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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딸깍’ 열어주다

‘딸깍’ 열어주다

: 멋진 스승들

성우제 | | 2016년 08월 17일   저자/출판사 더보기/감추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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품목정보

품목정보
발행일 2016년 08월 17일
쪽수, 무게, 크기 276쪽 | 424g | 140*205*16mm
ISBN13 9788982182129
ISBN10 898218212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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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자 소개 관련자료 보이기/감추기

저자 : 성우제
경북 상주에서 태어나 서울에서 자랐다. 양정고와 고려대학교 불어불문학과 및 같은 대학원 석사과정을 졸업했다. 1989년 10월 원源 『시사저널』에 창간 멤버로 입사해 문화부 등에서 13년 동안 기자로 일했다. 출신 학교와 직장에 대해 남다른 자부심을 가지고 있는데, 그것은 순전히 그곳에서 만난 ‘멋진 스승들’ 때문이다. 2002년부터 캐나다 토론토에 살면서 개인 비즈니스를 하고 있으며, 시사주간지와 미술전문지 등에 문화예술 관련 글을 써왔다. 재외동포문학상 소설 부문 대상(2005)과 산문 부문 우수상(2007)을 받았고 펴낸 책으로는 『느리게 가는 버스』(강 2006), 『커피머니메이커』(시사IN북 2012), 『외씨버선길』(휴 2013), 『폭삭 속았수다(제주올레 완주기)』(강 2014)가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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토론토와 나이아가라에서 선생님 가족과 함께한 1박 2일의 여운은 수년이 지난 지금까지도 마음속에 생생하게 살아 있다. 아무리 오랜 시간이 흘러도 지워지지 않을 따뜻한 느낌이다. 나이아가라에서 헤어지면서 선생님과 사모님은 우리 부부를 안아주셨다. 아쉽고 서운해서 마음이 뜨거워지고 눈물이 쏟아졌다. ‘아, 아버지의 느낌이 이런 것이로구나’ 하는 생각이 불현듯 들었다. 친가와 처가의 두 분 아버지가 세상을 뜨신 지 20년이 넘었다. 오랜만에 맛보는 아버지 느낌은 깊고도 묵직했다.--- p.14

“대학원생 불어가 왜 그 모양이야”
학부 1, 2학년 때 다졌어야 할 기초, 바로 그것이 부실하다는 사실을 나도 잘 알고 있었다. 학부 때는 어영부영 넘어갈 수 있었으나 대학원에 오니 문제가 바로 드러났다. 공부를 제대로 하지 않는다고 얼마나 혼이 났는지, 선생님 방에서 나올 때 다리가 후들거렸다. (……) “일단 불어부터 다시 공부해라. 가장 먼저 해야 할 것은 단어 외우기다.”
선생님은 대학원 시절에 당신이 했던 방법이라며 알려주셨다. 놀랍도록 구체적이었다. “빈 명함을 몇 통 사라. 여자용이 작아서 손에 쏙 들어간다.” 한 면에는 불어 단어를, 뒤에는 우리 말 뜻을 적은 다음 그것을 주머니에 넣고 다니며 수시로 꺼내 보라고 하셨다. 거기서 끝난 것이 아니었다. 선생님은 한 발 더 나가셨다. “그거 만들면 내게 보여라.”--- p.29~30

강성욱 선생님

학생들이 발표를 할 때 가장 중요한 것은 역시 ‘따져보기’였다. 선생님은 “공부는 따지는 것이다”라고 말씀하시는 것 같았다. 발표를 할 때는 할 수 있는 한 이것저것 다 찾아보면서 집요하게 따져봐야 했다. ‘여행으로의 초대’라는 시 제목의 번역은 적합한가, 그 이유는 무엇인가, 이 시어는 우리말로 어떻게 옮기면 좋을까, 또 그 이유는? Baudelaire를 우리말로 적을 때 보들레르·보들레에르·보오들레르 가운데 무엇이 가장 적합한가, 그 이유는 무엇인가?
시 한 편을 놓고도 따져볼 거리는 무궁무진했다. 특정 단어 하나의 여러 뜻을 찾아 용례와 더불어 한 시간 내내 발표하기도 했다. 잘 따지려면 사전을 찾을 줄 알아야 했다. 사전도 하나짜리로는 부족해서 과 연구실에 비치된 열 권이 넘어가는 것을 찾아봐야 했다. 그렇게 큰 사전이 있다는 사실을 처음 알고 놀라워하기도 했다.--- p.55

