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앨리스 B. 토클라스 자서전

앨리스 B. 토클라스 자서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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품목정보

품목정보
발행일 2016년 09월 15일
쪽수, 무게, 크기 403쪽 | 474g | 153*224*30mm
ISBN13 9788994054964
ISBN10 8994054960

책소개 책소개 보이기/감추기

목차 목차 보이기/감추기

저자 소개 관련자료 보이기/감추기

저자 : 거트루드 스타인
Gertrude Stein
1874년 2월 3일 미국 펜실베이니아 주 앨러게니에서 태어났다. 단편집『3인의 생애』, 장편『미국의 형성』 등에서 스냅사진의 반복을 연상시키는 독특한 스타일로 ‘문학적 큐비스트’라는 별명을 얻은 작가이지만, 그녀의 이름은 특정한 작품보다는 한 세대 또는 집단의 문학적 분위기와 더 밀접히 연결돼 있다. 그 세대 또는 집단의 이름은 ‘길 잃은 세대’ 또는 ‘파리의 미국인들’이다.

유년기를 빈에서, 청년기를 오클랜드와 샌프란시스코에서 보낸 거트루드 스타인은 하버드의 자매교인 래드클리프여대에서 윌리엄 제임스로부터 심리학을 배운 뒤 다시 대서양을 건너가 파리에 정착했다. 그리고 그 뒤의 삶을 거기서 살았다. 유대인이었던 거트루드 스타인이 독일 점령기의 파리를 떠나지 않았다는 것은, 나이도 있었겠지만, 그 도시에 대한 그녀의 애착을 보여준다.

1910~20년대 파리에는 프랑스 예술가들 못지않게 미국 예술가들이 우글거렸다. 거트루드 스타인을 위시해 헤밍웨이, 스콧 피츠제럴드, 엘리엇, 제임스 조이스, 만 레이 같은 이들이 바로 그 ‘파리의 미국인들’이었다. 이들은 피카소, 마티스… 브라크, 막스 자코브, 콕토, 지드 같은 프랑스 예술가들과 어울리며 파리를 진정한 국제적 예술 도시로 만들었다.

이 그룹의 한 가운데 있던 사람이 거트루드 스타인이었다. 파리 플뢰뤼스 거리 27번지에 있던 그녀의 아파트는 이 세대 작가?예술가들의 아지트였고, 거트루드 스타인은, 헤밍웨이와 잠시 사이가 틀어졌을 때, 이들을 싸잡아 ‘길 잃은 세대Lost Generation’라고 불렀다. 거트루드 스타인이 심술궂게 붙여준 이 딱지를 헤밍웨이는 영예로 받아들였다. 삶의 좌표를 잃은 채 방황하는 파리의 미국인들을 그린「해는 또다시 떠오른다」의 제사(題詞) “당신들은 모두 길 잃은 세대입니다”는 이렇게 탄생했다.
역자 : 권경희
한국외국어대학교 영어과를 졸업하고 현재 전문 번역가로 활동하고 있다. 옮긴 책으로는『화가, 혁명가, 그리고 요리사』, 『렘브란트 반 라인』, 『뼛속까지 내려가서 써라』, 『아름다운 비행』, 『30분에 읽는 앤디 워홀』, 『유쾌하게 나이 드는 법』, 『엘리자베스 여왕의 왕국』 등이 있다. 열한 살, 열두 살짜리 고양이 세 마리와 함께 살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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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07년이었다. 거트루드 스타인은 자비출판을 준비 중이던 『세 사람의 생애Three Lives』 교정을 보면서 동시에 1천 쪽에 달하는 『미국인의 형성The Making of Americans』 집필에 몰두하고 있었다. 이때 피카소는 화가와 모델 이외에는 아무도 좋아하는 이가 없던, 하지만 지금은 너무도 유명해진 거트루드 스타인의 초상화를 완성한 다음 세 여자가 등장하는 이상하고 복잡한 그림을 그리기 시작하고 있었다. 이때 마티스는 야수파 또는 동물원이라 이름 붙게 된 그의 최초의 대형 구성작품 〈삶의 기쁨〉을 막 완성했었다. 막스 자코브(Max Jacob)가 이른바 입체파의 영웅시대라고 불렀던 시기였다. 얼마 전 거트루드 스타인과 피카소가 옛 시절을 회상하던 대화가 기억난다. 둘 중 한 명이 단 일년 사이에 그렇게 많은 일들이 일어날 수는 없다고 말하자, 다른 사람이 당신은 그때는 우리가 젊었다는 걸, 일년 동안 엄청난 많은 일을 해낸 청춘이었다는 사실을 잊으신 거라고 말했다. --- p.20

