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만화가의 길

만화가의 길

: 아톰의 아버지 데즈카 오사무의 자서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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품목정보

품목정보
발행일 2002년 10월 31일
쪽수, 무게, 크기 331쪽 | 587g | 크기확인중
ISBN13 9788982733369
ISBN10 898273336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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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쟁이 나던 해 나는 요도가와의 군수 공장에 있었다. 군수 공장이라고는 하지만 격납고 지붕이나 벽에 사용되는 석판을 만드는 작은 공장이었다. 잇따른 패전 소식에 사람들은 이미 의욕을 잃은 상태였다. 그래도 나는 기숙사나 공사 트럭 옆에 몰래 숨어서 만화를 그렸다.

「데즈카! 공습 경보다!」

누군가가 이렇게 소리를 지르고 소이탄이 빗발치듯 날아다녀도 난 상관하지 않고 그림만 그렸다. 3월 공습으로 도쿄가 폐허가 된 직후 오사카에도 최악의 날이 찾아왔다. B29 편대가 요도가와를 따라 올라오면서 있는 대로 폭탄을 투하해 댔다. 요도가와 강 언저리에 있던 우리 공장도 예외는 아니었다.

하늘은 온통 칠흑 같은 어둠에 싸이고 여기저기가 화염 속이라 단테의 '지옥편'에서나 느낄 수 있는 공포감이 느껴졌다. 화약 냄새 가득한 흙비가 연이어 내렸고 요도가와 제방은 시체와 기와 조각들로 가득했으며 특히 대교 밑에는 직격탄을 맞은 피난민들의 검게 그을은 시체들이 여기저기 널려 있었다. 소 한 마리는 반쯤 땅에 묻혀 비프스테이크 냄새를 풍기고 있었다. 이제 정말 진저리가 났다.

<이제 그만! 이건 현실이 아니야. 분명 꿈일 거야. 아니 어쩜 만화일지도 몰라. 그리고 난 그 만화 속에 나오는 등장 인물 중에 한 사람일 거야.>

정말 그렇다면 얼른 끝났으면 좋겠다는 생각 뿐이었다.

친구들의 집은 거의 다 타버렸다. 내가 그려놓은 만화 원고를 몽땅 빌려줬던 친구 집도 흔적 하나 없이 다 타버렸다. 내가 온 정성을 다해 그린 <히게오야지>와 <아세틸렌 램프> 수백 장의 원고가 화염 속에서 하늘로 날아오르고 있었다. (미리 말해두지만, 이 두 캐릭터는 내가 중학교 때 만들어 놓은 것이다.)

나라를 위해 몸바쳐 싸우겠다는 의욕 따위는 이미 상실된 상태였기 때문에 나는 그 이후로 거의 집안에 틀어박혀 만화만 그렸다. 가끔 공장에 얼굴을 내비치긴 했지만 그런 때도 원료 섞는 기계 뒤에 숨어 배급된 빵 일주일분을 먹기도 하고 <불량한 사람>이 가져온 담배를 피우기도 했다. 이 당시 이러한 불량한 사람은 여학생과 이야기를 하거나, 세계 문학 전집을 읽거나, 주름이 잡혀 있는 바지를 입은 사람들을 플랫폼으로 끌고 나가서 혹독한 린치를 가하는 일을 했다. 당연히 나처럼 만화를 그리고 있어도 이를 면하지 못했지만 내 만화가 마음에 들었는지 봐주었다. 그래서 고맙다는 표시로 아주 예쁜 여자 그림을 그려주면, 그는 입이 귀에 걸릴 정도로 좋아하면서 <오래 살라>는 말도 잊지 않았다. 또한 그는 애써서 그린 만화인데 그렇게 숨겨둘 필요가 있냐면서 더 당당하게 다른 사람들한테 보여주라는 말까지 했다. 하지만 차마 교관에게는 보여줄 수 없었다.

「어디든 눈에 띄는 곳에 붙여. 대신 윗사람들은 절대로 오지 않는 곳이 좋을 거야」
「그럼 공원 화장실 안은 어떨까? 거긴 공장장이나 교관은 들어오지 않을 거야」
--- pp. 43~4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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