음악과 언어는 현존하는 인류사회뿐 아니라 역사적으로 기록된 모든 인류사회에 존재했다고 알려져 있다. 고고학자들은 음악과 언어가 선사시대의 모든 호모 사피엔스 사회에 존재했다고 확신한다. 음악의 개념은 문화에 따라 조금씩 다르지만 세계 어디에나 노래와 춤이 있고, 음악마다 그 나름의 반복구조와 변주방식을 갖고 있다. 또한 모든 음악은 음길이와 강세의 차이를 이용한 리듬구조를 사용한다. 음악이 사용되는 맥락과 음악이 맡는 사회적 기능은 매우 다양하다. 음악은 오락으로 쓰이고, 사회제도의 정당성을 확인시킨다. 사회적 결속을 다지는 것은 특히 널리 쓰이는 기능이다. 하지만 가장 독보적이며 유일하게 모든 문화에 존재하는 맥락은 종교가 아닐까. 세계 어느 곳에서나 음악은 그 문화에 존재하는 신을 섬기고 찬양하고 신과 의사소통하기 위한 수단으로 이용된다. (29쪽)
언어와 음악은 세 가지 표현양식을 공유한다. 첫째, 말도 노래도 목소리를 사용한다. 둘째, 둘 다 수화와 춤에서처럼 몸짓을 쓴다. 셋째, 옮겨 적을 수 있다. 언어와 음악은 뇌의 생물학적 작동을 바탕으로 한다. 그래서 인지기능에 문제가 생기면 언어능력을 잃는 실어증 또는 음악능력을 잃는 실음악증이 생길 수 있다(3~5장 참조). 첫 번째 표현양식인 목소리 사용은 이 책에서 주로 다룰 주제이며, 세 번째 양식인 받아 적기는 이 책에서 다루는 시기 이후에 생겼다. 그런데 음악과 언어가 의사소통에 몸을 사용한다는 것이 아주 중요한 점이다. 사실 나의 관심사 가운데 하나가 바로 음악, 언어, 현대 인류의 몸의 진화가 서로 어떻게 얽혀 있는가 하는 점이다. (32쪽)
하버드 대학의 마크 하우저Marc Hauser, 노엄 촘스키Noam Chomsky, 티컴시 피치Tecumseh Fitch는 반복순환성(재귀再歸)은 인간 언어만의 속성으로서 동물의 의사소통에서는 이에 상응하는 것을 찾을 수 없으며, 따라서 비교적 최근에 진화한 것 같다고 말했다. 다시 말해 반복순환성은 600만 년 전에 인간과 침팬지의 공통조상에서 호모 계통이 갈라진 이후에 호모 계통에서만 진화했다는 얘기다. 하지만 촘스키와 그 동료들은 반복순환성이 애초에 언어체계에서 생겼다고 보지는 않는다. 그들은 반복순환성이 방향설정, 숫자사용, 사회생활과 관련한 문제들을 해결하기 위한 수단으로 진화했다가 나중에 진화적 부산물로서 언어체계에 포함되었다고 주장한다. 그런데 이들이 놓친 사실은 반복순환성이 음악의 중요한 특징 가운데 하나라는 것이다. 이언 크로스가 지적했듯이 촘스키의 언어에 대한 정의는, 반복순환성의 소임을 강조했다는 점에서 음악에도 똑같이 적용된다. (35쪽)
말은 정보를 전달한다. 문법에 의해 완전한 의미가 주어지는 상징들로 구축된 체계이기 때문이다. 관용적 어구가 있긴 하지만, 말은 주로 구성적이다. 반면에 악구, 손짓, 몸짓언어는 전일적이다. 곧, 이들의 ‘의미’는 덩어리째 이해된다. 말은 지시를 할 뿐 아니라 조작을 한다. 다시 말해 어떤 말은 세상의 사건과 사물을 지시하고, 어떤 말은 청자를 특정 방식으로 생각하고 행동하도록 조작한다. 반면 음악은 감정상태와 몸동작을 불러일으키기 때문에 주로 조작의 기능을 한다. 그렇다면 음악과 언어의 관계는 어떠할까? 음악은 스티븐 핀커가 말한 대로 청각의 치즈케이크일 뿐일까? 그럴 리가 없다. 내가 이 장에서 논한 사실들은 진화의 부산물로 치기에는 음악이 언어와 너무 다르다는 것을 말해주고 있으니까. 그렇다면 둘의 관계는 무엇일까? 혹시 핀커가 주장한 것과는 정반대로 언어가 음악의 부산물이 아닐까? 