나는 페르낭드와 이야기를 나누었다. 당시 피카소가 같이 살던 여자, 그의 곁을 오랫동안 지켜내고 있는 여자였다. 스물네 살 동갑인 그들은 나이는 어려도 함께 산 지 아주 오래되었다는 말이다. 내가 함께 앉아본 천재의 첫 번째 여자인 페르낭드는 최소한 재미있는 여자였다. 우리는 모자에 대해 이야기했다. 페르낭드가 좋아하는 두 가지 주제가 모자와 향수인데, 그녀를 처음 만날 날 우리의 주제는 모자였다. 페르낭드는 모자를 좋아했고, 프랑스인답게 모자를 보는 감각이 있었다. 그녀는 만약 모자를 쓰고 거리에 나갔는데 남자들한테서 흥미로운 반응을 못 일으킨다면 그 모자 선택은 잘못된 거라고 믿었다. 나중에 그녀와 몽마르트르를 산책하게 되었을 때 그녀는 커다란 노란색 모자를, 나는 그보다 한참 작은 파란색 모자를 쓰고 있었다. 한 노동자가 걸음을 멈추고 소리쳤다. 해님과 달님이 함께 나오시니 온 세상이 환하군요. 페르낭드는 화사하게 웃으며 내게 말했다. 우리들 모자가 성공한 거예요. --- p.33

마티스 부부는 생미셀 거리에서 가까운 부둣가에서 살고 있었다. 작은 방 세 개가 딸린 아파트 옥상 층, 노트르담 대성당과 강이 한눈에 내려다보여 전망이 좋았다. 마티스가 그 그림을 그린 건 겨울이었다. 집에 들어가려면 끝이 안 보이는 아파트 계단을 오르고 또 올라가야 했다. 그때는 계단을 오르내려야 하는 시절, 밀드레드 올드리치의 경우 계단의 중간쯤에서 열쇠를 떨어뜨리는 가슴 아픈 방법을 썼었다. 그녀는 손님을 배웅할 때 6층에서 아래층을 향해 안녕히 가세요, 하고 소리를 질렀고, 그 다음 손님과 그녀는 나머지 계단을 다시 올라가거나 내려가야 했던 시절. 그녀가 큰 목소리로 지금 문을 열고 있으니 걱정 마세요, 하고 외치는 일은 확실히 자주 있었다. 열쇠는 무겁고 잃어버릴 수도 있기에 그녀는 미국 손님들에게만 이렇게 배웅했다. 어느 해인가 파리의 여름이 사그라들 무렵, 사이엔은 건강해 보인다는 칭찬을 듣자 이게 다 계단을 오르내린 덕분이라고 말했다. --- p.66

스타인 남매와 마티스 부부 사이에 우정이 빠르게 꽃피웠다. 이때 마티스는 최초의 대형 장식인 〈삶의 기쁨〉을 준비하고 있었다. 이 작품을 위하여 그는 작은 그림, 그보다 큰 그림, 그리고 아주 큰 그림들을 그리고 있었다. 마티스가 단색들에 오직 흰색 하나만 혼합하는 방식으로 모든 색채의 명도를 조화시키고 의도적으로 왜곡된 인체 드로잉을 처음으로 선명하게 구현한 게 바로 이 그림이었다. 그는 왜곡된 드로잉을 음악에서의 불협화음처럼, 또는 요리에 들어가는 식초와 레몬이나 또는 커피 안에 들어 있는 달걀껍질로서 사용했다. 내가 굳이 주방의 물건들을 끌어들여 비유한 이유는 맛있는 음식과 요리하기를 좋아하는 나로서는 이 분야만큼은 아는 게 있으니 당연한 것이다. 하지만 이게 바로 아이디어였다. 세잔 작품에서 보이는 미완성과 왜곡이 필연성이 이끈 결과였다면 마티스 작품 속 왜곡은 의도적인 것이었다. --- p.74

