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개월 후 가도 좋다는 허락이 떨어졌다. 마냥 신나 있던 나와 동생을 앉혀놓고 아빠는 엄숙하게 입을 열었다.
“너희는 아직 어리지만, 너희의 의견을 존중해서 보내주기로 한 거다. 단, 조건이 있다. 아빠는 외화 낭비하는 꼴은 절대 못 보니, 가면 무조건 1등을 해야 한다. 반에서 1등, 학교에서 1등, 그리고 대학도 고등학교도 최고로 좋은 곳에 진학해야 한다. 그 약속을 지키지 못할 거라면 지금이라도 가지 않겠다고 말해.”
나와 동생은 눈을 맞추며 살짝 고민해보았지만, 놀기만 하는 아이들의 모습이 떠올라 ‘에이, 뭐 설마 한국보다 힘들겠어?’라고 생각하며, 걱정 말라고 꼭 잘하겠다고 아빠에게 말했다.
“알았어, 아빠. 대신 우리도 조건이 있어. 앞으로 우리가 알아서 할 테니까 성적표 보여 달라고만 하지 마.”
뭔가 말도 안 되는 조건이었지만, 아빠는 심각한 표정으로 생각에 잠겼다. 그러더니 이윽고, “그래, 약속할게. 대신 너희도 약속 지켜라.”
--- p.129, Part 4_Family: 가족 이야기 '믿어주는 아빠' 중
어쩌면 누군가는 ‘학교 편력’이라고 오해할 수도 있겠다. 하지만 사실 이런 진로의 변화들은 어떤 삶을 살아갈지에 관한 나의 방황과 고민의 결과다. 일단 정한 전공이라는 이유로 거기에 인생을 맞추고 싶지는 않았다. 내가 좀 더 즐겁게, 잘할 수 있는 일을 찾고 싶었고 또 호기심이 가는 분야를 공부하고 싶었다. 나는 언젠가 내가 학교를 통해 배우고 경험한 이 모든 학문이 유용하게 쓰일 것이라 믿는다. 인생은 미술만으로, 수학만으로, 음악만으로 살아갈 수 없기 때문이다. 인생을 더 입체적으로 살아가기 위해서는 음악, 미술, 수학, 마케팅, 경제학은 물론이거니와 그 이상의 것이 필요하니까.
--- p.6, Part 1_School: 서동주의 스쿨라이프 프롤로그 중
내 책상의 왼쪽에는 키보드, 의자 뒤에는 기타, 오른쪽엔 스케치북이 놓여 있다. 밤새워 공부하다 졸리거나 내용이 머릿속에 입력되지 않으면 의자를 돌려 키보드 연주를 한다. 좋아하는 쇼팽의 왈츠를 치며 잠을 깨고 나서도 더 쉬고 싶을 땐 기타를 든다. 기분 나는 대로 코드를 짚으며 흥얼거리며 곡을 만든다. 그렇게 만들어진 멜로디를 쓰던 공책 한 귀퉁이에 흘려 적고, 전에 써놓았던 가사가 있다면 거기에 음을 붙여본다. 가끔 그림을 그리며 쉴 때도 있다. 쓰던 펜으로 공부하던 노트 한쪽에 그릴 때도 있고, 컴퓨터에 연결된 패드에 그릴 때도 있다. 전에 찍어두었던 사진들을 정리하거나 편집해서 영상을 만드는 것도 내게는 휴식이다. -(중략)- 나를 포함하여 대다수의 사람들이 가진 집중력이란, 길어봤자 2시간 정도이기 때문에 그 시간이 지나고 나면 자꾸만 딴생각을 하게 된다. 이건 의지로 해결할 수 있는 문제가 아니다. 그럴 때, 머리를 식힌다는 이유로 친구들을 만나 밥을 먹거나 수다를 떨면 애초에 정해놓은 시간을 훌쩍 넘기기 일쑤다. 그래서 혼자 할 수 있고, 스트레스 해소에 도움이 되며, 웬만하면 앉은 자리에서 할 수 있는 취미들은 정말로 힘이 된 다. 적어도 내게는 그랬다.
--- p.12, Part 1_School: 서동주의 스쿨라이프 '특별한 공부법은 없다' 중
그런 내가 MIT에 입학한 후 가장 놀랐던 것은 밥 먹는 것을 잊을 정도로 공부에 열중하는 학생들의 모습이었다. 하루 종일 강의를 듣고 집에 돌아오는 길에 만난 친구에게, “피곤하다, 그렇지? 점심은 먹었니?”라고 물어보면, “아, 까먹고 있었어. 어쩐지 배가 고프더라.”고 웃는 경우가 많았다. 내 주변뿐 아니라 MIT 전체를 놓고 봤을 때도 밥을 먹는 것이나 잠을 제대로 챙겨 자는 것에 큰 의미를 두는 학생들을 찾아보기 힘들었다.
--- p.31, Part 1_School: 서동주의 스쿨라이프 '잘 먹고 잘 자자고 하는 공부?' 중
세상 사람들이 생각하는 아빠의 이미지는 권위적이고 자만심 가득한 모습일지 몰라도, 내게 아빠는 잔정도 많고 여린 데다 누구보다 사랑이 넘치는 분이다. 유학 간 딸내미가 보고 싶으셨는지, 아니면 외지 생활이 걱정되셨는
지 아빠가 수화기에 대고 하는 말은 늘 비슷하다. “공부는 그만하고 집에 와!” 그런 아빠니, 내가 한국에 들어가거나 미국으로 떠날 때마다 공항으로 오시는 것도 가능한 것이겠지만. 새벽 5시이건 밤 12시이건 관계없이 달려오신다. 회사 일이나 녹화가 밀려 밤을 새우는 한이 있더라도 말이다.
--- p.125, Part 4__Family: 가족 이야기 'Love is action!' 중