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때론 눈부시고, 때론 쓸쓸하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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품목정보

품목정보
발행일 2016년 09월 25일
쪽수, 무게, 크기 152쪽 | 153*210*20mm
ISBN13 9791185923161
ISBN10 118592316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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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자 소개 관련자료 보이기/감추기

저자 : 연은순
문학 평론가. 1958년 충북 충주 출생.
충남대 독문과 졸업. 한국 외국어대 독문학 석사.
청주대 국문학 박사(학위 논문 「서정주 시 연구」). 1996년 월간 『조선문학』에 문학평론 「민족적 삶의 원형찾기」로 등단.

문학평론집 『문학의 숲으로 난 작은 길』
산문집『가슴끼리 만남』, 『그리움의 바다』, 『밴쿠버의 연가』, 『문득 고요해지는 순간들』, 인물 기행집 『밴쿠버에서는 하늘만 보고도 산다』, 『밴쿠버에서 만난 사람들』등 다수.

캐나다 브리티시 컬럼비아 대 한국학 연구소 객원 연구원, 중앙일보 밴쿠버 지사 문화전문기자, 청주대 강사, 동양일보 논설위원을 역임했고, 고등학교 교재 『독서』에 정지용 시 「향수」를 다룬 평론, 「영원한 그리움의 노래」가 2003년부터 실린 바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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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느새 11월이 되고 보니 따사로운 햇살이 귀하게 느껴진다. 시간 나는 대로 산책을 하며 귀한 가을볕을 쬘 기회를 많이 가지려 한다. 아파트 안에서 잠시 머리를 식힐 때도 베란다에 앉아 햇살을 받으며 먼 산을 바라보기도 한다. 그럴 때면 아스라한 기분이 들며 마음조차 따사로워진다. 아울러 내 삶에 빛이 되어준 사람들을 생각하게 된다.
유난히 외로움을 많이 타고 예민한 나는 유난히 생의 멀미가 심했고, 알 수 없는 불안으로 힘들어 했다. 그토록 심약한 내가 지금껏 무탈하게 잘 살아올 수 있었던 것은 내 곁에서 빛이 되어준 사람들이 있었기 때문이다. 나이가 들어 지난 시절을 떠올리는 일이 많다 보니 그들에 대한 고마움이 새삼스럽다. 사람이 어찌 혼자 살아갈 수 있겠는가. 그간 나는 숱한 사람이 던져준 빛을 받으며 살아왔다는 생각이 든다.
우선적으로 친정 엄마의 모습이 떠오른다. 여든을 넘긴 연세임에도 여전히 자식들 때문에 노심초사하는 엄마를 보면 알 수 없는 죄책감과 슬픔이 인다. 오 남매를 두셔서 온갖 풍상을 다 겪으셨음에도 여전히 큰일이 생길 때면 의연함을 잃지 않으셔서 자식들을 숙연하게 하신다. 유난한 병치레와 차가운 성격 탓에 엄마 마음을 많이 아프게 해 드렸는데도 나에 대한 애정은 변함없으시다.
오빠의 독보적인 자상함도 빼놓을 수가 없다. 어려서부터 오빠와 난 각별히 친했다. 초등학교 시절에는 고등학생이던 오빠가 도서관에서 빌려다 주는 책으로 마음의 양식을 삼았고 오빠가 첫사랑에 빠졌을 때는 알 수 없는 상실감에 잠을 못 이루기도 했다. 오빠가 간디 선생을 따라 단식을 시도할 때면 나 또한 오빠를 따라 하기도 했다. 오빠가 최면술에 심취해 나를 피험자로 삼는 일이 빈번했을 때의 기억은 오랜 시간이 지난 지금도 여전히 날 미소 짓게 한다. 지금도 어려운 일이 있거나 몸이 아플 때면 수시로 전화를 해 날 위로해 주는 오빠는 내 수호천사와 다름없다.
이십 년 넘게 내 곁을 지켜준 프리지어를 닮은 내 친구도 떠오른다. 그간 살아오면서 어려운 일이 있을 때마다 나와 함께한 그녀는 나와 가장 잘 통하는 친구다. 사고방식이 유연하고 열려 있어서 무슨 얘기건 다 소화를 해 내고 냉철한 판단을 해 준다. 좋은 일은 진심으로 기뻐해 주고 어려운 일은 해결책을 제시해주는 지혜로운 안목을 지닌 친구다. 머릿속이 엉클어져 판단이 흐려질 때 그녀를 만나고 나면 생각이 정리가 되고 마음이 차분히 가라앉는다. 진정한 친구는 그래야 한다는 생각이 들게 하는 사람이다.
자주 만나지는 못하나 보기 드문 깊이와 명석함으로 나를 아껴주는 선배 언니가 준 빛도 빼놓을 수 없다. 내 작은 글재를 아껴주고 내가 글쓰기를 포기하지 않도록 깊은 배려를 잊지 않는 그녀. 일 년에 몇 번도 만날 수 없으나 그녀가 내 가까이에 존재한다는 것만으로도 마음이 든든해지는 사람이다. 나이가 들어 글쓰기가 힘들다고 엄살 떨 때마다 내 응석을 다 받아주고 내가 쓰는 일을 포기하지 않도록 넌지시 용기를 북돋아 주는 사람이다. 세상에 친구가 굳이 많을 필요 없이 선배 언니 같은 사람 몇 명만 있어도 영혼의 배가 부를 것 같다는 생각이 든다. 언제나 미숙하고 이기적인 나는 언니의 속 깊은 애정을 죽을 때까지 흉내 낼 수 없을 것 같다는 생각이 든다.
캐나다에 살 때 참 외로운 날이 많았다. 그때 나를 지켜준 따사로운 친구가 있었다. 외국에서 마음 통하는 사람을 만나기란 그리 쉬운 일이 아니다. 그녀는 멋진 시인이었을뿐 아니라 예술 전체를 아우르는 미학에도 일가견이 있어서 함께 대화를 나눌 때면 시간 가는 줄 몰랐다. 시간이 날 때마다 만나 라흐마니노프나 바하를 들으며 어쩔 수 없이 고독할 수밖에 없는 우리의 인생에 대해, 사랑의 위대함에 대해 논했다. 문학과 예술이 우리를 얼마나 행복하게 하는지, 그들로 인해 얼마나 우리가 큰 힘을 얻어 살아갈 수 있는지에 대해 논했다. 그녀의 우정이 있었기에 외롭기 그지없던 캐나다 시절을 견딜 수 있었다.
많은 이들에게 받았던 것만큼 내가 그들에게 빛이 되어 줄 수 있었는가 다시 한번 되돌아 본다. 모두 묵묵히 삶을 견디며 남에게 빛이 되려 애쓰고 있는데 나만 유난히 엄살을 떤게 아니었나 생각해 본다. 가을 햇살을 받으며 그간 다른 이들에게 받은 만큼 남들에게도 되갚는 삶이 되어야겠다는 다짐을 해 본다.
---「빛이 되어준 사람들」중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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