첫 번째 술자리는 소주병이 사람 숫자를 넘을 때쯤 끝났고, 두 번째 자리에서는 간단하게 맥주를 마셨다. 술자리가 끝날 무렵이면 강 선생님이 어김없이 하시는 말씀이 있었다.
“집에 가서 샤워하고 책 보다가 자거라.”
농담이 아니라 진지하게 하시는 말씀이었다. 몇 번이나 그리 해보려고 시도했으나 나로서는 불가항력적인 일이었다. 샤워는커녕 세수만 하고 자도 다행이었다.
선생님은 이런 말씀도 자주 하셨다.
“하루는 자부심을 가지고 그날을 시작하도록 해라. 그 다음날은 나 자신을 겸허하게 돌아보는 것으로 시작하고.”--- p.78

황현산 선생님

우리가 내용을 잘 파악하지 못해 쩔쩔매면 황 선생님은 답답해하는 대신 한 마디 슬쩍 거들어 주셨다. 그것이 열쇠가 되어 잠긴 자물쇠 풀리듯 문제가 해결되는 경우가 많았다. 여러 함축된 의미를 지닌 불어 단어를 우리말로 똑떨어지게 옮길 수 있다는 것이 신기했다. 황 선생님은 그것을 절묘하게 찾아냈다.
영어의 ‘in’에 해당하는 불어의 ‘dans’을 두고 우리 모두가 고민을 했다. ‘~에’로 해도 안 되고 ‘~속으로’라고 해도 말이 되지 않았다. 하나같이 머리를 쥐어뜯는 와중에 황 선생님이 “통해서라고 번역해봐라”라고 말했다. 꼬여 있는 것 같던 불어 문장이 신통하게도 잘 풀렸다.--- p.90

황 선생님은 살갑고 친절했다. 목소리도 다정다감했거니와 후배와 제자 들을 대하는 태도가 남달랐다. 발표자가 준비 부족으로 쩔쩔맬 때도 답답해하거나 지적하지 않고, 적절하게 보완해주셨다. 보완을 해줘도 그것이 너무나 자연스럽게 이루어져서, 발표자가 자존심 상해 할 일은 없었다. 황 선생님은 늘 웃는 얼굴이었으며, 짜증이나 화를 내는 법이 없었다. 우리는 그때 부드러움의 힘을 보고 느꼈다. 그 부드러움은 실력과 자신감, 유연성을 두루 갖춘 데서 연유하는 것이었다.--- p.91~92


김준엽 선생님

자정 넘어 학생회관 건너편에서 스피커 소리가 들려왔다. 처음에는 경찰이 우리에게 경고하는 줄 알았다. 가만히 들어보니 그게 아니었다. 첫 마디를 잊지 못한다.
“사랑하는 학생 제군들. 나, 김준엽 총장입니다.” --- p.……) 총장은 잠시 머물다가 가실 줄 알았으나 그게 아니었다. 그분은 동이 터 올 때까지 그 자리에 그대로 앉아 계셨다. 총장은 “몸조심하고, 아픈 학생 있으면 내보내라”는 말씀을 거의 30분마다 한 번씩 되풀이했다. 반정부 구호를 외치지 말라거나 농성을 풀라는 말씀은 한 마디도 없었다. 밤새 그 자리에 앉아서 경찰로부터 우리를 지키고 계신다는 확신이 들었다. 철야농성이 정기고연전 취소에 대한 항의를 넘어 명백한 반정부 시위로 변했기 때문이다.--- p.115~116

오후가 되자 학교 당국이 경찰과 담판을 지었다는 소식이 들렸다. 김 총장은 몸소 밤을 새워가며 우리를 지켰고 농성 가담자 모두가 무사할 수 있도록 해주었다. 누구를 막론하고 벌벌 떨던 전두환정권 시절이었다. 김 총장은 홀로 거인 같았다.
그 일은 1984년 3월 학원자율화 조치가 시행되기 전 대학에서 반정부 철야농성을 하고도 한 명도 연행되지 않은 거의 유일한 사건이 아닐까 싶다. 김준엽 총장 취임 1년 후에 발생한 그 사건은 그분이 4년 총장 임기를 채우지 못하고 2년8개월 만에 강제퇴임을 당하게 된 발단이 되었던 것으로 보인다.--- p.117