거트루드 스타인은 늘 파리의 겨울이 가장 이상적인 날씨라고 말하지만 사실 진정으로 숭배한 것은 열기와 강렬한 태양이었다. 피에솔레에 머물던 시절, 그녀는 산책하기 가장 좋은 시간은 역시나 정오라고 자주 말했다. 나로 말하면, 그때나 지금이나 여름철의 뜨거운 태양에 아무 애정이 없다. 그래도 가끔은 산책을 나서는 거트루드 스타인을 따라 다녔다. 나중에 스페인에 갔을 때 나는 땀을 식힐 나무 그늘을 찾으려 애썼지만 스타인은 뜨거운 햇빛 아래서도 지치는 법이 없었다. 그녀는 심지어 머리와 눈을 쉬게 해준다면서 뙤약볕 아래 벌렁 드러누워 한낮의 작열하는 태양을 똑바로 쳐다보기까지 했다. --- p.96

살몽과 기욤 아폴리네르는 이때 몽마르트르의 주민이었다. 살몽은 나긋나긋하고 발랄한 성격이었지만 거트루드 스타인은 그에게서 특별히 흥미로운 점을 찾지 못했다. 그녀는 살몽을 그냥 좋아했다. 한편 기욤 아폴리네르는 정말 놀라운 사람이었다. 특히 이 시기의 기욤은 참으로 눈부셨다. 거트루드 스타인이 처음 알았을 때 기욤은 다른 작가와 결투를 앞두고 있었다. 페르낭드와 파블로는 이 결투 이야기를 할 때면 깔깔 껄껄 웃으며 몽마르트르에서나 통하는 속어들을 아주 많이 섞어가며 몹시 신나했는데, 거트루드는 그들과 친해진 지 얼마 안 된 때라 진짜 무슨 일이 일어났는지 잘 알아듣지 못했다. 그래도 이 결투를 짧게 정리하자면, 기욤이 한 남자에게 결투 신청을 했다는 것, 그리고 막스 자코브는 그 결투의 입회인이자 기욤의 목격자였다는 것이다. 기욤과 결투 상대자는 각자가 좋아하는 카페에 따로 앉아서 두 사람의 입회인들이 왔다갔다하는 모습을 지켜보며 하루 종일 기다려야 했다. 거트루드 스타인은 이 결투의 결말에 대해서 결투가 없었다고 알고 있다. 하지만 진짜 재미있는 것은 양측의 입회인과 목격자들이 내세운 결투 수칙이다. 결투 당사자들은 매 시간 커피를 한 잔 마셔야 했다. 물론 입회인들이 수칙을 정리하기 위해 이쪽 저쪽 카페에 갈 때도 커피를 마시고, 다시 두 입회인이 상대 결투자와 만날 때도 커피를 마셔야 했다. 이 밖에 다른 조건들도 있었는데, 그 중에서도 커피를 마실 때 브랜디 한 잔을 마시는 것은 절대적인 조건이었다. 그들은 입회인이 없을 때는 얼마나 자주 커피를 마실 것인가도 정해야 했다. 이 모든 것 때문에 끝없는 만남과 끝없는 토론과 끝없는 부가항목이 자꾸 만들어졌다. 이 작업은 며칠 동안, 아마도 몇 주 또는 몇 달 동안 계속되었다. 그들이 마신 커피 값과 브랜디 값을 결국 누가 치렀는지는 그 누구도, 카페 종업원조차도 알지 못한다. 이 사건은 아폴리네르가 한 푼 없는 가난뱅이 시절 일어난 일이라 더욱 악명을 떨치게 되었다. --- p.101

마티스는 피카소와 거트루드 스타인의 우정이 두터워지는 게 불안했다. 마티스는 거트루드 여사는 지방색과 무대적 가치를 좋아하는 분이라서 그렇다고 설명했다. 그녀의 기질 어느 하나가 피카소 같은 사람과 진지한 우정을 나누기는 불가능하리라는 것을 빗대어 한 말이었다. 마티스는 여전히 플뢰뤼스 거리를 자주 찾았지만 그들 사이에 정직한 교류는 더는 존재하지 않았다. 이 무렵 거트루드 스타인과 그녀의 오빠는 벽을 장식한 그림들의 화가들을 모두 점심 식사에 초대했다. 물론 죽은 화가나 늙은 화가는 여기에 포함되지 않았다. 내가 앞에서 말했듯이, 이날 거트루드 스타인은 화가들에게 행복한 점심 식사를 대접하면서 그들을 자신들이 그린 그림과 마주 앉도록 좌석을 배치했었다. 아무도 이 사실을 눈치 채지 못하고 모두는 그저 행복한 시간을 보내고 있었는데, 마티스가 떠나는 순간 문에서 돌아서서 방 안을 돌아보다가 그곳에서 어떤 일이 연출되고 있는지 비로소 깨달은 것이다. --- p.111

