ 하고 뀌시지 않습니까. 그것도 민망하리만치 여러 번이나요. 다가갈 수도 없고 돌아 나올 수도 없어 가만히 서 있는데 웃음이 나와서 혼났습니다.”
“녀석, 난 또 무어라고. 그게 어디 백부님만 그러시는 게냐. 혜강이 네가 몰라서 그렇지 사내들이 나이가 들면 다 그런 것이다.”
대수롭지 않게 넘기는 오라비의 말에 그녀의 눈이 놀란 토끼처럼 동그래졌다.
“예? 하지만 전 아버지가 그러시는 건 단 한 번도 들은 적이 없습니다.”
“그거야…… 네가 듣지를 못한 것이지 아니 하셨다고는 말할 수 없지 않느냐? 세월이 가고 나이가 들면 오장육부에 힘이 빠지고 그러다 보면 몸이 뜻한 대로 조절되지 않는 것은 자연의 이치이니, 그리 놀랄 일만은 아니니라.”
“그럼, 오라버니도 혼자 있을 때면…… 그러십니까?”
“어허, 나이가 들면 그렇다는 말이지. 나이가 들면! 힘이 남아돌아 주체를 못 하는 오라비를 어찌 보고.”
요란하게 부정하는 모습에 혜강의 청아한 웃음소리가 하늘로 울렸다.
“저기 주막이 있습니다. 어차피 해 지기 전에 집에 당도하기는 힘들 것 같으니 들어가서 요기라도 해야겠습니다.”
앞서 나가는 누이동생을 보며 윤재가 아랫배에 힘을 한번 진득하게 준다.
‘녀석. 그렇잖아도 낮에 먹은 곡주 때문에 속이 부글부글하던 참이었는데. 쩝.’
아직 때 이른 저녁이어서 그런지 마을 어귀에 있는 주막은 한산하기만 했다.
“어, 어서 오셔요.”
혜강이 한쪽 구석에 앉아 있는 젊은 선비와는 좀 떨어진 곳에 자리를 잡자 그녀와 비슷한 또래로 보이는 계집아이가 흘러내리지도 않은 옆머리를 귀 뒤로 넘기며 다가왔다. 조금 전 들어온 준수하게 생긴 선비로 인해 아직까지도 얼굴의 홍조가 가시지 않았는데 이번에는 눈을 뗄 수 없게 잘생긴 사내가, 그것도 둘이나 들어와서인지 그녀의 가슴이 사정없이 쿵쾅거렸다.
“여기 뜨끈한 국밥 두 그릇만 주시오.”
“기다려 보시어요.”
그녀가 부엌으로 사라지자 윤재의 입에서 피식하는 소리가 새어 나왔다.
“네가 꽤나 마음에 들은 모양이다.”
“어험, 오라버니가 모르셔서 그렇지 제가 ‘장에 떴다’ 하면 지나가던 아낙들이 몸살을 앓습니다.”
턱에 매달리지도 않은 수염을 쓰다듬으며 실눈을 뜬다.
“아무렴. 누구의 아우인데 아니 그러하겠느냐? 어험.”
놀리듯 따라 하는 오라비를 곱게 흘겨보고는 혜강이 소리 나게 괴나리봇짐을 내려놓았다. 보기에는 크지 않은 짐이 꽤나 무거웠는지 어깨를 두드리는 손길이 요란하기만 했다.
“필요한 책이 있으시면 서책방에서 사면 될 일을 굳이 큰집까지 가서 원재 오라버니의 것을 빌리는 것은 무엇입니까?”
“모르는 소리. 본시 공부 못하는 인사들이 책장에 가득 꽂아놓고 책 자랑하는 것이다. 이것들은 몇 번만 읽어보면 되는데 굳이 사서 무에 쓰겠느냐. 이렇게 돌려 보면 되는 것을.”
“이게 다 세자저하께서 주신 목록에 있는 것들입니까?”
혜강의 입에서 세자저하라는 말이 나오자 윤재가 땅이 꺼져라 한숨을 내쉬었다.
