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자객의 시조 '조말'
'조말'은 춘추시대 노나라 사람이다. 그는 한마디로 협객풍의 사나이였다. '불의(不義)를 보고 피하는 것은 칼을 지닌 자가 취할 행동이 아니다.' 하지만 무예로 입신양명하고자 하는 욕심은 조금도 없었다. 조말은 그저 칼이 좋았을 부이고, 의로운 일을 하는 것이 자신의 본분이라고 생각했다. 그는 적진 한가운데서 손바닥보다 작은 비수 하나로 제환공을 위협하여, 제나라에 빼앗겼던 노나라 땅을 모두 돌려받는 쾌거를 이룩했다. 중국 역사의 아버지 사마천은 《사기》<자객열전>을 쓰면서 조말을 첫머리에 기술함으로써 그의 대범함과 유협 정신을 칭송했다.
● 암살자 운명을 타고난 '발제'
진나라 곡옥땅에서 태어난 '발제'는 점복가 '곽언'에 의해 '남을 해하며 살아갈 운명'이라고 단정지어진다. 곽언의 추천으로 궁에 호위무사로 들어가게 된 발제는 당시 세자였던 '궤제'를 호위하는 임무를 수행한다. 그때부터 발제는 '암살자'로서의 임무에도 뛰어난 소질을 보인다. 세자 궤제가 왕위에 오르니 그가 진헌공이다. 주변의 이민족과의 싸움에서 진헌공은 고비 때마다 발제를 상대편 진영에 침투시켜 적국의 가장 주요 인물을 몰래 암살하는 수법을 썼다. 진헌공이 '여희'라는 첩(훗날 정실이 됨)의 꼬임에 빠져 세자였던 신생을 자살시키고, 발제에게 둘째 아들 중이 역시 죽이라고 명한다. 발제는 중이 공자를 암살하려다 눈앞에서 놓치게 되고 중이 공자는 이웃나라로 망명을 한다. 이때부터 오래도록 두 사람의 악연은 계속된다. 수십 년 후, 우여곡절 끝에 중이 공자가 왕위에 오르고 나서 발제는 어려운 지경에 처한 중이를 돕는다. '주공의 명을 따를 뿐이다!' 이것이 발제가 가진 명분이었다. 주인이 바뀔 때마다 새로운 임무에 최선을 다했던 발제는 역사상 보기 드문 전문 암살범이었다.
● 결초보은의 인물 '전제'
'전제'는 오나라 사람이다. 얼마 전까지만 하더라도 평범한 삶을 살아가던 사나이였는데, '오자서'를 만나면서부터 운명이 바뀐다. 전제는 어린시절부터 어머니에게서 오자서에 대한 이야기를 들으며 자란다. 그 이야기의 요는 부친의 은인이 오자서이고, 언젠가 그 은혜를 꼭 갚아야 한다는 것이다. 초나라 사람 오자서는 부형(父兄)이 참살당하는 수모를 겪고 오나라로 망명을 와 복수의 칼날을 간다. 그러던 중 전제와 만나게 되고 두 사람은 '결의형제'를 한다. 오자서의 머릿속엔 오나라 군사를 움직여 자신의 부형을 죽인 초나라 왕을 치는 일뿐이다. 오자서는 초나라의 제2인자인 공자 '희광'과 손을 잡고 오나라왕 '요'를 살해할 계획을 세운다. 이에 발탁된 인물이 바로 전제다. 전제는 선친의 은혜를 갚기 위해 자객으로 나서 오왕을 살해하는 데 성공한다. 전제는 의로웠고, 은혜를 잊지 않았으며, 자신의 행위에 보답도 바라지 않았다. 무엇보다도 맡은 일을 완벽하게 성공시켰다. 전제야말로 자객의 요건을 완전히 갖춘 인물이라 할 수 있다.
● 이름을 남기기 위해 자객이 된 '요이'
요이는 오나라 사람으로 태호 호숫가에 살며 고기를 잡아 살아가는 어부였다. 그런 그가 "나의 협명(俠名)을 반드시 누대까지 남기리라!"라고 말할 때면 사람들은 대부분 속으로 코웃음을 쳤다. 무엇보다도 키가 몹시 작은데다가 몸집까지 빈약했다. 지금의 길이단위로 치자면 138cm가 될까말까한 키였다. 그에게는 오자서와 전제가 우상과도 같았다. 요이는 그들처럼 되기 위해 온갖 노력을 다했다. 학문이 깊은 사람에게 가서는 임협도를 배웠고, 검술에 능한 사람의 소문을 들으면 달려가 제자가 되었다. 곤경에 처한 사람이 있으면 앞장서서 도와주었고, 배를 굶주리는 사람이 있으면 잡은 고기를 몽땅 내주기도 했다. 그러다가 드디어 요이는 오자서에게 발탁된다. 그 무렵 전제를 시켜 오왕 요를 암살하고 오나라 왕에 오른 '합려'(앞장의 공자 희광)가 요의 아들 '경기'에 의해 목숨을 위협받고 있었다. 오자서는 오왕 합려의 명을 받들어 경기를 암살할 인물로 요이를 점찍은 것이었다. 요이는 임무를 수행하기 위해 아내와 자식의 목숨, 자신의 오른팔까지 끊어내는 것을 감수하고 임무를 완수한 뒤 자살한다.