거트루드 스타인을 처음 알게 되었을 때 나는 그녀의 책상 위에 영어 책들은 늘 넘치지만 프랑스어 책은 한 권도, 심지어 프랑스어 신문 쪼가리도 없다는 사실에 크게 놀랐다. 당신은 프랑스어를 절대 읽지 않나요? 비단 나뿐 아니라 다른 사람들도 자주 하는 질문이었다. 그러면 그녀는 이렇게 대답했다. 그래요, 난 내 눈이 본 것을 느낍니다. 귀로 들리는 언어가 무엇인지는 내게 크게 중요하지 않습니다. 나는 언어가 아니라 목소리의 색깔과 리듬을 듣습니다. 하지만 눈으로는 단어와 문장을 보는데, 이 세상에서 나를 위한 언어는 영어 하나입니다. 긴 세월 일어난 숱한 일들 중에서 내가 좋아하는 한 가지는 내가 영어를 모르는 사람들에게 둘러싸여 있는 것입니다. 이 점이 내게 내 눈, 그리고 나의 영어와 더 내적으로 홀로 있게 해줍니다. 만약 내가 영어 사용자와 지냈다면 과연 많은 일들이 일어났을까요. 그들은 내가 쓴 단어를 읽지 못하고 대부분은 심지어 내가 글을 쓴다는 사실도 알지 못했습니다. 그래요. 나는 그런 사람들에게 둘러싸여 사는 삶, 그리고 영어와 내 자신과 홀로 있는 존재가 좋습니다. --- p.119

피카소와 같은 궤적으로 거트루드 스타인도 이렇게 말한다. 미국인은 스페인인들처럼 추상적이고 잔인합니다. 야만적인 게 아니라 잔인합니다. 대부분의 유럽인들과는 달리, 스페인 사람은 세상에 별 미련이 없습니다. 스페인 사람의 물질주의는 생존과 소유를 위한 물질주의가 아니며, 행동과 추상의 물질주의입니다. 그러므로 입체파는 스페인적일 수밖에 없습니다. 처음 함께 간 스페인 여행에서 우리는 큰 충격을 받았다. 입체파가 등장하고 일년 남짓 지난 때였는데 스페인에서 입체파가 얼마나 자연스럽게 이루어지는지 직접 목격했기 때문이었다. 바르셀로나의 기념품점들에는 흔한 우편엽서 대신에 사각형의 작은 틀들이 있었다. 그 틀 안에는 담배, 진짜 담배로, 파이프, 손수건 조각 등등이 입체파 그림 작품과 절대적으로 똑같은 배열방식으로 다른 오브제들을 상징하는 잘린 종이들에 의해 싸여 있었다. 모던이라는 말은 스페인에서는 이미 수세기 전부터 내려오고 있었던 것이다. --- p.151

파티가 끝나고 얼마 지나지 않았을 때, 다니엘 헨리 칸바일러(Daniel-Henry Kahnweiler)가 파리에 왔다. 독일인인 그는 프랑스 여자와 결혼한 다음 영국에서 오래 살았었다. 그는 영국에서 사업을 하면서도 언젠가는 파리에서 화랑을 열겠노라 꿈을 키웠고 그 꿈을 위한 자금을 열심히 모았다. 때가 왔고, 그는 비뇽 거리에서 조붓한 작은 화랑을 시작하게 되었다. 자신의 입지가 너무 좁은 걸 절감한 그는 전 재산을 털어 입체파 그룹을 지원하기 시작했다. 처음에는 어려움이 많았다. 피카소는 늘 칸바일러를 의심하며 거리를 두려 했지만, 결국 사람들은 칸바일러의 관심과 믿음이 진정임을 알아보았고 그에게 자신들의 작품을 시장화하는 능력이 있다는 것과 또 그렇게 해낼 사람임을 깨닫게 되었다. 그래서 입체파 화가들 모두가 칸바일러와 계약을 맺었다. 칸바일러는 전쟁이 일어나기 전까지 입체파를 위해 최선을 다했다. 칸바일러는 오후에는 자기 화랑을 오가는 이 화가들과 시간을 보냈는데, 이 시간들은 실상 조르조 바사리(Giorgio Vasari)의 시각에 맞춰 미술작품의 조류를 공부할 좋은 기회가 되었다. 칸바일러는 입체파 화가들을 믿었으며, 입체파가 미래에 위대한 업적을 남기리라는 확신이 있었다. 전쟁 발발 일년 전, 그는 자신의 후원 목록에 후안 그리스를 첨가했다. 그리고 전쟁이 일어나기 정확하게 두 달 전에 거트루드 스타인은 칸바일러 화랑에서 후안 그리스의 회화들을 보고는 세 점을 구입했다. --- p.176

