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혹시 이덕무 선생님이 아니신지요?”
그가 먼저 나에게 다가와 아는 체를 했다.
“맞습니다. 혹 박제가?”
“예. 제가 박제가입니다. 선생님 말씀은 많이 들었사오나, 제가 주변이 없어 지금에야 인사를 여쭙니다.”
겸손하게 자기를 낮추는 말씨를 보니 역시 내가 생각했던 대로였다.
“저도 당신의 글과 글씨를 본 후, 꼭 한번 만나고 싶었습니다.”
내 말에 박제가는 손사래를 치며 말을 놓으라고 하였다. 자신이 나보다 아홉 살이나 아래라는 것을 백동수에게 들어 알고 있었다. 그는 나를 스승으로 모시고 싶다며 허리를 굽혔다.
“스승이라니, 당치 않네. 우리 좋은 친구로 지내기로 하세.”
--- 『글씨부터 만난 사람』
“내 삶에 대해 감히 누가 이러쿵저러쿵할 수 있단 말입니까? 태어나기 전부터 삶이 정해져 있다고요? 내 힘으로 삶을 어찌할 수 없다고요? 운명이 나를 들었다 놨다 마음대로 할 수 있다면 나라고 그깟 운명 마음대로 못하겠습니까? 그 누가 비웃더라도 제 삶은 제가 만들 겁니다. 아니 그 누구도 비웃지 못하도록 할 것입니다.”
? ? ?
사람마다 주어진 운명이 다르고 이렇게 무기력하게 살다 가는 것이 내 운명이라고 여기면 될 터였다. 하지만 나는 그러기 싫었다. 세상이 곁을 내어 주지 않는다면 내가 자리를 만들면 된다. 운명이 나를 휘두른다면 나도 운명을 휘두를 테다.
운명아, 덤벼라! 내가 맞서 주마.
--- 『운명아, 덤벼라!』
출발한 지 한 달이 채 못 되어 압록강을 건넜다. 여기부터 중국 땅이 시작되었다. 그동안은 말도 통하고, 잠자리나 먹을 것이 불편하지 않아 중국으로 향하고 있다는 것이 실감 나지 않았다. 하지만 압록강을 건너자 이곳이 낯선 땅이라는 것이 피부에 와 닿았다.
어디를 가나 사방이 산인 우리나라와는 달리 중국 땅에 들어서자 산이 드물었다. 그나마 있는 산도 꼭대기가 뭉툭하고 평평했다. 그리고 조금 더 가자 산이 아예 보이지 않았다. 사방을 둘러봐도 눈에 거칠 것 하나 없는 흙빛 지평선뿐이었다.
“요동 벌판, 요동 벌판 하는 것이 과연 헛말이 아니군.”
이덕무가 길 한가운데 서서 먼 곳을 바라보며 혼잣말을 했다. 나도 그와 같은 생각이었다. 내 삶은 스스로 만들어 가겠다고 큰소리를 탕탕 쳤지만 사방을 막아 옴짝달싹할 수 없게 만든 내 인생의 담장은 높고 단단했다. 그런데 요동 벌판에 서고 보니, 내 삶을 가두던 높은 담장이 무너지는 듯한 기분이었다. 내가 그토록 와 보길 원했던 이곳을 밟고 나니, 이젠 내 꿈도 내 길도 다시 찾을 수 있을 듯했다.
? ? ?
이덕무와 나는 서로를 바라보고 씽긋 웃었다. 이젠 내 후손에게도 꿈을 가지라고 말할 수 있을 것 같았다. 나는 가슴이 벅차오르고 눈시울이 뜨거워졌다. 요동의 흙바람을 씻어 내려는 듯, 나는 슬쩍 눈가를 훔쳐 냈다.
--- 『중국을 밟다』
“박제가를 규장각 검서관으로 임명하니, 분부대로 따르라.”