“책 읽기에 둘째가라면 서러운 분이 주신 것인데 오죽이나 꼼꼼하겠느냐. 이것들을 읽지 않으면 바로 알아채실 것이고 다독, 정독, 숙독이 다 되시는 분이니 적당히 읽는 것으로는 읽었다 말씀 올리기도 송구하고…… 에휴, 내 당분간 궐 근처에는 얼씬도 하지 않으련다.”
코가 석 자는 빠진 윤재의 표정에 혜강이 코웃음을 쳤다.
“글쎄요. 곧 있을 화희 때 입궐하지 않으시려면 아버지 어머니부터 설득하셔야 할 것입니다.”
“어이쿠. 산 넘어 산이라더니.”
“어쨌든 국밥 한 그릇으로 때우시면 안 됩니다.”
연신 부엌 쪽을 쳐다보는 그녀를 달래려는 듯 윤재가 달짝지근한 목소리로 속삭였다.
“내 그럴 줄 알고 네가 아주 좋아할 만한 책을 빌려왔느니라. 명나라에서 들여온 것인데 백모님께서도 적극 권해주신 것이다.”
“그게 무슨 책입니까? 어서 보여주셔요.”
그렇잖아도 총기 가득한 눈이 더욱 초롱초롱해지자 봇짐에서 책 한 권을 꺼내 든 윤재가 보여줄 듯 말 듯 뜸을 들였다.
“귀한 책이다.”
“그러니 그것이 무엇입니까?”
“그 이름도 유명한 ‘고.금.열.녀.전’이다.”
윤재가 손바닥으로 가렸던 제목을 한 글자씩 보여주며 또박또박 읽어 내려갔다.
“예? 너무하십니다. 저는 무술서인 줄 알았습니다.”
“어허, 모르는 소리.”
답답하다는 듯 그가 자신의 무릎을 ‘탁’ 소리 나게 치며 말을 이었다.
“이 책을 네 방 서안에 떡하니 펼쳐 놓으면 설령 어머니께서 급작스럽게 들어오신다 하더라도 책을 읽고 있었던 듯 위장하기에 용이할 뿐더러, 무술서나 병서가 아닌 열녀전임을 보신다면 더욱 흡족해하실 것이니 이것이 어찌 효가 아니라 하겠느냐?”
“오호, 그렇군요. 역시 오라버니십니다.”
윤재의 비상하게 돌아가는 머리에 감탄을 연발하는 혜강이었다. 열녀전보다 무술서에 관심이 많은 남장 여인이나 이를 부추기는 오라비, 아무래도 평범한 남매는 아닌 듯싶었다.
잠시 뒤, 열 살이 채 되어 보이지 않는 사내아이가 국밥이 놓인 상을 들고 이들에게 다가왔다. 진지하기 이를 데 없는 표정과 달리 걸음은 위태위태하였으니 그렇잖아도 가득 담긴 국물이 이리 쏟아지고 저리 흐르고, 바라보는 혜강의 표정이 움찔움찔했다.
“장하구나. 이름이 무엇이니?”
“진복입니다.”
씩씩하게 대답하던 아이는 혜강의 얼굴을 보자 입을 다물지 못했다. 달 밝은 밤이면 옷을 잃어버린 선녀가 하늘에 오르지 못하고 인간세계에 남는다더니 그것이 참말이었나 보다. 그렇지 않고서야 사람이 어찌 이리도 곱단 말인가.
“고우십니다.”
홀린 듯 말을 하고는 아이가 황급히 주막 뒤로 사라지자 혜강이 미간에 잔뜩 주름을 잡았다.
“제가 남장한 것을 어떻게 눈치챘을까요? 오라버니라 한 것을 들었나?”
‘쯧쯧, 너 같은 미색이 바지를 걸친다고 온전한 사내로 보이기를 바라는 게 애초에 잘못이다.’
혀를 차보이고는 아무 말 없이 국밥을 먹기 시작하는 윤재였다.
머리를 맞댄 채 쑥덕이던 형제가 허겁지겁 국밥을 들이켜기 시작하자 은후가 갓 아래로 조용히 미소 지었다. 도타워 보이는 형제의 모습에 식사가 끝난 지 이미 오래였지만 선뜻 길을 나서지 못하고 있었던 것이다.