콘스탄스 플레처는 이제 빛나는 청춘은 아니라 해도 여전히 매력이 있었다. 바느질과 수예를 좋아하는 나는 그녀가 꽃을 수놓는 양식에 매료되었다. 그녀는 도안도 없이 그저 양손으로 리넨을 잡고 가끔 천을 눈에 가까이 대고서 수를 놓았는데 나중에 보면 아름다운 화관이 수놓여 있었다. 콘스탄스 플레처는 유령들을 아주 좋아했다. 빌라 쿠로니아에는 유령이 둘 살고 있었고, 마벨은 유령 이야기로 미국인 방문객들을 겁주는 걸 아주 재미있어 했다. 한번은 마벨이 조 데이비드슨과 이본느 데이비드슨, 폴로렌스 브래들리, 메리 푸트와 다른 손님들을 초대한 자리에서 모두를 공포감에 미치게 만들고는 급기야 지역 사제를 불러 악령을 쫓는 의식까지 벌였으니 그날 손님들의 심리상태가 어떠했을지 상상해 보라. 하지만 콘스탄스 플레처만큼은 유령들을 무서워하지 않았고 그 집에서 자살한 영국 관료의 유령 생각에 점점 빠져들었다. --- p.213

우리가 빌라 쿠로니아에 머물 때 앙드레 지드(Andre Gide)가 나타났다. 조금 맹숭맹숭한 저녁이었다. 우리가 뮤리엘 드레이퍼와 폴 드레이퍼를 만난 것도 그날이었다. 거트루드 스타인은 언제나 폴을 아주 좋아했다. 미국인다운 열심과 모든 걸 뮤지컬과 인간으로 설명하는 그에게서 기쁨을 느꼈다. 그가 서부에서 숱한 모험을 겪었다는 사실은 두 사람 사이에 또 다른 공감대가 되었다. 폴 드레이퍼가 런던으로 돌아간 다음 마벨 도지 앞으로 전보가 왔다. 전보에는 진주 도난, 운전자 조수라고 찍혀 있었다. 마벨 도지는 아주 당황해서 거트루드 스타인에게 조언을 구하려 했다. 날 깨우지 말고 가만 좀 두세요. 처음에는 짜증을 내던 거트루드 스타인이 벌떡 일어서며 다시 말했다. 하지만 가만, 두 번째 남자가 혐의자라. 끌리는 구석이 있네요. 그런데 운전자 조수라니, 누가요, 그건 무슨 뜻일까요? 마벨은 지난번 빌라에 도둑이 들었을 때 특별한 혐의자가 없어서 수사가 어렵다고 경찰이 말했는데 이번에 폴은 그런 복잡한 상황을 피하려 운전자 조수를 의심하는 거라고 설명했다. 우리가 이 설명을 듣고 있는 바로 그때, 두 번째 전보가 왔다. 사라진 진주를 찾았다고, 운전자 조수가 보석 상자에 진주를 숨겼다는 내용이었다. --- p.215

