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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00, 조선에 살다

1900, 조선에 살다

: 구한말, 미국 선교사의 시골 체험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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품목정보

품목정보
발행일 2008년 08월 13일
쪽수, 무게, 크기 320쪽 | 148*210*30mm
ISBN13 9788991510760
ISBN10 899151076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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옮긴이의 말
한국어판 발간에 부쳐
저자에 관하여

책을 내며
이 책에 대하여

1· 조선의 지리와 산천
2· 이 땅에서 나는 것들
3· 간추린 조선의 역사
4· 조선의 영혼, 서울
5· 마을, 조선의 기본 단위
6· 이 나라에는 home이 없다
7· 여행객들의 쉼터, 주막
8· 남자들의 짧은 소년 시절
9· 자유롭지 않은 존재, 양반
10· 불공평한 삶으로 태어난 소녀들
11· 속박의 굴레에 갇힌 여인들
12· 남자들만의 전당, 서당
13· 조선의 뿌리, 농민
14· 만능 재주꾼, 장인들
15· 조선의 동력, 시장과 상인들
16· 사람을 병들게 하는 한의사들
17· 팔려가는 신부, 혼사
18· 정형화된 슬픔의 의식, 장례
19· 정의와는 거리가 먼 사법 체계
20· 오랜 지배자, 토속신앙
21· 방방곡곡으로 뻗는 교회들
22· 주님의 참 일꾼, 조선의 신도들
23· 조선의 미래, 마을 교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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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한말 이방인의 파란 눈에 비친 시골 서민들의 삶의 풍경

우리 선조들은 어떻게 살았을까. 특히 서울 중심의 지배층이 아닌 시골에서 제도와 인습의 멍에를 짊어진 채 하루하루 고되게 그러나 치열하게 살아가던 일반 서민들의 삶의 현장은 과연 어떠했을까. 기존의 습속과 제도에 메이지 않은, 그래서 비교적 ‘객관적’이고 자유로웠던 이방인의 눈으로 본 선조들의 삶은 과연 어떤 것이었을까.
『1900, 조선에 살다Village Life in Korea』는 이러한 의문에 대한 한 가지 답을 제시해준다. 이 책에는 1890년 중반부터 20여 년간 자전거로 조선 전역을 누비며 서민들과 희로애락을 같이 했던 선교사 제이콥 로버트 무스(1864~1928)의 파란 눈에 비친 생생한 시골 풍경이 담겨 있다. 고춧가사가 눈병에 좋다는 한의사의 말을 믿고 여러 차례 고춧가사를 자신의 눈에 넣었던 소녀, 지아비를 대신해 관아로 나아가 지아비의 채무불이행에 대한 재판을 받으려 했던 아낙네, 언성을 높이며 한바탕 싸움을 벌이는 듯하던 상인의 가격 흥정 모습, 엄청난 흥분을 불러일으켜 마치 서양의 풋볼을 연상케 하던 돌싸움 등 지금은 상상조차 하기 힘든 낯선 풍경들이 책 여기저기를 채우고 있다.
먼 나라의 호랑이 담배 피던 시절 이야기가 아니다. 불과 100여 년 전, 바로 지금 우리를 있게 한 선조들의 진솔한 삶의 모습이다. 서구 열강의 침략이 본격화되고 일제의 강압적 지배가 시작되던 시기, 고된 역사의 현장을 직접 온몸으로 살아낸 서민들의 꾸밈없는 얼굴이다. 저자의 애정 어린 시선에 포착된 다양한 시골 서민들의 풍경, 그 속으로 들어가 보자.

조선은 시골 마을들로 이루어진 나라

조선 말기의 역사나 사회상 등에 대한 외국인들의 저술은 적지 않다. 하지만 『1900, 조선에 살다』는 그러한 기존의 책자들과 다른 독특한 특징이 있다. 옮긴이 문무홍은 그에 대해 다음의 세 가지를 언급한다. 무엇보다 『1900, 조선에 살다』는 “조선은 시골 마을들로 이루어진 나라”라는 저자의 시각에 따라 조선의 시골 사람들과 그 삶을 집중적으로 다루고 있다. 조선 말기에 관한 이방인의 다른 저술들이 중앙정치나 지배문화에 초점을 맞춘 것과 달리 무스의 관찰과 묘사의 대상은 대지 위에 발을 붙인 채 힘겨운 삶을 영위하던 서민들의 삶의 현장이었다.
저자가 조선의 내부자가 되어 그 시각에서 집필된 것이라는 점도 지적되어야 한다. 조선 말기의 시골에 정통한 『조선과 그 이웃 나라들』의 비숍, 『한국천주교회사』의 달레와 달리 무스는 부인과 함께 20년 가까이 주로 시골에 뿌리박고 살았다. 이미 조선의 내부자가 되어 조선의 시골을 체계를 갖고 심층화하여 파악하고 있었던 것이다.
『1900, 조선에 살다』가 의미 있는 가장 큰 연유는 바로 무스의 한국 자연에 대한 사랑과 한국인에 대한 애정에 있다. 조선 말기의 제도와 습속이 갖고 있는 비인간성과 부정의에 대한 저자의 개탄과 절망은 크고 깊다. 무위도식하며 전횡을 일삼는 양반 계급은 ‘벌레’이며 태어나면서부터 학대받는 여성은 ‘야만’의 희생자들이다. 그럼에도 무스 선교사의 눈에 비친 조선의 대지는 아름다고 풍요한 어머니이며, 그 안에 사는 백성은 무한한 잠재력을 가진 희망의 아들과 딸들이다. 이 책에는 이러한 저자의 휴머니즘이 고스란히 녹아 있다.

