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건 무슨 일이 있더라도 반드시
나머지 모두로부터 지켜야 할 비밀이야.
너랑 나랑만 알아야 해.
루이스 캐럴.《이상한 나라의 앨리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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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건 발생 초기에는 테러리스트의 소행이라는 주장이 유력했다. 그렇다면 그것은 적대 세력이 미국 영공에서 미국 국적의 비행기를 격추한 첫 번째 기록이다. 외부 세력의 사주를 받은 테러리스트가 미국 영토에서 자행한 공격으로서는 두 번째였다. 첫 번째는 1993년 2월에 발생한 월드 트레이드 센터의 노스 타워 폭파 사건이었다.
하지만 시간이 흐르면서 기계 고장 쪽으로 무게가 실렸다. 누구도 그 주장을 믿지 않았고, 동시에 모두 그 주장을 믿었다. 나 역시 믿지 않으면서 한편으로는 믿었다.
나는 수평선을 바라보았다. 목격자들의 진술에 따르면 폭발 직전 비행기를 향해 한줄기 빛이 다가가고 있었다는데 그 실체는 과연 무엇이었을까? 나로서는 증인들이 목격한 것이 무엇이었는지 알 도리가 없었다. 하지만 목격자들이 함구할 것을 강요받았다는 건 이미 공공연한 사실이다.
비행기가 폭발하는 순간을 카메라로 포착한 사람만 있다면 모든 문제가 해결될 텐데…. 아쉽기 그지없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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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사건의 진실을 추구하려는 사람은 누구든 위험을 각오해야 했다. 플라스마 살인 광선, 폭발성 가스 거품, 유령 같은 미사일, 우리 측의 오발, 전자기파, 연료와 공기의 위험한 혼합, 그리고 시각적 환상….
나 자신이나 케이트의 안녕을 위해서라면 오늘 밤, 내가 보고 들은 것을 모두 잊어버려야 한다고 내 본능이 나를 채근하고 있었다. 하지만 이건 나와 케이트, 혹은 정부 안팎의 몇몇 사람들에 대한 일이 아니었다.
이건 ‘그들’에 대한 문제였다. 230명의 희생자. 그리고 그들의 가족과 사랑하는 이들, 비행기의 빈 좌석 위에 장미꽃을 얹은 사람들, 촛불을 띄우며 하염없이 바닷속으로 걸어 들어가던 사람들, 그리고 추도식엔 참석하지 못했지만 집에서 오늘 밤을 눈물로 지새우는 사람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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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고든 범죄든 어떤 사회가 그 구성원들의 예기치 않은 죽음에 대응하는 방법은 그 사회를 평가하는 하나의 잣대가 될 수 있다. 우리가 살고 있는 이 사회는 그런 죽음을 규명하기 위해 많은 시간과 돈, 그리고 노력을 기울이는 사회라고 대내외적으로 알려져 있다. 어떤 살인 범죄도 처벌 없이 묵과되지 않으며 어떤 사고도 불가피했다는 변명 아래 간과되지 않는 것이 최소한 내가 생각하는 우리 사회의 문화였다.
하지만 TWA 800편 사건은 아니었다. 그 비행기가 공중에서 폭발한 건 공식적으로, 또 상식적으로 중앙 연료 탱크 내의 합선에 의한 불꽃 때문이었다. 하지만 그 참사가 일어나고 5년이 지난 지금까지도 기계 고장이 아니라는 의심을 잠재울 수 있는 조치가 거의 이루어지지 않고 있었다. 우리 문화에 익숙해진 사람들에게는 납득하기 어려운 일이었다.
그래서? 그렇기 때문에 다른 원인, 그러니까 미사일 피격이 추락 원인이었다고 믿는 사람들이 그 믿음을 굳혀가고 있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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