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1장 / 들어가며
┃언어란 무엇인가┃
우리는 말을 잘하는 천재이지만 너무 쉽게 얻어진 언어의 선물로 인해서 너무 쉽게 말을 내뱉는다. 내가 무심코 던진 말로 인해 희망과 용기를 얻은 사람도 있지만 나의 말로 인해 상처를 받은 사람도 있을 것이다. 내가 던진 말의 씨들이 어디서 어떻게 열매를 맺었을까 생각해보면 내 마음이 자유롭지가 않다. 세 치(약 10센티미터)밖에 안 되는 작은 혀에서 나오는 말은 때로는 사람을 살리기도 하고 사람을 죽이기도 하는 무서운 물건이다. 유대인 속담에 “말이 입에 있을 때는 내가 지배하지만 말이 입 밖에 나오면 나를 지배한다.’라고 했고, 러시아 속담에서는 “말은 참새와 같아서 날아가 버리면 다시 잡을 수 없다.”라고 하였다. 성경의 잠언 15장 4절과 28절에서는 각각 “온순한 혀는 곧 생명 나무이지만 패역한 혀는 마음을 상하게 하느니라(4절) 의인의 마음은 대답할 말을 깊이 생각하여도 악인의 입은 악을 쏟느니라(28절)”라고 하였다. 이처럼 말은 우리 인간으로부터 떼어내서 생각할 수 없으며, 언어를 어떻게 사용하느냐가 우리의 인생을 좌우한다고 할 수 있다. 학벌이 아무리 좋아도, 돈이 아무리 많아도, 명예가 있어도, 말 한 번 잘못하면 이 모든 것이 순식간에 물거품이 될 수도 있고, 이와는 반대로 학벌이 부족해도, 돈이 부족해도, 명예가 없어도 나의 말로 인해 이것들을 소유할 수도 있다. 말이 너무 중요해서 나는 언제나 강의 첫 시간에는 이해인 수녀의 ‘말을 위한 기도’를 함께 읽고 말의 중요성을 강조하고 함께 생각해보는 시간을 갖는다.
내가 이 세상에 태어나
수없이 뿌려 놓은 말의 씨들이
어디서 어떻게 열매를 맺었을까
조용히 헤아려 볼 때가 있습니다.
무심코 뿌린 말의 씨라도
그 어디선가 뿌리를 내렸을지도 모른다고 생각하면
왠지 두렵습니다.
더러는 허공으로 사라지고
더러는 다른 이의 가슴 속에서 좋은 열매를
또는 언짢은 열매를 맺기도 했을 언어의 나무
주여
내가 지닌 언어의 나무에도
멀고 가까운 이웃들이 주고 간
크고 작은 말의 열매들이
주렁주렁 달려있습니다.
둥근 것, 모난 것, 밝은 것, 어두운 것,
향기로운 것, 반짝이는 것.
그 주인의 얼굴은 잊었어도
말은 죽지 않고 살아서
나와 함께 머뭅니다.
그 주인의 얼굴은 잊었어도
말은 죽지 않고 살아서 나와 함께 머뭅니다.
이해인의 시 〈말을 위한 기도〉 전문
이제부터 언어에 대해 본격적으로 이야기해 보자. 우리는 아침에 눈을 뜨면서부터 잠자리에 들 때까지, 심지어 우리가 잠을 자는 동안에도 꿈속에서조차 언어를 사용한다. 독일의 철학자 야스퍼스는 인간은 말로부터 빠져나올 수 없다고 했으며, 하이데커는 “인간은 말의 집 속에서 산다”라고 하였다. 아프리카의 어떤 종족은 아이가 태어나면 그 아이를 ‘kuntu’(thing), 즉 ‘물건’으로 간주하다가 말을 하기 시작하면 ‘muntu’ (person)라 하여 비로소 ‘사람’으로 간주한다. 따라서 인간이 된다는 것은 언어를 사용한다는 것이고, 말을 한다는 것은 곧 사람이 된다는 것이다. 생물학자인 루이스 토마스(Lewis Thomas, 1974: 89)는 언어와 인간의 관계를 다음과 같이 언급하고 있다.