같은 주에 등장한 또 한 사람은 버트런드 러셀이었다. 그는 노스 화이트헤드가 전선으로 떠난 날 로크리지에 왔다. 그는 파시스트에 토론 광이었다. 화이트헤드 박사 부부는 아무리 오랜 친구라 해도 러셀의 시각을 계속 참고 들어주기가 너무 괴로웠다. 러셀이 등장해 설치자 거트루드 스타인은 사람들의 마음을 그슬리던 전쟁 또는 평화에 대한 화제를 돌리려 교육 이야기를 꺼냈다. 교육이라는 주제는 러셀을 제대로 건드렸다. 그는 미국의 수준 낮은 교육제도에 대해서, 특히 그리스 연구를 경시하는 점을 꼬집어 공격해댔다. 거트루드 스타인은 그에게 이렇게 대답했다. 물론 섬이었던 영국은 섬이었으며, 섬이던 그리스를 필요로 하죠. 아무튼 그리스는 본질적으로 섬 문화인 데 비해서 미국은 본질적으로 대륙 문화를 필요로 했고, 그래서 라틴 문화를 수용하는 건 필연이었습니다. 이 말에 러셀은 흥분해 달변을 쏟아내기 시작했다. 거트루드 스타인도 점점 열이 올라 섬이라는 사실을 차치하고라도 그리스가 영국에 끼친 영향력에 대해 긴 강연을 펼쳤다. 그리고는 영국인들과는 다르게 미국에서 그리스 문화의 결여는 미국인의 심리에 기반을 둔 것이라고 주장했다. 그녀는 미국인이 가진 추상적 특질을 강력하게 변호하였다. 에머슨이 자동차와 결합하는 예들을 인용하면서 이 모든 것은 미국인에게는 그리스가 불필요했음을 증명하는 거라고 점점 열변을 토했다. 이에 질세라 러셀도 더 씩씩거리며 열변을 토했다. 두 사람의 격론에 사람들은 잠자리에 가지도 못하고 계속 잡혀 있었다. --- p.246

우리가 파리를 떠나 있는 동안 에바가 죽었다. 피카소는 몽루주의 작은 집에서 살고 있었다. 우리가 찾아갔을 때 피카소는 신기한 장밋빛 비단 덮개를 침대에 씌우고 있었다. 파블로, 저건 어디서 구했어? 거트루드 스타인이 물었다. 아, 그거 말이죠, 어떤 숙녀에게 받았습니다, 하며 피카소는 흐뭇해했다. 칠레 출신의 유명한 사교계 여성이라고 했다. 비단 덮개는 정말 좋은 물건이어서 피카소는 기분이 아주 좋았다. 그는 우리 집을 계속 찾아왔다. 그는 아주 멋진 여성, 파크레트나 산악지방 출신으로 자유를 갈망하던 아주 사랑스러운 여인 이렌느를 데리고 왔다. 그는 에틱 사티를, 폴리냐크 가의 공주를, 블레즈 상드라르를 데리고 왔다. --- p.272

후안 그리스는 병고와 절망에 빠져 있었다. 사실은 오래전부터 많이 아팠었고 한 번도 회복하지 못했다. 상실감과 무력감이 맹위를 떨치는 시간이었다. 칸바일러는 전쟁이 끝나자 일찌감치 파리로 돌아왔지만 옛날 그에게 도움을 받았던 화가들은 후안 한 사람만 빼고 크게 성공해 이제는 도움을 필요로 하지 않았다. 「마른의 언덕 꼭대기」로 엄청난 성공을 거두었던 밀드레드 올드리치는 당당하게 번 돈을 자기만의 방식으로 왕처럼 펑펑 써버려 이제는 좀 절제를 해야 함에도 여전히 소비하는 생활을 즐기고 있었다. 우리는 한 달에 한 번 밀드레드를 방문했는데 그녀의 말년에는 더 자주 찾아가려 애썼다. 밀드레드는 가장 화려한 영광을 누리던 시절에도 거트루드 스타인의 방문을 제일 반겼다. 거트루드 스타인이 『애틀랜틱 먼슬리』에 작품을 발표하려 알아보는 중이라고 말하자 그녀는 몹시 좋아했다. 『애틀랜틱 먼슬리』의 인정을 최고 영예로 생각했던 것인데, 하지만 그 일은 물론 성사되지 않았다. 밀드레드에게 신경을 거슬리는 또 다른 끔찍한 일은, 『미국 인명사전』에 거트루드 스타인의 이름이 한 번도 오르지 않은 사실이었다. 솔직히 『미국 인명사전』은 미국 작가의 이름보다는 영국 작가들의 관계망 목록으로 봐야 옳았고, 이 사실이 밀드레드는 너무 괴로웠다. 그녀는 나에게 『미국 인명사전』은 쳐다만 봐도 신물이 나. 허접한 인물들 일색이고 정작 올라야 할 거트루드의 이름은 없잖아, 하고는 다시 덧붙이곤 했다. 그건 괜찮다고 쳐. 하지만 거트루드가 너무 심하게 매장되지 않으면 좋겠어. 가련한 밀드레드, 얼마 전에 나온 올해의 『미국 인명사전』은 그들이 스스로 깨달은 이유들로 거트루드 스타인의 이름을 올렸다. 그러나 『애틀랜틱 먼슬리』는 물론 거트루드 스타인의 글을 싣지 않았다. --- p.309