고개를 돌려 산 위에 걸린 해를 확인한 그는 상에 밥값을 셈하고는 일어섰다. 어두워지기 전에 북촌 집에 도착하려면 걸음을 부지런히 해야 할 것이다.
“어이, 꽤 귀엽게 생겼는데. 몇 살이신가?”
그의 귀에 난잡한 소리가 들려온 것은 주막 문을 막 나설 때였다. 그렇잖아도 사내 넷이서 계집아이를 흘낏거리는 모양이 영 마음에 차지 않더니만 끝내는 갈 길 바쁜 사람을 멈춰 세우고야 만 것이다.
“열, 열다섯이어요.”
“열다섯이라. 좋은 나이로고.”
“이런, 이런. 추운 날씨에 물일을 하면 손이 많이 상할 터인데. 아니 그런가?”
“아무렴. 내 처자가 어여뻐서 하는 말인데 말이지, 우리가 밥도 주고 따뜻한 곳에서 편안히 쉴 수 있는 곳을 아는데 따라가련가?”
저희끼리 키득거리더니만 계집의 손을 덥석 잡는다.
“에구머니나, 왜 이러셔요. 이것 놓으셔요.”
당황한 계집이 형제 중 남장을 한 혜강을 흘낏하고는 거의 울상이 됐다.
“어허, 어여뻐서 그러는데 어째 앙탈인가.”
사내들의 희롱이 지나치다 싶은 순간 부엌에서 뛰어나온 주모가 이들을 말리며 비위를 맞췄다.
“점잖아 보이는 분들이 왜들 이러시오. 저 아이는 잠시 일 도와주러 온 아이니 딴생각일랑 하지도 마시오. 넌 냉큼 이것 싸 들고 진복이하고 집으로 가거라.”
하지만 이들에게 주모의 말 따위가 들어 먹힐 리 만무했으니, 추운 날씨에 계집을 끼고 질펀하게 놀아볼 생각에 사내들의 눈이 욕정으로 물들어갔다.
“왜, 왜들 이러십니까? 보내주셔요.”
계집의 목소리가 이제는 사시나무처럼 떨려 나올 때,
“우리 누이에게 손대지 마시오! 손대지 말란 말이오!”
주먹을 불끈 쥔 진복이 온 힘을 다해 달려들었다.
“아니, 이 조막대기만 한 놈이! 저리 못 가!”
떼어내도 악착같이 달라붙는 아이는 몸이 달아오를 대로 달아오른 사내들을 더욱 포악하게 만들었고 급기야는 진복의 작은 몸에 인정사정없는 발길이 쏟아졌다.
“귀찮게, 에잇!”
“악!”
“지, 진복아! 이것 놓아주셔요. 제발!”
우악스런 손에서 벗어날 길 없는 계집과 고통스럽게 땅을 구르는 어린아이의 눈에 체념의 눈물이 하염없이 흘러내렸다.
“과히 보기 좋은 광경은 아니군.”
“이대로 묵과할 수 없습니다.”
이 소란 속에 밥맛이 떨어진 건 이미 오래전인 두 사람이 수저를 내려놓고 몸을 일으키려는 순간 차디찬 목소리가 들려왔다.
“그만들 하시지.”
이미 길을 떠났다 생각한 선비가 손에 부채를 꺼내 든 채 이들을 노려보고 있었다.
“선비께서는 가시던 길이나 계속 가시우. 쓸데없이 남의 일에 끼어들었다가는 아무리 양반이라도 다치는 수가 있으니.”
“너희들이야말로 이대로 사라지면 더 이상은 문제 삼지 않을 것이다.”
“왜 이러십니까? 선비님 눈에도 계집이 어여뻐 보이는가 봅니다. 안 그런가?”
“암만, 선비라고 사내가 아니것는가?”
“선비님도 같이 끼워드릴까요? 명색이 양반인데 순서는 양보해 드립지요. 흐흐흐.”
희희낙락 저희끼리 주고받는 난잡한 말에 은후의 눈빛이 얼음장처럼 차갑게 변했다.