규장각? 검서관? 규장각이라면 주상 전하가 즉위한 해에 바로 궐내에 설치한 관청으로, 조선의 학문과 문화를 꽃피워 정치의 중흥을 꾀하려는 전하의 큰 꿈이 담긴 곳이었다. 이런 중요한 곳에서 책을 검토하고 교정하는 업무를 담당하는 관직이 검서관이었다. 서얼허통庶?許通이라 하여 서얼에게도 문무 관직 진출을 허가하기로 했다는 소식을 듣기는 했지만, 내게 그런 기회가 오리라고는 상상조차 하지 않았다.
“성은이 망극하옵니다!”
나는 땅에 납작 엎드렸다. 왈칵 눈물이 솟았다. 이 세상으로부터 버림을 받았다고 생각해 왔는데, 중국에 다녀온 데 이어 이번엔 정식 벼슬을 얻어 궁궐에 드나들게 된 것이다. 꿈만 같았다. 꿈이라면 깨고 싶지 않은 꿈이었다. 듣자하니, 이덕무와 유득공, 서이수도 나와 함께 검서관에 임명되었다고 했다. 나는 한달음에 이덕무에게 달려갔다.
--- 『대궐에 들어가다』
규장각은 창덕궁에서도 가장 아름다운 후원의 언덕에 있었다. 궁궐의 가장 아름다운 곳에서 젊은 학사들이 책과 함께 지낼 수 있도록 전하께서 배려해 주신 것이다. 검서관은 정식 관직이 아니다 보니 정기적으로 녹봉을 받지는 못하였다. 전하께서는 이를 안타깝게 여기시어 자주 먹을 것을 내려 주셨다. 생전 처음 보는 과일과 말린 생선, 곡식 등을 받을 때면 우리가 전하의 따뜻한 보살핌 아래 있다는 것을 느낄 수 있었다.
? ? ?
우리는 인생의 봄을 만난 듯 모두 들떠 있었다.
--- 『규장각 검서관이 되어』
소식을 듣고 설마 하며 달려왔는데, 이덕무의 신위 앞에 서자 다리에 맥이 풀렸다.
“그럴 리가 없다, 그럴 리가 없어!”
며칠 전 내게 편지를 보내 주시지 않았던가? 종이를 다 썼다며 더 보내 달라고 하시지 않았던가? 이제 종이를 구해 보내려던 참인데, 이미 저세상으로 가고 없다니. 나는 믿어지지 않아 멍하니 신위만 바라보았다.
“감기가 심해지시더니, 끝내 회복하지 못하셨습니다.”
이덕무의 아들 광규가 고개를 떨구었다.
“아버지께서는 백탑동을 많이 그리워하셨습니다. 그리고…….”
광규는 슬픔을 억누르려는 듯 잠시 숨을 들이쉬더니, 말을 이었다.
“자리에 누워서도 박제가 어르신을 걱정하셨습니다.”
가슴이 철렁 내려앉았다. 내가 그의 마지막 걱정거리가 되었구나. 어쩌면 나로 인해 그의 병이 갑작스레 위중해진 건 아닐까? 세상과 맞지 않는 내 성격이 처음으로 원망스러웠다.
--- 『세상에 나 혼자구나』
그래도 그대가 하늘에서 지켜본다 생각하며 하루하루를 버틸 수 있었습니다. 이제 때가 온 것 같습니다. 저도 그대를 따라가고 싶습니다. 모진 고문과 오랜 유배 생활로 제 몸은 많이 상했습니다. 숟가락 들 힘조차 없어 손이 벌벌 떨리고, 다리가 허청거려 바깥나들이는 꿈도 꿀 수 없습니다. 그저 자리에 누워 침침한 눈으로 백탑동 벗들을 그리워할 따름이지요.
백탑동 사랑방에 모여 벗들과 시를 나누고 학문을 논하던 일이 어제 일처럼 생생합니다. 고단한 삶이었지만, 벗들이 있어 지치지 않고 웃을 수 있었습니다. 그대를 만날 수 있었으니, 내 삶 또한 팍팍하지만은 않았다 하겠습니다.
부디 저를 데려가 주십시오.
--- 본문 중에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