우리가 파리로 돌아온 다음 첫 사건은 셔우드 앤더슨의 소개장을 들고 찾아온 헤밍웨이의 등장이었다. 처음 만나던 날 오후, 헤밍웨이의 첫인상은 아직도 삼삼하다. 스물세 살 청년은 보기 드문 미남이었다. 얼마 전 젊은이들은 스물여섯이 되어 스물여섯 살의 시대가 되던 차였다. 2, 3년 동안 젊은 남자라고 하면 모두가 스물여섯 살이었다. 그 시간과 공간에 어울리는 나이는 스물여섯 살이었다. 조지 플래트 라인스(George Platt Lynes)처럼 스무 살이 안 된 청춘도 한 둘 있었으나 그들은 거트루드 스타인의 셈에 들어가지 않았다. 그러니까 젊은이 하면 스물여섯 살이었다. 나중에, 한참 세월이 지난 다음에 젊은이는 스물한 살 또는 스물두 살을 가리켰다. 스물세 살의 헤밍웨이는 미국인보다는 외국사람 분위기가 났다. 모든 면에서 눈을 끌었는데, 그래도 가장 흥미로운 건 눈이었다. 그는 거트루드 스타인의 앞에 앉아 그녀를 똑바로 바라보며 그녀의 말을 경청했다. 그 다음 두 사람은 말하기 시작하더니 점점 두 사람만의 대화가 길어졌다. 헤밍웨이는 그녀에게 자기 아파트에 와서 저녁 식사를 같이 하며 작품을 봐 주십사 부탁했다. 그때나 지금이나 헤밍웨이는 있을 법하지 않은 깊숙한 곳에 박혀 있는 좋은 아파트, 멋진 여인들, 맛있는 음식을 찾아내는 재주가 비상하다. 그가 파리에서 처음 마련한 아파트는 테르트르 거리에서 가까웠다. 헤밍웨이 집에서 저녁을 보내는 동안, 거트루드 스타인은 그가 여태껏 쓴 글을 모두 읽었다. 그는 그동안 소설을 써 오고 있었던 것이다. 소설 쓰기는 그에게 피할 수 없는 일이었다. 그날 거트루드가 읽은 글들 중에는 훗날 맥알먼이 콘트랙트 에디션에서 낼 시들도 있었다. 그녀는 직접적이고 키플링 풍인 그의 시들은 마음에 들었지만 소설들은 그렇지 않았다. 묘사가 너무 많은 데 특별히 좋은 묘사는 없군요. 전부 다시 시작하고, 집중하세요. 그녀가 말했다. --- p.308

헤밍웨이는 거트루드 스타인과 셔우드 앤더슨의 대화에 아주 재미있는 주제였다. 셔우드는 지난 번 파리에 왔을 때도 거트루드 스타인과 함께 헤밍웨이 이야기를 자주 했었다. 두 사람의 혀끝에서 헤밍웨이란 존재가 빚어졌고, 두 사람은 그들의 마음이 창조한 작품인 헤밍웨이를 자랑스러워하기도 하고 조금 부끄러워하기도 했다. 헤밍웨이가 실수를 저지른 적이 있었다. 그, 그러니까 헤밍웨이는 편지에서 자신은 동시대 작가들과 함께 미국 문학을 구원할 거라면서 셔우드와 그의 작품에 대한 생각을 적었는데, 그 생각이라는 게 도무지 칭찬으로 볼 수 없는 내용이었다. 셔우드가 파리에 오자 헤밍웨이는 당연히 겁에 질렸다. 셔우드는 물론 겁먹을 일이 없었다. --- p.343