이 생각 역시 똑같은 이유로 타당하지 않은 듯하다. 이 가설은 언어의 독특한 속성들을 설명해주지 못하니까. 또 하나의 가능성은 음악과 언어가 완전히 별개의 의사소통 체계로서 제각각 진화했다는 것이다. 이 주장도 설득력이 떨어진다. 비록 각각이 독자적인 속성을 갖고 있긴 하지만 독립적인 진화의 길을 밟았다고 보기에는 너무 많은 공통점을 갖고 있기 때문이다. 남은 가능성은 음악과 언어의 공통된 전구체가 있었다는 것이다. 음악과 언어가 현재 공유하고 있는 특징들을 모두 갖고 있다가 진화사의 어떤 시점에 별개의 체계로 갈라진 의사소통 체계가. (47쪽)
우리의 음악능력은 언어를 위해 진화한 신경망에 의존하는 듯 보인다.
이런 관점에서 뇌졸중을 앓은 68세 남성인 NS의 사례(의학논문에서는 환자의 이름을 밝히지 않고 약자로 부르는 것이 일반적인 관행이다)는 특히 흥미롭다. NS는 심장수술 중 마취상태에서 뇌졸중을 일으켰다. 깨어났을 때 그는 사람들이 하는 말을 알아듣지 못했고, 사람들이 “너무 빠르게 말을 하거나 중국말로 말을 하고 있다”고 표현했다. 그러나 환자 자신은 말하는 데 아무 문제가 없었고, 읽고 쓰는 데도 문제가 없었다. MRI를 찍어보았더니, 상측두 이랑을 따라 위치하는 오른쪽 측두-두정부에 병변이 보였다.
말을 알아들을 수 없는 NS의 증상은 심각했고 회복되지 않았다. 그의 아내는 대화가 불가능한 남편과 쪽지를 써서 의사소통을 했다. 머지않아 NS는 모든 의사소통을 종이에 써서 해야 했다. 뇌졸중을 일으킨 지 12년 후 NS는 캘리포니아 대학 로스앤젤레스캠퍼스(UCLA) 신경정신학과의 마리오 멘데즈Mario Mendez 교수에게 정식으로 검사를 받았다. NS는 말이 아주 많은 편이었지만, “턱을 가리켜보라” 같은 단순한 요구도 잘 따르지 못했다. 그러나 종이에 적어서 보여주자 즉시 그 말을 이해했다. 그는 단순한 단어는 듣고 따라할 수 있었지만, 긴 어구를 복창하는 데는 어려움을 겪었다. 예를 들어 “누구를 위하여 종은 울리나”는 아무리 노력해도 “누구를 위하여 마법에 걸리나”로밖에는 따라할 수 없었다. (58~59쪽)
음악능력 없이 언어능력만 존재할 수도 있을까? 그렇다면 뇌에서 음악능력과 언어능력 사이에 ‘이중해리(double dissociation)’ 현상이 존재한다고 말한다. 흔히 이것은 두 능력이 독립되어 발달하고 진화하는 증거로 해석된다. 이 장에서 소개하는 사례들이 분명히 보여주듯, 이중해리 현상은 실제로 존재한다. 그들은 언어능력은 보유하고 있는데 음악능력을 상실한 사람들, 또는 음악능력이 처음부터 전혀 발달하지 않은 사람들이다. 이렇게 음악능력이 없는 상태를 실음악증이라고 한다. 음악의 실어증인 셈이다. (74쪽)
뇌 병변 환자에 관한 연구들은 언어와 음악이 뇌에서 어느 정도 독립을 이루고 있음을 밝혔다. 하지만 병변 연구로 보나 뇌 영상 연구로 보나 하나가 다른 하나의 파생물이라는 증거는 없다. 그래서 음악과 언어에 대한 진화 시나리오의 방향이 아직 잡히지 않은 상태다. 하지만 음악이 언어보다 진화상으로 우선은 아닐지라도 발달상으로는 우선임을 입증하는 풍성한 증거의 원천이 있다. (중략) 그것은 바로, 언어발달 이전의 아기들과 나누는 음성 의사소통의 방식이다. (105쪽)
IDS(유아를 지향한 말, infant-directed speech)가 본질적으로는 언어가 아니라는 생각은 IDS의 보편적인 음악적 속성을 보면 더욱 확실해진다. 어느 나라에 살든 무슨 언어를 사용하든, 아기에게 말할 때 우리는 말하는 방식을 본질적으로 똑같은 방식으로 바꾼다.
