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을에서 벌어지는 유일한 게임
2001년에 뉴욕타임스 과학부 기자인 제임스 글랜츠는, '뚜렷한 증거도 없이 아직도 영향력을 발휘하는 끈이론'이라는 제목으로 다음 같은 기사를 실었다.
……과학자들은 최후에 완벽한 이론을 구성하리라 기대되는 파편 이상을 아직 만들어 내지 못했다.
그럼에도 끈이론학자들은 실험에 성공한 학자에게 돌아가야 할 전리품들(연방정부의 재정지원, 유명한 상, 교수의 정년보장 등)을 거의 싹쓸이해 간다. 데이비드 그로스는 이렇게 말한다. "불과 10년 전만 해도 끈이론학자는 직장을 구하기가 매우 어려웠습니다. 그러나 지금은 세태가 완전히 달라져서, 젊은 학자가 '끈이론'이라는 간판을 달기만 하면 모셔가려는 학교가 줄을 서지요."
1981년부터 시작된 맥아더상의 수상자 명단을 훑어보면 이러한 세태가 더욱 확연해진다. 그 동안 맥아더상을 수상한 이론 입자물리학자는 모두 9명인데, 1982년 수상자인 프랭크 윌첵을 제외하고 모두 한결같이 끈이론학자들이었다(다니엘 프리단, 데이비드 그로스, 후안 말다세나, 존 슈바르츠, 네이선 사이버그, 스티븐 셴커, 에바 실버스타인, 에드워드 위튼).
성공가도를 달려 온 끈이론학자들은 연구기금을 모으고 연구소를 짓는 데에도 혁혁한 전과를 올렸다. 맥킨지 경영자문회사의 전 회장은 최근 들어 샌타바버라 캘리포니아 주립대 이론물리학과에 프레데릭 글룩 석좌교수직을 신설하기 위해 100만 달러를 기부했다. 현재 그 자리는 데이빗 그로스의 차지이다. 당시 발표된 관련기사를 보면, 기부자가 얼마나 끈이론에 매혹되어 있는지 짐작이 간다.
글룩과 그로스의 접점이라면(연구 성과나 업적이 아니라) 끈이론 뿐이다…… 번개를 맞은 듯이 감화되어, 글룩은 버넘우드 골프 클럽에서 설명회를 열 정도로 끈이론의 공식 전도사가 되었다.
초끈이론학자가 자신의 비용을 들이지 않고 1~2주 동안 방문할 만한 연구기관을 찾는다면, 30여 곳의 후보지 중 하나를 입맛대로 고를 수 있다(이국적인 풍취가 물씬 풍기는 휴양지 근처도 가능하다). 예를 들어 2002년에 아스펜 물리학센터에는 방문신청자들이 너무 많아서 일정을 잡기가 매우 어려웠는데, 그 해에 초끈이론학자들은 샌타바버라와 칠레, 트리에스테Trieste, 제노바, 흑해Black Sea, 코르시카, 파리, 베를린, 벤쿠버, 서울, 중국, 심지어 아제르바이젠의 바쿠Baku까지 선택의 폭이 매우 넓었다.
이 목록이 말해 주듯이, 초끈이론의 권위와 영광은 미국뿐만 아니라 세계 곳곳으로 퍼져 나갔다. 이 분야를 선도하는 학자들은 대부분 미국에 본거지를 두지만, 미국 문화가 세계로 힘을 뻗치도록 만든 글로벌화 현상이 초끈이론에도 그 영향을 미치고 있다.
초끈이론학자들은 자신의 연구내용을 세간에 알리는 데 많은 노력을 기울인다. 나의 동료이자 재능 있는 과학자, 해설가, 연설가, 그리고 작가이기도 한 컬럼비아 대학교의 브라이언 그린은 두 권의 베스트셀러 『엘러건트 유니버스』와 『우주의 구조』를 집필하여 세계적인 명사가 되었다. 『엘러건트 유니버스』는 2003년 '노바'라는 3시간짜리 TV 시리즈로 제작되었으며, 무려 350만 달러에 달하는 제작비를 미 과학재단에서 일부 부담했다. 초끈이론과 초끈이론학자들은 언제부턴가 대중매체의 단골손님이 되었고, 각 매체와 대중들은 초끈이론을 아무런 비판 없이 수용하고 있다. --- 본문 중에서
종교에 가까워져 가는 초끈이론
......초끈이론은 '한번 시도해 볼 만' 하다는 게 그간 이론물리학계의 공론이었으므로, 초끈이론은 위 기준에 의거한 검증과정을 꾸준하게 거쳐 온 셈이다. 이런 식으로 어떤 결론이 내려진다면, 그것은 과학적인 결론이 아니라 다수의 과학자들이 선호하는 '사회적 결론'에 가깝다(비록 '모든' 이론물리학자들이 선호하지는 않을지라도). 이젠 많은 물리학자들은 초끈이론의 가설이 틀렸거나 '예견 가능한 이론으로 발전할 가능성'이 없다고 여긴다. 초끈이론학자들은 이것이 물리학계의 논쟁거리라는 사실을 잘 알고 있으며, 앞으로 초끈이론이 여전히 아무것도 예견하지 못한다면 '과학적 이론'으로서의 입지가 위태로워진다는 사실도 잘 알고 있다.
많은 과학자들은 그렇게 구박받으면서도 살아남아 온 초끈이론의 믿음이 혹시나 종교적 도그마로 변하지는 않을까 하고 우려한다. 글래쇼는 초끈이론의 앞날을 걱정하면서 다음과 같은 말을 남겼다.
나는 초끈이론이 중세 신학에 등장하는 천사를 칼라비-야우 공간으로 대치한 새로운 신학으로 변질될 것 같아 염려스럽다. 과민반응인지는 모르겠지만, 지금의 세태를 보면 곳곳에서 징후가 나타나고 있다. 우리는 인간의 신념이 과학을 대신하는 순간을 또 다시 대면하게 될지도 모른다.
나는 주변 물리학자들로부췅 "초끈이론이 위튼을 구루guru로 삼는 일종의 종교단체처럼 변해 간다"는 말을 여러 차례 들어왔다. 앞에 실렸던 'M-이론에 대한 마게이주의 언급'을 다시 한 번 떠올려 보자. 일부 끈이론학자들은 후안무치하게도 초끈이론에 대한 자신의 믿음을 종교적인 언어로 표현하곤 한다. 예를 들어, 하버드대학의 한 초끈이론학자는 사람들에게 전자메일을 보낼 때 "초끈이론/M-이론은 이 세상을 창조한 신의 언어이다"라는 문구를 메일의 끝 부분에 항상 첨부하며, 끈이론학자이자 교양과학서적 작가로 유명한 미치오 카쿠는 한 라디오 프로그램에 출연하여 "신의 마음은 11차원 초공간에서 울려 퍼지는 음악입니다."라고까지 말했다. 몇몇 물리학자들은 "초끈이론은 적어도 미국에서는 '믿음의 이끄심으로' 연방정부의 지원을 받아 살아남을지도 모른다" 고 농담조로 평한다. 종교와 과학의 화합을 목적으로 설립된 템플턴 재단에서는 얼마 전부터 초끈이론학자들을 위한 학술회의를 후원해 왔다. 초끈이론이 종교적 색채가 짙어져 간다는 글래쇼의 염려는 이미 현실로 다가오고 있다.
--- 본문 중에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