“사람 같지 않은 놈들에게 사람의 도리를 말하는 것이 어불성설이구나. 너는 동생을 데리고 뒤로 가 있거라.”
계집이 눈치를 보며 슬금슬금 몸을 피하자 사내들도 웃음을 거둬들였다.
“선비님은 죽더라도 우리 원망 마시오.”
새파랗게 젊은 놈이 양반이랍시고 똥인지 된장인지도 모르고 덤비다니, 너 오늘 잘 걸렸다. 자고로 오지랖 넓은 놈에게는 매가 약이라 했다.
‘저 기생오라비같이 빤질빤질하게 생긴 얼굴을 묵사발로 만들어주마.’
야비한 웃음을 지으며 주먹을 날린 이들은 그러나, 평소에 햇빛 한번 안 보고 책만 읽은 듯이 곱게 생긴 선비가 그들의 주먹과 발길질을 차분하게 피해 나가자 당황하기 시작했다.
“이 쥐새끼 같은 놈.”
눈앞에서 사라진 선비를 찾기 위해 몸을 돌리는 순간 날아온 부채는 사내들의 목울대를 사정없이 후려쳤다.
“켁켁……!”
“……살살 다뤄주려고 했더니만 화를 자초하는군.”
슬슬 약이 오르는지 거친 콧바람을 내뿜는 사내들에게 이번에는 선비의 날렵한 발차기가 날아들었다.
“이씨, 양반 나부랭이다 뭐다 다 필요 없어. 너 오늘 내 손에 죽었어.”
한편 이들을 지켜보던 윤재와 혜강은 이름 모를 선비의 화려한 몸놀림에 감탄을 금치 못하고 있었다.
“오. 한가락 하는 선비군. 어느 마을 출신이지?”
“오라버니보다 한 수 위인 것 같은데요.”
무심코 내뱉어 버린 진심에 윤재가 발끈했다.
“무슨 소리! 네가 아직 나의 진면목을 보지 못한 모양인데, ……이놈이 어딜!”
사내 중 하나가 소매에서 칼을 꺼내 드는 순간 윤재가 바람같이 달려들며 놈의 가슴팍을 걷어찼다.
“너 뭐야. 어, 어디서 굴러 온 개뼈다귀 같은 놈이……!”
보기 좋게 나동그라졌던 놈이 쇳소리를 섞어가며 윤재에게 욕을 해대자 혜강의 눈꼬리가 가늘어졌다.
“말이 곱지 않은 놈이군.”
윤재까지 나섰는데 혜강이라고 어찌 가만히 있겠는가. 앞에 놓인 것들을 사정없이 던져 댔다.
“으악, 악!”
연이어 터지는 외마디 비명은 치고받으며 싸우던 다른 사내들의 이목을 끌기에 충분했으니 국밥과 반찬을 온통 뒤집어쓴 모습에 여기저기서 피식거리는 소리가 들렸다.
“자, 자네…… 그 몰골이 뭔가?”
“큭큭, 가관이로세.”
그렇잖아도 국물이 흘러들어 간 탓에 눈도 따갑고 앞도 제대로 보이지 않던 놈은 주위의 웃음거리까지 되자 약이 바짝 올랐다.
“이런 씨…… 감히 처먹던 걸 던져? 네놈들 다 죽었어.”
이성이라고는 한 점 남아 있지 않은 눈에 은후는 긴장하지 않을 수 없었다. 아니나 다를까, 놈의 손에 들린 칼날이 번뜩인다 싶은 순간, 그가 혜강에게로 몸을 날렸다.
‘위험!’
그러나, 너무 서두른 탓이던가. 달려온 힘에 그대로 넘어진 두 사람의 몸이 서로를 꼭 껴안은 채 시원하게 뒹굴고야 말았다.
‘가, 가슴이 답답해…… 무슨 일?’
혜강은 이름 모를 선비가 자신을 깔고 누운 상황을, 게다가 아랫배를 묵직하게 눌러오는 뜨끈하면서도 생소한 느낌이 무엇인지 도무지 이해되지 않았다.
‘맙소사! 이 이건…… 사내들만이 가지고 태어난다는 그, 그것이 아닌가!’