언어라는 선물은 우리 모두를 유전적으로 특징 지워주는 유일한 인간의 특성으로서 다른 생물체와 구분해 준다. 언어는 마치 새가 둥우리를 만들거나 벌이 벌집을 만드는 것과 같이 인간에게는 보편적이고 생물학적인 특별한 인간 활동이다. 우리는 공동으로, 의무적으로 그리고 자동적으로 언어활동에 종사한다. 우리는 언어 없이 인간이 될 수 없다. 만일 우리가 언어로부터 분리된다면 마치 벌이 벌집을 잃은 것처럼 우리의 마음은 소멸될 것이다.
그렇다면 정작 언어란 무엇인가? 사피어(Sapir, 1921)는 언어란 임의로 만들어진 상징체계에 의해서 아이디어, 감정, 욕구를 전달하는 수단이라고 보았다. 스터트반트(Sturtevant, 1960)는 언어란 임의적인 음성기호(arbitrary vocal symbol)의 체계이며 이것을 이용하여 사상이나 감정을 표출함으로써 한 사회공동체의 구성원들이 의사를 소통하며 서로 협력해 나갈 수 있는 매개체라고 하였다. 촘스키(Chomsky, 1972)는 언어란 규칙의 지배를 받으며, 우리의 마음을 비쳐주는 거울(a mirror of the mind)이라고 하였다. 파일즈와 알기오(Pyles & Algeo, 1993)는 언어는 인간의 의사 전달 수단으로서 전통적 음성기호의 체계라고 하였다. 프랑스의 언어학자인 알버트 다우잿(Albert Dauzat, 1912)은 좀 더 포괄적인 의미로 언어의 본질을 보고 있다. 그는 언어란 우리의 사상을 표출하는데 쓰이는 도구이고, 하나의 사회적인 물건이며, 분절음(articulated sound)의 통합체이면서, 시각기호(visual symbol), 즉 문자(letter)로 나타낼 수 있는 것으로 보았다. 이홍배(2002)는 언어에 대한 정의를 언어를 사용하는 대상과 목적에 따라 크게 두 가지로 나누었다. 첫째, 일반인들에게 언어란 일상생활에서 자신의 생각을 전달하고, 물어볼 것이 있으면 질문하고 반대로 질문에 응답하고, 남에게 시킬 일이 있으면 지시하고 남의 지시를 전달받는 의사소통의 중요한 수단으로 보았다. 두 번째는 언어를 연구대상으로 하는 언어학자들의 견해이다. 언어학자들은 언어에 대한 연구를 어떤 관점에서 접근할 것인가에 따라 정의를 달리하고 있다. 구조주의 관점에서는 “언어란 그 언어를 말하는 사람의 입을 통해서 나온 모든 발화의 집합’이라고 정의하고, 생성 문법에서는 “언어란 우리로 하여금 한 언어를 알아듣고 말할 수 있게 하는 언어능력(linguistic competence)’이라고 언급하고 있다.
언어의 정의나 본질에 대해서는 학자마다 조금씩 의견이 다르다. 하지만 공통적인 사항은 언어란 인간의 사상이나 감정을 전달하고, 상대방과의 의사소통을 위한 매개체라는 것이다. 여기에 언어학적인 맛을 곁들이면 언어란 음성기호의 체계이며, 사람의 입을 통해서 나온 표면적인 발화의 집합으로 볼 수 있고, 아니면 겉으로 나타난 발화의 내면구조에 있는 언어능력으로 볼 수 있다.
┃인간의 언어는 어디서 왔는가┃
언어가 언제 어디서 누구에 의해서 시작되었는지 그 기원을 알아보는 것은 결코 쉬운 문제가 아니다. 언어의 기원을 알아보기 이전에 우리는 언어를 사용한 인간이 어디서 왔는지 알아야 이 문제를 해결할 수 있다. 인간이 언제, 어디서, 어떻게 시작되어 오늘날에 이르렀는가? 즉 나는 누구이며, 나는 어디서 왔으며, 어디로 갈 것인가? 하는 질문은 누구나 한번쯤은 해보았을 것이며, 우주의 기원과 함께 언제나 우리 인간을 사로잡아온 주제였다. 이 주제의 질문에 대한 답은 일반 사람마다 그리고 학자마다 의견이 분분하여 그 명쾌한 답을 찾기란 쉽지가 않다.