● 아버지의 원수를 갚기 위해 노력한 '미간척'
'미간척'의 집안은 대대로 칼을 만드는 장인의 가문이었다. 그러나 유복자로 태어난 미간척은 칼 만드는 일엔 관심을 보이지 않았다. 미간척의 어머니 '막야'는 나이가 들어도 철들 생각을 안 하는 미간척에게 아버지 '간장'의 이야기를 들려준다. 간장은 왕의 명을 받고 천하 명검을 만들어 왕에게 바쳤으나, 오히려 그 검으로 살해당한다. 간장은 그 일을 미리 짐작하고 아내 막야에게 자신이 만든 두 개의 검('간장'과 '막야'라는 이름을 붙인) 중 하나의 검만 왕에게 진상할 테니, 만약 아들이 태어난다면 남은 한 개의 검을 찾아 자신의 복수를 해달라고 유언한다. 미간척은 그 일을 전해듣고 아버지가 숨겨둔 검을 찾아든 채 복수의 길을 떠난다. 그러나, 집을 나섰을 때는 이미 자신의 얼굴이 그려진 방이 붙어 있었다. 왕이 명검 한 자루가 더 있는 것을 알게 돼 미간척을 잡아죽이기로 했던 것이다. 복수할 길이 요원해진 미간척 앞에 '무명검객'이 나타난다. 그는 지난날 미간척의 아버지에게 은혜를 입은 적이 있는 사내였다. 무명검객은 자신이 간장의 원수를 갚아준다며 미간척에게 왕이 찾고 있는 검과 미간척의 머리를 내달라고 한다. 미간척은 무명검객에게 아버지의 꼭 아버지의 원수를 갚아달라고 부탁하고는 갖고 있던 검으로 목을 쳐 자살한다. 무명검객은 미간척의 머리와 칼을 들고 왕에게 찾아가 왕이 방심하고 있는 틈을 타 복수에 성공한다.
● 자신을 알아준 주인을 위해 자객이 된 '예양'
'예양'은 진나라 신강 사람으로, 그의 신분은 사(士)였다. 능력에 따라 높은 대우를 받을 수도 있고, 보잘것없는 심부름꾼이나 보졸 따위로 전락할 수도 있는 신분이었다. 당시 진나라는 '6경'이라 불리는 여섯 유력 귀족의 손에 넘어가 있었다. 예양은 6경 중 범씨 일족의 당주인 '범길사'의 집에 찾아가 가신이 되길 청했고, 범길사는 그에게 마구간지기 일을 맡겼다가 후에는 예양을 자기 딸의 마부로 썼다. 예양은 2년 동안 정성을 다해 그 일을 맡아 하다가 범길사의 딸이 6경 중 하나인 '순인'의 가문으로 시집갈 때 하인으로 따라가게 된다. 순인은 예양에게 경비 일을 맡긴다. 이후 6경 사이의 세력다툼으로 예양은 지씨의 포로가 된다. 지씨 일족의 당주 지갑의 둘째 아들이었던 '지요'가 예양을 거두어 자신의 서사(書士)로 삼는다. 이때부터 예양은 자신의 능력을 한껏 발휘하기 시작한다. '지백'(지요가 훗날 당주에 올라 이름을 고침)은 예양을 가신장으로 예우해주고, 예양의 지백에 대한 충성심은 깊어만 간다. 그러나 세력을 넓혀가던 지백이 조씨 일파에 의해 살해당하게 된다. 그때부터 예양은 지백의 원수를 갚기 위해 검술을 익히는 데 전념한다. 예양은 자신의 주인을 죽인 '조양자'를 암살하기 위해 조씨 집안으로 몰래 숨어들었다가 발각이 되었고, 조양자는 그의 충성심을 높이 사 살려서 돌려보낸다. 예양은 거기서 멈추지 않고 온몸에 옻칠을 하고 눈썹과 수염을 뽑는다. 아무도 자신을 알아볼 수 없도록 하기 위해 숯을 먹어 목소리까지 엉망이 되게 한다. 그러고도 다시 조양자를 죽이는 데는 실패하고 사로잡힌다. 예양은 '사나이는 자신을 알아주는 사람을 위해 죽는다'는 말은 남기고 자살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