잃어버린 꿈을 찾아 떠나는 여행
-- 김미정 (sbbonzi@yes24.com)
아마, 이 동화를 읽기 위해서는 커다란 지도 한 장이 필요할 지도 모르겠습니다.
그리고 책의 첫 장에 나오는 랭보의 이 싯귀도 잘 기억해 두어야겠습니다.
상쾌한 여름 저녁이 되면 나는 들길을 가리라.
보리 이삭에 찔리고, 가느다란 풀을 밟으며
꿈꾸듯이, 나는 발자국마다 신선함을 느끼리.
불어오는 바람에 내 맨 머리카락이 날리는구나!
말하지 않으리, 아무것도 생각하지 않으리.
그러나 내 마음 깊은 곳에서는 끝없는 사랑만이 솟아 오르네.
나는 가리라, 멀리 저 멀리, 방랑자처럼
자연 속으로, 연인과 가는 것처럼 행복하게.
-「감각」아르튀르 랭보(1870년 3월)
어느날 저녁, 오리건은 이렇게 말을 건넸습니다.
“듀크, 나를 커다란 숲으로 데려다 줘”
순간 듀크는 아무 말도 할 수가 없습니다. 그리고 난쟁이 듀크는 흰 눈이 내리는 숲속에 오리건을 데려다 주면 백설공주를 만날지도 모른다는 자기 나름의 희망을 품게 됩니다.
오리건과 듀크는 서커스단에서 만난 재주부리는 곰과 코에 빨간 칠을 한 난쟁이 어릿광대 사이였습니다. 그들 사이에 일어난 이 자유를 찾아 떠나는 여행은 미리 철저히 준비한 것이 아니라, 어느날 문득 찾아와서 지금이 떠나야 할 때라는 것을 알려 주고 있었습니다. 그래서 그들은 마지막 재주를 부리고, 무거운 짐과 주머니를 축 늘어지게 하는 열쇠 꾸러미를 두고 컴컴한 밤에 길을 떠나게 됩니다.
그렇게 시작된 오리건과 듀크의 여행은 멀리 저 멀리 방랑자처럼, 오리건이 원래 살았던 오리건 주의 오리건 숲으로 향합니다. 펜실베니아의 피츠버그에 있는 서커스단을 버리고, 일리노이 주의 시카고를 거쳐, 미국인들이 서부 개척을 목적으로 정복한 동부 수족 인디언 마을 지나, 곡창 지대인 아이오와 주를 걸어서, 버스를 타고, 또는 차를 얻어 타고 갑니다. 플랫강과 그래이트 플레인스를 거쳐 로키 산맥을 넘고, 서부 개척을 위해 건설한 미대륙 횡단 철도의 마지막 종착지인 오리건 숲까지요.
그 긴 여정은 단지, 서커스단이 싫어져서 더 나은 곳을 향해 떠나는 것의, 단순한 일상의 탈출만을 그려낸 것은 아닙니다. 1930년대 미국의 경제적 공황으로 생긴 부랑자들과 아메리칸 드림을 꿈꾸던 자들의 아픈 꿈을 보여주고 있습니다. 길가에 버려진 녹슨 시보레 자동차나, 이 빠진 깃털 장식을 한 인디언 추장 등, 장면장면에 나오는 사람들은 그렇게 미국의 19세기 초 사회상을 읽어 줍니다.
또한 이 책에서 한 가지 빼놓을 수 없는 것은 처음에 말씀드린 대로 랭보의 시 같은 풍경이 계속 된다는 것입니다.
“붉은 머리카락을 바람에 날리며, 나는 반 고흐의 그림 같은 풍경을 헤치고 갔습니다……. 그 모습은 정말 아름다웠습니다. ”
보드라운 풀밭에서 꾸벅꾸벅 졸거나, 별빛 아래서 꿈도 꾸고 책은 그렇게 마음 속 깊은 속에 있는, 너무 바삐 살다가 놓아 버린 작은 꿈을 건드리며 점점 종착지에 가까워 집니다. 달리는 기차의 맨 끝에 간신히 올라탄 그 둘, 그리고 기차 안에서 잠시 졸다가 눈을 떴을 때는 오리건이 꿈속에서 보았던 그런 숲이 펼쳐져 있었습니다. 오리건은 그렇게 숲에 발을 내딛었고 듀크는 숲에 데려다 주겠다고 했던 그 약속을 지켜냈습니다.
그리고 이 책의 가장 정점이 되는 부분은 재주 부리는 곰이었던 오리건이 야생의 숲으로 돌아간 것도, 듀크가 힘겹게 그 약속을 지켜낸 것도, 랭보의 시 같은 풍경도 아닙니다. 그것은 듀크가 오리건을 숲에 데려다 주고 나오던 그 길가에 아무리 문질러도 지워지지 않던 빨간 광대의 그 코가 버려진 것입니다. 난쟁이라는 현실 때문에 가질 수 없었던 꿈이, 광대가 아닌 어렸을 적에 꾸었던 그 꿈의 사람이라는 소망을 듀크가 다시 가지게 된 것입니다.
물론, 이 책의 교훈은 이것입니다하고, 명확한 결론이 나지 않지만, 하나도 허투루 놓칠 수 없는 이야기가 잔잔하게 배어 있습니다. 우리가 살면서 지쳐서, 혹 잃어 버린 꿈이 이 책을 다 읽고 나면 슬몃 생각날지도 모를 일이잖아요. 그래서 꿈을 잃은 어른인 당신이거나 꿈을 키울 당신의 아이와 나란히 앉아 그렇게 읽었으면 좋겠습니다. 읽는 사이사이 오리건과 듀크가 지났던 고흐의 그림 같은 풍경을 나란히 지나는 것도 아주 좋을 것 같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