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53년 대구에서 태어나 서울예술대학 문예창작과를 졸업했다. 1978년 ‘동아연극상’에 장막 희곡이 입선되어 작가로 활동하기 시작했으며, 1979년 ‘소년중앙문학상’과 1983년 ‘계몽사아동문학상’에 동화가 당선되었다. 우리 역사와 고전에 대한 특별한 애정을 가지고 역사적 사건이나 인물을 새로운 시각으로 그려 내거나 고전을 재해석하는 작업을 꾸준히 해 오고 있으며, 제6회 ‘가톨릭문학상’과 제1회 ‘윤석중문학상’을 수상했다. 작품으로 『마지막 왕자』, 『아, 호동왕자』, 『청아 청아 예쁜 청아』, 『뢰제의 나라』, 『화랑 바도루』, 『초원의 별』, 『지귀, 선덕 여왕을 꿈꾸다』, 『불가사리』, 『눈사람이 흘린 눈물』, 『나에게 속삭여 봐』 등이 있다.
솔메는 천년 여우 이야기가 왠지 좋았다. 사람이 되려고 그렇게 대대로 열심히 수행해 왔으니, 언젠가는 천 년을 채워 진짜 사람이 되었으면 싶었다. 안 그러면 대를 이어 열심히 수행했던 여우들이 너무 가여울 것 같았다. 언젠가 솔메는 어머니에게 이런 말을 한 적이 있었다. “만약 지금 그 여우가 내 또래의 사람이 되면요, 내가 그 애하고 친구할 거예요.” -본문 10p 중에서
솔메는 몸을 더 납작 엎드리면서 숨죽이고 나리를 지켜보았다. 나리가 어느 말 앞에서 멈춰 섰다. 솔메가 있는 곳에서 몇 걸음밖에 떨어지지 않은 곳이었다. 나리는 잠시 숨을 고르더니 한 손을 말 항문 속으로 쑥 집어넣었다. 말이 날카롭게 울음소리를 냈다. 곧이어 나리가 항문에서 손을 꺼냈다. 끔찍하게도 나리의 손에 피 묻은 간이 들려 있었다. 말이 털썩 쓰러졌다. 나리가 간을 입으로 가져가 꿀꺽 삼켰다. 그런 다음 재빨리 입가와 손을 닦고는 도로 마구간을 나갔다. 솔메는 지금 눈앞에 펼쳐진 광경을 믿을 수가 없었다. 심장이 마구 쿵쾅거리고 온몸이 부들부들 떨렸다. -본문 47p 중에서
솔메는 이상한 생각이 들어 눈을 떴다. 여우가 솔메를 노려보고 있었다. “왜 그러고 있어. 어서 날 죽여. 그래야 끝나잖아.” 여우가 얼굴을 험악하게 일그러뜨리며 소리쳤다. “넌 도대체 왜 그렇게 착한 척 하는 건데? 어서 네 애비처럼 말해 봐. 여우 따위가 어찌 감히 사람이 되려 하느냐고 말해 보란 말이야! 사람도 하기 어려운 수행을 어찌 하찮은 짐승이 할 수 있으며, 아무리 수행을 해도 짐승은 절대 사람이 되어서는 안 된다고 말해 보라고. 어서 말해! 네 애비처럼 어서 말해 보라고!” -본문 77p 중에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