낯익은 그리고 낯선 서민들의 일상

그렇다면 무스의 시선에 포착된 우리 선조들은 삶은 구체적으로 어떠했는가. 무스의 눈에 기억된 구한말 조선 서민들의 모습에는 지금 우리가 익히 알고 있는 것들도 제법 있다. 산 옆으로 이어진 오솔길을 따라 내려가면 쉽게 마주칠 수 있는 흰 옷의 백성들, 평평한 돌판 위에 세탁물을 놓고 얼룩 없이 하얗게 될 때까지 방망이로 두들겨대는 아낙네들, 등에 업은 아기 고개가 크게 흔들리는 것도 모른 채 동전 던지기 놀이 삼매경에 빠져 있는 소년들, 개천을 따라 길게 늘어선 집들에서 매일같이 흘러드는 오물로 악취를 풍기는 개천가, 김치를 비롯하여 고추장, 무절임 등 온갖 반찬들로 풍성하게 채워진 밥상 등은 불과 얼마 전까지 시골 마을에서 볼 수 있던 낯익은 풍경들이다.
반면 소나 돼지처럼 사고 팔리는 신세를 벗어나지 못하던 종들, 영어를 하지 못해 대화하는 데 어려움을 겪던 부인에게 지각 없는 존재라는 말을 서슴없이 내뱉던 지체 높은 양반, 장옷으로 얼굴을 가린 채 외출해야만 했던 부인들, 소년들만으로 채워진 배움의 전당 서당, 자기 앞에 무엇이 기다리고 있는지 전혀 모른 채 “도살장에 끌려나오는 양”처럼 혼인식을 올리던 하얀 가면의 신부들, 감당할 수 없을 것 같은 엄청난 짐을 지게에 짊어지고 장이 서는 ‘장마을’을 찾아 돌아다니며 물건을 팔던 장사치들, ‘악마의 기둥들’ 장승 앞에 모여 기원을 드리던 남녀노소들의 곱게 모아진 두 손은 무스에게나 오늘을 살아가는 우리에게나 낯선 풍경이다.

조선의 시골 마을들을 완전히 기독교화하라

특히 긴 곰방대로 담배를 피우며 옛 지혜의 심오함에 대해 대화를 나누는 역할 외에는 하는 일이 없는 선비의 유유자적, 딸이 태어났다는 말에 깊은 유감의 표정을 지으며 “참-섭-섭-합-니-다”라는 말을 당연하게 내뱉는 조선인들의 남아선호는 무스로서는 받아들일 수 없는 야만이었다.
선교사라는 직분에 걸맞게 무스는 이러한 야만을 하나님의 이름으로 치유해야 한다는 생각을 가지고 있었다. 따라서 외부의 어떠한 도움도 없이 신도들의 힘으로 지어진 교회들이 방방곡곡으로 뻗어가는 모습은 무스에게는 보람이자 축복이었다. 무식한 하층 계급 출신이던 윤승균이 소중한 상투를 자르고 성경 공부에 매진, 걸어 다니는 성경색인으로 불릴 정도로 성경 학습에 충실하다가 하나님의 곁으로 간 사연을 말할 때는 무스 스스로 부끄러워하기도 했다.
그러한 그에게 조선의 미래를 여는 열쇠가 전 시골 마을들의 기독교화임은 당연한 귀결이다. 기존 관습들을 ‘야만’으로 묶어 척결해야 할 대상으로 묘사하는 식의 오리엔탈리즘이 불편하기는 하지만, 그럼에도 시골 서민들과 특히 질곡의 삶에 갇힌 여성에 대한 무스의 깊은 사랑은 단순히 서구에서 온 이방인의 오리엔탈리즘으로 치부하기엔 그 울림이 적지 않다.

