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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 말씀만 하소서

한 말씀만 하소서

박완서 | | 2001년 06월 30일   저자/출판사 더보기/감추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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품목정보

품목정보
발행일 2001년 06월 30일
쪽수, 무게, 크기 288쪽 | 445g | 크기확인중
ISBN13 9788985062633
ISBN10 898506263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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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자 소개 (1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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차도로 나왔으나 좌회전을 하지 못해 돌아가야 할 도시를 뒤로 하고 달릴 수 밖에 없었다. 어딘가에 유턴지점이 있겠지. 유턴 지점을 열심히 찾는 것도 아니면서 막연히 그렇게 믿으며 상쾌한 속도를 냈다. 도시와 더불어 내 집 또한 뒤로 뒤로 멀어져 가는 기분이 상쾌했다.
--- p.243 꿈꾸는 인큐베이터 중
원태야, 원태야, 우리 원태야, 내 아들아. 이 세상에 네가 없다니 그게 정말이냐? 하느님도 너무하십니다. 그 아이는 이 세상에 태어난 지 25년5개월밖에 안 됐습니다. 병 한 번 치른 적이 없고, 청동기처럼 단단한 다리와 매달리고 싶은 든든한 어깨와 짙은 눈썹과 우뚝한 코와 익살부리는 입을 가진 준수한 청년입니다. 걔는 또 앞으로 할 일이 많은 젊은 의사였습니다. 그 아이를 데려가시다니요. 하느님 당신도실수를 하는군요. 그럼 하느님도 아니지요.
--- p.78
옛날 옛날에, 어느 가난한 집에 달갑지 않은 손님이 왔더란다. 식량은 빤한데 군식구가 생겼으니 어서 갈 날만 기다려질 수밖에. 손님 역시 가난한 처지인지라 끼니 걱정 안하는 맛에 마냥 머물고 싶어도 염치가 있는지라, 언제 언제 떠나겠다고 날짜를 멀찌감치 받아놨더란다. 주인은 일각이 여삼추로 그날만을 기다리다 마침내 그날이 와 손님이 떠날 채비를 하는데 문 밖에서 부슬부슬 비가 오더란다. 문 밖까지 나온 손님은 희색이 만면해서 허어 이슬(있을)비가 오네, 하자 주인은 펄쩍 뛰면서, 아닙니다, 가는 비가 옵니다, 라고 했더란다.
--- p.158-159
나는 무서워서 피하던 생각과 이제 두려움없이 직면할 수 있을 것 같았다. 내가 잃은 게 아들이 아니라 딸이었다고 해도 애통이 조금이라도 덜하진 않았겠지만 남드이 나를 덜 불쌍하게 여기리라는 것만은 확실했다. 그래, 그건 인정하자. 그러나 내가 나를 아들 딸에 의해 더 불쌍해하거나 덜 불쌍해하지는 말자. 어디선지 모르게 그런 자신이랄까, 용기 같은 게 생겼다. 수녀님들 덕분이다.
--- p.9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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편집자가 이 작품집을 통해 하고 싶었던 일이란 독자 여러분들을 박완서 문학의 은밀한 내실의 문 앞으로 안내하는 일이었다. '참척(慘慽)의 일기'에서 명민한 독자들은 그 밑모를 슬픔과 고통을 거의 본능적으로 헤쳐가는 작가의 '억척모성'을 느끼게 될 것이고, 또 그 느낌을 통해 박완서 문학의 내실을 들여다볼 수 있을 것이다. 그러므로 '참척의 일기'는 박완서 문학의 소중한 부분이다. 그 억척 모성이 도저한 슬픔과 억척스러이 싸우는 모습은 안타깝고 슬픈 일이다.

그러나 그 억척 모성이 단순히 한 여성의 개인적인 것이 아니라, 우리의 불행한 현대사가 키운 '위대한 모성'으로서의 '억척 모성'임을 안다면, 독자 여러분들은 선생의 '참척의 일기'가 개인적 슬픔의 일기이기 이전에, 근본적으로 '한국 여성사가 공유하는 슬픔의 일기'라는 사실에 동의할 것이다. 그리고 마침내는 끈질기게 이어져온 저 '억척모성'의 슬픔 곁에서, 위로의 마음과 더불어, 독자 여러분들은, 선생의 문학에 대해 뜨거운 경의를 보낼 것이다.
--- 편집자가 붙이는 글 <'억척모성'의 슬픔 곁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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