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슬라브어에서 색깔을 나타내는 단어는 종종 색깔 외에도 다른 의미를 가지고 있다. 우리에게도 잘 알려진 모스크바의 ‘붉은광장(Красная площадь)’에서 ‘붉은(красная)’이라는 형용사가 ‘아름다운’, ‘주요한’, ‘큰’, ‘최고의’라는 뜻을 가지는 것처럼, ‘흰’, ‘하얀’이라는 뜻의 형용사 ‘벨리’는 ‘남의 구속을 당하지 않는’, ‘자유로운’, ‘면제의’, ‘명문의’ 등 여러 가지 뜻이 있다. 과거 벨라루스인, 특히 현재 벨라루스 땅의 북쪽과 북동쪽에 살던 사람들은 러시아인과 달리 몽골·타타르에 항복하지 않았으며 그들에게 조공을 바치지도 않았다. 이들은 말 그대로 구속받지 않은 독립적인 민족이었다. ---「벨라루스인, 구속받지 않는 사람들」중에서
2014년 세계 언론에 자주 오르내렸던 나라 중 하나는 바로 우크라이나다. 우크라이나에 속해 있던 크림 반도가 러시아에 편입된 일부터 우크라이나 정부군과 동부 친러 반군의 교전까지, 우크라이나에서 일어나고 있는 일련의 사건이 2014년 국제뉴스의 많은 부분을 차지했다. 우크라이나인은 러시아인, 벨라루스인과 함께 동슬라브 형제민족이지만, 이들의 관계는 그리 좋지만은 않다. 세계를 떠들썩하게 만든 몇 년간의 정치적 사건 외에도, 우크라이나는 밀라 요보비치, 밀라 쿠니스, 올가 쿠릴렌코 등 아름다운 할리우드 스타들과 장대높이뛰기 역사를 새로 쓴 ‘인간 새’ 세르게이 부브카(붑카), 축구선수 안드리 셉첸코 등 세계적인 운동선수를 낳은 곳이기도 하다. ---「우크라이나인, 동과 서의 갈림길에 선 민족」중에서
고고학 사료에 따르면 몰도바인은 4000~5000년 전부터 포도를 경작했다. 기원전 3세기 말 로마 군대가 이 지역에 침입하면서 몰도바의 포도주 양조가 발전하게 되었다. 따뜻한 대륙성 기후와 비옥한 토지는 양질의 포도주를 생산하는 데 좋은 환경이었으며, 이렇게 발전한 포도주는 중세 시기 몰도바인의 주요 수출품이었다. 소련 붕괴 이후 신생 독립국가에서 장미혁명(조지아), 오렌지혁명(우크라이나) 등 색깔 혁명이 일어났을 때, 2005년 몰도바 총선에서 정권 교체를 이뤘던 일을 두고 포도혁명이라고 부른 것만 봐도 포도가 이곳의 대표적인 경작물임을 알 수 있다. ---「몰도바인, 5000년 전부터 포도를 경작하던 사람들」중에서
1989년 8월 23일 발트 3국에 노래가 울려 퍼졌다. 50년 전 소련과 독일의 비밀 불가침 조약으로 소련에 강제로 병합되었던 그날 200만 명의 시민이 만든 인간 사슬은 에스토니아의 수도 탈린에서 라트비아의 수도 리가(Riga)를 지나 리투아니아의 수도 빌니우스(Vilnius)에 이르는 600킬로미터 이상의 ‘발트의 길’에 길게 이어졌다. 손을 잡은 사람들은 탱크와 총으로 가로막은 소련군에 오직 평화의 노래로 대응했다. 세계사에 유례없는 대규모 비폭력 평화시위였다. 이날의 노래는 전 세계로 퍼져나갔고 결국 소련의 지배를 무너뜨리고 에스토니아의 독립을 이끌어냈다. 이 감동적인 이야기는 2008년 다큐멘터리 영화 [노래 혁명(The Singing Revolution)]으로 제작되기도 했다. ---「에스토니아인, 스카이프를 탄생시킨 IT 선두 민족」중에서