퍼날드와 그 동료들은 프랑스어, 이탈리아어, 독일어, 일본어, 영국영어, 미국영어 사용자들을 대상으로 IDS에 대한 범汎언어 연구를 실시했다. 연구팀은 모든 언어가 운율을 매우 비슷하게 사용한다는 사실을 발견했다. 이것은 IDS에 보편성이 존재한다는 뜻이다. 높은 음높이, 명료한 조음, 반복 등이 그것이다. 언어에 따른 차이도 조금 있었다. 특히 일본어는 다른 언어에 비해 감정표현의 수위가 대체로 낮았는데, 이것은 문화의 영향인 듯하다. 또한 미국영어는 운율의 과장이 가장 심했는데 이것 역시 문화의 영향인 것으로 보인다. (109쪽)
IDS는 과장된 운율로 언어습득을 촉진하기 이전에 감정을 표현하고 사회적 결속을 불러일으키는 구실을 한다. 그런데 부모들은 아기에게 말뿐 아니라 노래를 불러주며, 이것은 말보다 감정상태에 훨씬 큰 위력을 발휘하는 듯하다. 토론토 대학 심리학 교수인 샌드라 트레허브Sandra Trehub와 그 동료들은 아기에게 노래를 불러주는 것이 얼마나 중요한지를 알아보기 위해 여러 가지 실험을 했다. 한 연구에서는 자장가를 조사했는데, 모든 문화권의 자장가들은 멜로디, 리듬, 박자가 놀랍도록 비슷했다. (중략) 아기들에게 엄마의 모습과 목소리가 나오는 영상을 틀어주었더니, 어머니들이 말을 할 때보다 노래를 부를 때 아기들이 훨씬 더 오래 쳐다보았다. 트레허브는 생후 6개월 된 기분이 나쁘지 않은 아기들이 엄마의 말보다 노래에 더 큰 생리적인 반응(타액 코르티솔의 생산량으로 측정함)을 보인다는 사실을 밝혔다. 이것은 노래가 아기를 돌보는 중요한 장치임을 뜻한다. (118~119쪽)
케임브리지 대학의 심리학자 사이먼 배런-코헨Simon Baren-Cohen은 여성이 남성보다 표정을 잘 읽으며, 이것은 남성과 여성이 서로 다른 인지능력을 갖고 있다는 뜻이라고 주장한다. (중략) 인간은 세상에서 현명하게 행동하기 위해 감정을 진화시켰을 뿐 아니라 감정을 표현하는 성향과 타인의 감정을 해석하는 능력도 진화시켰다는 것이다. 감정을 표현하는 핵심수단 가운데 하나가 바로 음악이다. (134쪽)
나는 호미니드의 의사소통 체계가 유인원과 원숭이의 의사소통 체계와 달라진 점은 제스처와 음악 같은 발성이 더 많아지고 다양해진 것이라고 생각한다. 이 차이를 분명히 드러내기 위해 초기 호미니드의 의사소통 체계를 전일성(Holistic)의 H, 다중성(Multi-modal)의 M-M, 조작성(Manipulative)의 M, 음악성(Musical)의 M을 따서 ‘Hmmmm’으로 부르려 한다. 이 특성들은 따로따로는 현생 유인원과 원숭이의 의사소통 체계에서도 발견되지만, 초기 호미니드에 이르러 하나로 통합되었다. 그 결과는 인간 외 현생 영장류들에게서 발견되는 것보다 훨씬 복잡하지만 인간의 언어와는 사뭇 다른 의사소통 체계였다. (199~200쪽)