1859년 다윈(Darwin)은 ??종의 기원??(The Origin of Species)에서 인류의 조상이 원숭이임을 암시했다. 고매한 우리가 오래 전 우리의 조상인 할아버지와 할머니가 원숭이었다는 사실을 받아들이기가 영 내키지 않지만 진화론을 받아들이려는 노력은 다윈의 열렬한 추종자인 토머스 헉슬리와 그 후예들에 의해 본격적으로 시작되었다. 이러한 큰 흐름을 따라 많은 학자가 아프리카 대륙에서 인류의 기원을 찾고자 노력하였다. 인류 진화의 큰 줄기 어디쯤에서 현대인류는 갈라져 나왔을까? 아프리카 기원설처럼 우리 모두는 약 20만 년 전 아프리카의 한 여인으로부터 비롯되어 전 세계로 퍼져 나갔는가, 아니면 다지역 진화설에서처럼 전 지역에서 개별 진화했는가? 여기서 이 문제에 대한 답을 찾지 않겠지만 분명한 것은 인류의 조상을 찾기란 쉽지가 않다. 왜냐하면 아직까지는 손상되지 않은 인류의 골격이 발굴되지 않았기 때문이다. 따라서 화석화된 단편적인 조각을 통하여 퍼즐을 맞추듯이 선사시대 인류를 재구성해야 한다. 그동안 화석을 통하여 발견된 인류 최초의 사람은 약 300만 년 전의 오스트랄로피테쿠스(Australopithecus)이다. 이들은 나무에서 내려와 직립보행을 하는 두 발을 가진 유인원이었다. 이후 전기 구석기시대의 호모 하빌리스(Homo habilis, ‘손을 쓰는 사람’이라는 뜻)가 등장하였는데, 호모 하빌리스는 최초의 사람 속에 속하며 커다란 뇌의 용량과 치아 구조 차이의 진화를 보여줌으로써 이전의 오스트랄로피테쿠스와는 달랐다. 특히 인류학자들은 호모 하빌리스의 뇌 용량이 약 4백50 세제곱센티미터에서 6백 세제곱센티미터 이상으로 증가된 사실에 커다란 관심을 갖게 되었다. 뇌 용량의 증가는 호모 하빌리스가 진화하면서 일어난 일이었다. 60만 년 전 빙하기가 지난 다음 호모 에렉투스(Homo electus, ‘곧선 사람’이라는 의미)가 출현하였다. 호모 에렉투스는 최초로 불을 사용하였고, 사냥을 생존의 중요 수단으로 삼았으며, 현생 인류처럼 달릴 수 있는 최초의 사람종이었다. 또한 석기를 만들어서 사용하였고, 구어를 사용하였으며, 아프리카 너머까지 생활무대를 넓힌 최초의 사람종이었다. 그리고 20만 년 전에 호모 사피엔스(Homo sapiens, ‘지혜 있는 사람’이라는 뜻)가 나타났다. 이들은 현생 인류의 직접 조상이다. 여기에 속한 인류로 독일의 네안데르탈 동굴에서 발견된 네안데르탈인이 있다. 이들은 시체를 매장하는 풍습을 가졌던 것으로 보인다. 약 4만 년 전에 빙하기가 끝나고 오늘날과 비슷한 기후가 되었을 때 호모 사피엔스 사피엔스(Homo sapiens sapiens)가 나타났다. 대표적으로 남프랑스 크로마뇽 동굴에서 발견된 크로마뇽인이 있다. 이들은 벽화를 그렸고, 집단으로 사냥을 해 생존을 유지하였다. 당시 인간들은 정령숭배 또는 다산과 풍요를 좌우하는 신적인 존재를 믿었다.한편, 창조론에서는 성경에 근거하여 인간은 신의 창조물이라고 언급하고 있다.
