통일법칙의 구체적 내용을 다루기 전에 먼저 지적해야 할 것이 있다. 우리 사회에는 통일과 관련된 몇 가지 편견이 존재하는데 이들이 사실에 기초하고 있지 않다는 점이다.
첫째, 냉전의 해체 등 국제정치적 요인, 즉 외부적 요인으로 인해 통일이 된다는 편견이다. 이는 통일의 계기가 된 냉전 해체 등의 외부적 요인을 통일의 동력으로 오해한 데서 비롯되었다. 1980년대 후반 미소 중심의 냉전체제가 무너지면서 독일과 예멘이 통일되었는데 이는 저절로 된 것이 아니었다. 오랜 기간의 교류협력 과정에서 신뢰가 쌓였고 국력이 약세였던 동독과 남예멘 국민들이 통일을 원했기에 가능했던 것이다. 동서독과 남북예멘의 통일은 민족당사자들끼리 먼저 통일 합의를 하고, 그 다음에 주변국들의 이해와 협조를 구하는 방식으로 진행되었다. 냉전이 최고조에 이르렀을 때 통일을 이룬 베트남과 냉전구도가 완전히 무너진 1990년대 초반 통일은커녕 남북관계가 악화되었던 남북한의 사례를 보더라도 통일의 동력은 국제정치적 요인에서 나오는 게 아님을 알 수 있다. 한반도는 지정학적 요충지에 자리하고 있고 주변 강대국들의 이해관계 속에서 분단되었고 따라서 통일도 민족 내부 요인보다는 국제정치적 요인이 더 중요하다는 담론은 수순이 뒤바뀐 것이다. 민족 내부의 통일에 대한 열망과 통일합의가 먼저이고 그 다음에 주변국들의 이해와 협조를 구하는 것이 통일 과정의 올바른 순서이다.
둘째, 군사력, 경제력 등 국력을 키우면 통일이 저절로 찾아온다는 편견이다. 이는 국력은 통일의 필요조건 중 하나에 불과하다는 사실을 간과한 물질 중심의 사고에서 비롯된 것이다. 독일, 예멘 등의 통일 과정을 보면 물질적인 국력 격차와 함께 관념적인 민족공동체 의식과 통일 열망이 국제정치적 환경변화를 계기로 통일을 이룩했던 요인이었다. 이미 남북한 간에 경제력, 군사력 등에서 큰 격차가 존재하는 상황에서 교류협력은 도외시한 채, 남북 간 반목과 적대관계를 지속시키고 경제력 격차를 늘리고 군사력을 증강하는 것은 통일을 추구하는 한국정부의 올바른 정책이 될 수 없다.
통일이 희망입니다!
IMF, OECD, UN, BIS(국제결제은행), ECB(유럽중앙은행) 등 국제기구들이 공동으로 작성한 G20 주요 경제지표에 의하면 2009년 한국의 GDP에서 수출이 차지하는 비중이 43.4%로 세계 1위, 수입이 차지하는 비중도 38.8%로 세계 1위이다. 경제활동의 82.2%가 무역과 관련되어 있고 순수 내수경제는 고작 17.8%에 불과하다. 이에 비해 미국은 수출비중이 GDP의 7.5%, 수입비중은 11.4%이며, 대표적 수출국가인 일본도 수출 비중은 GDP의 11.4%, 수입 비중은 10.8%로 무역보다 내수경제 비중이 절대적으로 크다. 글로벌 시대라며 세계만 바라보고 달렸지만 미국의 경기침체, 유로존의 재정위기 악화, 중국의 경제성장률 하락 등 세계경제가 침체된 상황에서 한국경제의 높은 대외의존도는 지속가능한 경제에 걸림돌이 되어 버렸다.
암울한 상황을 헤쳐 나갈 돌파구는 없을까?
통일이 희망이다!
남북한경제가 통합되고, 북한에 점진적으로 자본이 투입되면 한반도 잠재성장률은 2021~2030년 4.05%, 2041~2050년 2.2%를 유지할 수 있다고 한다. 북한 개발이 잠재성장률 추락을 막는 성장엔진인 셈이다. 고령화의 정점을 향해 달리고 있는 남한의 인구문제도 상대적으로 젊은 인구가 많은 북한과의 통일을 통해 자연스럽게 상쇄될 것이므로 통일은 곧 젊은 한국의 역동성을 창출할 수 있는 계기가 된다. 남북의 경제는 상호 보완적이다. 남한에는 자본과 뛰어난 기술이 있고, 북한에는 광물자원과 엄청난 예비 노동인력이 있다. 7,000조 원에 달하는 북한 자원, 안보위기 해소로 인한 투자 증대, 국방비용의 감소, 내수경제 증대로 인한 경제성장률 제고 등 남북경제협력의 파급효과는 무궁무진하다. 2009년 9월 세계적 투자자문회사인 골드만삭스(Goldman Sachs)는 세계경제전망보고서에서 2050년께 통일한국은 일본과 독일을 능가하는 경제규모를 갖게 될 것이라고 발표했다. 그 근거로 북한의 우수한 노동력과 풍부한 지하자원, 남쪽의 기술 및 자본력 그리고 시너지 효과에 따른 생산성의 비약적인 향상 등을 꼽았다.
한국의 공적해외원조(ODA) 금액이 2012년부터 10억 달러를 넘기 시작했다. 이 금액은 국민총소득(GNI)의 0.1%에 해당되는 수준이다. 정부는 2015년까지 OECD 평균 수준인 GNI의 0.25%까지 증액하겠다고 발표하였다. 정부 차원에서 저개발국가에 지원하는 ODA 중 일부만 북한에 돌려도 북한경제회생에 큰 도움이 된다. 대표적 저개발국가인 북한을 돕는 것은 ODA의 명분을 충족시키는 일이기도 하다. 남북한의 협력이야말로 남과 북 모두가 승자가 될 수 있는 기회인 것이다.
통일은 민족의 에너지를 용솟음치게 하여 ‘한강의 기적’으로 불렸던 1960~1970년대 경제발전 이상의 새로운 위업을 만들어낼 가능성이 크다. 21세기의 ‘한류’가 1987년 민주화로 인한 사회적 활력이 세계화?정보화의 물결에 올라탄 화학작용의 결실이란 점을 감안하면 더욱 그렇다.
통일의 구심력은 ‘민족공동체 의식’과 ‘물질 유인(incentive)’으로 이루어진다. 민족공동체 의식은 관념적 요인으로서 역사와 문화를 공유하면서 교류를 통해 길러지며, 물질 유인은 각종 협력을 통해 긴밀한 경제적 관계를 맺는 과정에서 발생한다.
분단국이 통일되는 데는 민족성에서 비롯되는 통일의 구심력이 국가성에서 발생하는 통일의 원심력보다 커야 한다. 하나의 민족은 하나의 정치공동체를 갖고자 하는 열망이 있다. 분단국의 양측 주민들은 역사와 문화를 같이 했던 동족이기 때문에 하나의 민족이라는 데서 비롯되는 통일의 구심력이 존재한다. 따라서 분열되어 있을 경우 하나로 되기 위한 강한 동력을 지니게 마련이다.
이에 반해 분단으로 생긴 두 개의 국가는 분단 과정에서 형성된 물적, 인적 기반으로 인해 그 상태를 유지, 강화시키려고 하며, 그에 필요한 이데올로기적 자기 정당화의 기제를 만들게 된다. 더욱이 두 국가가 적대적 체제경쟁을 할 경우에는 더할 것이다. 따라서 두 개의 국가가 존재한다는 것은 통일에 대한 원심력으로 작용하게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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