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리우스는 어리고 건강했다. 코펜하겐 동물원 측은 이 기린을 ‘처리했다’고 말함으로써 자신들이 마리우스를 죽였다는 느낌을 덜어버렸다.코펜하겐 동물원 측은 단호한 태도로 다음과 같이 밝혔다. “과학자에게는 그다지 아름답지 않은 일을 해야 하는 순간도 있다. 더 아름다운 미래를 위해서.” 과학은 이성과 합리를 추구한다. 그런데 이성이 극단에 다다르면 잔혹해진다. 그래서 과학자는 때때로 가장 순수한 영혼을 지닌채 가장 잔혹한 길로 들어선다.
---「프롤로그 「두 번째 기린」중에서
끊임없이 변하는 이 세상에서 동물원의 시간은 늘 그 자리에 굳어버린 듯하다. 손오공도 암사자도 자신의 땅을 개발해서 일확천금을 벌겠다는 꿈 따위는 갖고 있지 않을 테니. 바로 이 때문에 동물원은 ‘자라(ZARA)’, ‘에이치앤엠(H&M)’, ‘나이키’ 같은 해외 브랜드의 매장이 들어선 도심보다 그 도시의 역사적 성격을 더 잘 보존해낸다.
---「1장 「보통 사람들을 위한 동물원 티켓 -런던동물원」중에서
귀족 동물원의 개념은 1789년 프랑스 대혁명의 화염 속에서 낡고 케케묵은 수많은 것들과 함께 잿더미가 되었다. (…) 왕실 정원이었다가 공공 소유로 탈바꿈한 세계 최초의 메나주리로서 이 동물원의 미래와 운영 방식은 호사가, 박물학자, 민주주의자 사이에서 온갖 논쟁을 불러일으켰다. 사나운 맹수와 온순한 동물들의 비율, 동물로 인한 안전 문제 등 현대 사회에서도 여전히 토론 거리가 되는 사회 안전과 권익의 문제들이 당시 동물원을 둘러싼 끝없는 논쟁 속에서 싹을 틔웠다. 어떤 의미에서는 이 보잘것없는 동물원이 시민사회의 요람 역할을 했던 것이다.
---「2장 「혁명이 낳은 산책로 -파리식물원」중에서
1941년 첫 번째 폭탄이 베를린동물원에 떨어졌다. 총 764대의 영국 전투기가 베를린 상공으로 날아와 폭탄을 떨어뜨렸다. 어느 순간 포화가 멎었지만 동물원은 이미 초토화된 뒤였다. 3715종 가운데 살아남은 동물은 사자 두 마리, 하이에나 두 마리, 아시아코끼리 한 마리, 코뿔소 한 마리, 개코원숭이 열 마리, 침팬지 한 마리, 황새 한 마리, 넓적부리황새 한 마리 등 모두 91마리뿐이었다.
---「4장 「전쟁과 냉전의 그늘 -(서)베를린동물원」중에서
태평양전쟁이 발발하고 미군의 공습이 시작되자 일본의 모든 동물원에 맹수를 죽이라는 명령이 내려졌다. 신징에 있던 사자와 호랑이도 이런 운명을 피해갈 수 없었다. 맹수를 제외한 나머지 동물들도 전란 속에서 여기저기 흩어져 죽음을 맞았다. 일본의 항복으로 동물원을 접수한 국민당 군은 동물원의 초목을 모두 베어내고 군사 훈련장을 만들었으며, 동물원 여기저기에 참호를 팠다. 국민당이 패퇴할 무렵 한때 아시아 최초의 동물원이었던 이곳에는 단 한 마리의 동물도 남아 있지 않았고 눈에 보이는 모든 곳이 폐허로 변해 있었다. 국민당은 곳곳에 폭약과 지뢰를 묻은 다음 인민해방군에게 넘겨주었다. 1948년의 일이었다.
---「9장 「만주의 봄날을 기억하는 곳 -창춘동식물공원」중에서
2차 세계 대전 이후 다시 동물을 채워 넣는 작업이 외교적 교류의 통로로 활용되면서 베이징동물원은 수십 년 동안 국제 관계의 요충지 역할을 했다. 당시 화친 정책에는 왕소군이 아니라 아시아 코끼리, 인도코뿔소, 벵골 호랑이, 북극곰 등이 오갔다. 정치인들에게 동물원 방문은 온화한 이미지를 한껏 드러내는 동시에 과학 교류에 이바지하는 영광의 주인공이 될 기회였다. 세 명의 일본 총리 부인과 미국의 낸시 레이건을 비롯해서 아이슬란드, 아일랜드, 핀란드, 태국 등의 정치인이나 그 부인들이 모두 이곳을 찾았다. 정치인의 부인들이 가장 애용하는 장소였던 셈이다.
---「12장 「동물원이 역사를 기억하는 방식 -베이징동물원」중에서
여러 해가 지난 뒤, 사랑했던 누군가를 떠올려보면 그 사람과 함께 거닐었던 동물원이 떠오를 것이다. 웃으며 떠들기도 했고, 화를 내며 눈물을 흘리기도 했던 곳. 맑게 개었든 비가 내렸든 당신은 그와 함께했던 하루를 마음 깊이 그리워할 것이다.
그 사람은 이미 곁에 없을지 모르지만 동물원은 여전히 이곳에 있다.
---「14장 「한 도시의 기억 -타이베이동물원」중에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