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IT신화는 계속된다

IT신화는 계속된다

: IT 최강국 코리아를 이끌어온 기업스토리와 그 미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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품목정보

품목정보
발행일 2008년 10월 20일
쪽수, 무게, 크기 350쪽 | 536g | 153*224*30mm
ISBN13 9788992043878
ISBN10 899204387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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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자 소개 (1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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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미 언급했지만 90년대 이후의 IT산업 성장은 IMF 외환위기를 극복하고 세계 11위의 경제대국으로 발돋움하는 핵심 동력이었다. 우리나라 산업 분야 중에서 가장 미래지향적인 면모를 보이며, 글로벌 세계 경제에서 한국을 이끌어갈 미래상이기도 하다. 그동안 한국은 정보통신 혁명을 진행하면서 수많은 ‘세계 최초’의 명예를 획득하며 IT 최강국의 위치를 확보했다. 그 결과 한국은 IT 인프라, 디지털 기회지수, 반도체 및 휴대전화 생산, CDMA 기반의 통신 서비스, 온라인 게임 등에서 세계 최고의 지위를 얻게 되었다. 하지만 급변하는 시장 환경의 변화 속에 우리나라 정보통신 역시 큰 위기에 봉착해 있다.
이러한 일련의 과정을 발전단계별, 주요한 현안과 기업체들의 활약상 및 쟁점들을 차근하게 짚어보는 과정은 ‘IT 르네상스’를 차근하게 준비하는 일종의 통과의례라 해도 무리는 아닐 듯하다. 그 내용을 주제별로 살펴보도록 하자.

경쟁체제 도입과 독점 시대의 폐막

20년이라는 짧은 기간에 우리나라를 선진국 반열에 올려놓은 것은 정보통신혁명이었고, 정보통신혁명의 기반시설이 된 것은 전자교환기였다. 전자교환기를 도입하기로 정부 방침을 결정한 것은 1976년 2월이었고, 체신부가 아닌 경제기획원이었다. 당시의 경제부총리는 남덕우였지만 전자교환기를 도입해야 한다고 맨 먼저 주장한 사람은 김재익이었다. 김재익은 남덕우 부총리가 비서실장으로 특채한 뒤 경제기획국장을 맡고 있었으며, 그는 한국처럼 국토가 좁고 부존자원이 부족한 나라는 서비스 산업 특히 금융유통산업이 중심이 돼야 하는데 그러러면 통신의 뒷받침이 있어야한다고 믿었다.
그는 또 경제관료 입장에서 볼 때 자원이 부족한 한국이 육성해야 할 또 하나의 산업이 전자산업이라고 봤고 전자교환기는 `전자산업의 꽃'이라고 할 만큼 여러 가지 전자기술이 융합된 종합기술이었다. 따라서 전자교환기를 개발하게 되면 일반 전자산업은 저절로 육성할 수 있게 된다는 것이 그의 생각이었다.
김재익 수석의 경제팀은 또 체신부 조직에서 한국전기통신공사를 분리, 통신서비스의 제공 주체를 정부에서 민간으로 전환하는 제도개혁을 단행함으로써 경쟁이라는 시장경제 논리를 통해 국내 통신서비스가 획기적 발전을 할 수 있는 토대를 마련했다. 1980년 12월 체신부가 한국전기통신공사 설립안과 함께 대통령의 재가를 얻어낸 문서는 `데이터통신사업 육성 정책'이었다. 당시 청와대 경제팀은 한국전기통신공사의 유선전화와 함께 데이터통신전용회선의 건설도 중요하다고 판단했다. 유선통신조차 적체를 빚던 시절에 벌써 데이터통신의 밑바탕을 그렸던 셈이다. 그래서 만들어진 회사가 한국데이타통신㈜(현 데이콤)이다.
이에 따라 통신에 대한 통신정책 및 규제기능과 사업기능이 정부와 민간으로 분리됐으며 특히 이때 설립된 한국전기통신공사(현 KT)는 만성적인 전화적체 해소와 통화품질 향상에 큰 역할을 담당하게 됐다.