음악도 언어도 움직임과 떼어놓을 수 없다. 따라서 언어와 음악의 진화를 이해하기 위해서는 인간의 해부구조 전체를 눈여겨보아야 한다. 사실 직립보행은 우리가 몸을 움직이고 쓰는 방식뿐만 아니라 뇌와 성도에 영향을 미침으로써 인간의 역사에서 가장 위대한 음악적 혁명을 불러일으켰던 것 같다. (202쪽)
직립보행이 음악에 미친 영향은 단지 만들어낼 수 있는 소리의 폭을 늘린 것 이상이다. 음악의 중요한 한 측면인 리듬은 효율적인 걷기와 달리기에 꼭 필요하다. 사실 리듬은 직립보행을 하는 특이한 인체의 복잡한 조율에 필수적이다. 리듬이 없다면 우리는 몸을 효율적으로 이용할 수 없다. 직립보행을 위해서는 무릎관절과 좁은 엉덩이의 진화도 중요했지만, 일련의 근육을 율동적으로 조율하는 마음의 메커니즘의 진화도 그 못지않게 중요했다.(216쪽)
초기 인류가 내가 지금까지 주장한 방식으로 동물의 움직임과 소리를 흉내냈다면, 우리는 그들의 의사소통 체계를 ‘Hmmmm’에서 ‘Hmmmmm’으로 재규정해야 한다. (중략) 가장 중요한 것은, 초기 인류의 의사소통 체계가 단어들을 결합해 새로운 의미를 만들어내기보다는 그 자체로 완결된 메시지인 전일적 발화를 만들어냈다는 점이다. (247쪽)
줄어든 성별 동종이형과 늘어난 여성들의 협력 덕분에 여성 선택의 기회가 늘어나고, 이에 따라 남성들은 성적 과시에 더 많은 시간과 에너지를 투자해야 했다. 몸 크기에 대한 생체역학적 제약이 생기자 ‘좋은 유전자’를 과시하기 위해 몸집 외의 다른 수단이 필요했다. 섹시한 주먹도끼를 만드는 것이 한 가지 수단이었다면, 또 다른 수단은 1879년에 찰스 다윈이 주장했고 2000년에 밀러가 다시 주장한 대로, 노래와 춤이었다. 이것은 ‘Hmmmmm’에 존재하던 음악적 요소에 선택압을 가함으로써 음악의 진화를 추동했을 것이다. (275쪽)
네안데르탈인은 그들의 큰 뇌를 이용해 전일적 성격을 갖고 있고 조작적 기능을 하며 다중성과 음악성을 띠며 미메시스를 동반하는 정교한 의사소통 체계인 ‘Hmmmmm’을 구사했다. 호모 에르가스테르와 호모 하이델베르겐시스 같은 그들의 직계조상과 친척들도 그러한 의사소통 체계를 이용했지만, 네안데르탈인들은 그것을 극대화시켰다. 이것은 앞에서 논의했듯이 의사소통의 폭을 넓히도록 선택압이 작용한 결과였다. 네안데르탈인은 진보된 형태의 ‘Hmmmmm’을 활용했고, 이것은 놀랍도록 성공적이었다. 네안데르탈인은 이 의사소통 체계 덕분에 빙하기 유럽의 극적인 환경변화 속에서 무려 25만 년 동안 살아남았으며, 유례없는 문화적 성취를 이루었다. 이들은 ‘노래하는 네안데르탈인’이었다. (319쪽)
--- 분문 중에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