록이 비로소 자신 안에서 매력을 찾아내었다. 그 동안 국가, 사회, 음악 비즈니스, 정치, 청춘 등과 록 사이의 관계, 그 복잡다단한 의미망에 대한 말과 글은 많았다. 우리나라에서 록에 대한 관심은 재빠르게 증폭되고, 거품처럼 뻥튀기 된 뒤, 어느새 빨리 늙어버리는 병에 걸린 아이처럼 쭈글쭈글해져 호사가들의 관심 밖으로 밀려난 듯 보인다. 대신 대중의 관심은 빠르고 폭발적이지는 않지만 서서히 형성되어 가는 듯한, 이 거품이 가라앉고 난 자리에 또 한 권 제대로 된 알맹이가, 록의 내적 성찰을 담은 책이 번역되어 나왔다.
서구의 록음악 연구에서 보기 드물게 록음악만이 지닌 독창적인 가치로 록을 평가한 미학적 저술로 꼽히는 『록음악의 미학』은 록이라는 음악 장르 자체의 정체성과 미학에 주목한다. 레코딩이 일차적 매체라는 점에서 록이 재즈나 클래식 같은 다른 음악과 존재론적으로 구별된다는 점, 볼륨과 노이즈같이 대중음악보다는 음향학에서 더 중요하게 다루어졌던 음색적 속성이 일렉트릭 기타 사운드의 가치를 높인다는 데 주목한 점 등은 이 책이 이룬 독특한 성과라 할 만하다.
이 책은 재즈를 상업적 일용품으로 폄하한 아도르노의 주장을 반박하면서, 진지한 예술과 상업적 오락의 이분법을 넘어서는 자리에 록을 위치시키려 한다. 그리고 "상처받고 저주받은 거친 청춘" 같은 식으로 포장되는 록에 대한 낭만주의적 신화가 실제로는 '팔아먹기' 위해 조작된 것일 수도 있음을 보여주고, 그러한 낭만주의가 록의 고립을 가져올 수도 있음을 말한다. 록과 미학의 만남도 본격적으로 시도한다. 여기에서 저자는 지배문화가 록 하위문화의 정체성에 끼친 영향에 주목한다.
이 책에 가장 의미 있게 시도한 것은 록의 청각적 특징에서 미학적 담론을 수다하게 이끌어낸 점이다. 록 역시 귀로 듣는 음악의 한 장르라고 했을 때, 지금까지 록의 청각적 특징을 제대로 분석해낸 책이 드물다는 것이 오히려 아쉬운 일이다. 현재의 록을 둘러싼 행위와 담론들에 이 책이 시사하는 바는 클 것 같다.
저자는 록을 설명하기 위해 미술, 음악, 영화, 철학, 미학 등 다양한 분야를 끌어들인다. 그리고 책에 인용된 비틀스, 도어스, 마일스 데이비스, 너바나, U2, 나인 인치 네일스 등 매우 많은 뮤직 아티스트들에 대한 다양한 일화와 인터뷰, 기사 역시 곳곳에서 빛을 발한다.
록에 대한 담론으로서의 가치 외에 이 책이 주는 재미는 또 있다. 밥 딜런과 그의 동료들이 악보를 쓸 줄 몰라 종종 음악적 문맹이라 경멸을 받으면서도 전설이 된 이유는 무엇일까. CD와 비닐 레코드 중에 어느 것이 더 진정하게 음악을 표현할까. 왜 어떤 음반은 듣고 또 들어도 그때마다 새롭고 질리지 않을까. 사운드와 가사 중 어느 것이 더 중요할까. 왜 당신의 아이는 자동차 부서지는 소리를 담은 록 음반에 돈을 낭비할까. 왜 록은 크게 소리를 키워놓고 들어야 제 맛일까……. 이런 질문을 흥미 있는 비유를 들어가며 적절하게 풀어낸다.
영국 뉴캐슬 대학교에서 대중음악을 공부하며 웹진 등을 중심으로 대중음악에 관한 글을 쓰고, 음악관련 저술과 비평, 번역에서 많은 활약을 보여준 장호연 씨가 번역을 맡아, 음악에 대한 풍부한 이해를 바탕으로 깔끔하고 정확한 번역과 내실 있는 역주를 선보인다.
록을 열심히 듣는 사람들, 더 나아가 록을 연주하는 사람들에게서조차 "음악을 귀로 듣지, 눈으로 읽나?" 하는 말을 종종 듣는다. 이 책에서도 "음악에 대해 글을 쓰는 것은 건축에 대해 춤을 추는 것과 같다"라는 엘비스 코스텔로의 말을 머리말에 인용하고 있다. 그러나 록이 일차적으로는 귀를 통해 들리지만, 사람들 사이에서 전파되고 발전되는 과정에 '언어와 이미지'가 동반된다는 것 역시 무시할 수 없는 사실이다. 한 밴드가, 그들의 레코드가 한 시대의 정점에 오르는 데에는 음악 외에도 무수한 요소가 개입된다. 이 책은 그 요소 중에서 록의 내부에 있는 것들을 알려준다. 그것도 록의 역사 속에서 수많은 시행착오를 거쳐 정련된 정수만을…….
록음악에 대한 취향과 기본지식에 부족함을 느끼는 독자들을 위해, 역자 장호연 씨는 몇 권의 책을 추천해서 록음악에 대한 대중적 이해가 확산되기를 바라는 마음과 록을 둘러싼 갖가지 오해가 불식되기를 바라는 마음을 덧붙인다. 하지만 어떤 책이든 책에 등장하는 곡들을 직접 들어보는 것보다 나은 것은 없다는 충고 역시 같이 덧붙이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