전자교환기의 도입과 정보통신 혁명의 기반 마련

전전자교환기는 프랑스에서는 1970년에 이미 세계 최초로 E-10을 개발하고 현장에 설치했고, 미국에서도 대형 시외교환기인 No.4 ESS를 1976년에 실용화했으며 캐나다에서도 전전자교환기의 개발에 성공하고 실용화했다. 청와대 비서관 시절부터 전자교환기 개발론자였던 오명 차관은 시분할 전자교환기의 개발을 국책과제로 삼기로 하고 전기통신연구소 소장 최순달과 선임연구부장 경상현을 불러 개발 시한과 소요 자금을 명시해 구체적인 개발계획서를 만들어오도록 지시했다.
연구소에서 제시한 소요 자금은 290억원이었다. 뚜렷한 근거가 있어 내놓은 수치가 아니라 명분을 붙일 수 있는 것은 다 집어넣어 계산한 액수가 그것이었고 체신부에서 다듬은 끝에 240억 원으로 조정됐다. 이를 5차 5개년계획에 삽입함으로써 정부 방침으로 확정됐다. 연구개발비 240억 원의 프로젝트. 비록 5년에 걸친 장기 프로젝트이긴 했지만 당시로서는 상상하기 어려운 대형 프로젝트였다. 1980년대 초는 군 장비 개발을 위한 프로젝트를 제외하면 10억원 규모의 프로젝트도 구경하기 힘든 시절이었다. 오 차관은 이 요구를 받아들였다. 오 차관이 몸담고 있던 김재익 수석이 이끄는 청와대 경제비서실 팀은 불과 몇 개월 전 `전자산업 육성계획'이라는 이름의 미래 비전을 설계한 바 있고 그때 선정한 산업용 전자산업의 3대 전략품목이 반도체. 컴퓨터. 전자교환기였다. 그 중에서도 핵심이 전자교환기였다.
전자교환기 개발 프로젝트는 비단 체신부 주변에서만 논란을 일으킨 것이 아니었다. 국회에서도 개발 가능성과 개발비 규모를 가지고 말이 많았다. 이처럼 찬반 의견이 분분했기에 정책 결정자의 입장에서는 쉽사리 결론을 내릴 수 없었다. 이 때문에 전기통신연구소 간부들은 `시분할 전자교환기를 반드시 개발하고, 개발에 실패할 경우 어떠한 처벌이라도 달게 받겠다'는 서약서를 체신부장관에 제출하기도 했다. 1986년 TDX-1이 개발에 성공한 뒤 이 서약서는 `TDX혈서'라고 불리기도 했다.

황금알을 낳는 거위, 이동통신의 3강 체제 구축

2000년에 들어서면서 이동통신 업계에는 전면적인 재편 작업이 전개됐다. 이동통신 시장 재편은 1999년 12월 SK텔레콤이 지분 맞교환을 통해 포스코가 대주주로 있던 신세기통신을 인수하기로 하는 전략적 제휴를 맺으면서 촉발됐다. 이는 IMF 사태로 인한 기업의 구조조정 여파와 이동통신 사업자들의 지나친 출혈경쟁으로 인한 수익성 악화 등에 따른 것이었다. SK텔레콤과 신세기통신간의 합병은 2000년 4월 시장점유율을 2001년 6월까지 50% 이하로 낮추고, SK텔레콤의 휴대전화 제조 자회사인 SK텔레텍이 SK텔레콤에 공급하는 단말기 물량을 2005년까지 연간 120만대로 제한하는 것을 주 내용으로 하는 조건 아래 공정거래위원회의 승인을 받았다.
이처럼 셀룰러 사업자가 단일 회사로 통합되자 KT는 2000년 6월 자금난을 겪고 있던 한솔엠닷컴(한솔PCS)을 인수하면서 재차 이동통신 시장 개편을 추진했다. 이에 따라 이동통신 업계는 SK텔레콤, KTF, LG텔레콤 등 3강 체제로 굳어지게 됐다.

