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병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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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개정판 ] 우리문고-02이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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품목정보

품목정보
발행일 2008년 02월 28일
쪽수, 무게, 크기 328쪽 | 407g | 153*224*30mm
ISBN13 9788980402182
ISBN10 898040218X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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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자 소개 관련자료 보이기/감추기

저자 : 송영
1940년 전남 영광 출생으로 한국외국어대학교 독일어과를 졸업했다. 1967년 '창작과비평'에 단편 '투계'를 발표로 작가활동을 시작한 이후, 많은 소설집을 출간했다. 송영은 고전음악에도 깊이 심취하여 '음악동아', '객석', '월간음악' 등 음악전문지와 일간지에 꾸준히 음악산문을 발표해왔다.

지은책으로 창작집 <선생과 황태자>, <비탈길 저 끝방>, 장편 <또 하나의 도시>, <금지된 시간>, <은하수 저쪽에서>, 음악 산문집 <무언의 로망스> 등이 있다.
<중앙선 기차>, <마테오네 집>, <북소리> 외 몇 작품이 영어, 일어, 중국어, 독일어로 번역되어 해외에 소개되기도 했다.

책 속으로 책속으로 보이기/감추기

그런데 정해식의 진짜 실력은 수업 시간에 나타났다. 녀석은 우리 교실과 낯이 선 외톨이임에도 불구하고 수업 시간에는 모든 질문에 혼자 대답하고 혼자 질문을 도맡아서 했다. 녀석은 많은 걸 알았고 필요한 부분은 하나도 놓치지 않고 질문을 던지곤 했다. 그 바람에 다른 아이들은 수업 시간에 벙어리 노릇을 하는 수밖에 없었다.
국어 시간에도 녀석은 제일 먼저 손을 들고 국어 책을 소리 내어 읽었다. 녀석의 낭독은 다소 느렸다. 녀석이 읽고 났을 때 뒤에서 어떤 녀석이 견딜 수가 없었던지 내 등을 두드리며 속삭였다.
"야, 병수. 가만 있을 거야? 한번 멋지게 해 보라구."
그제서야 나는 용기가 솟아났다. 사실, 내가 그 도시 녀석에게 대항할 거라곤 국어 책 낭독밖에 없었다.
그러나 엄밀히 말하면 나는 책을 정확하게 읽지 않고 오직 번개처럼 빨리 읽는 재주밖에 없었다. 그런 나의 재주를 누구도 칭찬하지 않았다. 그렇지만 지금 이것저것 따질 처지가 아니었다. 이것이나마 보여 주는 게 우리 반의 체면을 위해서는 필요한 일이었다.
---p. 230
그러나 절망은 아직 이르다. 나는 우물로 달려갔다. 우리집 우물은 깊이를 측정할 수 없을 만큼 깊은 우물이었다. 두레박으로 물을 퍼올리면 5분 이상이나 시간이 걸렸다. 두레박이 커서 그걸 들어올리는 데 내 힘이 모자랄 정도였다. 나는 끙끙거리며 물을 퍼 올려서 얼굴을 씻기 시작했다. 얼굴도 잘 씻지 않고 다니는 아이라는 걸 사람들의 기억에서 며칠 사이에 지워 버리고 싶었다. 특히 나에 대한 담임 선생의 그런 인상을 지워버리고 싶었다. 얼굴을 씻고 또 씻었다.
그때 세숫대야의 물속에 천사의 얼굴이 떠올랐다. 천사는 내게 미소를 보내고 있었다. 그녀는 내게 얼굴도 깨끗하게 씻고 복장도 깨끗하게 하고 나온다면, 자기는 무대에서 도망치지 않을 거라고 말하고 있는 것 같았다.
"아니, 병수 네가 웬일이냐? 죽어라고 안 하던 세수를 다하게."
뒤돌아보니 계숙이 누나가 우물 옆에 와서 서 있었다. 누나는 멀리서 내 행동을 줄곧 지켜보다가 뭔가 수상쩍어 다가온 것이다.
---p. 1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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