1989년 프랑스 지질학회는 리투아니아 수도 빌뉴스에서 북쪽으로 26킬로미터 떨어진 지점이 유럽의 중심이라고 발표했다. 물론 유럽의 경계를 어디에 두느냐에 따라 달라지겠지만, 리투아니아 국회 입장에서는 이 같은 소식이 매우 반가웠으며 여기에 커다란 의미를 부여하려고 노력했다. 독립한 지 얼마 되지 않아 국내 정세가 다소 혼란스러웠던 시기였기 때문에 리투아니아 정부는 국민의 자부심을 고취하고 리투아니아 민족을 단결시키는 좋은 계기로 삼기 위해 1992년에 유럽의 중심이라는 표시로 기념탑을 세웠다. 이 탑은 리투아니아인의 자부심일 뿐만 아니라 관광자원으로도 큰 몫을 하고 있다. ---「리투아니아인, 한국인과 많이 닮은 한과 흥을 지닌 민족」중에서
우즈베크인의 손님 접대에서는 차 대접이 중요한 위치를 차지한다. 손님들에게 차를 따라 줄 때는 먼저 찻잔에 차를 따랐다가 다시 찻주전자에 부어 넣기를 세 번 반복하는데, 차를 빨리 우려냄과 동시에 손님에게 농도가 고른 차를 대접하기 위한 것이다. 전통적으로 손님에게 차를 따라줄 때 잔을 가득 채워주지 않는다. 귀한 손님일수록 찻잔에 차를 조금 따라준다. 손님이 차를 빨리 마시고 또 따라주도록 부탁하게끔 하려는 것이다. 손님이 더 자주 차를 따라달라고 부탁할수록 주인의 환대를 존중하는 마음이 더 잘 표현된다고 여긴다. 이것은 또 손님이 뜨거운 찻잔을 들고 있지 않도록 배려하는 마음이 담긴 전통이기도 하다. ---「우즈베크인, 중앙아시아 고대 문화의 전승자」중에서
아이를 출산할 수 없거나 딸만 낳은 경우에는 일부다처제를 통해 아들을 낳도록 했다. 딸이 태어나면, 딸은 다른 사람의 가정에서 양육되었다. 키르기스인의 남성 중심적 관습은 전통 혼례에서도 나타난다. 키르기스 혼례에는 신부 납치혼이라는 풍습이 존재한다. 신랑 측에서 신부될 아가씨를 납치하면, 신랑 부모는 신부의 친부모에게 “당신은 더는 딸이 없습니다. 그 아이는 이제 우리 딸입니다”라고 이야기하며 혼인 소식을 전했다. 이는 여성의 소속 공동체가 태어난 가족에서 남편 및 남편 가족으로 바뀌는 것을 뜻했다. 신부납치 전통은 오늘날에도 키르기스인 공동체 일부에 남아 있는데, 여성 인권단체를 제외하고는 심각한 사회문제로 여기지 않는 경향이 강하다. ---「키르기스인, ‘중앙아시아의 스위스’에 사는 산악인」중에서
조지아인이 사는 곳(조지아어로는 사카르트벨로)은 인류의 시원과 잇닿아 있는 공간이다. 아프리카 일부 지역, 인도네시아와 베이징 등을 비롯한 극소수 지역에서만 인류 최초로 직립보행을 한 원시인류가 발견된다는 점을 고려할 때, 조지아에서 확인된 ‘호모 에렉투스 게오르기쿠스(Homo erectus georgicus)’의 존재는 조지아인의 기원을 인류의 시작까지 끌어올린다. 180만~160만 년 전, 조지아에는 당시 지구에서는 구경하기 힘들었던 존재, 그 이름도 고귀한 ‘직립보행’ 인류가 살고 있었다.
---「조지아인, 장미와 와인을 닮은 민족」중에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