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1년 9월 11일 아침에 나는 연기를 내뿜는 월드 트레이드 센터에서 불과 몇 걸음 떨어지지 않은 곳에 있었다. 무시무시한 재앙을 목격하고 얼이 빠진 채로 맨해튼 남부 거리를 걷는 중이었다. 그런데 또 하나의 놀라운 일이 벌어지고 있었다. 가히 커뮤니케이션과 인터랙션에 대한 엄청난 사건일 수도 있었다. 사람들이 각자 집에서 텔레비전을 끌어내어 거리에 놓아두었고, 수많은 사람이 그 주변에 모여서 화면을 주시하고 있었다. 교외 통근자들은 휴대폰을 들고 미친 듯이 집과 통화를 시도했다. 복잡하게 연결된 시스템이 그 끔찍한 현장으로 출동하는 소방관, 경찰, 응급구조대의 활동을 조정하고 사이렌이 거리를 내달렸다. 소호 거리에 있는 내 사무실에 도착하자 친구들이 인스턴트 메신저로 내가 괜찮은지 확인하려고 말을 걸어왔다. 휴대폰이 제대로 연결되지 않았기 때문에 나는 친구에게 이메일을 보내 브루클린으로 가는 부정기 항공편을 예약했다.
이 책은 디자인, 특히 '인터랙션 디자인'이라고 부르는 특정한 범주의 디자인에 대한 책이다. 사실 사람들이 역사를 기록하기 훨씬 전부터 인터랙션 디자인을 활용해왔지만, '인터랙션 디자인'은 새로운 분야라고 볼 수 있다. 인터랙션 디자인은 사람들에 대한 것이다. 어떻게 사람들이 자신들이 쓰는 제품과 서비스를 통해 다른 사람들과 연결되는가를 디자인하는 것이며, 이를 만들어내는 것이 인터랙션 디자이너다. 우리는 9/11 참사와 같은 위기상황이 벌어졌을 때는 수많은 제품과 서비스를 적극 활용하기도 하고, 또한 평온한 일상의 순간에는 이 제품과 서비스를 쓰면서 행복을 누린다.
이 책을 읽는 여러분이 이미 인터랙션 디자이너라면, 혹은 단지 인터랙션 디자인에 관심이 있을 뿐이라면, 혹은 아예 (인터랙션 디자인이) 무슨 뜻인지도 모른다면, 이 책은 당신을 위한 필독서다. 이 책 1장에서 제기하는 '인터랙션이 무엇인가?'와 '인터랙션 디자인이 무엇인가?'라는 질문에서 시작해 인터랙션 디자인의 미래를 살펴보는 데까지 이르는 내용이 초심자와 전문가 모두에게 흥미 있는 정보를 제공할 수 있기를 바란다. 이 책을 쓴 목적은 인터랙션 디자인에 대한 독자의 이해를 더 풍부하고 깊고 넓게 만드는 것이다.
시작하기 전에 미리 변명을 해두겠다. 인터랙션 디자인은 새로운 영역으로, 보통 새로운 분야가 확고하게 자리를 잡으려면 몇 십 년의 세월이 필요하다. 이 책은 내가 옳다고 믿게 된 새로운 영역을 구획 짓기 위한 작은 말뚝일 뿐이다. 여러분이 이 책을 읽거나 (더 나아가) 실제로 인터랙션 디자인을 시도할 때, 내가 이 책에서 이야기한 믿음과 진실을 독자 여러분도 공감해주기를 바란다.
2006년 3월, 샌프란시스코에서
댄 새퍼
--- 저자 서문 중에서
"이는 제품 디자인은 아니었지만 확실히 제품에 대한 디자인이었고, 몇몇 개념적인 부분을 빌어오긴 했지만 커뮤니케이션 디자인도 아니었고, 주로 컴퓨터와 소프트웨어의 힘을 빌었지만 컴퓨터 공학은 더더욱 아니었다. 기존의 모든 개념이 집약되어 있었지만 확실히 기존과는 다른 무언가였고, 그들이 사용하는 제품을 통해 사람들을 연결시키기 위해서는 이것이 꼭 필요했다. 모그리지(Moggridge)는 이 새로운 방법론을 '인터랙션 디자인'이라고 불렀다."
디지털 기기와 인터넷 서비스 시대의 물결을 타고 수많은 IT 노동자들이 오늘도 기존과는 다른 무언가를 만들기 위해 노력하고 있습니다. 포털/웹 업계에서는 서비스 기획자라는 직함이 존재합니다만, 그런 직함 없이도 모든 웹 애플리케이션과 개별 서비스의 설계자들이 인터랙션 디자인 업무를 진행합니다. 온라인 게임업계에서는 이들을 게임 디자이너라고 부릅니다. 상호작용하는 인터페이스를 갖춘 휴대용 기기를 위해 인터페이스 디자이너를 별도로 두는 회사도 있지만 하청업체에서 운영체제 납품 업무를 맡은 프로그래머가 이 일을 하기도 합니다.
이렇게 다양한 사람들에 의해 수행되는 업무를 통칭하는 '인터랙션 디자인'이라는 용어 자체가 생소하고 제대로 번역할 말조차 존재하지 않습니다. 실제 업무에서도 많은 사람들이 인터페이스 디자인과 서비스 기획과 시각적인 디자인 영역을 혼동하고, 이들에 대해 체계적으로 생각하거나 고찰할 기회가 없는 상태에서 업무에 투입됩니다. 저 자신 또한 10년간 (주로 온라인 게임이라는 영역에서) 유사한 업무를 진행하거나 전문서 번역일을 해왔습니다만, 게임을 통해 사람들을 연결하는 것을, 게임과 웹 서비스 사이의 관계를, 게임기와 게임 사이의 관계를, 혹은 휴대용 기기와 게임 간의 관계를 고민해오면서도 부끄럽게시리 개별 프로젝트들을 꿰뚫는 근거나 개념에 대해 제대로 알고 있는 것이 없었습니다. 다행히도, 큰 사고를 치기 전에(웃음) 이 책을 통해 그 모든 관계의 기반에 존재하는 큰 개념으로서의 인터랙션 디자인을 이해하고, 더 넓은 시야를 가지는 데 큰 도움을 받았습니다. 이 책은 진지한 전문서라기보다는 훌륭한 개론서입니다. 이 업무에 관심을 가지고 있는 분들과, 제품/서비스 디자인에 관련된 업무를 하고 있음에도 인터랙션 디자인에 대해 제대로 생각해 볼 기회가 없던 모든 사람에게 권하고 싶습니다.
--- '옮긴이의 말' 중에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