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자에게서 빈자로 소득재분배가 되면 소비가 증가할 것이라고 보는 가설은 케인스의 절대소득가설이다. 따라서 케인스 이론은 복지국가와 상당한 친화성을 지녔다. 케인스 자신은 직접 이러한 정책적 권고를 하지 않았으나 그의 이론 체계는 소득재분배와 복지국가를 지지하는 성향이 있다. --- p. 32
뮈르달은 인구 위기가 좁은 주거 환경, 부적절한 영양, 나쁜 건강 상태, 실업, 경제적 불안정 등 모든 문제와 관련이 있기 때문에 인구 위기를 해결하기 위해서는 총체적인 사회정책적 접근이 필요하다고 보았다. 노동시장, 주거, 식사와 건강 등이 모두 관련되어 있다는 인식은 복지가 어떤 정책보다 포괄적이고 광범위한 접근을 필요로 한다는 인식에 토대를 두고 있다. 건강한 가족과 건강한 사회는 평등하고, 또한 사회적 위험에서 벗어나 일과 가족생활을 즐길 수 있을 때만 가능하다는 것이었다. --- p. 56
한국의 인간관계는 복지에 긍정적 영향을 미치지만, 정의에는 부정적 영향을 미친다. 서양에서 정의가 복지의 필요조건이라면 한국에서는 정의와 복지가 충돌하는 경우가 많다. 정의와 복지를 함께 추구하려면 인간관계를 시민정신과 결합시켜야 한다. 또한 그렇게 해야 단순한 화목이나 복이 아니라 진정한 인간관계와 복지가 생겨날 것이다. --- p. 112
마셜은 자본주의, 민주주의, 복지제도의 모순적 결합을 인정하는 ‘복합연결사회’를 지향한다. 자본주의는 불가피하게 불평등을 만들고 민주주의는 평등을 지향하는데, 이러한 대립적 가치는 복지제도를 통해 공존할 수 있다. ……마셜은 복지국가가 하나의 이데올로기에 의해 창조된 것이 아니라 상이한 정치 세력의 타협으로 만들어진 것이라고 주장했다. 그는 영국 복지국가의 정치철학이 “혼동의 분위기”에서 등장했다고 표현했다. 실제로 모든 복지국가는 다양한 정치 세력이 경쟁하고 갈등하며 타협하는 정치적 영역에서 형성되었다. --- p. 143
하이에크의 입장에서 보자면, 부분적인 계획도 자유를 억압하기는 마찬가지다. 부분적인 계획이 실시되면 정보와 지식의 부족으로 인해 각종 문제와 부작용이 초래될 수밖에 없는데, 이때 중앙계획 당국은 계획의 확대를 통해 이 문제를 해결할 수 있다는 환상과 함께 모든 시장을 포괄하는 수준으로까지 통제를 강화하게 된다는 것이다. 즉, 사회와 경제의 계획화가 단번에 전면적으로 이루어지지는 않더라도 점차적으로 진행?누적된다면 전체주의적 체제가 출현할 가능성이 크다고 보았다. ……복지국가의 이름으로 추진되는 각각의 정책은 결코 전체주의적이지도 집산주의적이지도 않지만, 그 정책들이 누적되어 상호작용을 일으키면 최종적으로는 전체주의로 변질될 가능성이 높다고 보았다. --- p.160
롤스의 정의론은 복지국가 정당화 논리로 충분히 활용될 수 있는데, 그가 내세운 정의의 원칙은 개인이 이타적이거나 사회적 약자에 대해 온정주의적 태도를 가진다는 가정에서 도출된 것이 아니다. 공정성을 보장해주는 ‘무지의 베일’ 상황에서 합리적으로 자기와 후손의 장기적 이익을 추구하는 사람들이라면 자신이 제시한 정의의 원칙에 합의할 수 있으리라고 보았다. ……롤스적 관점에서 보면 자본주의 사회에서 복지국가의 건설이란 이미 정의라는 기본 가치가 실현된 이후에 다른 아름다운 가치들을 추가하려는 것이 아니라 정의라는 기본 가치의 실현에 다가가기 위한 일이다. 복지국가를 정의의 이름으로 정당화할 수 있다는 것은 복지국가와 공존하지 않는 자본주의 사회는 정의롭지 않다고 판단한다는 것을 의미한다. --- p.200, 210
센이 현실론으로 나아가게 된 데는 롤스의 이상론에 대한 비판과 함께 인간의 다양성과 이질성에 대한 센의 판단이 놓여 있으며, 그의 ‘능력’ 개념이 중요한 이유도 바로 여기에 있다. 그는 사회정의 관점에서 가치 있다고 평가하는 것을 추구할 수 있는 실질적 자유가 가장 중요하다고 주장하면서, 이러한 자유를 선택하고 확보할 수 있는 가능성을 능력으로 정의한다. 그는 이 개념을 통해 인간의 다양성과 이질성을 고려하면서 자유와 평등의 조화를 모색한다. --- p. 220
개별화된 지식을 활용해 개별화된 돌봄을 수행함으로써 개인들의 복종을 이끌어내는 교묘한 통치 테크닉이다. 복지국가가 제공하는 개별화된 돌봄은 국가가 제공하는 지식과 규율에 대한 일상적 내면화와 복종을 암묵적으로 요구하게 되는데, 이것이 곧 국가의 권력 테크놀로지이며 통치 테크닉이다. ……통치성의 관점에서 보면 ‘복지국가 체제’나 ‘신자유주의 체제’나 개별화하는 권력이 작동한다는 점에서는 현대 국가의 통치형식들이라고 규정할 수 있다. 그러나 복지국가가 개별화된 돌봄을 추구한다면 신자유주의는 개별화된 자기 책임을 부과한다. 그런 점에서 통치성의 차별적 형식들에 주목해 바람직한 새로운 주체성의 형식을 사고하는 것이 필요하다. --- p. 259, 274
가장 고질적인 복지의 병폐로 지적되는 ‘복지 의존’과 ‘복지모’는 결국 성별 측면에서 여성이 더 많이 감내해야 하는 부정적 낙인이 되고 있다. 남성 생계 부양자 모델에 기반을 둔 복지 체제로 인해 독립적 시민으로서 사회권을 갖지 못한 기혼 여성은 결국 남성 의존을 벗어나더라도 국가의 복지에 의존해서 살아야 하는 이등 시민이 되고 있다. --- p. 309
복지국가의 위기 혹은 재편에 관한 논의는 사실상 체제로서 복지국가의 지속 가능성에 관한 논의에 불과하다. 다시 말해 복지국가가 근본적(선언적)으로 지향하는 목표인 행복 추구, 불평등 해소, 빈곤 해결 등을 효과적으로 달성하는 데 실패하고 있다는 성찰에서 비롯된 것이라기보다는, 정치경제적으로 안정적인 상태를 달성한 복지국가 체제를 신자유주의 이데올로기의 지배하에서도 유지할 수 있느냐를 반성하는 것이 그 핵심이라고 할 수 있다.
--- p. 337