모르는 척 가만히 있을 수도, 아는 척은 더더욱 할 수 없었으니 혜강은 신음을 내뱉는 선비의 아래에서 의식을 잃은 듯 두 눈을 꼭 감았다.
“다치지 않았……?”
고개를 들던 은후는 눈에 박히듯이 들어온 하얗고 가녀린 목에 말을 맺지 못했다. 그 목선을 따라 올라가니 섬세한 턱과 붉은 입술이 보였다. 그리고 그 고운 살에서 풍겨오는 달콤한 향내라니. 이것이 진정 사내의 것인가 하는 생각이 스치듯이 지나간 그는 그들이 동네 불량배들과 싸우던 중이었다는 것도, 그래서 이제 자신이 안고 있는 사내를 놓아주어야 한다는 사실도 모두 잊은 채 나긋한 느낌에서 헤어 나오지 못했다.
“괜찮은 것이냐?”
넘어진 두 사람이 움직일 줄을 모르자 혼자서 불량배들과 상대하던 윤재가 소리쳤다.
“미, 미안하오.”
당황한 은후가 서둘러 몸을 일으키고 나서야 혜강도 때마침 정신을 차린 듯 신음을 흘리며 눈을 떴다.
이들이 어색함 속에 옷을 터는 사이 기세등등하기만 하던 사내들이 그 흔한 ‘분하다’, ‘나중에 보자’라는 말 한마디 없이 사라졌다. 윤재한테 두들겨 맞기는 무지하게 맞은 모양이었다.
“흠흠, 어디 다친 데는 없소이까?”
“저는 괜찮습니다만 선비님께서 다치신 게 아닌지…….”
좀처럼 떨칠 수 없는 이상야릇한 느낌에 얼굴도 들지 못하고 있으려니 계집아이가 반쯤 찢기고 더러워진 옷고름으로 눈물 반 콧물 반인 얼굴을 찍으며 다가왔다.
“구해주셔서 고맙습니다.”
“아니오. 많이 놀랐을 터이니 어서 집으로 돌아가시오.”
“예서 집이 멀지 않습니다. 누추하지만 저희 집에 잠시 들러 저녁이라도…….”
혜강이 손을 내젓자 눈물이 채 마르지도 않은 눈으로 간청한다.
“이렇게 보내드릴 수는 없습니다. 은혜를 입었으니…….”
“달래, 이 지지배!”
난데없이 들려온 목소리에 계집이 한바탕 경기를 했다.
“해가 다 떨어졌는데 집에 들어올 생각은 않고 여기서 뭐 하는 것이여?”
“아, 아부지…….”
달래의 아버지는 목소리만큼이나 꼬장꼬장한 눈빛으로 딸아이를 둘러선 사내들을 노려보더니 급기야는 목에 핏대를 올리기 시작했다.
“동네 부끄러운 줄 모르고, 이 지지배가 집안 망신은 다 시키는구먼. 네놈들은 뭐여. 뭐 하는 놈들인데……!”
“아부지! 그게 아녀요.”
냉큼 달려간 진복이 조금 전 이야기를 들려주자 아비는 그제야 코가 땅에 닿도록 인사를 한다.
“아이고, 몰라뵀습니다요.”
그리고는 달래의 등짝을 한 대 후려치며 말을 잇는다.
“지지배가 늦게까지 싸돌아다니니 이런 일이 생기지.”
“아부지.”
두 볼이 홍시처럼 빨개진 달래가 혜강을 흘끗 보고는 이내 원망 어린 눈으로 아비를 바라보았다.
“이름이 달래인 모양이오. 참 예쁜 이름이오. 우리 걱정은 말고 어서 집으로 돌아가시오.”
예쁘다는 혜강의 말이 부끄러워 달래의 얼굴이 더욱 빨개졌다. 마지못해 고개는 끄덕였지만 이제 헤어지면 살아생전 다시는 못 볼 인연이라는 것은 그녀도 모르지 않을 터, 여인의 가슴에서 아쉬움은 쉽사리 떨쳐지지 않는 모양이었다.
“너 이 지지배, 빨리빨리 안 오냐?”
“지금 가요.”
