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쾌적하고 시원하고 조용한 저녁시간이 무척 즐겁다. 코르소 거리는 자정까지 분주하다. 보통 카페는 새벽 두세 시까지 열려 있고, 극장은 새벽 1시 30분까지도 문을 닫지 않는다. 식사는 그 다음에 한다. 물론 나는 아니다. 나는 서둘러 잠자리에 든다. 다음 날 아침 일곱 시까지 바르베리니 궁Palazzo Barberini에 가고 싶어서다. 나는 그곳 사서의 방을 사용하는데 그곳에선 북쪽에서 불어오는 바람을 맞을 수 있다. 내 원고들이 거기 쌓여 있다. 내가 도착하면 나의 필경사가 도착해 문가에서 “좋은 아침입니다Ben levato”라고 인사를 건네며 살그머니 들어선다. 보통 사서의 하인이나 하인의 아내가 내게 와서 “필요한 것 없으세요?Occorre niente?”라고 물으며 시중을 든다. 또한 라치라는 이름의 사서는 정말 훌륭한 사람으로 나를 비롯한 독일인들을 훌륭히 보필한다. 거기서 멀지 않은 곳에 알바니 도서관Biblioteca Albani이 있다. 빙켈만Johann Joachim Winckelmann이 그의 예술사를 저술한 곳이다…나는 다른 두 곳의 도서관도 더 사용하면서 연구에 상당한 진척을 이뤘다. 연구를 하고 있노라면 하루가 얼마나 빨리 지나는지 모른다!*
*같은 책, 194쪽: “Ein grosser Genuss sind die frischen, kuhlen, stillen Abende und Nachte. Bis Mitternacht ist der Corso belebt. Die Cafes sind 2-3 Uhr nach Mittemacht eroffnet. Das Theater schliesst oft erst halb zwei. Dann nimmt man noch die Cena ein. lch naturlich nicht. Ich eile ins Bett; ich mochte gerne des andern Morgens um sieben beim Palast Barberini anlangen. Dort benutze ich ein Zimmer des Bibliothekars, welches die Tramontana hat, wo meine Manuskripte aufgehauft sind. Bald nach mir langt mein Schreiber an und huscht mit einem Ben levato! zur Tur herein. Der Diener des Bibliothekars oder die Frau des Dieners erscheint und bietet mir mit dem gewohnlichen: occorre niente? ihre Dienste an. Auch der Bibliothekar namens Razzi ist wahrhaft gut und hat mir und anderen Deutschen die besten Dienste geleistet.―Wenige Schritte von da ist die Bibliothek Albani, wo Winckelmann die Kunstgeschichte schrieb…Noch zwei andere Bibliotheken besuche ich mit gutem Fortgang. Wie bald ist ein Tag wegstudiert!”
--- pp.57-58「본문 일부와 각주3」중에서
당신이 청한 혹평에 대해: 당신의 글은 확실히 후대에 훌륭한 평판을 누릴 것입니다. 관련 사건들에 관한 한, 나는 당신의 편집자가 되지 않을 것입니다. 열정을 거두고 언제나 진실만을 통찰한다는 것은 누구에게나 너무 어려운 일입니다. 카를 5세와 프랑수아 1세의 역사를 생각해 봅시다. 프랑스인과 독일인은 그 역사에 관해 언제나 다르게 이야기할 것입니다. 그리고 그들은 상대방에게 자신이 진실이라고 생각하며 어떤 대가를 치르더라도 보장하고자 하는 것을 설득하려 들지 않을 것입니다. 나머지도 마찬가지일 것입니다. 특히 당신이 조언에, 지역의 권리에, 전쟁의 원인에, 군주들의 사생활에, 그리고 무엇보다 종교 문제에 관심을 가질 때 그럴 것입니다. 진실은 우물의 바닥에 있습니다. 우리는 우물에서 표층의 물을 떠 마십니다. 특히 우물에서 물을 뜨려고 다른 사람의 증언에 의지해야 할 때는 더욱 그렇습니다.*
