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달항아리 속 금동물고기

달항아리 속 금동물고기

: 제1회 문학판 신인작가 장편소설 수상작

문학판 소설이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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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2003년 4월간

품목정보

품목정보
발행일 2002년 12월 31일
쪽수, 무게, 크기 212쪽 | 387g | 147*210*20mm
ISBN13 9788970363400
ISBN10 8970363408

저자 소개 (1명)

책 속으로 책속으로 보이기/감추기

너는 모르지? 어느 한 사람이 죽어야 더 이상 가슴 아플 일이 없다는 것을. 세상 만물이 변하는데 우린 변하지 않으려고, 아니, 변하는 것을 보여주지 않으려고 무던히도 애썼다. 나도 네 아버지도. 무슨 말인지 모르겠냐. 아버지가 죽었기 때문에 나는 아버지를 끝까지 지킬 수가 있었다는 말이다. 그래, 사실은 마음이 후련하구나. 아버지도 내가 변심하는 것을 보지 않았고, 나도 아버지가 나를 더 힘들어하기 전에 보내서 좋고. 누구 하나가 죽어야 완성되는 사랑도 있단다.
죽음은 어떤 과계를 일시에 없앨 수도 있지만 어떤 관계는 영원하게 만든다. 아저씨와의 여행 도중에 돌아오던 비행기안에서의 깨달음을 다시 생각했다. 어머니 삶에서의 진실, 그리고 이젠 내 삶에서의 진실 아닌가. 나는 울고 있는 어머니를 놔두고 방을 나왔다. 어두운 처마 아래에서 차가운 빗기운을 느끼며 먼 어둠 속 층층이 쌓인 무덤들을 바라보았다. 아무에게도 드러내지 못하고 아무도 알려고 하지 않았을지 모르는 숱한 진실들이 묻혀 있을, 적막한 방. 비어 있는 그 방에 가서 누우면 마음이 가라앉을까. 오래 세월이 흐른다면 아버지의 얼굴도 다른 마흔한 개의 유체만큼 평안해질까. 어머니는 아버지와의 관계에서 더 이상 빚은 없어 보였다.
--- p 147
바로 눈앞에 아저씨가 서 있었다. 작은할아버지가 다녀간 지 얼마 되지 않았고, 아저씨 자신이 다녀간 것도 며칠 지나지 않은 데다 어머니가 없는 것을 알고 있으면서도 온 것에 나는 놀랐다. 하지만 아저씨는 무슨 목적이 있어서 온 것이 아니었던지 널길만 바라보았다.
장독이 다 깨졌구나.
아저씨가 실심한 목소리로 말했다.
하는 수 없었어요. 너무 무거운 돌을 들고 들낙거리다보니깐. 하지만 없애지는 않을 거예요.
어디다 쓸 건 아니지만, 내가 숨어 있었던 곳이기도 하고, 네 아버지가...
아저씨의 말이 채 끝나기도 전에 나는 치밀어오르는 화를 누르지 못하고 얼굴을 돌려버렸다. 아저씨가 숨어 있었던 곳이라고? 그러니까 아저씨가 애석해한 것은 다름아니라 자신과 어머니의 비밀한 만남을 기억하고 있기 때문이 아닌가. 그것은 어머니와 아저씨의 만남 이전에 우리 가족의 음식을 저장해놓았던 장독이었다. 피치 못하게 그곳에 숨어 있었다고 해서 아저씨가 상관할 일이 아닌 것이다.
--- p 102
아무리 한들 내 마음 같겠습니까? 이런 슬픈 일이 하늘 아래 또 있겠습니까? 당신은 한갓 그곳에 가 있을 뿐이지만 아무리 한들 내 마음 같이 서럽겠습니까. 당신 나에게 마음 어떻게 가져왔고 나는 또 어떻게 당신에게 마음을 가져왔나요. 함께 누우면 나는 언제나 당신에게 말하곤 했지요. 여보 다른 사람들도 우리처럼 어여삐 여기고 사랑할까요? 남들도 정말 우리 같을까요? 엄마는 느릿느릿 사백여 년 동안 어두운 무덤 속에서 부부의 사랑을 지켜온 긴 편지를 읽었다. 당신의 마음 어떻게 내게로 가져왔고, 내 마음은 또 어떻게 당신에게로 가져왔나요, 라고 읽을 때는 내 느낌인지 어머니의 목소리가 슬몃 떨리는 듯했다. 나는 폐부가 아려왔다. 지금껏 나는 궁금했다. 내 마음은 어떻게 해서 그녀에게 가는 것일까. 아버지 마음은 또 왜 이리 오래도록 어머니에게 가 있는 것일까. 어머니는 계속 읽었다. 당신을 여의고는 나는 아무리 해도 살 수가 없어요, 빨리 당신께 가고 싶어요. 내 마음 어디에 두고 자식 데리고 당신을 그리워하며 살 수 있을까 생각합니다. 이 내 편지 보시고 내 꿈에 와서 자세히 말해주세요. 꿈속에서 당신 말을 자세히 보고 싶어서 이렇게 써서 넣어드립니다. 어머니는 죽죽 읽어내리다가 시큰둥하게 한 마디했다.