하나님이 가라사대 우리의 형상을 따라 우리의 모양대로 우리가 사람을 만들고 그로 바다의 고기와 공중의 새와 육축과 온 땅과 땅에 기는 모든 것을 다스리게 하자 하시고 하나님이 자기 형상 곧 하나님의 형상대로 사람을 창조하시되 남자와 여자를 창조하시고 하나님이 그들에게 복을 주시며 그들에게 이르시되 생육하고 번성하여 땅에 충만 하라, 땅을 정복하라, 바다의 고기와 공중의 새와 땅에 움직이는 모든 생물을 다스리라 하시니라. (창세기 1: 26-28)
그동안 오랜 세월을 고고인류학자, 진화론자, 종교학자, 철학자 등 많은 학자들이 인류의 기원에 대해서 그 답을 찾기 위해 노력을 해왔다. 그러나 지금까지 모두가 납득할 만한 해답을 제시해주지 못한 채 여전히 숙제로 남아있다. 인류의 기원이 명쾌하게 해결되지 않은 모호한 상황에서 인간은 언제부터 말을 했을까? 그리고 언제부터 말을 잘 했을까? 에 대한 답을 찾는 일은 언어를 연구하는 언어학자들에게 호기심을 갖게 하는 흥미로운 주제이지만 결코 쉽지가 않다. 그렇다고 이를 무시하고 넘어 갈 수는 없는 일이다.
신의 선물
많은 나라의 종교나 신화에는 언어에 대한 기원을 언급하고 있다. 기독교인들이 믿고 따르는 성경의 창세기 2장 19절에 의하면 “여호와 하나님이 흙으로 각종 들짐승과 공중의 각종 새를 지으시고 아담이 어떻게 이름을 짓나 보시려고 그에게 이끌어 이르시니 아담이 각 생물을 일컫는 바가 곧 그 이름이 되니라”라고 하였다. 성경에는 하나님께서 세상을 창조하시고 여섯째 날에 인류 최초의 인간 아담을 창조하시고, 그 아담이 사용한 언어가 최초의 언어라고 믿고 있다. 이집트인들은 토트(Thoth)신, 바빌로니아 사람들은 나부(Nabu)신, 힌두교인들은 사라스바티(Sarasvati) 여신을 언어의 창조자라고 믿고 있다. 이들은 한결같이 언어는 근원적으로 신이 우리에게 값없이 주신 선물이라는 것이다.
인간이 스스로 만들다
또 다른 주장은 인간이 어떠한 음을 모방하여 내는 소리에서 언어가 시작되었다는 견해이다. 여기에는 고통이나 감정을 말하는 간투사에서 유래했다는 푸푸설(pooh-pooh theory), 개짖는 소리에서 시작되었다는 멍멍설(bow-wow theory), 사물과 소리에는 신비한 조화가 있다는 것에 근거한 딩동설(ding-dong theory), 원시적 행동으로 숨소리와 관계가 있다는 것에 근거한 야호설(yo-he-ho theory) 등이 있다.
진화론적 관점
언어의 기원에 대한 진화적론 관점에 대해서는 두 가지 견해가 있다. 첫 번째는 언어는 인간이 지닌 고유한 특성으로서 인간의 뇌의 크기가 확대되는 과정에서 얻어진 부산물이라는 것이다. 이 관점에서는 언어는 인식이라는 문턱을 넘게 된 최근에 빠른 속도로 발전하였다는 것이다. 언어학자인 촘스키는 주로 이 견해와 연관되어 있다. 그의 입장에서는 인류의 초기 기록에서 언어적 능력을 나타내는 증거를 찾을 필요가 없었다. 더구나 유인원인 우리 조상들에게서 언어 구사 능력을 찾는 일은 불필요한 것이었다. 두 번째는 언어가 아직 인류로 발전하지 못한 사람 이전의 선조들 시기에 여러 가지 인식능력으로 이루어진 자연선택의 결과로 획득되었다는 것이다. 여기에서는 언어가 인류가 등장하기 이전의 아득한 과거에 사람속의 진화와 함께 시작되어 매우 느린 속도로 계속되어 왔다는 견해이다. 하와이 대학의 언어학자 데릭 비거튼(Bickerton, 1990)은 다음과 같이 말했다.