이디스 시트웰의 첫 인상은 절대로 변할 수 없는, 너무도 뚜렷한 것이었다. 아주 큰 키에 살짝 구부정한 몸, 앞으로 나서길 주저하는 잔뜩 위축된 인상. 그러면서도 어떤 인간한테서도 못 보았던, 아주 눈에 띄는 코를 가진 아름다운 여인이었다. 그 첫 만남, 그리고 그 후 이어진 그녀와 거트루드 스타인의 대화를 계속 듣게 되면서 나는 우아함과 시를 완벽하게 이해하는 이디스를 점점 좋아하게 되었다. 이디스와 거트루드 스타인은 첫 만남에서 친구가 되었다. 다른 모든 우 정이 그렇듯이 이 둘의 우정도 어려운 시절을 겪게 되지만, 거트루드와 이디스 시트웰이 근본적으로 친구이며 그 사실을 즐기고 있음을 나는 확신한다. 이디스 시트웰은 우리를 자주 찾아왔다가 영국으로 돌아갔다. 같은 해인 1925년 가을, 케임브리지 문학협회장으로부터 편지가 왔다. 거트루드 스타인에게 초봄에 강연을 의뢰하는 내용이었다. 거트루드 스타인은 말도 안 된다며 거절하는 답장을 보냈다. 즉시 이디스 시트웰의 편지가 날아왔다. 무조건 거절을 수락으로 바꾸라는 것이었다. 이디스는 거트루드 스타인에게 무조건 강연을 하라고, 만약 케임브리지 강연 요구를 수락한다면 옥스퍼드도 강연 일정을 잡을 거라고 했다. --- p.368

강연장은 빈자리가 없고 뒤에 서 있는 사람들도 많았다. 강연이 끝나고 토론이 한 시간이 넘어가도록 아무도 자리를 뜨지 않았다. 활기 넘치고 흥미로운 시간이었다. 여러 다양한 질문들 중에서도 거트루드 스타인의 문체에 대한 질문이 단연 제일 많았다. 당신이 쓰는 그 문체가 올바르다고 생각하는 이유는 무엇입니까. 그녀는 자기의 문체에 대한 다른 이들의 생각은 크게 중요하지 않으며 지난 20년 해왔듯이 지금도 같은 글쓰기를 하고 있는데 이제는 많은 사람들이 그녀의 강연을 듣고 싶어 한다는 말로 대답했다. 물론 사람들이 그녀의 글쓰기 방식을 가능한 방식으로 생각하게 될 거라는 뜻은 아니라고, 그리고 그녀의 글쓰기가 설령 아무것도 증명하진 못했더라도 한편으로는 어떤 가능성을 보여주었다고 말했다. --- p.372

지난가을 빌리닝에서 파리로 돌아왔을 때, 나는 늘 그랬듯이 여러 가지 일들로 아주 바빴다. 거트루드 스타인은 못을 사러 르네 거리에 있는 시장에 갔다가 우리의 이웃인 칠레 화가 게바라와 그의 아내를 만났다. 내일 저의 집에서 차라도 드세요. 그들이 말했다. 하지만 우리는 이제 막 집에 돌아왔답니다, 며칠만 기다려 주세요. 거트루드 스타인이 말했다. 메로드 게바라는 그냥 오시기만 하면 됩니다, 하고 는 덧붙였다. 다른 분도 오시기로 했는데, 두 분이 만나면 반가우실 겁니다. 다른 분이 누굴까? 호기심 많은 거트루드 스타인이 물었다. 프랜시스 로즈 선생님이세요. 게바라 부부가 대답했다. 좋아요, 가겠습니다. 거트루드 스타인이 말했다. 이제 그녀는 프랜시스 로즈와의 만남을 더는 피하지 않았다. 그래서 만남이 이루어졌고, 물론 프랜시스 로즈는 그날 당장 그녀를 따라 집으로 왔다. 로즈는, 상상이 가겠지만, 감성이 넘치고 쉽게 흥분하는 사람이다. 그런데 피카소가 내 그림들을 봤을 때 뭐라 말하던가요. 로즈가 물었다. 피카소는 처음 그림들을 보자 저 그림들은 적어도 다른 그림들보다는 야수적이라고 하더군요. 거트루드 스타인이 대답했다. 그 다음엔 또 뭐라 했죠? 로즈가 다시 물었다. 그날 이후 로즈는 늘 모퉁이로 가 캔버스를 이리저리 돌리며 그림을 찬찬히 보는데 아무 말도 하지 않는다.
--- p.39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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