전신재 선생님
우리가 졸업할 때 선생님도 양정고를 떠나 몇 년 후 한림대 교수로 부임하셨다. 우리는 좋아라 하며 춘천으로 내려갔다. 입대한다고, 휴가 나왔다고, 취직했다고, 결혼한다고, 아이 낳았다고, 유학 간다고, 외국에 주재원으로 나간다고 보고 드리러 갔다. 새해라고, 스승의 날이라고, 휴가철이라고 찾아가기도 했다. 이유가 있어서 간 것이 아니라, 일단 가면 이유는 저절로 만들어졌다.
어릴 때나 나이 들어서나 선생님을 만나러 가는 것이 좋았다. “제자들이 온다고 하면 선생님이 마음 설레며 기다리셨다”고 사모님이 전해주셨다. 선생님도 우리와 같은 마음이었으니, 제자들과의 만남이 35년이 넘도록 지속되었을 것이다.
선생님은 문예반 지도 교사로서 처음 어린 제자들을 만나, 평생 지도 교사가 되어주셨다. 우리는 그런 스승을 모시고 산다는 사실을 늘 뿌듯해하고 자랑스러워했다. 선생님은 우리가 10대 어린 학생이었을 때나, 50대 장년이 되었을 때나 한결같이 대해주셨다.--- p.127~128

교장은 4면짜리 고교 신문까지 폐간되는 마당인데, 수백 명이 모이는 문학발표회는 더 큰 문제를 만들 수 있으니 행사를 취소하라고 했다. 전 선생님은 강경한 교장을 오랫동안 설득했다.
“여름부터 아이들이 정성을 다해 준비해 왔다. 초대장을 들고 오는 다른 학교 학생들도 많다. 문제가 생기면 내가 전부 책임지겠다.”
문제가 발생했을 때, 당시 삼엄한 시국 분위기를 감안하면 지도교사가 사표를 내는 정도로 끝날 일이 아니었다. 무대에 선 어린 제자들이 한 마디만 삐끗 잘못하면 지도교사가 모처로 끌려가 고초를 겪을 수도 있는 시절이었다. 제자들에 대한 선생님의 믿음과 배포가 없다면 생각조차 할 수 없는 일이었다.
선생님은 학생들이 중심이 되어 진행하는 문예반의 전통적인 행사에 대해서는 이렇게 지원을 하며 울타리가 되어 주셨다. 문예반 지도교사로서 선생님이 새로 기획하신 일은 따로 있었다. 가장 중요한 일은 교지 편집이었다. 물론 형식적으로야 문예반원들이 편집하는 것으로 되어 있으나, 실상은 기획에서부터 인쇄에까지 모든 일은 지도교사의 몫이었다. 우리는 선생님을 도와드렸을 뿐이다.
전 선생님은 교지에 게재할 것을 염두에 두고 우리에게 공동 연구를 하도록 지도하셨다. 대학입시와는 전혀 상관없는 ‘진짜 공부’였다.--- p.140~141

안병찬 선생님
안 주간은 취재 기자들이 ‘의자에 엉덩이 붙이고 앉아 있는 꼴’을 보지 못했다. 엉덩이가 무겁다며 들들 볶아서 바깥으로 몰아내는 데 취미를 붙인 것 같았다. 그분은 ‘게으름은 전파된다’고 믿고 있었다. 그럴 기미가 조금이라도 보이면 무섭게 몰아붙였다. “혀 빼물고 개 뛰듯” 뛰어다니는 기자들은 두고두고 칭찬했다. --- p.……) 들볶이는 것은 취재 부서만이 아니었다. 안 주간은 내근 부서도 그냥 두고 보는 법이 없었다. 당시로서는 ‘우리를 괴롭히려고 날이면 날마다 연구하는 사람’ 같았다. 그분은 최종 마감 교정지를 단신까지 한 자도 빼지 않고 읽었다. 이미 마감이 끝나 인쇄소에 보낸 기사의 교정지를 뒤늦게 보고는 고치라고 할 때도 있었다. 그럴 때면 제작부서 기자들 입에서 “아~” 하고 탄식이 흘러나왔다. “대세에 지장 없는 사소한 것이니 그냥 갑시다”라는 소리는 처음에는 하지 못했다.--- p.166~167

