엄마가 보는 거랑 아기가 보는 건 다릅니다.
도서2팀 강현승 (kikine@yes24.com)
2009-12-03
조카들을 예뻐하기만 하면 되던 처녀시절에, 조카들을 위해 책을 많이 사다줬었는데 참 이상했던 것이, 내가 좋아서 사다주는 책과 아이들이 좋아서 보는 책이 판이하게 다르다는 것이었다. 내가 좋아하는 색감, 분위기, 멘트, 라임, 단어 등등은 아이들에게 하나도 어필이 되지 않았고, 오히려 '이건 왜이렇게 얘기가 어수선해?' 라던가 '엇, 벌써 끝이야?' 라는 책들은 조카들이 많이 좋아했다.
그 당시 외국어 도서 담당자였던 나는, '아 역시, 나는 아이들 책을 고르는데엔 자질이 없나봐' 라며 괴로워했고, '난 아이들만큼 순수하지 않기 때문인건가' 라며 엉뚱하게 고민하기도 했었는데, 이제 이런 내가 아이를 낳고 전집을 담당하면서 눈이 많이 바뀌게 되었다.
아이를 위한 책을 선택할 때엔, 엄마 눈에 보기에 좋은 책 보단 아이들이 좋아해야 하는데 요즘 엄마들은 가장 중요한 원칙인 이것을 잘 잊는 것 같다. 특히 전집의 경우, 그 안에 있는 많은 책들이 한결같은 quality 를 갖고 있기가 어렵기 때문에, 영업사원이 추천하는 3~4 권 보고 괜찮으면 구입하거나, 혹은 옆집 엄마가 추천해서 구입하는 경우가 많다. 옆집엄마는 옆집 엄마고, 영업사원은 영업사원인 것을, 우리는 우리 아기의 의견은 묻지도 않고 전집을 구매해 왔으니, 거실을 서재로 꾸며도 공간이 모자랄 판인 것이다.
그런 의미에서 이 전집은 꽤 한결같은 질을 자랑하고 있다. 특히 실사를 제시할 경우 아직 물체와 주변 배경을 구분하지 못하는 아기들을 위해서. 다채로운 색을 적당히 섞어서 명확하게 사물을 구분할 수 있게 하였고, 나처럼 첫째를 키우며 회사를 다니는 워킹맘, 상대적으로 아이 전집에 대한 정보가 적은 워킹맘들도 읽어주기 쉽게 연령별로 도서를 구별을 했다. 요즘 보드북에 라운딩 처리는 아이들 책의 기본이니 별도로 말할 필요 없고, 이제 막 돌 지난 내 딸에겐 필요 없지만 곧 쓰게 될 한글낱말 카드도 만족스럽다. 그리고 가장 신기한게, 이 책은 나도 재밌고 내 딸도 좋아한다는 것이다.
내 생각엔 인문, 사회과학 책을 쓰시는 저자분들도 박식하신 분이 많으시지만, 정말 박식하신 분들은 유아책을 만드는 분들이 아닐까 싶다. 재미있고 유쾌한 내용 안에, 아이들 눈높이에 맞는 이미지, 그리고 그 안에 녹아있는 수개념, 공간개념, 사물인식을 도와주는 여러 도구들까지. 비단 재미 뿐만 아니라 그 안에서 '배움' 을 이끌어 내야 하는 것이 유아책의 숙명인데, 이것을 그 작은 책 안에 녹여내는 분들이 존경스럽다.
아, 맨날 퇴근하면 보채는 딸과 무얼할까 망설이던 나, 하지만 오늘도 퇴근해서 이 책 읽어주고 놀아주면 되니 한시름 놓았다. 아참, 근데 이 책 다 읽으면 이제 또 무슨 책으로 놀아주나?