진복을 업은 아비와 그 뒤를 따르는 달래, 세 사람 뒤로 흐뭇해하는 시선들이 따랐다.

“제 이름은 이윤재라 하고 여기 제 아우는 혜강이라 합니다.”
선비의 활약에 감명을 받았던가, 윤재가 먼저 이름을 밝혔다.
“아, 나는 김은후라 하…… 합니다.”
은후의 말투가 하대에서 존대로 어정쩡하게 흘렀다. 이상한 일이었다. 이들의 옷차림으로 볼 때 양반일 리는 만무하건만 자신을 대하는 태도는 지극히 편안해 보이니 여유와 기품이 몸에 배어 있는 이들에게 하대는 오히려 맞지가 않다는 생각이 들은 것이다.
이혜강……. 이름을 작게 되뇌는 은후의 얼굴에 옅은 미소가 지어졌다. 냉정해 보이던 눈매가 선하게 휘어지고 굳게 다물어졌던 입술이 부드럽게 풀리자 그렇잖아도 단정한 그의 얼굴이 한층 더 준수해 보였다.
잘생긴 선비의 눈이 혜강에게서 떠나지를 못하자 윤재의 심장이 덜컥한다.
‘이 눈빛은? 설마…… 눈치챈 건가?’
두 사람을 번갈아 보던 그는 누이동생의 빼어난 미모와 가녀린 몸이 사내 복색 안에서 오히려 묘한 조화를 이루며 사내들로 하여금 애틋한 감정을 불러일으킨다는 것을 깨닫고는 충격으로 머리가 어지러웠다.
“그럼, 저희는 이만 길을 서둘러야겠습니다.”
“아, 저는 북촌으로 가는 길입니다만. 날도 어두워지는데 가는 방향이 같다면 동행하는 것이?”
은후의 제안에 윤재가 손을 내저었다.
“아닙니다. 저희는 남촌으로 가는 길이니 여기서 이만.”
“하면 오늘 목숨 빚을 진 듯하니 차후에…….”
“선비께서도 제 아우를 구해주셨으니 서로 진 빚이 없다 하는 게 맞겠지요.”
거절하는 빛이 역력한 윤재의 말에 은후는 조금 머쓱해졌다.
“그럼 전…….”
그가 혜강을 눈에 담듯 다시 한 번 바라보고는 길을 떠났다.
이제는 햇살도 산 뒤로 넘어가고 사방이 어슴푸레하건만 혜강의 눈길은 저만치 멀어진 선비의 뒷모습에서 떠나지를 못하고 있었다. 마치 놓치지 말아야 할 인연을 떠나보낸 듯 가슴 한구석이 허전하고 서운함마저 감도니 빛을 잃은 바람이 더욱 시리기만 했다.
“이것 봐라! 얼굴이 빨개지지 않았느냐?”
“오라버니도 참! 제 얼굴이 어떻다고 그러십니까?”
입술을 삐죽이는 모양이 재미있는지 놀리는 말투가 이어진다.
“사내인 내가 보기에도 참으로 잘나 보이던데 여인인 너에게야 오죽하겠느냐.”
“농담 마십시오. 좋은 분 같아서 그럽니다.”
“아무렴, 왜 아니 그러겠느냐.”
다 이해한다는 듯 고개를 주억거리는 그에게 혜강이 물었다.
“한데 어찌 그리 매몰차게 보내셨습니까? 오라버니답지 않으십니다.”
성격이 쾌활하여 평소 오는 친구 막지 않는 그가 선비와의 인연을 끊어버린 것을 이해할 수 없었다.
‘으이그, 왜긴 왜이겠느냐. 너를 바라보는 눈빛이 심상치 않으니 그러했지. 네가 남장을 하고 다니는 것도 아버지께서 겨우 참아주시는데 여기에 사내까지 만나고 다녀봐라. 너뿐만 아니라 내 종아리도 남아나지 않을 게다.’
하고 싶은 말을 속으로 삼키던 윤재의 눈길도 어느덧 선비가 사라진 곳을 바라보고 있었다.
“인연이 닿는다면 언젠가 또 만나겠지.”
--- 본문 중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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