IMT-2000 사업자 선정의 드라마 그 휴유증

꿈의 휴대전화 서비스를 제공하고 국가경제를 일으킬 견인차 역할을 할 것이라며 정보통신업계 최대의 화제를 불러일으켰던 IMT-2000은 잘못된 수요예측과 주파수 경매제로 인한 전 세계적인 IMT-2000 서비스 지연 등으로 전국 서비스가 2006년 말로 연기됐다. 그 후유증은 LG텔레콤 남 용 사장이 2006년 7월 동기식 IMT-2000 사업 포기를 공식 발표하면서 전기통신사업법 위반으로 대표직에서 물러나는 상황까지 연출했다.
비동기식 사업자로 선정된 SKT와 KTF 역시 당초 서비스 개시 시점이었던 2002년 5월보다 무려 5년 정도 뒤늦은 2007년 3월부터 HSDPA 전국망 서비스를 개시할 수 있었다.
하지만 IMT-2000 사업자 선정은 통신 서비스 및 제조업체의 최우수 인력들이 모여 자웅을 가렸던 시기여서 그때의 정황을 토대로 작성한 무협지 형식의 소설까지 나오는 등 우리나라 최고의 통신대전이었던 것은 분명하다. 실제 그 당시 각 업체의 사령탑으로 사업권 획득을 진두지휘를 했던 사람들은 대부분 7-8년이 지난 현재 각 회사의 최고 경영자(CEO)나 최고위층의 자리를 지키고 있다. 남중수 KT 사장, 이정식 LG파워콤 사장, 조민래 SKT 전무, 김운섭 삼성전자 부사장 등이 대표적이다.


인터넷의 도입과 IT 최강국으로의 도약

우리나라의 초고속인터넷 접속서비스는 1998년 7월 두루넷이 CATV 망을 이용한 접속서비스를 제공하면서 시작됐다. 초고속 인터넷 시대를 연 두루넷은 영어 `Through'와 `Network'를 합성한 말로 우리 말로 `두두두루 통한다'는 뜻을 표방했다. 두루넷은 케이블TV망을 이용한 이른바 `케이블 모뎀' 방식을 선택했는데 이는 케이블TV 방송국에서 각 가정 근처에 옥외형 광 송수신기를 설치해 광케이블로 연결하고 이 광 송수신기와 각 가정 사이는 동축 케이블로 연결해 네트워크를 이루는 방식이다.
우리나라 초고속 인터넷 신화의 주역이 된 ADSL의 등장. 최고 8Mbps(하향)에 달하는 전송속도는 그야말로 획기적인 것이었다. 하지만 하나로텔레콤에게도 고민이 있었다. 바로 요금문제였다.
ADSL 상용화 자체가 세계 최초이다 보니 장비를 구하기 쉽지 않은 상황이었다. 당시만 해도 ADSL용 모뎀은 프랑스의 알카텔이 독점 생산하고 있었고 가격도 100만 원 가까이 됐다. 100만 원짜리 모뎀을 설치해야 하는 ADSL이니만큼 한 달 사용료를 얼마를 받아야 할 것인지 결정이 쉽지 않았다.
2006년 후발사업자인 LG파워콤의 등장으로 달아오른 100메가급 속도경쟁에 이어 2007년엔 `100% 정통 광랜'이라는 품질 경쟁으로 양상이 달라졌다. 이는 KT 등을 중심으로 과열 출혈 경쟁보다 망고도화를 통해 안정된 품질로 승부하겠다는 전략으로 앞으로 상용화될 IPTV, TPS(Triple Play Service 즉 전화+인터넷+IPTV) 등의 주도권을 잡기 위한 것이다.
KT는 일반주택 안방까지 광케이블을 직접 연결하는 100% 댁내광가입자망(FTTH)을 확대보급에 나섰다. KT는 2007년 한해 총 4천24억원을 투입, 114만회선의 FTTH를 일반주택에 새로 구축하고, 67만 4천 가구의 아파트에 100메가급 광랜을 확대했다. 이는 KT 초고속인터넷 전체가입자(638만 명)의 20% 정도가 FTTH로 바뀌는 셈이다.