사이가 한창 좋을 때 떠났는가 보네.
--- p 98
부엌에서는 뻔히 어머니가 간을 본 것을 알면서도 누가 간을 봤길래 취나물이 짜냐, 두부찜은 왜 이리 싱겁냐며 말들을 해댔다. 음식 가짓수가 적다, 손님들에 대한 접대가 왜 이리 소홀하냐, 끝이 없었다. 급기야는 실수인 척하고 해서는 안 될 소리들을 늘어놓았다. 왜 그렇게 갔겠나. 그동안 참고 참았는데, 그 사람이 왜 그렇게 갔겠느냐고. 하나를 보면 열을 안다고 했다, 이렇게 소홀한 걸 진작부터 알았는데...... 옆에서는 그런 할머니들을 찔벅거리며 말리는 척 하는 백숙모들도 있었다. 그만합시다. 그만해요. 그녀들은 말리는 축과 부추기는 축으로 나뉘었다. 말싸움에 진력난 어머니가 골방에 들어가 있는 것을 보기라도 할라치면 자네가 왜 여기 있나, 이래도 되는 거냐, 고 해서 도로 빈소로 몰아냈다. 너무 시달려서인가. 어머니는 차라리 편안해져갔다. 아니, 어쩌면 속을 다 내어놓은 것 같다는 편이 옳을 것 같았다.
--- pp. 89∼90
개회식에서 화가라고 인사를 했던, 베레를 쓴 중년 남자가 나와 그림 사이로 들어왔다.
아버지 어디 계시지?
나는 흠칫 놀랐다. 아버지를 아는 사람인가? 아버지가 언제 미술계 인사들과 안면을 트고 지냈던가? 나는 곁에 있으리라고 생각하고 아저씨를 돌아보았지만 보이지 않았다. 뭐라 대답해야 할지 알 수 없어 머뭇거렸다. 얼굴 가득 웃음을 띠우고 있던 그는 바로 다음 순간 내 오른쪽으로 돌아 두 팔을 벌리면서 반가워 못 견디겠다는 듯이 웃었다. 오랜만이네. 그새 나타난 아저씨와 그 남자는 유난히 팔을 널따랗게 벌리고 서로를 껴안았다. 그림 참 좋구만. 어저씨는 그의 어깨를 부여안고 걸음을 옮기면서 내게 따라오라는 눈짓을 했다. 나는 엉거주춤 그들을 따라갔다. 그 남자가 몇 걸음 걷다 말고 나를 의식했는지 내 등을 두드렸다.
큰아들은 아니고 작은아들인가?
아들? 내가? 나는 아니라고 고개를 흔드는데 아저씨가 웃었다.
그렇게 닮았는가? 조카일세.
아아, 그런가. 나는 또.
--- p 106
나는 그녀의 다리 사이에서 두 마리 통통한 물고기를 발견했다. 가운데 부분이 약간 벌어진 채 머리와 꼬리를 붙이고 있는, 팔딱거리고 매끈하며 보얀 찬 물기가 느껴지는 물고기 아랫배 같은 그녀의 속살을 밤이 새도록 보고 싶었다. 뜨거워요. 그녀는 가끔 다리를 털 듯이 흔들었다. 내가 그녀의 다리 사이에 라이터를 들이댔기 때문이다. 라이터는 가스가 다할 때까지 내 뜻을 충분히 이루어주었다. 불이 흔들릴 때마다 물고기는 더욱 꿈틀거렸다. 나는 불빛이 없어지자 비로소 그녀의 두 마리 물고기를 열었다. 내 몸은 피복이 벗겨진 전선처럼 불꽃이 튀었다. 그리고 그것은 그대로 찬 물고기 속으로 파고 들어가 그녀 또한 불꽃 튀는 전기에 감응하여 파르르 떨게 만들었다.
--- p 42

추천평 추천평 보이기/감추기

《달항아리 속 금동물고기》는 문체의 세련도와 글의 밀도가 돋보이는 작품이라는 점에 대해 심사위원들이 의견을 같이하였다. 또한 고고학에 대한 지식을 무리 없이 소설적으로 형상화하고 있다는 점, 창의적인 이야기 구성 능력이 소설 곳곳에서 확인된다는 점 등이 장점으로 꼽혔다. 아울러, 현실 세계가 감추고 있는 삶의 이면을 응시하고 이해하는 시각도 대단한 수준임이 거론되었다.
― 김인환, 윤후명, 장경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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