회원리뷰 (1건) 리뷰 총점10.0

혜택 및 유의사항?
포토리뷰 1900,조선에 살다 내용 평점5점   편집/디자인 평점5점 스타블로거 : 블루스타 맑**늘 | 2012.10.30 | 추천1 | 댓글0 리뷰제목
    1900년대 조선은 허약한 조선왕조의 모습과 일본이 조선을 병탄하려 치밀한 계획이 진행되고 있던 시절이라 언제 어떻게 조선이 흘러 갈지 한 치 앞을 내다 볼 수 없었던 시절이었다고 생각한다.1900년은 국내에선 경인철도가 완성되었던 해이고,독립협회가 자주국권,자유민권,자강개혁의 사상을 가지고 추진했던 민권운동이 국민들의 시민의식을 성장시키는 촉매제가;
리뷰제목

 

 

1900년대 조선은 허약한 조선왕조의 모습과 일본이 조선을 병탄하려 치밀한 계획이 진행되고 있던 시절이라 언제 어떻게 조선이 흘러 갈지 한 치 앞을 내다 볼 수 없었던 시절이었다고 생각한다.1900년은 국내에선 경인철도가 완성되었던 해이고,독립협회가 자주국권,자유민권,자강개혁의 사상을 가지고 추진했던 민권운동이 국민들의 시민의식을 성장시키는 촉매제가 되기도 했다.

 

 이렇게 조선 국내외적으로 민권운동,일본의 팽창이 이루어진 때에, 한 미국 선교사 부부의 조선 시골 체험기는 시대를 거슬러 올라가,선조들의 생활상과 선교사 부부가 사랑과 애정으로 다가 서려 했던 조선의 자연,제도,습속,비인간성과 부정의,무위도식하던 양반 계급,학대받는 여성의 모습이 있는 그대로 전해져 오는거 같다.

 

 무스 선교사의 눈에 비친 조선의 대지는 아름답고 풍요한 어머니상이며,조선의 백성은 무한한 잠재력을 가진 희망의 아들과 딸들로 여겨지지만,조선을 삼키려는 일본의 야욕에 가증스러움을 느끼고 있다.반면 무스 선교사는 조선의 시골 마을을 기적의 요람으로 삼고 그들에게 따뜻한 복음을 전파한다.무스 부인 역시 남편이 선교활동을 하면 뒤에서 조선의 지역민들의 성직자로 봉사하기도 했다.

 

 '백의민족'이라는 말이 실감이 나도록 조선의 백성들은 남녀노소 할거 없이 흰 광목으로 된 치마,저고리,바지를 입고,상투와 망건,머리 따기를 하던 모습은 영락없는 조상들의 모습이었다.한강,낙동강,대동강의 수로는 조선의 교역에 중심역할을 하고,1904년 제물포항의 모습은 인파로 북적이는데,물자교역이 주로 일본에 의한 것이다.

 

 1만개의 섬,인구는 1,200만(남북한 모두 합쳐),극동 최고의 기후를 예찬하고 있는 벽안의 무스 선교사에게는 평화롭고 순박한 조선 사람들이 일본에게 겪을 갖은 수탈과 탄압 등을 생각하니 가증스럽기 짝이 없었을 것이다.조선 왕조가 왕과 신료들간의 심한 알력과 국권을 제대로 챙기지 못한 소이도 컸고,유교주의에 오래도록 천착되다 보니 백성들의 무지몽매,구태적인 인습 등도 삶의 질을 떨어뜨리지 않았나 싶다.

 

 산을 넘어 장에 갔다 돌아가는 길에 잠시 담배를 피우며 휴식을 취하는 남정네들,모래를 씻어 육안으로 사금을 찾아 내는 사람들,원산지역의 추수하는 모습,다듬이질을 하고 있는 고부간의 모습,초라한 입성으로 절구질을 하고 있는 여자아이의 모습,왁자지껄하면서도 풍성함이 가득찬 시골 장터의 모습,여행객들의 쉼터였던 주막의 풍경,겨울이 오기 직전 김장을 담그는 아낙들의 정겨운 모습 등이 인상적으로 다가왔다.

 

 생계를 꾸려 가기 위해 짚신과 땔감을 팔아야 했고,조혼 풍습이 있어 부모가 짝지어 준 사람과 무조건 혼인식을 올리며,나이가 비록 위라도 결혼을 하지 않았으면 결혼을 하여 나이가 어린 사람일지라도 반말을 해서는 안되던 인습,특별한 교통 수단이 없었기에 몇 십리 길을 짚신을 신고 걷고 뛰던 1900년대의 조선의 모습은 곧 닥칠 일제 강점기의 암울한 전조이기라도 하듯 백성들의 빈한하고 활기없는 모습이 안타깝고 안스럽기만 하다.

 

 선교사로 조선을 택한 저자 무스 선교사 부부의 조선 시골 체험기는 후대를 사는 내게 당대를 이해하고 역사적 교훈을 느끼게 하는 계기가 되엇다.무스 선교사 부부가 만나고 성경을 공부하던 시골 사람들의 열기로 가득찼던 순수한 모습도 인상에 남는다.흑백으로 된 사진이지만 이것을 컬러로 바꾼다 해도 색상은 흰색,흙색,파란색,녹색 정도일 정도로 단순함과 소박함으로 가득차 있지만 그 속에는 아름다움과 풍요로운 어머니의 넓은 마음이 전해져 오는거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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