우리가 갖고 있는 모든 정신적 능력 중에서 언어는 우리의 의식이라는 문턱 아래 가장 깊은 곳에 위치하면서, 동시에 그럴듯한 설명을 붙이려는 사람에게는 가장 접근하기 어려운 것이다. 우리는 언어가 없는 생활을 단 한순간도 상상할 수 없다. 더구나 우리가 언어에 의해 어떻게 형성되어 왔는가에 대해서는 더욱 상상하기 힘들다. 우리가 최초로 사고의 틀을 형성했을 때, 언어는 바로 거기에 있었다. (Leaky, 1997에서 재인용)
촘스키에 따르면 최초에 언어가 어떻게 발생하였는가에 대해서 언어의 발생은 역사의 우연한 사건이며, 인식이라는 문턱을 통과한 이후에 발생한 능력으로 보았다. 따라서 자연선택을 찾을 필요가 없다. 즉, 촘스키는 뇌가 인간의 진화과정처럼 발달하다가 어느 순간에 언어가 탄생하였다고 보는 것이다. 그러나 MIT의 스티븐 핑커(Pinker, 1994)는 촘스키가 문제를 거꾸로 보고 있다고 주장하였다. 그는 “언어를 탄생시킨 것은 뇌의 크기나 형태, 뉴런의 집적도가 아니라 뇌 속에 들어 있는 미세한 회로의 정확한 배열이다”라고 언급하면서 뇌가 발달한 다음 언어가 탄생한 것이 아니라, 언어의 발달에 의한 결과로서 뇌의 용적이 커졌다고 주장한다. 이는 자연선택에 의한 언어의 진화를 뒷받침한다. 리차드 리키(Leaky, 1997)는 스티븐 핑커의 주장에 동의를 하면서 오늘날 언어가 자연선택에 의한 진화의 산물이라는 것이 거의 분명해졌다고 한다. 오늘날 우리에게 익숙한 형태의 언어는 우리의 조상들이 수렵과 채취라는 생활양식에 언어를 의사소통에 적용하면서 큰 도움을 얻었다. 이후 인간은 생활양식이 발달하게 되자 더 많은 기술적 성과를 얻게 되었고, 보다 정교하고 복잡한 도구를 제작하게 되었다. 이러한 상황에서 효율인 의사소통의 수단은 나날이 그 중요성이 더하게 되었고, 인간의 뇌 용적은 점점 커지게 되었다. 따라서 자연선택은 서서히 언어 능력을 향상시키는 방향으로 작용했다. 이러한 증거는 초기의 오스트랄로피테쿠스의 뇌가 4백 세제곱센티미터에서 오늘날의 1천3백50 세제곱센티미터로 무려 세 배나 증가한 것을 통해서 알 수 있다.
사람의 언어가 언제 시작되었으며 그 성격을 다룬 가설들은 저마다 주장을 펴고 있어 의견이 분분하다. 첫째, 언어가 비교적 최근에 갑작스럽게 등장했다는 주장으로 인간의 특수성을 유지시키기를 바라는 입장이다. 둘째는 사람이 그 밖의 자연계와 가까운 관계라는 사실을 받아 들여 언어능력이 초기에 발생해서 느린 진화를 거쳤다고 생각하는 학자들의 입장이다. 이처럼 사람의 언어가 언제 시작되었는가에 대한 주장은 다양하다. 이것은 그와 연관된 증거들이, 또는 증거의 일부가 잘못 해독되었음을 의미한다. 심지어 19세기 후반의 학자들은 과학적으로 입증 가능한 것만을 연구의 대상으로 삼아서 과학적으로 만족할 만한 해명을 주지 못하는 언어의 기원에 대해 논의를 금지하였다. 1886년 파리 언어학회는 이 주제에 관한 어떤 논문도 무시하는 결의안을 통과시키기도 하였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언어의 기원에 대한 과학적 증거를 찾는 것이 쉽지 않지만 언어의 기원에 얽혀 있는 복잡성에 대한 새로운 연구는 계속 이루어져야 할 것이다.
---본문 중에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