문화권력을 장악해 버린 한국의 인터넷 포털과 검색제국 네이버

인터넷의 급속한 발달은 `포털(Portal)'이라는 독특한 형태의 인터넷 산업을 창조해냈다. 포털의 정확한 뜻은 `관문'이다. 초기 포털이라고 하면 검색사이트를 일컬었다. 인터넷에서 검색의 역할은 오프라인으로 치면 도로나 철도 혹은 석유와 같은 기간산업에 가깝다. 어떤 사이트도 포털의 도움 없이는 방문자를 확보할 수 없다.
미국의 구글처럼 검색으로 한국 최고의 인터넷기업으로 성장한 네이버의 시작은 삼성SDS의 사내벤처였다. 네이버 창업자 이해진은 1992년 병역특례로 삼성SDS에 입사한 뒤 1996년 사내 벤처사업 아이디어 공모에서 `검색엔진 개발계획'이 선정됨에 따라 서울 양재동 예술의 전당 근처에 조그만 사무실을 얻고 사내벤처를 시작했다. 이해진에게는 소사장(삼성SDS 과장)이라는 직함이 붙었다.
이해진 사장은 6명의 팀원과 브레인스토밍을 거쳐 새로운 검색 엔진의 이름을 `네이버'라고 정했다. 배를 움직이다, 항해하는 사람이라는 뜻을 가진 네비게이터(navigator)에서 nav를 떼낸 뒤 사람을 의미하는 접미사 er을 붙여서 만든 합성어로 `정보의 바다를 항해하는 사람'이라는 의미이다.
네이버는 2000년 12월 한게임과의 사이트 통합 이후 하루 페이지뷰가 1억 번을 돌파한 데 이어 회원수도 1,500만 명을 넘어섰다.네이버는 2001년 9월 24일 사명 네이버컴을 현재의 기업명인 `NHN'으로 변경하고 이해진 사장과 김범수 사장이 NHN 공동대표를 맡으면서 제2의 창업을 선언했다. NHN은 Next Human Network의 줄임말로 인간의 미래지향적 의지와 그 가치를 상징한다.
2002년 상반기부터 영업이익에서 다음커뮤니케이션, 야후코리아 등 기존 선두업체를 제치고 1위로 부상했지만 네이버는 2002년 6월 12일 코스닥 등록 사전심의에서 떨어지는 아픔을 겪었다. 그 해 8월 14일 세번째 심사에 통과한 네이버는 그러나 단 하루 만에 시가 총액 3,272억 원으로 코스닥 14위에 랭크됐다. NHN 시가총액은 5년 뒤인 2007년 1월 6조 원을 돌파하고 4월 말에는 8조 원을 넘어섰다.

세계를 평정하고 있는 한국의 휴대전화

삼성전자는 2008년 세계 휴대전화 시장이 전년대비 10% 내외 성장한 12억 3천만 대가 될 것으로 전망하고 미국, 유럽 등 선진시장과 아시아, 중동의 신흥시장의 특성에 맞는 판매 전략을 구사해 2억 대 이상 판매하는 것을 목표로 하고 있다.
물론 전세계 톱 제조업체로서의 위상에 걸맞게 신흥시장 공략을 확대하되 HSUPA 등 신기술을 적용한 최첨단 휴대전화를 적기에 출시하며 프리미엄 리더십을 강화한다는 전략이다. 2006년 11월 집중적인 광고나 화려한 이벤트 없이 150달러 수준의 가격에 출시됐던 무명폰인 `SGH-250'이 아시아와 중남미에서 2천만 대나 판매된 것은 이같은 목표가 과장되지 않았다는 것을 보여준다.
LG전자는 LG텔레콤 사장을 지낸 남 용 부회장이 사령탑을 맡으면서 휴대전화 사업이 되살아나기 시작했다. LG전자는 터치 스크린폰의 원조격인 초코릿폰이 첫 테이프를 잘 끊었다. LG전자는 특히 미국 애플사의 아이폰이 출시되기 앞서 최첨단 프라다폰, 뷰티폰 등을 선보이며 2천만 대 판매를 눈앞에 두고 있는 초콜릿폰의 뒤를 이어 터치폰의 우위를 계속 지켜나가고 있다.
한국 휴대전화 제조업체 2개사가 세계 4위권에 포함될 정도로 위상이 격상되면서 휴대전화는 한국 최고의 수출상품으로서의 자리를 더욱 굳히고 있다. 또한 그 반사효과로 글로벌 휴대폰시장에서 돋보이는 성장가도를 달리고 있는 삼성전자와 LG전자가 강해진 부품 구매력(바잉 파워)에 힘입어 원가절감 효과를 만끽하고 있다.