그러던 중에 그분을 내 기자생활의 스승으로 생각하게 한 계기가 있었다. 님 웨일스의 『아리랑』 주인공 김산에 대해 취재하라는 명령이 떨어졌다. 내 생애 첫 번째 해외출장이었다. 그 아이템이 1993년 추석 합병호 커버스토리로 갑자기 결정되는 바람에, 시간이 그리 많지 않았다. --- p.……) 안 주간은 김산의 행적을 님 웨일스가 아닌 우리 시각으로 찾아보겠다는 생각을 가지고 있었던 모양이다. 그분은 나더러 베이징과 옌벤 등에 가서 김산의 흔적을 찾으라고 했다. 『아리랑』에 나오지 않은 김산의 행적을 발굴해 오라는 내용이었다. --- p.……) 나는 안 주간이 떠미는 대로 2주 동안 정신없이 뛰어다녔다. 바로 그 첫 번째 해외 출장을 통해 나는 기자로서 부쩍 성장했다는 느낌이 들었다. 취재하고 기사를 쓰면서 자신감이 붙었다. 그와 동시에 안 주간의 ‘잔소리’도 잦아들더니 어느 때부터 거의 들리지 않았다.--- p.179~187


김훈 선생님

김국은 회사에서 벌어지는 비루한 꼴을 그냥 보아 넘기지 못했고, 사직서 제출이라는 가장 극단적인 방법으로 자기 의사를 표시했다. 김국이 못 견뎌했던 특정 사안에 대해 후배들 역시 못 견뎌하기는 마찬가지였다. 자기 밥줄을 끊어가며 항의하는 선배를, 그 항의에 공감하는 후배들이 되돌아오게 하려고 애를 쓰는 것은 당연한 일이었다.
김국은 윗사람들과는 불편하게 지내고, 후배들과는 편안하게 지내는 스타일이었다. 그런 까닭에, 그 연배로는 드물게 편집국 후배들과 많은 대목에서 공감대를 형성하고 있었다. 쉽게 말하면, 말 잘 통하는 선배였다. 새로운 매체인 『시사저널』 기자라는 직업인으로서의 기본적인 태도 및 자세와 관련해 말이 잘 통했다. 우리 회사 특유의 기자 문화가 있었는데, 김국은 그 문화에 공감하고 함께 만들고 때로는 이끌어주던 선배였다.--- p.199

김국은 선배로서 한솥밥을 먹으면서도 후배들, 최소한 나 같은 후배를 가르치려고 하지 않았다. 그 대신 글로든 행동으로든 그는 본인 스스로 무엇을 보여주었다. 특히 비루하고 비겁한 꼴은 보아 넘기지 못했다. 그 세대 선배 중에 비루한 것을 비루하다고 내놓고 말한 거의 유일한 분이었다. 때로는 너무 직설적이어서 우리를 당혹스럽게 만들기도 했으나, 은연중에 후배들에게 큰 영향을 끼친 것이 있었다. 최소한 나는 그렇게 생각한다. 그가 말했던 바로 이것.
“타협할 수 없는 것과 타협하지 않았다는 것.” --- p.217~218

박이추 선생님
커피교실에 나가기 시작하면서 나로서는 이해가 안 되는 것이 하나 있었다. 보헤미안 주인은 커피교실이 열리는 시간이면 커피교실 ‘학생’들을 일반 손님보다 우대했다. 음악을 껐고, 손님에 대한 서비스보다는 커피교실에 더 열중했다. 커피교실 강사로 직접 나서기도 했다. 누가 커피교실 열어달라고 의뢰한 것도 아니고 커피교실로 수익이 생기는 것도 아닌데, 커피와 커피에 관한 지식·정보까지 제공하면서 왜 그렇게 정성을 쏟을까 싶었다.
커피교실에서 만나 ‘사장님’이 아닌 ‘선생님’으로 부르는 것이 더 자연스러울 무렵이 되어 나는 평소 궁금해 했던 것에 대해 물어보았다.
그때 두 가지 이야기를 들었다. 그분이 커피와 인연을 맺고 살아온 내력과 커피의 좋은 점을 세상에 알리고자 하는 꿈에 관한 이야기였다. 박이추 선생님은 커피에 대해 이렇게 말했다.
“커피에는 사람의 정신을 일깨우는 에너지가 들어 있다. 그 에너지는 사람에게 활력과 생기를 만들어준다.”
나는 활력과 생기를 만들어준다는 말이 좋았다.--- p.233