*벨저가 드 투에게 보내는 1604년 10월 23일자 편지. BN, Paris, MS Dupuy 632, fol. 74 recto: “De censura quod petis: magna est futura scriptionis ad omnem posteritatem sine controversia commendatio: de rebus, Palaemon ego non sedeo. Nimis quam difficile homini nato affectus exuere et semper recte ad veritatis scopum collineare. Caroli et Francisci exempli caussa historiam, qui non aliter Gallus aliter Germanus narret? Nec unquam alter alteri quod verissimum esse ipse credat et quovis pignore contendat, tamen persuadeat. Iam in ceteris eadem est ratio, ubi praesertim ad consilia, ad iura provinciarum, ad bellorum caussas, ad privatam principum vitam et multo maxime ad caussam religionis ventum. Veritas fere imo puteo latet, nos summam saepe pro ea aquam libamus, aliena praesertim fide, tanquam haustris usi.” 벨저 자신의 학문에 관해서는 다음을 보라. P. Joachimsen, "Marx Weiser als bayerischer Geschichtschreiber [1904/05]," Gesammelte Aufsatze, N. Hammerstein 편 (Aalen, 1970-1983), II, 577-612쪽; R. J. W. Evans, "Rantzau and Weiser: Aspects of Later German Humanism," History of European Ideas, 5 (1984), 257-272쪽.
--- pp.184-185「본문 일부와 각주30」중에서
지난 세기는 심오한 학식과 쉬운 믿음을 지닌 호고가들이 넘쳐났다. 그들은 전설과 전통의, 추정과 어원의 어슴푸레한 빛으로 노아의 자손을 바벨탑으로부터 지구의 극지로 이끌었다. 이들 분별 있는 비평가들 가운데 가장 재미있는 사람의 하나는 웁살라 대학 교수였던 올라우스 루드베크Olaus Rudbeck이다. 이 열정적인 애국자는 역사나 우화에서 찬미되는 것이면 무엇이든 자신의 나라에 귀속시켰다. 그리스인들 자신이 (고대 독일의 상당 부분을 형성했던) 스웨덴으로부터 그들의 알파벳 문자, 그들의 천문학, 그들의 종교를 이끌어냈다는 것이다. 플라톤의 아틀란티스이자 북방인들의 나라이며, 헤스페리데스의 동산이자, 행운의 섬이며 극락정토인, 원주민의 눈에는 그렇게 보이는 그 열락의 지역에 관해서 빈약하고 불완전한 사본 밖에 남아 있지 않지만 말이다. 대자연이 그토록 아낌없이 사랑했던 풍토가 홍수 후에 오랫동안 사막 상태로 남아 있을 리 없었다. 고매한 학식의 루드베크는 노아의 가족이 몇 년 만에 여덟 명에서 2만 명으로 증가하는 것을 허용했다. 그런 다음 그는 그들이 다시 지상을 채우고 인류를 퍼뜨릴 수 있게 소규모 집단으로 흩어놓았다. (내가 잘못 안 것이 아니라면, 야벳의 아들인 고메르의 아들 아시케나지의 지휘 아래 진행된) 독일 또는 스웨덴의 분리는 이 위대한 작업이 실행될 때 통상적인 것 이상의 근면함으로 두드러졌다. 북방의 꿀벌들은 유럽, 아프리카, 아시아의 가장 위대한 지역들로 그 무리를 분산시켰다. 그리고 (그 작가의 은유를 사용하자면) 혈액이 팔다리로부터 심장으로 돌았다.*
*Gibbon, History, 9장; Womersley 편, I, 234쪽. 뤼드벡의 이론에 관한 근대의 취급에 관해서는 다음을 보라. P. Vidal-Naquet, “L’Adantide et les nations,” La democratie grecque vue d'ailleurs (Paris, 1990), 139-161쪽, 특히 152-154쪽. 그리고 G. Eriksson, The Atlantic Vision: Olaus Rudbeck and Baroque Science (Canton, Mass., 1994).
--- pp.239-240「본문 일부와 각주71」중에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