정보통신부의 해체와 방송통신위원회의 출범

대한민국 정부 역사상 가장 성공적인 정부 조직개편은 체신부의 정통부 변신이다. 1994년 김영삼 정부때의 일이다. 우편배달부 이미지의 체신부가 국가 정보화의 사령탑으로 IT 신화를 창조하며 상전벽해를 이뤘다. 역대 대통령이 외국에 자랑하는 거의 유일한 분야가 IT였다.
그 정통부가 14년 만에 조직이 해체됐다. IT산업 진흥과 정보보호, 디지털 콘텐츠 육성 등의 기능을 지식경제부 등 다른 부처에 넘겨주고 방송위원회와 합쳐 방송통신위원회라는 조직으로 재탄생했다. 대한민국 역사상 전례가 없는 방송통신 첫 융합기구의 출범이라는 새로운 실험이 시작된 것이다.
이 실험은 곧바로 10개 IT진흥기관이 4개로 통.폐합이라는 형태로 이어졌다. 정보사회진흥원과 정보문화진흥원은 행정안전부 산하 정보사회문화진흥원으로, 소프트웨어진흥원ㆍ전자거래진흥원은 지식경제부 산하 정보통신산업진흥원으로, 인터넷진흥원ㆍ정보보호진흥원ㆍ정보통신국제협력진흥원은 방송통신위원회 산하 방송통신진흥원으로, 문화콘텐츠진흥원ㆍ게임산업진흥원ㆍ방송영상진흥원은 문화체육관광부 산하 콘텐츠진흥원으로 각각 통합하기로 결정됐다.

디지털 컨버전스의 빅뱅과 새로운 패러다임

디지털 컨버전스는 앞으로 인간, 사물, 공간 등으로 그 영역을 더욱 확장하면서 현재 진행되고 있는 것보다 더 큰 사회변 화를 초래할 전망이다. 즉 모든 영역간 경계가 허물어지는 새로운 공간과 커뮤니케이션이 등장하고 이를 통? 새로운 개념의 서비스뿐만 아니라 산업구조를 개편하는 비즈니스가 창출된다는 것. 우선 디지털 컨버전스가 인간에 적용되는 대표적인 것으로 생체인식 기술과 인체의 결합을 들 수 있다. 최근 생체인식기술은 보안이나 접근 제한을 위해 지문, 망막, 얼굴 등 인간의 생체정보를 이동통신, 노트북에 적용하기 시작했으며 법정 증거자료로 DNA와 지문 이외에 얼굴인식을 채택하는 사례도 등장했다.
특히 미국의 9.11 사태와 영국의 테러 발생 이후 테러리스트 색출 등을 목적으로 생체정보를 내장하는 ID카드나 여권을 도입하는 국가도 늘어나고 있다. 생체인식 기술은 비단 범죄자 색출뿐만 아니라 의료기기, 교통.유통 등 그 적용영역이 다양화되고 복합 기능화로 확대되고 있다.
인간과 기계의 결합인 `사이보그'의 등장도 컨버전스의 한 예이다. 사이보그는 사이버네틱스(Cybernetics)와 오가니즘(Organism)의 합성어로 지난 1960년에 처음 고안됐으며 인체내장형 생체칩(VerChip) 이식 등 인간과 기계를 접목해 신체장애를 극복하는 의료기술로 발달하기 시작했다. 로봇도 인간과 유사한 기능을 갖춘 휴머노이드(Humanoid)로 발전하고 있다.