“이제 좀 편히 사시지, 왜 쉽지 않은 일을 새로 시작하려 하느냐”고 물었다. 박 선생님은 말했다.
“나는 늘 꿈을 꾸었다. 꿈을 실현하기 위해 하나씩 하나씩 준비하는 삶을 살아왔다. 그렇게 사는 것이 제대로 된 삶이 아닌가, 나는 그렇게 생각한다.”
그분이 꾼 꿈들은 현실로 옮기기에 거의 불가능해 보이는 것들이었다. 서울에서의 기득권을 모두 포기하고 강원도로 터전을 옮긴 것 하나만 봐도 그렇다. 돈을 목적으로 하는 비즈니스와는 거리가 먼 행보였다. 그러나 그분으로 인해 강릉이 커피 도시로 변모했듯이, 그분이 새롭게 꿈꾸는 커피 협동농장도 좋은 결실을 맺을 수 있으리라 나는 믿는다. --- p.249~250

김종성 선생님
선배님은 비즈니스를 운영하면서 남들이 갖고 있는 성실함과 적극성, 창의적인 사고 외에 남다른 덕목을 하나 더 가지고 있었다. 발상의 전환 혹은 통념 깨기이다. 나는 성공의 키워드인 바로 이것을 배워야 했다. 선배님은 보통 사람들이 비즈니스를 하면서 갖게 마련인 통념과 습성을 깨고, 사안에 역으로 접근하기도 했다.
통념대로라면 가게에 오는 손님은 왕이다. 그러나 나는 모든 손님을 왕으로 여기지 않는다. 이를테면 ‘진상’이나 말썽쟁이들의 경우, 그들을 손님으로 여겨 괴로움을 자초하는 것보다는 가게 밖으로 빨리 내보내는 것이 최선이다. 그들에게 끌려다니며 에너지를 소모하는 대신손님다운 손님에게 서비스를 집중하는 것이 훨씬 더 ‘남는 장사’이기 때문이다.
거래처에 대해서도 마찬가지이다. 소매업자는 도매회사의 손님이다. 손님들은 대접을 받고 싶어하게 마련이다. 그러나 선배님은 그 반대로 했다. 손님이면서도 도매회사 직원을 오히려 귀한 손님 대하듯 했다. 그렇게 해서 좋은 관계를 맺으면, 좋은 물건을 좋은 조건에 남들보다 한 발 먼저 구할 수 있다. 거래처가 선배님 같은 최상급 손님에게 갖가지 혜택을 주는 것은 자연스러운 일이다. ‘없어서 못 파는 물건’은 다 팔리기 전에 따로 빼놓았다가 주기도 하고, 잘 팔릴 만한 신상품이 들어오면 가장 먼저 연락을 해온다. 가격 또한 남들보다 조금이라도 낮춰준다.--- p.266~267

나는 선배님 가게의 운영 시스템을 하나에서 열까지 우리 가게로 그대로 옮겨왔다. 선배님 가게에서 이미 검증된 것인 만큼 새로운 가게에서도 시스템은 잘 돌아갔다. --- p.……) 가게는 첫날부터 손님들로 붐볐다. 프랜차이즈가 아니면서도 새로운 가게가 마치 오래 된 가게처럼 움직이니 손님들은 편안해 했다. 2006년 4월이었다. 캐나다에 살러온 지 4년 만이었다. 나는 마치 대학을 졸업하고 좋은 직장에 취직한 것만 같았다. 나는 가게 문을 열고 밥벌이를 하면서 토론토에 비로소 뿌리를 내렸다는 기분이 들었다.
우리 가게를 열고 10년이 넘는 세월이 흘렀다. 선배님 내외분은 처음 만났을 때나 지금이나 변함이 없다. 예나 지금이나 두 분은 여전히 우리에게 은인이자 스승이자 이민생활의 롤 모델이다.
--- p.272~27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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