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검은 수건을 목에 걸고 피자 가게 ‘레드아이’의 주방에서 막 구워 낸 피자의 한 조각을 집어 든 채 매장 뒤편에 있는 야외 테이블로 나가 자리를 잡았다. 따듯한 햇살이 기분 좋게 닿았다. 그때 주방으로 통하는 문이 확 열리며 가게 사장인 주장서가 모습을 드러냈다. 그는 인상을 잔뜩 찌푸린 채 큰 소리로 말했다.
“야! 주방에서 아무거나 집어 먹지 말랬지! 이거 15분 내로 배달 나가야 되는데 어떻게 할 거야! 어떻게 할 거야!”
“한 조각 값 빼고 받으시면 되잖아요.”
“그게 말이 돼? 저 주둥이를 확!”
장서는 도검의 손에 들려 있는 피자가 아직 먹기 전이란 걸 확인하고는 확 빼앗았다.
“한 번만 더 이딴 짓 했다가는 피자 똥을 싸게 해 주마. 알겠어?”
“지금 제가 만졌던 걸 팔겠다는 거예요?”
장서는 뭐가 문제냐는 듯 어깨를 으쓱해 보이고는 주방으로 들어갔다. 잠시 후에 장서가 피자 한 조각을 입에 물고 도검 앞에 앉았다.
“아저씨 그거 어디서 났어요?”
“아까 그거.”
도검이 황당한 표정으로 바라보았지만 장서는 전혀 개의치 않고 말을 이었다.
“반반 메뉴 새로 만들었다. 반응이 좋더구만.”
“언제 만드신 거예요?”
“1분 전에. 그건 그렇고, 너 뭔 일인데 어제 저녁에 나가더니 이제 기어 들어와?”
“일이 있었어요.”
도검을 바라보던 장서가 테이블을 탁 치며 말했다.
“너 또 공짜 일 했지?”
“의뢰비로 통장을 통째로 받았는데, 돈이 뭐 얼마 안 들어 있어서 기부를 좀…….”
“이거 미친 거 아니야? 지금 우리 통장에 얼마나 들어 있는 줄 알아? 기부를 하려면 나한테 해, 나한테!”
도검은 주머니를 뒤적거리더니 몇 개의 통장을 테이블 위에 올려놓았다. 장서는 손이 잘 보이지 않을 정도의 속도로 통장을 펴 보았다. 그러고는 잠시 호흡을 멈췄다.
“10, 10억!”
--- p.17
“처음이니까 이해해 줄게. 털어놔 봐. 몇 개월인 거냐?”
“며, 몇 개월이라뇨?”
“마! 고민 있으면 이 아저씨하고 의논하기로 했잖아. 아직 초기면 산모 무리 없이 수술도 가능하니까.”
“뭐, 뭘 해요?”
이번엔 형준이 나서서 말했다.
“그렇게 극단적으로만 생각하지 말자고. 낳아서 키우는 것도 하나의 방법이잖아?”
도검은 어이없는 표정으로 말했다.
“두 사람 머릿속에 든 내용물이 똑같네, 똑같아. 아니 어떻게 22세하고 47세하고 생각하는 게 똑같을 수가 있죠? 아까 그 여자는 죽은 의뢰인의 여자친구라고요. 알겠어요?”
장서는 더욱 놀랐다.
“남의 여자를 임신시켰단 말이야? 이런 개 같은…….”
도검이 테이블을 내리치며 말했다.
“적당히 하세요, 적당히!”
하지만 장서도 지지 않고 말했다.
“말이 되는 소리를 해라, 자식아! 왜 남의 애인이 너한테 와서 우냐고! 그것도 눈물 콧물 다 흘리면서!”
“죽은 친구가 제게 부탁을 한 게……. 잠깐, 두 사람이 맘대로 상상한 삼류 시나리오를 내가 왜 해명을 해야 하는 건데?”
형준은 당연한 듯 대답했다.
“해명을 안 하면 나하고 아저씨는 평생 형을 그렇게 생각할 테니까.”
도검은 눈을 감고 호흡을 크게 하며 홀에서 탄산음료를 마시고 있던 여고생 두 명에게 말했다.
“어이 학생들, 선지해장국 먹을 줄 아나?”
도검에게 불린 여고생은 피자를 입에 문 채 그대로 얼어 버렸지만 개의치 않고 말을 이었다.
“딱 6분만 주면 저 사람들 혀를 뽑아서 해장국 두 그릇 금방 만들어 줄 수 있는데, 한 그릇 할 생각 있나?”
여고생들은 조심스럽게 자리에서 일어나 밖으로 도망쳐 나갔다. 형준은 정색을 하며 말했다.
“이젠 여고생까지?”
도검은 죽일 작정으로 형준에게 손을 뻗었지만 형준의 동작이 한발 앞섰다. 쫓아오는 도검을 보며 형준은 속도를 더욱 높여 달리기 시작했다. 걸레를 들고 밝게 웃으며 거리를 달리는 형준의 모습에 행인들은 옆으로 비켜 길을 터 주었다.
--- p. 214~215