정보통신혁명의 숨은 주역, 중견기업들의 약진과 활약

국내 이동통신시장은 전세계적으로 유례를 찾아보기 힘든 속도로 급성장했다.1996년 4월 디지털 셀룰러 통신 서비스 개시, 1997년 9월 PCS 서비스 개시 등에 따라 가입자가 폭발적으로 증가하면서 1999년 3월 가입자 1,500만 명을 돌파했다. 자연히 기존 무선호출기 시장은 쇠락의 길로 접어들었다. 따라서 1990년대 초반 무선호출기로 두각을 나타냈던 어필텔레콤, 팬택, 텔슨전자 등 이른바 `삐삐 3인방'도 변화를 모색해야 했다. 1994년 8월 설립돼 광역 무선호출기 시장에서 `어필' 돌풍을 불러일으킨 어필텔레콤은 1998년 5월초 79g짜리 세계 최소형 휴대전화 `어필PCS'를 선보이며 휴대전화 업계에 진입했다.
또 1991년 3월 이동통신 기기부품을 공급하는 `구멍가게'로 시작했던 팬택은 1994년 국내 최초로 무선호출기를 개발, 이목을 끌기 시작했지만 1997년 말에는 무선호출기 사업을 중단했고 1998년부터 CDMA 이동전화 단말기 사업으로 주력사업을 전환했다.
---본문 중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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놀랍게도 이 책은 우리나라 기업들의 이동통신 기술혁신 과정과 IT산업의 미래를 그대로 관통하고 있다. 그럼으로써 세계 정보통신 산업을 선도하는 해법과 방향도 함께 제시하고 있다.
남용 (LG전자 부회장)
대한민국 정보통신 역사를 반추하고 있는 이 책은 노련한 기자의 통찰력으로 IT 역사를 세밀하게 조명할 뿐 아니라, 나아가 ‘IT코리아의 르네상스’를 위한 훌륭한 영양분이 되고도 남음이 있다.
남중수 (KT 사장)
끝없는 도전을 통해 발전을 거듭해 온 대한민국 IT 산업이 걸어 온 길을 현장에서 전문가적 시각으로 관찰하고 꼼꼼하게 기록한 책이다. 이 책을 통해 대한민국 정보통신 산업이 앞으로 세계 정보통신 혁명을 주도해나갈 수 있다는 자신감과 지혜를 얻길 기대한다.
최지성 (삼성전자 사장)
한국의 IT산업은 산업간 컨버전스와 세계화가 가속화되고 있는 경쟁환경에 놓여 있는 중대한 시점을 맞고 있다. 이럴 때 오랫동안 IT업계를 출입하며 경력을 쌓아온 필자가 우리나라 정보통신산업의 과거와 현재를 조망하고 미래의 비전을 제시하는 책을 내놓게 되어 무척 반갑다. 믿음직한 이정표 역할을 해줄 것으로 기대한다.
김신배 (SK텔레콤 사장)
무엇보다 이 책에는 오랫동안 이 분야를 취재한 사람만이 가질 수 있는 정보통신산업에 대한 애정과 통찰력이 담겨 있다. 우리나라 정보통신산업의 미래를 그리고자 하는 이들에게 특별한 도움이 되리라 믿는다.
정일재 (LG텔레콤 사장)
정보통신 혁명의 최전선에서 활약한 기업들의 변화무쌍한 이야기를 저널리스트의 눈으로 생생하게 기록한 이 책은 비단 과학기술 영역뿐 아니라 21세기의 정치·경제·사회·문화의 모든 영역을 이해하는 키워드를 제시하고 있다.
최휘영 (네이버 대표)
늘 현장 속에서 한국 정보통신산업의 발전 과정을 객관적으로 조명해온 류현성 기자의 전문가적인 식견과 통찰력은 우리 모두에게 세계 정보통신 산업의 변화와 흐름을 내다볼 수 있는 혜안을 제공할 것이라 확신한다.
박병엽 (팬택 부회장)
급변하는 IT트렌드를 이해하는 데 꼭 필요한 정보만 담은 대한민국 IT 교과서다. IT산업에 관심 있는 사람이라면 한 번쯤은 꼭 읽어 할 필독서이다.
주형철 (SK커뮤니케이션즈 대표이사)
IT강국 대한민국이 있기까지 IT산업의 태동과 발전 과정, 현재의 모습을 한눈에 개괄할 수 있는 역작이다. 무엇보다 10여 년을 정부 부처와 IT업계를 두루 취재하면서 정보통신 기업사를 펼쳐낸 기자의 날카롭고도 객관적인 시각이 돋보인다.
박종응 (데이콤 사장)
이 책을 읽으면 지금의 대한민국이 어떻게 세계 초일류 정보통신 강국이 될 수 있었는지 탄생부터 현재까지의 역사를 한눈에 알 수 있다. 빌 게이츠와 스티브 잡스를 꿈꾸는 학생은 물론 업계에 종사하고 있는 모두에게 훌륭한 보고(寶庫)가 될 것이다.
조신 (SK브로드밴드 사장)
세계적 신화가 된 대한민국 정보통신의 발전을 위해 그동안 기업들이 흘린 땀들을 현장에서 지켜본 기자의 눈으로 생생하게 집대성한 책으로, 특히 정보통신 발전 과정의 명과 암을 균형 있게 짚어줌으로써 향후 미래 정보통신 혁명의 향방을 제시하는 방향타 역할을 하고 있다.
이정식 (LG파워콤 사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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